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10년, 3번의 희망 좌절 & 죽음
말없이 떠난 32세 노동자가 남긴 것?
[현장편지] 벼랑 끝 노동자 등떠미는 사회…정규직노조에 실망도
    2012년 09월 17일 11: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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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5일 새벽,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을 맸습니다. 하루 전인 14일 과거사 논란에 휩싸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청소노동자들을 만나 “월급이 원청하고 차이가 나면 안 되는데”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새벽, 현대자동차에서 원청의 절반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11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을 매 숨졌습니다.

새누리당 조윤선 대변인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 후보는 환경미화원과의 대화를 시작으로 다양한 분야와 업종에 걸친 현장을 찾아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박근혜 후보는커녕 새누리당 당직자 한 명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불법파견을 은폐하고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사내하도급 보호법’을 올해 꼭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음 날, 정규직 전환에 대한 꿈을 잃어버린 현대차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병든 아버지와 어린 누이를 남겨두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후보가 14일 열린 TV 토론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800만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을 점차 정규직화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한 2004년부터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올해까지 8년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노동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박근혜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난 다음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한 조합원이 스스로 목을 맸다는 소식이 전해진 토요일, 그를 잘 아는 노동자들이 경주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병환 중이신 아버지와 어린 여동생,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10년을 넘게 일했던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화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고 스스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주고받았던 문자나 통화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가 속한 시아테크라는 업체에서 전체 조합원에게 일괄 발송한 문자조차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의 핸드폰에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최근 대화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자살 소식에 당황하던 현대차와 하청업체는 유서가 없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겁니다. 하청업체에서 “특근을 신청하는 등 최근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문자를 노동자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두 번의 대법원 판결과 노사교섭으로 어느 때보다도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왜 그에게는 살아야 할 희망이 없어진 것일까요?

현대자동차에서 11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병든 아버님과 어린 동생, 그리고 빚을 독촉하는 카드명세서 뿐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를 11년 만든 비정규직 노동자가 남긴 것

그는 2002년 울산 2공장에 들어와 11년 동안 비스토, 투싼, 산타페, 아반떼, I(아이)40를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석 정면에 있는 ‘크래쉬패드’를 조립하는 일을 했던 그는 2004년 겨울 노동부에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만 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나오고 2005년 비정규직노조가 정규직화 투쟁을 벌이자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거나 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도 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차별과 멸시에 시달렸던 그에게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첫 번째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의 구속과 해고만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노동자의 친구라던 노무현 정부는 이들의 가슴에 분노와 절망을 아로새겼습니다.

5년의 시간이 흘렀고,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제조업 생산 공정은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간주된다”며 ‘합법도급’이라는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두 번째 희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5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공장 점거농성을 벌였고, 그가 속한 2~3공장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파업을 벌였습니다. 비정규직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그러나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손을 거부했고, 싸움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노조 간부들에게는 구속과 해고, 손해배상이라는 형벌이, 그에게는 정직이라는 고통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슴에는 정규직노조의 배신이라는 각인이 새겨졌습니다.

정규직화에 대한 세 번의 기회

1년 6월의 시간이 흘러 올해 2월 23일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오고,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약속했을 때 세 번째 희망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을 배신했던 집행부를 이긴 ‘민주집행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다리를 크게 다쳐 3개월의 병가를 보내고 공장으로 돌아온 그에게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파업에 참가했고, 집회와 농성을 벌였으며, 용역경비의 폭력 앞에서 당당하게 만장을 들고 싸웠습니다. 2005년과 2010년 패배의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내놓은 것은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3천명 신규채용안이었습니다.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신규채용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고, 흔들린 일부 조합원들이 파업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3000명 신규채용안을 ‘쓰레기안’이라며 거부하자,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안만을 남기고 임금협상을 타결했습니다. 2700만원이 넘는 성과급 돈 잔치 앞에서 ‘비정규직 연대’라는 가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의 세 번째 희망, 마지막 희망은 이렇게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는 마지막 희망

“알려드립니다. 현재 진행중인 불법파업, 불법행위를 중단바라며 이에 따른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통보드립니다.(시아테크 대표)”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던 그와 조합원들에게 하청 사장이 보낸 문자입니다. 정규직 임금 협상이 끝나자 하청 사장은 그의 동료들 4명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는 해고는 말도 안 된다며 다시 파업을 하자고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오랜 노동조합 경험으로 그는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을 매달기 전날 점심시간에 공장 식당에서 그의 친구에게 기록되지 않은 ‘유서’를 남겼습니다.

“요즘 우리 조합도 많이 힘들제? 이번에는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가 높았는데, 어려울 것 같다. 내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는 그에게 그런 농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그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3000명 신규채용안과 사라진 마지막 희망

현대자동차가 대법원 판결에 따라 지난 10년 간 불법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에 대해 노사교섭에서 전향적인 태도로 나왔다면 그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2010년 대법원 판결 이후 노동부와 검찰이 명백한 불법노동에 대해 정몽구 회장과 사용자들의 책임을 묻고 현장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비롯한 조치를 취했다면 이 젊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파견법과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과 절망을 양산했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를 비롯한 대권주자들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망과 고통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였다면 그가 이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요?

회사와 정부와 정치권이 나섰다면

3000명 신규채용안에 대해 회사는 “특히 불법파견 논란을 마무리하고 동시에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현행 근로자파견법을 피해 아무 때나 쓰고 버릴 수 있는 노동자들로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 때 현대차에서 1000명이 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했던 것처럼, 앞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거나 판매가 부진할 경우 언제든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낼 수 있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대차지부 문용문 지부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3000명 신규채용안을 수용하라며 조합원이 절대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고,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은 계속될 것이며, 설령 3000명 안에 들지 못하더라도 이후에도 계속 채용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업체 인원을 우대할 것이고, 해고자 문제도 전향적으로 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동지가 이번에는 정규직노조에 기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3000명 신규채용안이 나오고, 정규직노조 태도를 보면서 기대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우리처럼 초기에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분위기를 보면 알잖아요.  정규직이 되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 노동자의 친구가 전한 얘기입니다.

그 동지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정말 무엇일까요?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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