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핵심은 사람이다.”
    [진보신당 인터뷰3] 수성주민광장 이영희 집행위원장
        2012년 08월 31일 10:4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 진보신당의 강상구 부대표가  진보신당 지역조직들의 거점 활동공간의 고민, 생각, 활동 등에 대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들이 진보신당이라는 특정 정당만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 진보운동 지역운동을 생각하는 이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레디앙>은 강상구 부대표의 지역 거점 릴레이 인터뷰와 정리 글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글은 진보신당 기관지 R에도 함께 게재될 예정이다. <편집자>
    ———————————————————————–  

    대구 <수성주민광장>의 첫 느낌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점 공간 몇 군데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이런 느낌의 공간은 주민참여가 활발합니다.

    대구 <수성주민광장>은 2006년 지방 선거 이후 대구의 활동가들이 보다 주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초기에 동네 어린이날 축제, 독서 강좌, 동화 읽기 모임 등을 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접촉을 늘려나간 <수성주민광장>의 활동은 첫 느낌 그대로 다양하고 활발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수성주민광장>의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례입니다. 방송국은 작년 1월 정식 개국해서 지금은 매일 1시간씩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은 성별, 연령, 직업군이 다양한 지역주민 40명이 같이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좋은 프로그램은 성서공동체 라디오, 기독교 방송, 평화방송, 대구 MBC등에서 시민참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방송된다고 합니다.

    이영희 집행위원장은 라디오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다고 합니다. 라디오는 주민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지역에서 활동을 하다 보면 활동가인 ‘나’를 지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생각’을 지지하게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라디오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 개국 행사

    라디오에 “참여를 하게 되면 사람이 무조건 변한다. 대본을 써야 하는데 남편, 애들 얘기는 한 3번 하고 나면 할 게 없다.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뉴스를 보게 되더라. 그렇게 1년을 하면 사람이 확 달라진다.”는 게 이영희 집행위원장의 말입니다.

    인터넷 라디오를 얼마나 듣느냐는 질문에 이영희 집행위원장은 처음엔 안 듣지만 많은 자원활동가들을 오시게 하고, 게스트도 많이 부르면서 라디오 청취율도 굉장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1080 디제이’라는 코너는 누구든지 친구를 불러서 디제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 코너에 온 분들이 작년에만 108명이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라디오에 방송이 나가면서 청취율도 더 높아지고 방송에 대한 반응도 즉각 들어온다고 합니다.

    또, 대구 MBC 미디어센터에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민 MC를 뽑는데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방송을 만드는 주민들의 활력도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수성주민광장>이 벌이는 사업은 많습니다. 주민자치강좌, 13명의 주민들이 함께 하는 노래봉사단 활동에, 최근에는 청소년 북까페 <사차원>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의 원동력에 대해 이영희 집행위원장은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수성주민광장>에 오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 욕구만 가지고 오는데 그 욕구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인정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기 몸 담은 조직과 살고 있는 동네로 이어져 확장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관계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머릿 속으로는 다 알고 있지만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게 결국 이런 문제들입니다.

    ‘당과의 관계’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연재 위원장은 <수성주민광장>을 만든 것 자체가 당의 지역전략이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김성년 의원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구 시지동’ 지역은 신도시로서 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지역이었고, 그래서 주민광장의 각종 행사를 집중했다고 합니다.

    뭘 하든 3~4년 동안 의도적으로 시지동 지역에 활동을 집중했습니다. <수성주민광장>회원 중 시지동 주민들이 1/3라고 합니다. 김성년 의원의 당선에 <수성주민광장>이 한 몫 한 건 당연합니다.

    이연재 위원장은 “이제 시지지역은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고 다른 곳으로 공략지역을 옮겨가는 중이다. 수성구 전체보다는 더 밑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촌동 주민광장, 무슨 동 주민광장 하는 식으로.”라고 하셨습니다.

    더 밑으로 내려가자는 말은 많이 하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는 곳은 드문 현실에서 대구 당원들의 노력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영희 집행위원장의 쓴 소리 두 가지만 소개 합니다.

    “당원들이 생활정치나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당원들한테 뭐든 시작하면 동네 아저씨들, 남자들을 모을 수 있다고 제안했더니 내가 그까지 해야 되나? 그런 반응이더라.”

    “활동가가 중요한 거다. 활동가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활동가들이 충전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에서 기운을 충전할 수 있어야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동네아줌마, 아저씨들 만나는 게 거의 도 닦는 거랑 비슷하다. 당에서 활동가들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 활동가를 키우고 배양하는 것만이 당이 살 것이다.”

    진보정당이 토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 활동가들을 키우는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한 번도 활동가들이 ‘당에서 기운을 충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따끔합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입니다.

    -수성주민광장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이연재) “민주노동당 시절에 정당으로는 주민들에게 접근하기 힘들어 주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매개가 있어야겠다고 고민했다.

