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의 추억-11
    "민방공 훈련과 향토 예비군"
        2012년 09월 16일 05: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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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에~엥~”

    적기의 공습을 알리는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민방공 훈련은 요즘은 1년에 두 차례 정도 진행되지만, 유신시절에는 매월 15일 1년에 12차례 실시되었다. 1년에 한두 차례는 예고도 없이 시행되는 불시 민방공훈련도 배치되어 실시되었다.

    유신시절 초딩이었던 나는 1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함께 황색 경계경보, 적색 공습경보, 화생방 경보, 백색 해제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그리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훈련에 임했다. 어떤 때는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향나무 담장 밑에 만들어진 방공호에도 숨고, 어떤 때는 교실 책상 밑으로 숨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교실 복도로 나와 줄 맞춰 앉아 있기도 했다.

    70년대 초등학생들의 민방공 훈련 모습

    화생방 경보가 울릴 때면 눈, 코, 귀를 손가락으로 가리며 배트맨 흉내(?)를 내야만 했다. 화생방 훈련 이야기를 하니 한 선배는 비닐을 뒤집어썼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것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더라도 화생방 경보가 울리면 “우의나 비닐을 뒤집어쓰며 비누칠을 한 수건 또는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지침이 있는 것으로 봐서 실제로 비닐을 뒤집어쓰는 훈련을 한 지역도 많았을 것 같다.

    당시 화생방 훈련은 ‘가스, 세균, 원자탄 투하에 대비하는 훈련’이었다. 선생님이 ‘가스!’, ‘세균!’, ‘원자탄!’ 등을 외치면 우리는 따라 외치면서 눈, 코, 귀를 손으로 막고 바닥에 엎드려야 했는데, 그게 무슨 실질적인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런 전쟁의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면 인구별로 가스 마스크라도 지급하면서 대비훈련을 시켰어야 하지 않을까?

    아울러 가스나 세균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지만 갑자기 원자탄은 누가 발사한 원자탄을 상정한 훈련이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소련이나 중국이 남한에 원자탄을 발사하는 걸 상정한 훈련인지,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한 원자탄의 발사를 대비한 훈련인지 말이다.

    민방공 훈련은 1971년도 12월에 해방 후 처음 실시되었고, 1972년도 6월에 이르러 전국의 초중고생들이 처음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72년도에 초딩 1학년이었던 나도 그때부터 매월 실시되는 민방공 훈련에 꼬박꼬박 참가해야 했던 것이다.

    민방공 훈련이 1971년도에 처음 실시되었다면 그 이전에는 전국민이 적의 침공에 대비할 특별한 징후가 없다가 갑자기 그때 그런 징후가 생긴 탓일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가 월남전이 한참이었다는 점을 상정해볼 수도 있겠지만,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나 ‘1․21청와대습격사건’이 그보다 3년 전인 1968년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71년도에 갑자기 민방공 훈련을 처음 실시한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그해 4월 실시된 국민이 직접 뽑는 마지막 대통령 선거에서 온갖 부정을 동원했음에도 아슬아슬하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밖에 없었던 박정희가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전국을 병영화하고 전 국민을 일사분란한 동원체제로 묶어세우는 유신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 민방공 훈련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향토 예비군의 등장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적 또는 무장공비의 공세와 대남 유격에 대처”하기 위해 “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우는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시점도 정부 수립 시기가 아니라 68년 4월 1일의 일이고, “예비군의 교육과 훈련을 군에서 전담하면서 전력강화를 가속화”하고 “서울과 농어촌 등 취약지구를 중심으로 전투예비군을 편성 강화”시킨 시점이 71년도임을 감안해 볼 때 직선제하의 마지막 대통령선거가 실시된 1971년도는 ‘전국토의 병영화’와 ‘전국민의 군사화’를 추구한 말 그대로의 유신 전야였던 셈이다.

    당시 아버지는 71년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진 합덕에 와서 진행한 시국 연설회에 참석해서 들은 김대중의 연설에 크게 감명 받으신 듯했다. 당시 예비군에 편성되어 있던 아버지는 남달리 기억력이 탁월한 편이셨는데,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DJ 특유의 연설을 흉내 내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자주 반복하곤 하셨고, 이는 어느새 내 머리 속에도 인이 박히듯 자리잡고 말았다.

    “내가 가는 곳마다 예비군이 집합되어 있어. 간첩이 나왔나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김대중이 잡으라고 예비군이 집합했어. 예비군 편성한 목적이 단 한 가지 있어. 아랫도리 빳빳한 놈들(=젊은 놈들) 야당 활동 못하게 예비군 편성한 거야. 내가 대통령되면 예비군 폐지할 거야. 내가 예비군 폐지한다니까 예비군 훈련이 느슨해지고 좀 편해졌어, 그것도 다 내 덕으로 알어!”

    향토 예비군 제도와 민방공 훈련은 이렇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의 의식마저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장, 진보신당 동작당협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친구였던 고 박종철 열사의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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