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②
    "몸으로 만나는 첫 만남"
        2012년 09월 14일 10: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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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그룹을 하자고 하면 대부분 ‘난 필요 없어. 그거 문제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야?’ 이런 반응들이다. 뜨악하고 머쓱하고 쑥스럽고 심드렁하기도 하다. 분위기를 확 잡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그룹이 휘청거려진다. 그래서 첫 만남은 무조건 ‘몸만남’이다.

    동그랗게 둘러서서 얼굴을 만나게 한다. 이전에 가졌던 감정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의 감정으로 얼굴을 둘러보며 반갑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얼굴을 찾게 한다. 그리고 용기 있게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게 한다. 어떤 사람의 어깨 위에는 여러 명의 손이 올라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명도 찾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 느낌이 어떤지 물어본다. 자랑스럽다는 감정이 나오기도 하고 쑥스럽고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다시 원을 만들어 이번에는 낯설고 어색한 얼굴을 만나게 한다. 뭔가 찜찜하고 불편한 얼굴의 사람에게 다가가 그 어깨에 손을 얹게 한다. 다들 머뭇거린다. 다시 한 번 용기 내어 찾아가자고 하면 이렇게 저렇게 어깨위에 손이 얹는다. 서로 손을 얹은 사람끼리 짝을 맞춘다. 끝끝내 한 명도 찾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생겨날 때는 아주 작은 감정이라도 찾아내어 한 사람을 만나게 한다.

    그렇게 짝이 정해지면 정해진 시간동안 베개 뺏기를 한다. 내가 뺏는 배게는 나에겐 꿈일 수도, 희망일수도, 재산일 수도 있는 거라고 배게 뺏기 치료 글을 읽어준다.

    베개 뺏기 치료글

    맥없이 내 소중한 걸 다 남에게 주고 살았네.
    내 소중한 걸 함부로 짓밟히도록 했네.
    서러워라 나를 바닥에 두고 너만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았다.
    나는 이제 누구보다 나를 소중히 여겨
    이제는 젖 먹던 힘까지 다 해서 내 소중한 걸 지켜내.
    혼 힘을 다해서, 온 정성을 다해서 나는 나를 지켜낸다.
    <아리랑풀이 연구소 치료글 모음 중 ‘베개 뺏기 치료글’>

    한진에서 첫 과정을 시작할 때였다. 과정은 김해 한진 사택에서 진행되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낯선 공간으로 들어가니 방안 가득 파란 작업복의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뭔가 심각한 회의를 마친 후였고 함께 과정을 진행하는 반달과 시내, 삐딱이와 내가 그 집에 들어서자 웅성웅성 어색해하며 몇 명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참가자인가 싶어 둘러보았다. 다들 자신들은 참가자가 아니라고, 그냥 보일러를 손보려고 왔노라고, 스팀 청소기로 방 한번 닦아주려고 한다고 관심 있게 다가오더니 나중에 한명만 남고 모두 그 방을 빠져나갔다.

    과정을 만들고 조직했던 삐딱이가 어떠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호기 있게 한마디 했다. ‘괜찮아, 한 명이면 어때, 시작해보지, 뭐~’ 나중에 삐딱이는 한명이라도 괜찮다고 하는 내 말에 힘이 났다고 했다. 성과보다는 마음으로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그렇게 정성을 모으지 싶은 기운이 생겼노라고 했다.

