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겐 좌파대통령 필요
[기고] 홍세화의 결단을 응원하며
    2012년 09월 03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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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진보신당 전국 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홍세화 대표는  “사회연대 후보 경선에 저 자신도 몸을 내던질 것 고민”한다고 밝히면서  2012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런 홍세화 대표의 발언과 생각에 대한 지지 뜻을 밝히는 기고 글을 2011년 전 대학생 사람연대 집행위원장이었고 지금은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박정훈씨가 <레디앙>에 보내왔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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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익숙한 사회.

서울 강북의 임대아파트에서 100일동안 6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태풍 볼라벤 보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다. 안철수에 대한 정치적 스캔들과 박근혜 콘돔으로 회자된 작은 해프닝도 있다.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매일매일 자극적인 소식을 접하는 우리에겐 이 역시 지속가능한 자극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웬만한 외부 충격에는 꿈적도 하지 않고 늘 해왔던 데로 흘러가는 삶에 익숙하다. 세상은 이런 청춘들에게 바깥세계에 무관심하다며 비난하거나 짐짓 힘든 청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위로하려 한다.

마침, <아프니깐 청춘이다>로 200만부의 책을 판매한 김난도 선생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라는 신간을 냈다. 어쩌면 88만원세대로 촉발된 청춘 담론은 아프니깐 청춘이다로 서점의 가판대에서 마감된 것 같다.

그것은 저자의 선의와 의도와는 상관없이 청춘담론의 상품화에 기여했고, 청춘들은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했다.

교육을 소비하고, 관계를 소비하고 정치를 소비하듯이 자신의 담론조차도 관객이 되어 자기의 이야기를 듣고 소비한다. 그것은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객석이라는 안전한 위치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주체적인 방법이다.

우리는 한 번도 무대에 올라본 적이 없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며, 우리의 스토리와 시나리오를 주체적으로 짜야한다. 결정적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객석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청춘들에 대한 위로가 바로 이 지점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청춘시절에 겪는 아픔들을 잘 이겨내면 성장한다는 이야기들, 그러니깐 거대한 세상의 벽에 맞서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라는 이야기들이다.

이것은 자신과 세상과의 갈등과 싸움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새 어른이 되고 성장한 자신을 얻게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이건 철 지난 위로다. 박근혜나 이명박이 이야기하듯 산업화시대에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해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사람들에게나, 지금의 야권이 자신있게 이야기하듯 민주화시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그 속에서 성장했던 사람들에게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안철수가 이명박과 똑같은 CEO이고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이명박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조건을 어떻게든 바꾸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긍정성의 아이콘으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긍정해야만 하는 청춘들과 안철수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현재 청춘들의 문제가 있다. 한병철 선생의 <피로사회>에서 지적하듯 지금은 과도한 긍정성의 시대다.

외부의 억압과 적이 아닌 내부의 긍정성이 부정성과 멈춤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멈춤이 없으면 사유도 없고, 새로운 것도 다른 것도 없다.

해왔던 과거의 방식대로 미래 역시 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우리는 과도한 긍정의 시대에서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긍정한다. 삼성에 취직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지만, 이재용이 삼성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강한 긍정이다.

할 수 있다는 정신 승리, 주어진 조건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긍정과 신뢰가 없다면 힘든 삶을 버틸 수가 없다.

부모나 선생 역시 과거처럼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믿는다’라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우리를 지배한다. 국제적인 경제 위기와 1000조에 이르는 가계 부채 역시도 소비에 대한 긍정과 신용이라는 긍정성에 기반 한다.

이러한 긍정성에 호응하지 못했을 때, 자기 자신의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청춘들은 절망하고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래서 강한 긍정성은 자기 파괴적이다. 도로가 없으면 도로를 세웠던 산업화시대의 부정성도, 외부의 강한 권력이 있으면 그것에 맞서 싸웠던 80년대의 부정성도 우리에게 없다.

그래서 청춘들에겐 세상에 대해 불평하고 그것을 고치려는 노력들이 오히려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흐름에서 경험하지도 경험하고 싶지도 않는 예외적인 죽음과 사회적 문제들은 부차적이거나 적어도 4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치러야 하는 내일 있을 토익시험보다는 덜 자극적이다.

그래서 김난도 선생과 같은 이야기들은 현재의 자기 삶을 긍정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책을 파는 것에는 유리할 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삶의 흐름을 바꾸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엉뚱한 이야기다.

