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은 있어야 뭐가 되도 된다.”
    [진보신당 인터뷰4] 서울중랑 민중의 집 박수영 사무국장
        2012년 09월 06일 09: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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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보신당의 강상구 부대표가  진보신당 지역조직들의 거점 활동공간의 고민, 생각, 활동 등에 대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들이 진보신당이라는 특정 정당만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 진보운동 지역운동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레디앙>은 강상구 부대표의 지역 거점 릴레이 인터뷰와 정리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글은 진보신당 기관지 R에도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이번에는 서울 중랑 <민중의 집> 박수영 사무국장을 만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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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랑 민중의 집 박수영 당원님은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계십니다. 2010년 10월 중랑당협이 결의해서 민중의 집을 만들긴 했지만 곧 이어 터진 ‘독자-통합 논쟁’ 때문에 민중의 집을 주도하던 활동가를 비롯해 많은 당원들이 각자의 이유로 당을 떠났다고 합니다.

    박수영 당원님은 “2-3년은 진득하게 있어야 뭐가 되도 된다.”는 생각에 지금껏 활동을 유지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중랑 민중의 집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고민을 던져줍니다. 당권자 45명인 소규모 당협이 “일단 시작하고 1~2년 넘어가면” 안정화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민중의 집을 일단 저지르긴 했지만 운영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회원도 그 사이 오히려 줄었다고 합니다.

    노동조합과의 사업도 활발한 건 아니어서 홈플러스 노동자 자녀와 함께 공부방을 진행했으나 아이들이 오지 않아 중단했고, 기타 다른 노동조합과의 공동 활동 노력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설명입니다.

    박수영 사무국장은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지 딱 2명만 더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 도서관 기능을 강화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지역을 다니면서 얼굴도 많이 알려놔서 이제 일이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정작 자신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매일 하던 상근을 이제 3일 밖에 하지 못하게 됐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에도 박수영 당원님은 민중의 집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무언가를 모색하고 계셨습니다.

    민중의 집이 있는 기사식당 골목에서 택시노조와 함께 택시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구상도 하고 계시고, 투쟁하고 있는 지역의 노조와의 연대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디어문화교실 참가자를 모집하기 위해 4일 동안 포스터 50장을 붙이고 팜플렛 5백 장을 뿌려서 주민 12명을 모은 것은 거의 인간승리입니다.

    더운 여름에 혼자서 땀 뻘뻘 흘리면서 포스터 붙이고 팜플렛 뿌리러 다녔을 박수영 당원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미디어 문화교실이 잘 되어 박수영 당원님의 바람처럼 중랑 민중의 집이 지역인터넷 방송국을 꼭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수영 당원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기억에 남는 얘기가 있습니다. 중랑은 철로를 기점으로 위쪽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이고, 아래쪽은 단독 주택단지인데 아파트 단지 쪽에 민중의 집을 만들었으면 더 잘 되었겠지만 “진보신당이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아래쪽에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30-40대 화이트 칼라 층에서 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기 때문에 거점 공간들이 주로 아파트단지를 끼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중랑 민중의 집은 이 점에 관한한 현실을 수용하기 보다는 원칙을 지킨 쪽입니다. 이 문제는 분명히 거점 공간을 만들려는 모두가 거쳐 가야 할 고민 가운데 하나입니다.

    박수영 당원님은 “주민들이나 노동자들에게 계속 얼굴 알리고 가까워지는 수밖에 없다. 1년 반은 돼야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해당 지역에 전망을 가진 활동가가 확실히 붙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비전을 가진 활동가가 있지 않으면 거점운동도 힘들다.”고도 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꾸준히 활동하는 활동가를 만드는 것. 당이 가장 잘 해야 하는 일이면서 가장 못 하는 일이 틀림없습니다.

    팔당 두물머리 텃밭모임

    – 중랑 <민중의집>을 만든 이유를 말해 달라.

    “처음에 중랑 민중의 집은 진보신당 중랑 당협의 김민석 사무국장이 제안해서 만들었다. 그때 저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나중에 김민석 사무국장이 사정이 생겨서 빠지고, 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민중의 집 책임을 맡게 됐다.

