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공산당의 변화 과정
    [중국과 중국인] 당의 주역이 건국 후 출생세대로 변화
        2012년 09월 06일 10: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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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중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회가 가까워지면서 좀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각 세력들의 경쟁과 물밑 협상도 점점 열기를 더해 가고 있으며, 동시에 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준비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18차 당 대회에 참석하게 될 각 지역과 부문의 대표 2270명이 거의 400만 개에 이르는 당 기층조직들의 심사를 거쳐 선출되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창당해서 28년 동안의 험난한 역경을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해 집권정당이 된 후 내적으로는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의 극좌적 공산주의 실험으로 그리고 외적으로는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의 빈번한 마찰과 미국의 견제를 극복하고 80년 초 떵샤오핑(邓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이제는 세계에서 제2의 경제 강국이 되었고 미국과 함께 G2로 불리면서 국제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제작된 영화 <건당위업>

    오늘은 중국공산당의 강령과 당원들의 변화를 통해 중국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중국공산당에서 7월 1일을 창당일로 확정해 기념행사를 진행한 것은 1941년부터인데 실제로 당의 1차 대회가 개최된 날은 7월 23일입니다.

    7월 1일을 당의 기념일로 정한 것은 당시 자료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1938년 마오쩌뚱의 제안에 따른 것입니다.

    겨우 50여 명의 당원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이제 남북한 인구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8000만 명이 넘는 당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1년 말 통계에 의하면 8260.2만 명, 총 인구의 6.1%. 창당 초기인 1927년 약 6만 여 명에 달하던 당원 중 노동자 당원 50.8%, 농민 당원 18.7% 등 기층 민중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에 비하면, 당원 수가 8천 만 명에 달했던 2010년 노동자 당원은 10%가 안 되는 7백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대신 당 간부를 비롯한 전문 지식인들이 1925만 명으로 거의 20%에 육박하고 있으며, 전문대 이상의 학력을 소지한 고학력자들의 비율도 3191.3만 명으로 거의 40%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변화는 2002년 쟝쩌민(江泽民)의 ‘3개대표三个代表’론이 당의 강령에 명기됨으로서 자본가들의 입당이 허용된 후, 16차 당 대회에는 7명, 17차 당 대회에는 17명이 당 대회에 참가했고 이번 18차 당 대회에도 20여 명의 자본가 당원들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제는 전통적인 당의 핵심 계급인 노동자 농민들의 구성 비율이 점점 낮아지고 대신에 사회의 중-상층을 구성하고 있는 지식인, 당-정 간부들의 비율이 상당히 빠른 추세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문대 이상의 고학력을 지닌 당원들의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이 당의 예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共青团)이나 공산당에 입당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공산주의 혁명이나 사회주의 이상의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서 성공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산당은 이런 그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최소한의 바람막이 또는 배경일 뿐입니다.

    당의 강령의 변화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90여 년의 역사상 10여 차례가 넘는 수정을 거쳐 현재의 강령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10여 차례가 넘는 당 강령의 수정 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혁명의 성공을 목전에 둔 1945년과 1992년의 두세 차례 수정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45년의 강령 수정은 중국공산당이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에서 마오쩌뚱 사상에 의해 지도되는 정당으로 변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정통 노선에서 벗어나 마오쩌뚱의 이론과 경험에 의존한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대내외에 선포했는데, 이것은 다시 소련과의 관계에서 좀 더 독립적이고 동등한 관계 수립에 대한 선언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92년의 강령 수정은 떵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 정책을 이론적으로 완성한 것으로 45년의 강령 수정이 정치 분야에서의 독자노선을 선언한 것이라면, 92년의 수정은 경제 분야에서의 독자노선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두 차례의 강령 수정을 통해 중국공산당의 두 걸출한 인물들의 주도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소련공산당에서 중국공산당을 정치-경제적으로 분리시켰습니다.

    마오쩌뚱과 떵샤오핑 이후 쟝쩌민(3개 대표론)과 후진타오는 당의 강령에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추가시켰지만 이름을 집어넣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실제로 내용상으로 보더라도 이런 내용들을 당의 강령에 굳이 추가할 필요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에서 정부가 바뀔 때 마다 내거는 시정방침, 예를 들면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등과 같은 정치 구호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마오쩌뚱사상과 떵샤오핑이론이 형성부터 강의 강령에 포함되기까지 십 수 년이 걸렸는데, 이들 두 사람의 주장은 자신들이 집권한 후 언급해서 퇴임 전에 당 강령의 수정을 통해 집어넣었습니다. 두 사람 간의 권력 투쟁과 타협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각 급 학교에서 가르치는 정치과목이 ‘마오쩌뚱이론개론’과 ‘떵샤오핑이론개론’이라는 두 과목으로 편성되어 있는 사실에서 이들과 중국공산당에서 이들과 다른 지도자들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마오쩌뚱과 떵샤오핑을 거치면서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에서 중국특색의 정치-경제적 제도를 운용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물론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변화가 북한처럼 아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 오히려 시대의 변화와 상황에 맞춰 변화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강령과 당원 구성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중국공산당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의 지도 이념과 그 이념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10월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는 18차 당 대회에서는 혁명 1세대들이 추구했던 이상을 거의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세대,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설된 후 태어난 세대들이 처음으로 중국의 최고 지도부를 구성하게 됩니다.

    공산주의 이념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공산당을 선택하는 젊은 당원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를 구실로 일부 중국의 혁명 유자녀들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주장들이 전반적으로 크게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정-군-재계 요소요소에 포진하고 있는 소위 태자당이라 불리는 세력의 구성원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지난 봄 발생했던 총칭(重庆)시당 위원회 서기 보시라이(薄熙来) 역시 그들 중의 한 명입니다.

    현실적으로 정통적인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자 농민 세력의 약화 및 당으로부터의 이반과 자본가와 엘리트 지식인들의 당의 도구화는 결국 당을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올 가을 개최될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이 대회가 또 다시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갈림길에서 이들 새 지도부가 자신들의 부모 세대가 건설한 중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중국의 새로운 변화가 한반도에도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3개 대표론: 중국공산당은 선진사회의 생산력과 선진문화발전 그리고 광범위한 인민들의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요하게는 자본가의 공산당 입당을 허용했다. 쟝쩌민이 2000년 광동성의 한 지역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언급했으며, 이를 다듬어 2002년 당 강령에 포함시켰다.

    * 과학발전관: 인간을 중심에 두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자는 후진타오의 시정방침. 즉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균등한 경제발전과 이익의 분배에 주의하면서, 이에 걸 맞는 정신문명을 건설하자는 주장.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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