지금의 고통과 아픔을 긍정하라는 이야기는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지 않은 청춘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스스로 긍정하고 안심시켜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사회적으로 확인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히 힐링이다.

‘아프니깐 청춘’은 산업화시대나 민주화시대의 유물

이렇게 보면 박근혜나 야권은 요즘 젊은이들의 경험과 감성과는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세력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과 역사를 강하게 긍정할 뿐이다.

안철수는 확실히 시대친화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을 긍정한다. 안철수는 우리가 관객일 때 필요한 주인공이다. 공연장의 문을 열고 나온 관객이 잛은 카타르시스와 함께 내일 아침의 출근지옥을 상상하며 피곤함을 느끼는 것을 우리는 정치현실에서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부정하고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우리의 삶속에서 중단은 사회적 실패와 생존의 위협으로 돌아온다. 생각해보라 자격증 시험을 때려 치우고 학교수업을 째는 내일의 나를! 상상하기만 해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부정성과 중단 뒤에 오는 산업화의 떡고물이라던가, 민주화와 정치권력이라는 떡고물을 지금의 시대는 우리에게 보장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능력이 없다.

글로벌경제위기와 심각한 양극화속에서 성장자체가 의심될 뿐만 아니라 성장 뒤의 성과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신자유주의 10년 동안 우리는 몸으로 경험했다.

우리는 성장도 그 성장의 과실도 아닌 그야말로 생존. 해고되지 않거나 실업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정도를 바란다. 복지제도에 대한 열망 역시 경제성장이 우리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 속에서 발생하는 욕망이다.

민주화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87년의 직선제 개헌이 우리에게 준 것은 투표할 권리 외에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삶을 긍정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중단 두 가지 밖에 없다.

적당한 위로와 어설픈 변화는 자칫 개개인의 삶 자체를 파괴해버릴 것이다. 우리 삶에 대한 근본적인 중단의 길은 청년 자살율 1위 국가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대안이 아니다. 자기 파괴적 방식이 아닌 삶의 중단은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청춘들에게 다른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세상의 급진적 변화를 약속해야한다.

누구나 늘 했던 말을 반복하자. 그것은 지금 당장 내가 처한 사회적 조건을 바꿔야 한다.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그런데 누구나 늘 했던 정도의 변화는 안 된다. 지금의 야당을 지지하는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성장하지 않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우리가 외칠 수 있는 것은 청년고용할당제나 스펙 쌓는데 더 효율적인 교육을 제공하라는 것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바뀌지는 않는다. 모든 국민이 먹고사는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치개혁, 순환출자제한정도의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우리를 투표소비자로 만들 뿐이다.

결국 성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야 하는 문제, 즉 고장난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청년실업해결이 립서비스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두번째로, 투표권과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한정된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우리의 삶과 생존을 보장하는, 그래서 모두의 정치참여가 가능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해결해야 할 대안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20대의 정치참여가 슬로건이 아닌 우리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대안은 체제 자체에 대한 변화가 필요한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금의 청춘들은 정확하게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고 훈육한 세대다. 특정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 처해 있는 청춘들의 문제이다. 모든 인류가 20-30대쯤 겪는 생물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좌파들을 사람들은 싫어한다. 왜 이렇게 세상에 불만이 많냐는 거다. 그리고 야권연대를 하지 않고 왜 이렇게 분열을 획책하냐고 반문한다. 체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은 당연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지금의 청춘들과 모든 배제된 자들에게 유리하다. 이것이 좌파의 존재 이유다. 세상이 바뀌어서 구체적으로 내 삶의 문제가 해결이 될 가능성이 보여야 지금의 내 삶을 중단할지 여부를 고민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박근혜도, 야당도, 안철수도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조건을 바꿀 좌파대통령이다.

마침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가 대선출마의사를 밝혔다. 그는 아마도 가장 젊은(?) 대통령후보이자 유일한 좌파후보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선생님의 삶을 중단하고 야망을 가진 좌파대통령의 후보가 되는 것을 응원한다.

최소한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대한민국에서 그의 성공과 실패는 아마도 우리 청춘들의 삶과, 거꾸로 청년들의 중단과 부정성은 홍세화대표의 성공과 실패와 함께 할 것이다.

필자소개
전 대학생사람연대 집행위원장.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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