    2-3년은 진득하게 있어야 뭐가 되든 된다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있는 거다.”

    -당과의 관계는 어떤가.

    “초기 준비위 단계부터 당과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유는 당시에 통합-독자 논의가 시작될 때였는데, 당이 없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되더라도 우리가 모여서 활동할 기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과 회계, 운영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민중의집> 활동이 당협 운영위 보고 사항도 아니다.

    두 번째로는 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민중의집> 후원을 하는데 그 재정으로 당 사업에 쓰는 게 맞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진보신당 지역거점으로서의 역할이 활동의 중심이 됐다. 초기 논의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 <민중의집> 초반에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당원들이 보증금을 확보해주고, 후원회원도 돼줬다. 회비가 30만 원 정도 확보됐을 때 공간을 만들자고 했다. 여기가 500에 45만원이다. 일단 시작하고 1~2년 넘어가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않을까 했지만 지금까지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후원주점, 공동체 영화상영 같은 것을 해서 재정을 메워 가는 중이다.”

    – 회원은 몇 명인가.

    “35명이다. 그 사이 좀 줄었다. 원래부터 작은 당협이었는데 세게 지른 거다.”

    -회원이 준 이유가 뭔가.

    “애초부터 딱 1년만 후원해 달라고 해서 조직했던 분들이 계신다. 그리고, 중랑당협 소속이 아닌 당 활동가들이 지원을 했는데 당 활동가들의 사정이 어려워져서 후원이 끊기기도 하고, 진보신당 당원 중 탈당하시는 분들이 후원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초기 계획은 당과 관계없는 새로운 기지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당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서울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를 하고 있는데 이런 것도 당의 부침과 상관없이 이 공간을 유지해 가야 한다는 고민에서다.”

    -<민중의집> 사업이 당에 도움 되는 게 있나.

    “그 동안 당원 위주의 사업을 했다. 당권자가 45명이고, 당원 모임을 하면 5-6명 정도 나온다. 당원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볼 순 없다.

    한편으로는 당원들이 모일 수 있고 노조까지 결합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을 고민 했다. 현재도 그런 사업을 하고 있는데 재정의 문제가 크다.”

    국어 공부방의 모습

    당원이 아닌 분들과 함께 하는 사업은 없나.

    “일본어 강의 같은 경우에는 강사가 당원이 아니셨는데, 프로그램 진행하면서 당원에 가입하셨다. 사업을 많이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와 함께 한 사업은 있나.

    “홈플러스 노동자 자녀를 대상으로 공부방을 3개월 정도 진행한 적이 있다. 근데 시간 맞추기 힘들어 그만 뒀다. 애들이 안 온다.”

    -많이 정체된 느낌이다.

    “중랑은 최근에 2명 이상 붙어서 사업을 한 적이 없다. 사람이 계속 떨어져 나가고 있는 상태다.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돈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2010년 10월 29일에 민중의 집 만든 이후, 통합-독자 논의가 터지고, 그 과정에서 김민석 사무국장도 상처 입고 떠났다.

    2011년 동안 안정화 시키고 사람을 참여 시켰어야 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모두 통합-독자 논의에 휩쓸렸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처음의 추진력이 안 생기고 있는 거다. 지금은 2014년까지는 해볼 생각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내가 사라지면 답이 없다.”

    -같이 하시는 분이 아무도 안 계신가.

    “황성희 당원이 계신데, 현재는 교수노조 사무국장으로 가셨다. 개인적으로 그 분한테는 좋은 일이라서 말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잘 안 모이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인데, 이 분들은 야근을 늦게까지 한다. 평일엔 모이는 게 불가능하고, 술 먹는 모임이 된다. 근데 내가 술을 잘 못하기 때문에 이런 모임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주말의 경우, 알까기 모임이 있어서 매주 일요일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긴 하다. 알까기 단원이 13명인데, 당원이 아닌 분들도 있다. 독자통합 논의 전에는 알까기 모임에 11명이 있었는데 전원 당원이었다.

