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은 노조운동 넘어선다"
[책소개]『영국 노동운동의 역사』(G.D.H. 콜/ 책세상)
    2012년 09월 15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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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운동가인 G. D. H. 콜이 18세기 말 산업혁명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노동당이 집권해 복지국가의 초석을 놓던 1947년까지 150여 년에 걸친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집약한 책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최초로 성숙한 나라이자 노동자 조직의 선구였던 영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조합운동뿐 아니라 정치 투쟁과 협동조합운동 등 급진적 운동의 흐름을 형성하며 다양하고 풍부한 투쟁의 역사를 실현해왔다. 콜은 노동자들을 대상 독자로 삼아, 영국 노동운동의 태동기부터 노동당이 최초의 강력한 단독정부를 구성하게 될 때까지의 흐름을 통사 형식으로 담담하게 서술했다.

인물, 조직, 제도, 이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역사의 다양한 측면을 고루 다루었으며, 영국 자본주의의 전개 과정에 따라 시기를 나누고 각 시기의 사회경제적 변화도 함께 정리했다. 영국 노동운동사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 최적의 입문서이자, 영국 노동운동사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점은,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 가 곧 ‘영국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좁은 의미의 ‘노동조합운동’, 즉 작업 현장의 노동자 조직화와 경제 투쟁, 단체협상으로 인식되지만, 이 책은 그런 의미의 노동조합운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콜은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가 실현해온 노동자 정치운동, 생산 및 소비 협동조합,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상호부조조직들을 균형 있게 다룬다. 어떤 역사적 국면에서는 노동조합보다 정치운동이나 협동조합이 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여러 부문은 서로 다른 주체들의 분업이 아니라, 동일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투사로 나서기도 하고 차티스트운동의 활동가 및 협동조합의 선구자로 이름을 남기는 등 같은 주체의 총체적인 활동이다.

지금까지 우리 노동운동계는 영국 노동운동에 존재하는 다양한 흐름과 경향을 무시하고 노동조합주의만을 일면적으로 도입해 국내에 적용해왔다. 노동조합운동이 영국 노동운동의 주류인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혁명 시기는 물론 빅토리아 시대와 제국주의 단계에서조차도 영국 노동운동의 급진적 흐름이 다양하게 펼쳐졌던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고전적 자본주의를 거친 영국의 역사적 토대와 달리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경제 구조와 정치 상황, 법률과 제도, 노동운동의 성격 등에서 완전히 다른 조건에 있는 우리에게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천착은 허구일 위험이 높다. 이러한 전제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를 독해할 때, 그리스 신화의 괴수 히드라처럼 여러 얼굴로 자본주의와 대적해온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의 과제를 새롭게 성찰하게 한다.

이 책《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이 펴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이 책은 G. D. H. 코울,《영국노동운동사》전2권, 김철수·김천우 옮김(광민사, 1980)을 수정·보완하고 감수자의 해제를 덧붙여 새롭게 펴낸 것이다). 뚜렷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노동운동은 과거와 현재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 못지않게 노동계급 역시 위기에 처한 새로운 전환기에, 이 책은 우리 노동운동이 놓쳐온 것들이 무엇인지, 새롭게 실현해야 할 미래가 무엇인지 시사하는 귀중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저자인 G.D.H.콜은 영국의 경제학자, 정치·사회학자, 역사학자이며 무엇보다도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운동가이다. 대학 시절 독립노동당 당원으로 사회주의 단체 활동을 시작했고, 페이비언협회에서 청년 사상가로 성장했다. 1912년 ‘노동 불안기’ 동안 노동자들의 투쟁에 동참하면서 노동조합운동과 긴밀한 연계를 맺기 시작했다. 1915년 페이비언협회를 탈퇴한 콜은 노동연구소를 통해 노동조합 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한편 ‘길드사회주의운동’에 동참한다. 그는 영국 좌파를 길드사회주의 중심으로 재편하려 했으며,《산업 분야의 자치》《길드사회주의 재론》등의 저작을 통해 길드사회주의의 발전된 체계를 제시했다.

1925년 옥스퍼드 대학 경제학과 교수가 된 콜은 이후 학자로서의 삶과 운동가로서의 삶을 병행한다.《영국 노동운동의 역사》《로버트 오언》《향후 10년간의 영국 사회·경제 정책》등이 이 시기의 저작이다. 1929년의 대공황과 파시즘의 발흥 아래서 콜은 좌파 연대 및 반파시즘 인민전선 운동에 앞장섰으며, 케인스주의적 정책들을 제안하는 한편으로《경제계획의 원리》등에서 전면적인 경제계획과 탈자본주의 질서 추구를 주장했다. 1945년 노동당 집권 후에도 개혁이 정체되는 현실에 실망한 콜은 저술 활동에 몰두해《영국 노동계급 정치 1832~1914》《협동조합의 한 세기》《1914년 이후의 노동당사》《일반노조의 시도 1829~34 : 영국 노동조합사 연구》《사회주의 사상사》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부터는 국제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유럽 사회주의운동의 갱생을 꿈꾸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1959년 1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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