• 당원번호 반납하고 새 노동정치 시작
    [기고] 나의 마음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임한다
        2012년 09월 17일 05:0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박주동 공공운수노조 관세무역개발원지부장은 두자리수 당원번호를 가진 민주노동당 창당 멤버다. 얼마전에는 새로운 노동정치를 시작하는 공공운수노동자 선언 제안에 최초 제안자 24명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새 정치운동을 진행하기로 하면서 관세무역개발원지부는 조합원 토론 등을 거치며 조직적으로 통합진보당을 탈당했다. 민주노총이 지침으로 지지방침을 결정했을 때 선도적으로 그 결정에 함께 했고 그 방침이 누더기가 되는 동안에도 개별 행동 없이 지키고 있다가, 이제는 당을 ‘조직적으로’ 버리겠다고 한다. 박주동 지부장이 레디앙으로 기고문을 보내왔다.<편집자>
    ————————-

     지난 15년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96년 김영삼정권의 노동법과 국가보안법 날치기 통과에 항거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노동자 투쟁은 87년 거제에서 구로까지 몰아쳤던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이를 통해 노동자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고 이는 곧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정당조직 국민승리21이라는 정당을 건설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2000년 1월 30일 여의도 63빌딩 국제컨벤션센터에서 민주노동당이 창당됐다. 하지만 우리들의 희망이었던 민주노동당은 2008년 2월 8일 민주노동당 임시당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되면서 분당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보신당이 만들어지고 다시 2012년 민주노동당은 통합진보당으로 합당된다.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당을 만들었을 때 얼마나 신나고 흥이 났는지 모른다. 조합원들 역시 “그래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맛이 아니겠느냐”고 얘기했고, 두 번에 걸친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에 조합원들과 함께 출근 전 새벽부터 퇴근 후 야간까지 선거운동을 벌이고 투개표 참관을 하면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다.

    2010 차별철폐 대행진의 박주동 지부장 모습

    나 또한 당의 기초 조직인 분회장으로서 지역에서는 당원들과 함께 당을 알려내고 후보를 알려내기 위해 쪽잠을 잤고, 사업장 내에서는 조합원들로부터 선거자금 마련을 위해 세액공제 참여와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당원 가입을 설득했다. 그런 시간들이 얼마나 흥겹고 즐거웠는지 모른다. 적어도 분당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혁신안 부결로 민주노동당이 분당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를 포함한 조합원들의 당에 대한 애정은 애증을 넘어 분노로 그리고 분노는 역시 ‘우리는 안돼’ 하는 자괴감으로 나타났다. 이후 벌어진 대선과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에서는 조합원들에게 감히 선거자금 마련을 위한 세액공제와 선거의 ‘선’ 자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2012년 총선의 비례후보 선출 논란은 나를 포함한 조합원들에게 당에 대해 일말의 동정도 더 이상 인내도 가질 수 없게 만들었고, 결국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떠나게 하는 결정타로 다가왔다

    2008년 분당 때에도 혁신안 부결과 관련해 주변의 동지들과 날선 공방을 벌이면서 마음의 생채기를 입었지만 지금처럼 멘붕은 아니었다.

    각종 선거 때마다 후보들의 당락을 떠나 개표가 마무리되는 시간 결과를 주시하면서 당가를 들으며 때론 기쁨의 눈물을 때론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왔던 나의 당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사업장내 탈당서 쇄도

    얼마 전부터 사업장 조합원들부터 탈당서가 쇄도하고 있다. 아니 내가 탈당을 권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때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 ‘평등한 세상을 위한 민주노동당’을 위해 조합원들을 설득하여 가입시킨 당을 내 손으로 탈당시키는 마음은 정말로 참담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조합원들에게도 부끄럽고 내 자신에게도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조합원들이 내게 묻는다. “그땐 왜 그랬어요?”

    할 말이 없다. 당원 가입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당원 가입이 어려우면 후원당원으로 그리고 그것도 어려우면 연말에 미안해서라도 세액공제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던 그 조합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소위 명망가라는 상층 지도부는 자기들의 소신만을 주장하며 움직이지만 현장에서 박박 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리도 하루 하루 황망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한때는 국민승리21과 민주노동당 발기인으로서 너무나 자랑스러웠던 두 자리 수 당원 번호를 미련 없이 버리고자 한다. 아니 당에 반납하면서 나의 마음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임한다.

    당 번호를 반납하는 이유는 당이라는 존재가 미워서도 당이라는 존재가 싫어서도 아니다. 다만, 이제 그들만의 리그에 함께 하기에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혹시나 하는 그동안의 미련이 역시나로 마무리되면서 나의 마음과 정신이 너무나 생채기를 입었고 희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얼어 죽더라도 다시 도전해 보련다

    그리고 2008년 혁신안이 부결되고 분당이 될 때 회자되었던 “나가면 얼어 죽는다”는 말처럼 설령 얼어 죽더라도 노동이 정말로 중심이 되고 조합원과 대중이 함께 하는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행보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자 한다.

    이전처럼 민주노총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업장 단위 노조에서 길을 열었으면 한다. 가령 사업장별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질문 릴레이 같은 것을 통해 사업장 상황에 맞는 현장 조합원 의견이 여과없이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방식 등 우리 현장단위의 노력과 의사표현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언젠가 오작교를 건너 다시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우리 조합원들이 나에게 말했던 질문을 똑 같이 던져보고자 한다. “그땐 왜 그랬어요?”

    문자가 왔다. “당원 여러분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분열의 아픔을 딛고 당 사수와 진보적 정권교체를 12만 당원과 함께 결의하고자 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힘이 되어줍시다. 16일 당대회와 결의대회가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진행됩니다. 당원 여러분 함께 합시다.”

    12만 당원이라는 숫자는 과연 존재하는지, 또 그들만으로 다시 시작하는 리그의 경기 휘슬일 수도 있는 이런 문자가 나에게 이제는 무슨 의미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는 나의 동지들일 수 있기에 그동안 쌓였던 원망과 아쉬움 그리고 마음의 생채기는 더 이상 남기지 말고 삭히려 한다.

    마지막으로, 즐거워도 슬퍼도 함께 부르고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나에게는 여전히 남아있는 민주노동당가를 홀로 되새겨 본다.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
    자유로운 민중의 나라 노동자 해방을 위해
    오늘의 절망을 넘어 희망의 역사를 열어라
    아아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이 되게
    평등과 통일의 길에 어떠한 시련도 마다하지 않겠다.
    아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

    필자소개
    공공운수노조 관세무역개발원지부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