    한진중공업 투쟁 당시 한 조합원 가족의 눈물(사진=노동과세계 이명익)

    여기 저기 사람을 챙기고 불러 모아 어렵게 모인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 베개 뺏기로 과정을 열었다. 몸을 쓰기에는 좁은 공간인데도 거친 숨소리를 내며 불편해하지도 않고 혼신을 다해 몸으로 자신을 만났다. ‘무엇을 하는 고~’ 궁금한 마음에 슬쩍 대문을 열었던 어떤 동지는 격렬하게 부딪치는 몸싸움을 보고 겁이나 얼른 뒤도 안돌아보고 되돌아갔노라고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

    한진의 세 번째 과정 때는 몸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부산 민주노총이 있는 건물 지하의 일터 공연장을 빌렸다. 일터는 우리를 위해 공연장에서 해야 할 연습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 어둡고 습한 무대, 그 무대 위에서 서로의 눈을 만나고 서로의 숨결을 부딪쳤다. 다들 의아해했다. 뭐 이렇게 시작하느냐고 취지와 목적 등을 설명해야지 라는 저항도 있었다. ‘저 베개가 뭐라고 뺏고 빼앗나’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북소리가 들리고 베개에 내 꿈과 희망을 옮겨놓고 나면 혼신을 다해 그 베개를 향해 몸을 날리곤 했다.

    물론 끝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땐 전체가 스크럼을 짜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 이에게 그룹을 뚫게 하여 몸에 가득한 성난 기운을 빼기도 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답답했던 감정을 풀어놓고 나면 힘을 쓰고 난 후인데도 오히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때 함께 씨름했던 친구를 업어준다. 마치 엄마 등에 업힌 아이처럼 같이 씨름한 친구의 등에 몸을 기대면 서로의 거친 숨소리가 등을 통해 전해진다. 어떤 이는 오랜만에 엄마를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상대의 거친 숨소리가 자신의 숨소리처럼 느껴져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업어주고 나서는 온 힘을 쓴 그의 몸에 정성을 드린다.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도 만져주고 힘겨워 혼자 흘렸을 그의 눈물도 닦아내주고 노동했던 그의 손도 잡아주고 천하게 막 써먹었던 그의 발도 어루만져준다. 내 속 깊은 데 숨어있는 정성을 모두 끌어내어 그 정성으로 친구의 지친 몸을 다독여준다.

    내가 누군가에게 정성을 드릴 때도 또 누군가가 나를 따뜻하게 정성드려줄 때도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감정이 툭 내 안에 퍼지는 걸 느끼게 된다. 따뜻함이기도 하고 정겨움이기도 하고 긴장되고 피곤했던 그래서 날카롭게 서있던 감정의 한 끝이 툭~ 하고 터져나가는 느낌. 사람과 사람이 말이 아닌 맘으로, 논리와 입장이 아닌 감정과 마음으로 소통하는 느낌. 그 느낌을 첫 만남에서 만나면 그동안 잘 쓰지 않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럼 그룹은 개개인이 아닌 하나의 몸이 되어 같이 울고 웃고 느끼고 나누며 만나게 된다. 내 아픔을 내어놓게 되고 너의 아픔을 마음으로 받아 안게 된다.

    몸으로 만난 첫 과정을 하고 나면 새 이름을 짓는다.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형님으로, 조합간부로, 동료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이전의 관계를 다 내려놓기 위해 새로운 이름을 각자 짓는다. 과정원 중에 제일 막내는 호기있게 자신을 ‘행님’으로 불러달라고 한다. 아버지뻘인 선배들이 제일 막내에게 ‘행님~’ 하고 부르자 막내 얼굴이 환해진다.

    각자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어떤 이는 하늘처럼 맑고 싶다고 하늘이라고, 또 어떤 이는 바람이라고, 어떤 이는 이도 저도 다 귀찮다고 그냥 ‘아무개’로 정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슨 이름이든 새롭게 만난 이름으로 새로운 그룹이 시작된다.

    그룹은 별칭뿐 아니라 과정 안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놓는다. 나이와 성별, 직위와 그 어떤 것도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평등한 관계가 되기 위한 장치이다. 이 세상 무엇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귀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새로운 이름, 새로운 관계로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쌓여있는 여러 감정의 덩어리들을 만나고 보듬고 다독거리고 보내는 8주간의 긴 작업을 이렇게 시작한다.

    시작이 반, 첫 과정 첫 단추를 풀었으니 이미 반은 온 셈이다.

    필자소개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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