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정당운동, 길을 묻는다.
[책소개] 『진보평론53호』특집에 대한 비평
    2012년 09월 15일 06: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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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대의 서영표 교수가 진보평론 53호의 특집호에 대한 해설 및 비평 글을 보내와서 게재한다.<편집자>

진보정당운동을 지지했고 진보정치의 미래를 걱정해 왔던 사람들에게는 지난 몇 달은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언제나 소수였고 기득권 세력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지만 진보정당운동에 참여했거나 지지했던 사람들을 지탱해 주었던 것은 도덕적 우월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을 (원하던 원하지 않던) 대표하는 통합진보당이 ‘저들’의 논리를 너무도 적나라하게 ‘실천’해 보이고 있는 상황 앞에서 그러한 도덕적 우월감은 무너져 내렸다. 걱정이 앞선다.

어떤 사람들의 ‘걱정’은 한국에서의 진보정당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로 드러난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대통령선거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아직은 소수이지만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불안해한다.

진보평론 이번호 특집은 이렇듯 불안하고 비관적인 진보정당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리 비관적이고 불안하다고 해도 이미 운동역량의 상당부분이 진보정당운동에 투여 되고 있는 조건에서 진보정당운동의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진보정치 전체가 후퇴할 수 있다는 절박한 생각으로 특집을 기획했다.

특집의 주제는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에 길을 묻다’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정종권), 진보신당(김종철),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공동실천위원회(박성인), 사회진보연대(이현태)에서 활동하는 4인과 진보적 지식인(이창언) 1인에게 작금의 현안과 관련된 12개의 질문을 주고 이에 대한 대답의 형태로 써진 글 5편을 실었다.

독자들은 특집 난에 실린 5편의 글을 읽으면서 1990년대 초에서 지금에 이르는 한 세대가 공유한 시대적 인식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과 노선의 같지 않음에도 한 세대의 운동역사를 공유했다는 사실로부터 나오는 유사한 상황인식과 판단이 읽혀진다는 것이다. 비판적으로 본다면 ‘공유된’ 인식과 판단은 진부해 보일 수도 있다.

‘위기’는 20년 전부터 항상 있어왔고 진보진영은 언제나 이에 대해 진단하고 전망을 세웠었다. 문제는 그 진단과 전망의 내용이 20년 전과 지금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는 데 있다. 하지만 이것을 거꾸로 생각한다면 답은 누구나 뻔히 알고 있는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의 ‘실천’과 ‘실현’에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특집에 글을 실은 필자들이 공히 주장하고 있는 ‘사회운동에 기반을 둔 진보정당’, ‘노동자 대중이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 ‘지역에 뿌리내리는 실천적인 진보정당’은 이미 낡고 진부한 ‘구호’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은 ‘진부함’ 때문에 버려져야 할 그런 것이 아니다. 여전히 옳지만, 그래서 입 달린 사람이며 모두가 말하지만 실천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사

사실 ‘옳은’ 길이 실천에 옮겨진 사례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지난 150여 년 동안 전 세계 진보정당 운동은 우리가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위기로 점철되어 왔다. 초기의 급진적 성격과 운동정당으로서의 성격은 제도 정치 안에서의 성공과 반비례했다. 다른 한편으로 운동적 성격을 고수하려 했던 진보정당은 결코 제도 정치의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수천 명의 당원으로 ‘버티고’ 있는 ‘마르크스’, ‘혁명’을 수식어로 하는 정당들이 넘쳐난다.

이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하는 것은 ‘아름다운’ 진보정당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러한 그림은 현실의 진보정당을 규범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지만 운동을 만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머릿속의 아름다운 그림을 기준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그 그림 속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체취가 없다.

구체적인 삶은 ‘그림’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시끄럽고, 지저분하다. 갈등과 대립, 적대와 논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지저분함’과 ‘시끄러움’을 피하려 한다. 그래서 멋진 기획과 전망을 제출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구체적인 정치에는 서툴다. 논쟁과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실제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논쟁과 갈등을 다루지 못한다. 고작해야 ‘단결’을 외칠 뿐이다. ‘시끄러움’과 ‘지저분함’은 당이 제도정치의 게임 규칙에 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힘의 근원일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은 이 힘의 근원을 차단한다. 그 결과는 아름다움만을 고수하거나, 아니면 ‘정치의 현실’을 핑계로 제도정치로 급속히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현실에는 그런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념 속에 계속 남든지, 관념과 현실의 차이에 실망하면서 현실을 정당화하든지. 이창언이 “존재론적으로 특권화된 주체(자기 완결적인 충만한 주체, 집단적으로 동일한 주체)를 부정하고 주체 자체를 복합적 존재(균열과 틈새와 단절을 내장한, 내적 불화를 겪는 ‘주체’), 구성적 존재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은 이러한 ‘지저분함’과 ‘시끄러움’을 직시하자는 이야기일 수 있을 것 같다.