    지금은 13분 중 6분이 당원이다. 중랑에서 탈당하신 분들은 통진당으로 안 가고 당 외곽에 계신다. 중랑은 경기동부의 기지다. 그 패권에 반발해서 나온 사람들이 진보신당으로 왔었고, 촛불당원 수혈은 거의 없었다. 그 상태에서 통합독자 논의 나오니 열 받아서 탈당한 거다.”

    -<민중의집> 만들 때 노조랑 같이 하진 않았나.

    “주변 노조들하고 친하기도 하고 같이 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민노당-통진당 당원들이 많은 조직이어서 잘 안 된다. 그래도 어쨌거나 노력 중이다.

    부광실업노조 위원장님이 민주택시 노조 부위원장으로 가셨는데 최근에 우리하고 사업 같이 하자고 제안도 하셨다. 민중의 집이 있는 골목이 기사식당 골목이라서, 이 골목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공간이 없다고 민중의 집을 사무실로 써도 되냐고 하시더라. 사무실 빌려 주고, 행정적 지원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노조와의 교류는 어떤가.

    “학교급식노동자 조직화 사업에 같이 하려고 노력했는데, 동대문중랑 조리사협회가 너무 강력해서 당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자기들끼리 강력히 묶여 있었다. 노동조합 교육을 같이 해보는 문제도 제안했었는데 노동조합들이 자기들끼리 잘 하더라. 장소도 있고, 너희가 우리 보다 잘 할 수 있나 하는 반응도 있었다.

    희망연대 C&M 지부가 여기 있다. 본사가 강남에 있는데 노조 사무실은 중랑에 냈다고 하더라. 이쪽과 교류하면서 미디어교육 할 때 강사 관련 문의를 한 정도다.”

    -시민사회단체와는 관계가 어떤가.

    “시민사회단체가 거의 없는 편이다.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생기고 있긴 하다. 여성환경연대 산하 중랑지부 ‘초록상상’이 가장 활발하다. 그 밖에 어린이 책 독서연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네트워크, 교육희망네트워크 정도가 있다. 이 곳들과 중랑구청 특채비리 관련 공대위를 꾸리기도 했고, 영화 상영을 ‘초록상상’이랑 같이 준비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그냥 들른다거나 하는 일은 없나.

    “위치나 높이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제일 안 좋은 부분이라 생각한다. 민중의 집 열고 나서 한동안 활동이 중단되다 시피 해서 그렇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상근자가 없으니 누가 오다가다 들르기는 힘들다.”

    -지역에 혼자 사는 30대 청년층이 좀 있나.

    “거의 없다. 중랑이 교통은 좋지만 워낙 외곽이라서 그런 것 같다. 택시회사, 소규모 미싱공장이 많다. 이 분들과 어떻게 만날까 고민 중이다.

    철로를 기점으로 위쪽은 80%가 아파트고, 민중의 집이 있는 아래쪽은 단독 주택단지다. 남북이 생활이 갈린다. 북쪽은 노원 생활권에 더 가깝다. <민중의집>을 위쪽에 만들었으면 지금보다 잘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진보신당이 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여기를 고집했었다.”

    -미싱공장이 얼마나 많나.

    “데이터로 확인한 게 없다.”

    -책장이 꽤 있는데, 어린이 도서관의 기능을 강화하는 건 어떤가.

    “하고 싶은데 역시 상근자 문제가 걸린다.”

    – 박수영 동지는 민중의 집에 얼마나 와 있나.

    “거의 매일 있긴 했었는데 회의 다니고 해야 하니 늘 있는 건 어렵다. 게다가 현재는 월요일, 수요일에 돈 버는 일을 나가야 해서 여기 있을 수가 없다. 화목금 정도 나온다. 오늘도 구청장 비리 관련 1인 시위하고 오는 길이다. <민중의집>과 당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 밖에 없어서 문제다.”

    -부엌에서 밥은 안 해 먹나.

