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네수엘라 모델 지속가능한가
    [책소개]『사회주의는 가능하다』(카르로스 마르티네스/ 시대의 창)
        2012년 09월 15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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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한국과 미국의 대선에 앞서, 세계적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바로 10월에 열리는 베네수엘라 대선이다.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으로 불리는 차베스 체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1998년 대선에 당선되어 합법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잡은 우고 차베스가 2006년에 이어 또다시 민중의 선택을 받을 것인가? 차베스 정권하의 베네수엘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대선 이후 베네수엘라는 과연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는 놀랍게 달라졌다. 극빈층은 절반으로 줄었고, 전국 각지에 3000곳이 넘는 무상 의료시설이 생겼다. 특히 교육 부문이 크게 향상되었는데, 청소년은 물론 수백만 베네수엘라 성인이 무상으로 읽고 쓰기부터 고등과정까지 이수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고 진보적이다.

    차베스의 행보는 외신에 대서특필된다. 이런 보도를 접하다 보면,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의 유일한 배후 조종자인 것처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차베스가 행한 가장 혁명적인 조치는 바로 민중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이다. 즉 볼리바리안 혁명(차베스 집권 이후의 혁명 과정을 일컫는 말)의 핵심 동력은 베네수엘라 국민이다.

    차베스가 정권을 잡자마자 국민이 제헌의회에 직접 참여하여 새 헌법을 만들었다. 2002년 반혁명 쿠데타 때는 즉각 들고일어난 민중이 있었기에 차베스의 목숨과 정권이 무사할 수 있었다. 지금 이들 민중은 공동체평의회, 협동조합 등 수많은 자치단체를 형성하여 자원 배분과 생산활동을 직접 결정한다. 《사회주의는 가능하다》는 이 베네수엘라 민중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완성 중인 혁명을 말하는 책이다.

    이 글을 번역한 작가 임승수는 당시 이전의 책에서는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풀어냈”는데, 그 혁명은 당연히도 “차베스만의 혁명이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임승수가 직접 발굴해 번역한 책이 바로 이 책 《사회주의는 가능하다》이다.

    이 책은 차베스가 정권을 잡은 지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사회 각 분야 활동가 30여 명의 목소리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대도시 빈민가 주민들의 주거권 쟁취 투쟁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공동체운동, 협동조합운동,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 학생운동, 선주민운동, 미디어운동 등 전 분야를 망라했다.

    혁명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수십만 개의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공장을 인수했다. 도시와 지방의 토지를 점거하고 문화센터와 민중교육센터, 공동체 방송국을 설립했다. 법을 만드는 데에도 참여했다. 민중은 정부가 내세우는 민중권력 담론을 현실로 만드는 수많은 방법을 찾아냈다. 이 다양한 활동을 차베스 대통령은 격려하고 정부는 지원했다. 동시에 이 활동을 이끌어가는 많은 이들은 활동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혹은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부를 압박했다.

    이 책에는 생소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그 생소함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데서 기인한다.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사장이 없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지고 모든 결정을 합니다. 처음에 머릿속에서 ‘사장’을 지우는 것이, 즉 우리가 이 공장의 운영자라는 것을 인식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각자가 모든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지요. (…) 공장이 몇몇 사람 소유일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단지 월급만 받고 작업 일정에 전념했습니다. 회사는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를 시키는 등 착취했었고요. 지금 이 상황이 만만치는 않지만, 우리는 잘해나가고 있어요.
    ― 오스피노 도축장 협동조합의 마누엘 멘도사, 201~202쪽

    활동가들은 차베스 정부를 무조건 지지하지 않는다. 각자의 활동과 관련해 불만을 토로하고 정부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 점이 있다. 혁명을 이끄는 정부 내에 변화를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관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를 함부로 비판하면 곧 차베스 반대파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 반대파로부터 정부를 방어하면서도, 동시에 정부에 맞서야 하는 줄타기 같은 상황이 베네수엘라 혁명의 실제 모습이다. 이런 딜레마를 한 활동가는 “혁명 속의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빨간색 모자와 셔츠를 입는다고 해서, 그 모두가 차베스를 지지하는 게 아니에요.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죠. 이런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아요. 이들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감추고 있죠. 저는 차베스 지지 행진에 겨우 딱 한 번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차베스 지지 집회에 참석하진 않아도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실제로 이루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 믹스테케 공동체평의회의 마리아 비센타 다빌라, 447쪽

    2012년 대선에서 차베스가 4선 연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많은 민중이 지지하고 있기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설령 차베스가 정권을 내준다 해도, 베네수엘라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혁명의 한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는 차베스가 아니라 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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