 특집 글의 필자들이 공히 지적하고 있는 것은 진보정당운동의 한 순환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새로운 순환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단 5명의 필자 모두의공유하고 있는 상황인식을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첫째, 통합진보당이 보여준 반MB 연합은 진보정치의 내용을 실종시키는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정책은 실종되고 오직 의석 확보만을 목적으로 선거에 임했다는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고 있었던 쟁점들에 대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둘째, 첫 번째의 당연한 결과이지만 노동정치가 실종되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노동자들은 통합진보당을 위해 돈과 표를 주는 ‘대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들은 모두 민주노총의 정치적 동요를 중요하게 다룬다. 민주노총 자체가 이미 노동자 대중을 대표하는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있으며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할 ‘노동정치’를 방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선거부정을 둘러싼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미 예정된 문제가 드러난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통합진보당은 출발부터 총선을 위해 민노당계, 참여당계, 진보신당탈당파가 연합해서 만든 정당이었다. 그들의 이념적 지향에서 중도적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오직 정파적 이해를 앞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분란은 이미 예견된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이미 통합진보당은 이미 회복불가능한 치명상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주도’한 반MB의 분위기 속에서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인정받는데 실패했다. 진보신당과 녹색당 외에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현대의 분석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이 서로 분열되고 있고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다섯째, (당위적인 구호에 머물고 있지만) 진보정당의 새로운 순환은 강화된 노동정치, 노동자 대중의 삶 속에 뿌리 내린 정치, 다양한 진보적 가치가 공존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사회주의운동, 여성운동, 녹색운동의 가치의 공존, 또는 지금까지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들의 목소리의 복원을 강조하고 혹자는 노동정치 자체의 강화에 주목하거나 기존에 가져왔던 노동자대중운동의 혁명성 복원에 초점을 맞추지만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목소리는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다. 그러한 현실은 우리가 적응해야만 하는 현실이 아니라 변혁해야만 하는 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에 존재하는 시끄러움과 지저분함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진보평론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자들의 답변은 ‘진부하게’ 들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독자들은 특집 글 속에서 몇 년째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낡은 진보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정치를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낡은’ 패러다임 속에 갇혀 헤어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앞에서 지적되었듯이 ‘낡은’ 패러다임을 통해 진술되고 있지만 필자들의 주장 안에는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과, 우리가 실현해야만 하는 운동의 미래가 담겨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운동은 언제나 연속과 불연속의 결합이다.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과거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버릴 때 그 종착지는 ‘관념’일 뿐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 우리의 운동 역량을 인정하는 것으로 출발하자. 괴롭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우리의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마냥 괴로워하지는 말자. 비관에 빠지지도 말자. 운동권과 운동 패러다임의 위기는 반복되어 순환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 고통 받는 인민의 삶은 지난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삶은 언제나 위기였고 언제나 고통스러웠다. 문제는 간단하다. 그래서 진부하게 들린다. 삶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진보전략은 낡은 패러다임과의 과감한 단절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도 연속과 불연속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현실운동의 연속성 속에 운동 패러다임의 불연속.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하지만 ‘진보’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곳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공통의 정치적 의지를 가진 실천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정치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공통의 프레임’과 ‘희망’이다. 그러나 그 ‘공통’의 프레임은 차이와 다양성을 억압하는 ‘공통’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 어려운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삶과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과 더불어 ‘긍정’의 운동으로 되어야 하다. 우리는 여전히 부정적 몸짓과 비판, 낡은 정치적 폭로로 좌파의 정치를 대체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아닌 ‘조건’과 ‘남’의 탓으로 문제의 근원을 돌리는 태도도 여전하다.

이제 비판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실현하지 못하는, 자본주의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극복하는, 작지만 지금 여기서 실현가능한 삶의 형모습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운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특집 글들을 읽으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여전히 ‘긍정’의 그 무엇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언제가 그렇듯이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반성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특집에 실린 글들이 과거의 현재를 반성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에게조차, 여기에 반영된 우리의 수준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반성의 기회를 주리라 생각한다.

<진보평론 53호 목차>

위기의 진보정당 운동, 진단과 향후 과제
– 4.11총선 이후 진보정치의 위기와 진보좌파의 과제/ 이창언
– 대안적 운동의 재건을 위한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이현대
– 4.11총선 이후 진보정치의 위기와 진보좌파의 과제/ 김종철
– 노동 중심의 새 진보당, 독립적이고 대중적인 새 진보당을 만들자/ 정종권
– 노동자계급정당을 목표로 반자본 투쟁전선으로 결집하자/ 박성인

* 발언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닌 생활임금 쟁취로 나아가야(임복남)

* 정 세

– 진보적 대학개혁을 위한 10대 정책적 과제(김세균)
– 낙태, 피임, 그 넌덜머리나는 전장의 이름으로 쓰는 편지(박이은

* 국제

미국 금융시장의 회복과 연준의 비관행적 통화정책(장시복)

*일반논문

– 기로에 선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환경운동연합을 중심으로(서영표)
– 아나키즘 철학의 운명과 정치 철학의 과제(박종성)
– 공산주의는 어디에?: 자크 비데의 Court traité des idéologies(2008)에 대한 연구노트(김덕민)
– 한국 비속어에 드러난 타자화와 권력 담론의 재생산(윤수연)

* 청년이론마당

국가와 폭력(김승환

* 서평

– 포스트맑스주의 고전 읽기(『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급진민주주의 정치를 향하여』)김정한
– 석유(『사람 냄새』, 『먼지 없는 방』)김성일

필자소개
제주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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