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단체교섭
        2012년 09월 10일 01: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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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조합과 사용자의 교섭은 대화이다. 대화에는 최소한의 상식과 규칙이 있어야 한다. 자기 말에 대한 책임성이 그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노동현장에서는 교섭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 통보인 경우가 많다. 천안의 시립예술단이 만든 노조와 사용자의 교섭을 보면 대화가 아닌 일방 통보의 현실을 볼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에서 기고 글로 보내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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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에는 시립예술단이 있다. 국악, 교향악, 무용, 풍물, 합창단 등 전체 260여명 규모다. 그 중에서 합창단 단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9월 6일 천안시 동남구청 2층 회의실에서 기본협약서를 체결하기 위한 2차 교섭이 있었다. 처음부터 조짐은 좋지 않았다.

    노조를 만들자마자 충남 모신문이라는 곳에서 “시립합창단 노조 결성 ‘배불러서…?” “시립예술단 존폐로 불똥 튈까?” “시립합창단 노조 결성 ’요구안이 너무 해‘” 등의 악성 기사를 계속 싣고 있었다. 기사의 대부분은 한 명의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안 봐도 비디오‘라고 한다고 했던가?

    천안시는 ‘문화재단’을 구성하여 법인화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고 했다. 시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이사진도 구성하고, 상근자도 있다고 했다. 설령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런 중요한 변화가 생기면 당연히 노조를 결성하여 대응하는 게 상식인데도 안팎의 조건은 그렇지 않았다.

    MB 정부 들어서 여기저기서 예술단에 대한 법인화가 본격적으로 추진 중에 있고, 그 경우 8배나 국민부담이 증가한다는 사회공공연구소의 연구발표도 있었다. 예술단체에 대한 법인화는 ‘민영화의 우회적 형태’라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노조가 결성된 후 천안시는 합창단에 대해 10여개의 공연을 취소하기도 했다. 노조가 불편하다는 시각의 반영이겠다.

    천안 시립예술단의 노사 교섭 모습

     

    소귀에 경 읽기 교섭

    넓은 회의장에는 커다란 책상이 마주본 채로 ‘교섭대형’으로 갖춰져 있었다. 천안시장 성무용을 대신하여 문화관광과 문화예술팀장이라는 김진철 계장이 교섭대표였다.

    천안시 : 단협전 유급전임 인정과 조합비 원천징수 조항은 각 24조와 43조에 위배된다.

    노조 : 조합비 원천징수가 뭐가 위배된다는 것인지?

    천안시 : 월급은 누구도 건드리면 안되는 그런 것이다.

    노조 : 그러니까 조합원의 동의서를 첨부하는 거다.

    천안시 : 나중에라도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가 된다고 노무사가 그런다.

    노조 : 당연히 조합원을 탈퇴하면 안 걷고, 통보해 주는 거다.

    천안시 : 아무튼 두 개는 단협이 맺어진 이후에 하는 것으로 하겠다. 그리고 교섭위원은 4명으로 하고, 교섭주기는 한 달에 한번으로 했으면 한다. 주1회 요구는 가혹하고 무리하다는 윗분들의 얘기가 있었다. 교섭 당일 교섭위원의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만 근무를 인정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입장이다.

    노조 : 한 달에 한번 하겠다는 것은 안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섭 당일 교섭위원의 근무를 오후 3시부터만 인정하겠다면 만일 시의 일정이 안 되서 오후 1시에 교섭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식이었다. 어설픈 법 조항 나열과 최대한 우리 안과는 반대를 던지는 셈이었다. 그래도 노조는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

    노조 : 좋다. 교섭위원은 5명으로 하고, 교섭주기는 격주 1회로 하자. 단 교섭일정을 변경할 경우에는 3일이상 연기할 수 없으며 1회에 한한다로 하자. 교섭 전임은 시가 일정이 안 될 경우도 있으니 오후로 하자. 시가 걱정하는 것은 하루종일 교섭을 핑계로 연습 등을 안할까봐 그러는 것 아니냐? 정 그러면 단서조항을 다는 것도 동의한다. “단, 공연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한다.”로 하자.

    천안시 : 공연과 연습에 지장이 없는 범위로 하자.

    노조 : 연습이라는 게 뭐냐? 이건 교섭 당일만 해당되는 거고, 중요한 공연을 앞둔 연습이 있으면 그 날을 피하면 된다.

    천안시 : 안된다.

    노조 : 좋다. 정리해 보자. 그럼 단서조항을 삭제하고 교섭위원의 당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전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자. 그런데 격주 1회에 하되 단서 조항을 이해했는가? 만일 10월 1일이 교섭인데 연기하고 싶으면 10월 4일까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안 그러면 교섭이 무한정 늘어질 수 있다.

    천안시 : 알았다.

    다시한번 정리해 주겠다고 하면서 1항부터 6항까지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상이 없는 지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아래층 민원실에서 수정된 기본협약서를 출력해 왔다.

    정회도 안된다…

    노조 : 이제 문구에 이상이 없으면 싸인하자.

    천안시 : “격주 1회로 하되 3일 이상을 수정, 7일 이상 연기할 수 없다”로 하자.

    노조 : 아니 아까 다 확인하지 않았나? 7일 이상 연기한다는 것은 결국 3주 1회 교섭하겠다는 것이다.

    천안시 : 안된다. 7일로 하자.

    노조 : 아니 그동안 영어도 아닌 한국말로 서로 한 것 아니냐? 이렇게 다 몇 번이나 합의를 확인해 놓고 번복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5분만 정회하자.

    천안시 : 안된다. 지금 결정하든지 아니면 결렬이다. 5시가 넘어서 가야한다.

    결국 그렇게 2시간 가까이 진행된 교섭은 끝내 합의하지 못한 채 원점으로 돌아왔다. 노조는 원안에서 1인에 한한 교섭위원의 유급 노조활동 인정, 조합비 원천징수조차도 양보하면서 타결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막무가내식 태도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만 하지 않았지 교섭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

    얼마 전 타결한 영동 난계국악단의 경우 교섭대표는 어떤 조건이 되어야 예술 활동이 제대로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들었다. 영동군민은 5만도 안되고, 천안시는 60만명이 넘는다, 영동 난계국악단이 그나마 잘 운영되는 이유겠다.

    9월 13일로 예정된 다음 교섭에서는 천안시가 또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노조가 제출한 단체교섭요구안만 가지고 “근무시간, 인사권 노조 맘대로” “공공의 유익보다 이기적 편의 요구” 등의 기사를 마구 써대는 그들의 태도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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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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