    처음에는 소모임 형태로 주변 사람들 중심으로 꾸려갔다. 회원 중 당원은 소수였다. 그 시절에는 대구에서 주민운동이 많이 없던 시기였는데 그때 시작한 거다. 이영희 집행위원장이 그 전에 대구 여성회 상근하다가 그만두고 우리 취지에 공감해서 집행책임자 역할을 해주었다.

    2007년도 2월에 논의를 시작해서 9개월 동안 발기인을 모집했다. 발기인은 60명 정도 됐다. 이제 5주년이 돼 간다. 발기인 대회 하기 전에 동네 어린이날 행사를 했는데, 수성구가 교육 중심지라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기가 높다.

    그래서 쉽게 주민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네 어린이날 행사를 했던 거다. 호응이 굉장히 높았다. 그 힘으로 창립대회 하고 소모임 만들고 해서 2007년 11월 창립했다.”

    어린이 벼룩시장의 모습

    (김성년) “2006년 지방선거에 이연재 위원장, 저 다 떨어지고 “앞으로 우야지? 니하고 내하고 둘이서 뭐 되겠나?” 그런 고민에서 당원 5-6명 하고 같이 논의를 시작했다.”

    (이영희) “당시에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전문가나 명망가 중심의 운동에 대한 한계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는 당원 정체성이 낮았는데 고민의 지점이 비슷하더라. 그때부터 생활정치를 주제로 당과 의기투합 하게 됐다. 그 당시 활동 당원은 다 남자였고 혼자 여자였다.”

    -돈은 어떻게 마련했나.

    (김성년) “이 공간이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구당 사무실이었다. 지금은 주민광장이 사업을 많이 해서 주민광장에 당이 얹혀 있는 느낌이다.”

    (이영희) “처음엔 운영비도 다 당에서 모아줬다.”

    (김성년) “당시 수성구에서는 주민운동단체가 최초여서 당 밖에서도 후원회원 가입이 많았다.”

    (이영희) “그리고 내가 대구 여성회 그만두고 실업급여로 1년을 살았었기 때문에 초기 1년은 인건비가 따로 필요 없었다.”

    -초기 후원회원은 얼마나 됐나.

    (이영희) “40명 정도가 초기 후원회원이었다. 반은 만원 후원하고 나머지 반은 동화모임 하면서 들어온 회원들인데 회비가 천 원이다. 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천 원 내는 분들이 있다. 처음부터 단가를 쎄게 했어야 했는데(웃음).

    좀 더 많은 주민들하고 같이 하겠다는 마음에서 회비를 아주 낮춰 받았던 건데, 처음 그래 놓으니 이걸 올리기 힘들다.

    사실 동네 아줌마들이 공익적 활동에 대한 감이 없다. 보통 문화센터처럼 여기더라. 그래서 돈에 대한 부담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서 1천원부터 시작했다. 잘못 생각했다. 돈이 없으니 아는 사람들 인맥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그때 홍세화 대표님도 강의 오셨는데 10만원을 드렸다. 참 죄송하다.”

    -어떤 프로그램 하셨나.

    (이영희) “아까도 얘기 나왔지만, 처음에 동네어린이날 행사 하면서 수성주민광장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동네축젠데 3-400명 왔다. 뭔가 되겠구나 싶더라. 자신감을 얻었다.

    그 행사로 200만원 빚을 졌는데도 불구하고 힘이 생겼다. 당 사람들이 빚 걱정하지 말라고, 알아서 하겠다고 해서 정말 든든했다.

    주민강좌 모습

    독서강좌도 했다. 서정오 선생님이 그 당시 지역을 다니시면서 아이들 동화읽기 강연을 많이 할 때라, 교통비만 3만원 드리고 강좌 사업을 했다. 현수막을 많이 걸었다. 엄마들이 한 20여명 왔더라. 또 성공한 거다.

    그때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동화읽는 모임을 7명이서 시작했다. 지금은 3기째다. 완전 동네아지매들이다. 자기들이 읽은 책의 작가가 오니깐 구청에서 하는 줄 알더라.

    그분들 회비를 1천원으로 하다가 1년 지나고 나니 물먹고 커피도 마셔야 하는데 회비가 너무 적다면서 자기들 스스로 5천원으로 올리더라. 동화모임이 첫 소모임이었던 건데 우리가 접근을 잘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발기인대회를 했다.”

    -계속 말씀해 달라.

    (이영희)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봉사단을 운영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인터넷방송국의 전신이다.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해서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거다.

    엄마들하고 더 어울릴 수 있는 좀 더 편한 봉사활동을 생각하다가 동화책을 읽는 엄마들이 있으니깐 그걸 토대로 낭독봉사단을 만든 거다.

    지금 있는 녹음실은 원래 방송국 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낭독봉사를 위한 녹음 공간으로 만들었던 거다. 원래는 딴 곳에서 일주일에 한번 씩 3-4개월 빌붙어서 녹음했었는데, 같이 하는 멤버들이 더부살이 눈치 보여서 안 되겠다고 해서 따로 만든 거다.

