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서운 건 잊혀진다는 것
[에정 칼럼] 구럼비를 파괴하며 녹색 운운은 거짓과 위선
    2012년 08월 31일 02: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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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끝자락인 지금, 때늦은 휴가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매해 여름철이면 에너지 관련 강의가 몰려 들어오곤 하는데 나는 늘 강의의 마지막에 올 여름 휴가 때 가족과 함께 떠나면 좋을 휴가지로 에너지 자립마을이나 에너지 관련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지역을 소개하곤 한다.

실제로 보고 경험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하지만 막상 나는 그런 지역으로 휴가를 간적이 많지 않다. 휴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해야 한다는 나만의 엉터리 휴가에 대한 기본 철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간 잊고 있던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아직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은 단순히 나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해주는 것을 넘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나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대강과 원자력 발전 반대 투쟁 등 끊임없이 터지는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지난 3월 폭파된 제주 구럼비 바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듯하다.

물리적으로도 너무 먼 제주 강정마을, 그곳에 아직도 사람이 모이고 있을까? 여전히 그렇게 매일 투쟁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된 것은 큰 마음을 먹고 떠나게 된 여름휴가 때문이었다.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고, 빠듯한 사정에 돈을 모아 제주도를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어렵게 가는 만큼 가능한 많이 제주도의 볼거리를 다 즐겨야 한다는 의지가 충천해 졌다.

그렇게 신나게 계획을 하던 중 나의 머리는 반사적으로 강정마을을 가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금세 휴가를 가서 꼭 그래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휴가의 마지막 일정으로 찾아간 강정마을은 조용했다. 해군기지반대 깃발이 집집마다 걸려 있었고, 마을 회관에 사람이 조금 있긴 했지만 이곳이 정말 그 뉴스에서 나오던 강정마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해군 기지 근처에 다가 갔을 때 한줌의 사람들만이 강정의 평화를 외치는 모습이 보였고, 그들보다 10배쯤 많은 경찰과 용역으로 보이는 이들이 해군기지건설 현장을 막고 서 있었다.

한반도 평화 구축과 동아시아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해군 기지는 화물차와 크레인의 굉음과 함께 평화의 제주 앞바다를 파괴하고 있었다.

나는 구름비 바위 폭파도 서울에서 뉴스로 봤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로 꾸준히 알려오던 강정의 소식도 뜸해졌다. 그렇게 잊었던 것 같다.

해군기자 건설현장을 지키는 용역들

강정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평화를 염원하는 벽화

돌이켜보면 새만금 투쟁도 FTA 반대 투쟁도 그 자체가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점점 사람들이 우리를 잊고 있다는 것이 힘이 빠지고 더 무서운 일이다.

파괴되는 제주와 세계자연보존총회

서울에서 제주는 먼 곳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하지만 막상 물리적으로 가까운 제주 안에서도 강정은 가장 큰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가장 큰 환경 이슈는 세계자연보전총회(World Conservation Congress)다. 세계자연보전총회는 오는 9월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 제주에서 열리게 되는데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이 환경 문제를 해결을 위해 하는 4년마다 개최하는 회의다.

강정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겠다며 온갖 환경파괴를 방치하는 제주에서 세계자연환경총회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게다가 제주도가 이번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제주 의제로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세계적으로 환경도시모델을 평가하고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발의했다.

이는 제주가 2016년과 2020년에 국제자연보전연맹의 평가인증시스템에 의한 세계환경수도 평가를 두 차례 받고, 이를 근거로 2020년에 국제자연보전연맹이 인증하는 제1호 세계환경수도로 우뚝 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이다.

이를 위해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에 ‘2012 세계자연보전총회 제주 의제 발의 안을 보냈다. 여기에 설명된 ‘세계환경수도 평가 및 인정시스템 개발’ 관련 내용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없고, 자연 또한 인간과 공존이 없으면 파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지속발전 가능한 세계적인 모델, 세계환경허브를 조성하고 이를 위한 평가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입니다. 제주는 세계환경허브 추진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70억 세계인의 생명의 섬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

정말 주옥같은 문장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지속가능한 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인의 생명의 섬 제주를 원하는 제주도민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의 자연과 지속가능성은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일까?

강정 해군기자의 건설 모습

해군기지 건설과 대비되는 풍력발전단지의 모습

제주의 녹색! MB의 녹색과는 다르길

제주도가 2020년 제1호 세계환경수도를 목표로 ‘생명의 섬, 세계 환경수도 제주’라는 비전을 가지고 세계환경수도 조성 기본계획을 내놨다.

52개 사업에 4조1638억원이 투여될 이 계획에는 2020년까지 달성해야 할 33개의 실천지표도 제시 되어있는데 여기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2005년 대비 41% 감축, 제주도민 환경교육 이수 50% 달성, 탄소포인트제 참여 가구 50%, 숲 가꾸기 면적 2만ha, 공공부문 친환경농산물 소비 80%, 녹색 생태관광객 점유비율 30% 등이 있다.

세계환경수도를 위해 자체적으로 기준을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 일련의 일들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다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또 진정한 세계환경수도를 만들기 위해서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다.

어떻게 세계에서 인정하는 제1의 환경도시에 해군기지가 공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해군 기지에서 사용하는 엄청난 에너지와 폐기물들이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없이 온실가스 감축을 함부로 공약할 수 있는가?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지금 제주가 제시하고 있는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처음 이명박 대통령이 8.15연설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우려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좋은데 MB 정부가 만드는 것은 뭐가 달라도 달라서 제대로 된 저탄소 녹색성장의 청사진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견은 가뿐하게 무시되거나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우려는 현실이 되어 4대강 사업과 원자력의 확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제주를 보며 같은 우려가 든다. MB 정부가 4대강 사업을 녹색 사업으로 둔갑시키고,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한 연금술처럼 강정마을의 해군 기지를 미항으로 만들어 녹색 항구라며 자평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제주도는 제주도만의 매력이 있다. 제주는 아름다운 풍광 그 자체만으로 치유되는 느낌을 받는 곳이다. 제주가 친환경 도시가 되는 첫 걸음은 강정을 평화롭게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할 것이다.

나의 휴가는 강정을 다시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 7대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구럼비 바위-해안은 지난 3월에 폭파되어 이제 옛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이것을 공유하고 경험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제주 한 커피숍에 계산대에 놓인 공지판 @ 사진 ECPI

강정마을에 조금 더 남아있고 싶었지만 너무 이방인 같은 행색에 나는 조용히 빠져 나왔다. 그들의 절규가 귀에서 맴돌았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조용히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로 휴가를 오는 사람들이 한번씩 만 강정에 들려준다면 그것만으로 ‘우리가 아직 강정을 잊지 않았고, 우리가 평화를 짓밟는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라는 메세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조용히 잊혀지길 원하겠지만 우리는 조용히 잊어주지 않을 것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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