    “초기엔 했는데 모이는 사람들이 없으니 무슨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안 된다. 다시 해볼까 싶은데……”

    -요리 잘 하나? 당원 말고 당원이 아닌 사람들을 초대해서 밥 한 끼 먹자고 하는 건 어떤가.

    “송년회 할 때 음식을 해 봤다. 근데 그 날 판을 너무 크게 벌렸더니 한 번 하고 나서 지치더라.”

    -마포 <민중의집>이 밥상모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더라. 구로도 그렇다. 당원 중에서 생전 안 나왔던 사람들도 정성스럽게 차려서 밥 같이 먹으면 분위기 좋아지더라. 함께 먹는 밥의 힘이 대단하다.

    “개인적으로 사람들과 같이 밥을 잘 못 먹는다. 뒤풀이에 거의 참석하지 않고, 술도 잘 안 먹는다. 내 스타일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당 때문에 성격 개조를 해야 하나 생각도 한다. 근데, 같이 고민할 사람 2명만 더 있어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번도 3명이 되어 본적이 없다. 같이 고민하고 행동할 사람 딱 3명만 있으면 좋겠다. 연 인원으로 치면 3명이 넘는데 돌려막기다. 1~2명이 고생하고 있다가 한명 떨어져 나가면 다른 한명이 들어오는 식이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생각이다.

    내가 나가떨어지면 아무도 안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근자 기금 받고 활동할 때 1년 동안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얼굴 알리고 진보신당과 민중의 집을 각인 시켰는데 지금 일들이 막 쏟아진다. 혼자 일일이 어떻게 대응 하나 싶다.”

    -그러면 요즘은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있나.

    “미디어문화교실을 하고 있고, 당원 자녀 대상 중학수학 공부방 하고 있다. 동네 영화제도 기획 중이다.”

     

    미디어 문화교실의 모습

    -미디어교실은 몇 명이나 참가하나.

    “12명이 등록했고 9명이 늘 나온다. 대부분 일반 주민이다. 만들 때부터 조직에 기대지 말자 해서 포스터를 동사무소, 복지관, 구청 등에 50부 부착하고, 팜플렛도 500부쯤 뿌렸다. 4일 내내 그렇게 노력해서 모은 사람들이다.”

    -주민들이 온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등록한 분 중 반 정도는 40대 이상 주부다. 마을문고 운영위 활동하는 분도 있다. 그리고 1/3정도는 20대 청년이다. 지역 면목동 성당 청년들이다. 예전에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 목소리 하셨던 성우 우문희씨도 참여하고 계신다.

    2014년까지 지역 방송국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가 아니더라도 인터넷 방송이라도 만들려고 생각 중이다. 면목동 성당 청년들도 성당에서 인터넷 방송을 고민하는 분들이라 적극적이다.”

    -미디어 교육 사업 잘 살리고, 아까 말씀하신 양계축협 대응 잘 하시면 희망이 보일 것 같다. 동네에서 한 직종의 노동자들 조직하는 데 3년은 걸린다는 얘기도 있던데 아무튼 건투를 빈다.

    “주민들이나 노동자들에게 계속 얼굴 알리고 가까워지는 수밖에 없다. 1년 반은 되어야 가까워질 수 있다. 해당 지역에 전망을 가진 활동가가 확실히 붙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비전을 가진 활동가가 있지 않으면 거점운동도 힘들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

    “내가 기자 출신이다. 학교 때도 나는 전혀 운동권이 아니었다. 기자 생활하고 취재를 하면서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입당할 때부터, 기자생활하면서 당 외부에서 봤을 때 옳은 얘긴 하는데 왜 하나도 바뀌는 게 없는지 알고 싶었다.

    들어와서 보니, 이 사람들 하는 얘기가 왜 실천이 안 되는지 답을 알았다. 내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넌 생각 좀 그만하고 몸을 움직여라. 머릿속 생각만으로 바뀌는 게 하나도 없다.’는 충고를 들었는데, 이 사람들 속에 있으니 내가 행동주의자더라. 당의 문제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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