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그리드'의 접근법 필요
    [에정 칼럼] 지역분산,환경친화,주민참여의 에너지모델
        2012년 09월 10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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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그리드 구상에 대한 생각

    지난 6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일본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만나 나눈 대화가 잠시 회자되었다.

    장기적으로 핵발전소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생각은 일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는 손 회장의 ‘아시아 슈퍼 그리드’ 구상에 문 후보가 공감을 표한 점이 눈길을 끈다.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문 후보가 승리한다면, 이에 대해 뭔가 들고 나올 것 같아 한번 따져보고자 한다.

    슈퍼 그리드(super grid)는 국경을 넘어 광범위한 지리적 범위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송배전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으로 북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의 초대형 태양광 전력을 남유럽으로 보내는 데저텍(DESERTEC)과 같은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아시아 슈퍼 그리드는 이와 유사하게 몽골 사막의 풍부한 태양에너지를 활용해 생산한 전력을 중국, 한국, 일본, 나아가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전력 계통 연계 프로젝트이다.

    일단 핵에너지와 화석에너지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이런 아이디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 분산형이라는 연성 에너지(soft energy)의 특징과 충돌한다는 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거리 혹은 입지의 차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종의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자 하는 유혹 그리고 그에 상응한 결과는 조력이나 풍력, 심지어 태양광 발전도 피해갈 수 없다. BP의 딥워터 호라이즌호의 기름 유출 사고나 송유관과 가스관 건설로 인한 환경 영향이 다른 양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사업을 대형화할 경우에도 생태계 파괴와 생존권 침해 등과 같은 전통적인 개발 사업의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정 장소를 뛰어 넘는 초국가적 재생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여전히 전쟁 중인 밀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초고압 송전선을 둘러싼 갈등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해외 에너지 의존도를 높이고 지역 간 에너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데 있다.

    석탄과 가스 수입 위주의 에너지 수급 방식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라는 목적을 전력 수입이라는 수단을 통해 해결하려는 프레임에 갇히게 돼 국내 분산형 재생가능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늦추거나 이런 시도에 둔감해질 수 있다. 자칫 ‘저탄소 녹색성장’의 새 버전에 불과하게 되어 진정한 에너지 전환․자립이 요원해질지 모른다.

    다음으로 에너지 생산국과 소비국간의 비교우위를 따지는 접근은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 지배-종속의 관계를 용인해 ‘태양 제국주의’로 변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메콩강 상류의 댐에서 태국으로의 전력을 공급하는 라오스가 과거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게 수력전기 주권을 빼앗긴 파라과이의 운명을 답습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태양광이 이런 대수력의 경험을 피하게 된다는, 어떤 예외적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북-러시아의 가스관 프로젝트는?

    그렇다면 지난 20년 동안 역대 정부에서 관심을 표명해온 한-북-러 가스관 프로젝트는 어떨까. 이명박 정부 들어 사할린-블라디보스토크-북한-남한 루트가 유력해진 상태여서 과거보다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현재 가장 중요한 변수인 북한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아 이 정부에서는 사실상 물 건너간 상황이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쉽게 판단할 수 없긴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조건부 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 정치적 결정이 이뤄지고 합리적인 운영․관리 방안이 마련된다면, 이제 환경적 측면과 에너지 수급 측면의 문제가 남는다. 천연가스는 석유보다는 덜하지만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 그리고 가스관 건설로 인한 환경 파괴가 우려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국내에서 제기된 가장 ‘급진적’인-비록 세부적인 검토가 필요해 보완 작업이 남아 있지만-탈핵․에너지 전환의 녹색당․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0년에 탈핵, 2050년에 탈탄소가 환경적․사회적․경제적으로 바람직하고 가능하다.

    이 전환 과정에서 천연가스는 불가피하게 가교 역할을 하는 에너지원으로 인정된다. 그리고 점차 주력이 되는 전력용 재생가능에너지원은 몽골 등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오지 않아도 국내에 충분한 잠재량이 있고, 추가적인 기술적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전환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운영될 가스관 프로젝트는 한반도 에너지 공동체 구상에 부합하는 남북 협력 사업으로도 검토할만하다.

    2030년과 2050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에너지 협력에 핵심적인 위치를 점해야겠지만, 아시아 슈퍼 그리드와 같은 방식보다는 생물권역별, 국가별로 자체적으로 일정한 수준의 에너지 전환․자립을 달성한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 바탕 위에서 비로소 재생가능에너지 그리드의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것은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이다. 마이크로 그리드는 전국적 전력 시스템에서 독립적으로 분산된 전원을 중심으로 한 전력공급 시스템인데, 기존 시스템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런 점에서 슈퍼 그리드와 반대되는 접근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한 가구나 공동체 내부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를 해결하는 고립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면, 에너지 전환에 적용해야 할 지역적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폐쇄된 란초세코 핵발전소 부지 옆 대규모 태양광 단지(3.9MW) (사진=핵 없는 사회)

    세크라멘트 사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새크라멘토의 시영 전력공사(SMUD)가 추진하고 있는 사례가 돋보인다. 새크라멘토는 1989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가동된 지 15년 된 ‘문제 원전’ 란초세코 핵발전소를 조기 폐쇄한 것으로 유명한데, 2005년 전후로 국내에도 제법 상세히 소개된 적이 있다. 그 이후의 행보에서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미래에 대한 단초 하나를 포착할 수 있다.

    지역전력공사는 시민들이 선출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탈핵 반대여론이 반영될 수 있었고, 동시에 1980년대부터 시행한 일련의 태양광 프로그램을 시민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강력히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 탈핵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강력한 동인이었다.

    새크라멘토 사례는 2001년 캘리포니아 전역에 발생한 정전사태에서 더욱 안정적인 모델로 인정받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에 전력산업 개방과 민영화가 급속하게 추진되었고 이 흐름 속에서 정전사태가 터졌는데, 이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지 않았던 새크라멘토는 자체 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미 에너지 절약 운동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정책의 성과가 나나타고 있어 전력 위기에서 전력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전력공사가 주축이 돼서 60만 가정과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스마트 미터(smart meter) 구축 프로젝트를 완료했다.

    탈핵․에너지 전환에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을 테고 새크라멘토의 사례를 무작정 도입하기에는 몇몇 장애가 있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이와 같은 지역 분산적, 환경 친화적, 주민 참여적, 사회 공공적 에너지공사라는 모델은 우리가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유용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전기요금체계와 전력산업구조를 둘러싼 갈등 상황과 한전, 전력거래소, 발전사업체, 지식경제부, 노동조합, 주택용 전력 소비자, 산업용 전력 소비업체 간에 복잡하게 형성된 함수 관계를 떠올리면, 지역에너지공사의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도 생산적이라 하겠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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