    녹음한 CD를 만원에 팔아서 200만원 재정을 마련해가지고 만들었다. 그 전에는 애 있는 3-40대 엄마들만 왔는데 봉사활동을 하니깐 50대 아줌마도 오더라. 마찬가지로 현수막 걸어서 모았다. 자체 교육도 하고 수료증도 줬다.

    근데 정부의 장애인정책이 바뀌면서 전문 아나운서 목소리로 녹음해서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나오니까 우리 같은 아마추어가 갖다 줄 데가 없어지더라. 한 2년 하다가 그만뒀다.”

    (이연재) “주민자치센터나 구청 같은 데서 문화강좌를 굉장히 많이 한다. 그 비슷한 걸 하면 안 된다. 거기가 시설도 훨씬 좋고 강연진도 좋기 때문에 상대가 안 된다. 그걸 깨달았다.”

    (이영희) “수성구는 돈 있는 집들이 많아서 우리가 프로그램 만들고 행사하고 할 때 어려움이 있다. 다른 곳하고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내용을 담되 적당한 포장이 필요하다. 낭독봉사단 같은 것 멋있지 않나.”

    (이연재) “지역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서관이 아주 많은 구에서 도서관운동을 하기는 힘들다.”

    (이영희) “수성구는 엄마들의 문화, 정보 수준이 높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된다. 주민활동의 중심은 주로 여성들인데, 당 활동은 남성 중심이라 좀 괴리가 있다. 그래서 좀 힘들었다.”

    -애초에 주민광장의 설립목표를 감안해서 프로그램을 기획 하셨을텐데, 처음부터 주로 만나려는 대상이 주부였나.

    (이영희) “그렇지 않았다. 주부라도 일하는 여성을 만나고 싶었다. 물론 아저씨도 만나고 싶었다. ”

    -그런 분들을 감안한 프로그램이 있었나.

    (이영희) “일하는 여성하고 아저씨들을 유치하려고 주민자치강좌를 열었는데 잘 안 오더라. 아저씨들은 좀 오긴 하는데 묶어서 조직하기가 힘들다. 일하는 엄마들은 올 시간이 없고. 잘 안되니깐 지치게 되고 하기 쉬운 주부 대상 프로그램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남성 당원들이 크게 발 벗고 안 나선다. 몇 년 동안 고민해 봤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는데, 밤 시간대를 책임져 줄 수 있는 남성당원동지들이 필요했었는데 그게 아직까지도 안 된다.”

    -2-30대 젊은 사람들 중에서 직장을 안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낮에도 올 수 있을텐데, 이들을 고려하진 않았나.

    (이영희) “따로 그런 사람들을 고려한 프로그램을 고민한 적은 없다.”

    (이연재) “사업하면서 연령이나 계층을 구분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역에 대한 고려는 있었다. 선제공략지역으로 시지동 지역을 잡았다. 어린이날 행사, 청소년 행사 등을 다 거기서 했다. 그래서 김성년 의원을 당선시켰다.

    이제 시지지역은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고 다른 곳으로 공략지역을 옮겨가는 중이다. 수성구 전체보다는 더 밑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만촌동 주민광장, 무슨 동 주민광장 하는 식으로. 근데 그렇게 하기엔 아직까지 역량이 한계가 있다.”

    (이영희)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고민은 늘 있었고, 있는 녹음실도 살릴 겸해서 인터넷 방송국을 생각하게 됐다. 성서공동체에서 도움을 받았다.

    현수막 걸어서 사람을 모았는데 처음엔 20명 정도 왔고, 오리엔테이션엔 12명이 왔다. 성별, 연령, 직업군이 참 다양하더라. 지금은 자원봉사자가 40여 명이다. 사람들이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데다 또 약간의 허영도 있어서 방송국이 그걸 담아내는 덴 제격이다. 자기 목소리가 대중들에게 나가는 거니깐.

    처음엔 성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제가 먼저 대본 쓰는 거 배워서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했다. 피디들이 재작년까지 6명이었는데, 이 분들이 일요일 빼고 요일마다 담당하면서 각 요일의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2년 정도 성서공동체방송국 한 코너에서 방송하다가 작년 1월 달에 정식 개국했다. 아름다운 재단 지원 받아서 방송서버, 홈페이지들을 갖추면서 인터넷으로 방송할 수 있는 시스템 갖추고 작년 1월에 정식 개국했다.

    좋은 프로그램은 퍼플릭엑세스로 성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나 기독교 방송, MBC 시민참여 프로그램에 내보낸다.”

    -어려움은 없었나

    (이영희) “동네 사람들이다 보니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다 같이 나가버린다. 한 동네 학부모로 만나니까 애들 싸움이 어른싸움이 되고 방송국 내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좀 정리가 됐다.

    핵심은 사람이다. 괜찮은 사람. 자기 욕구만 가지고 오는데 그 욕구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인정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기 몸담은 조직과 살고 있는 동네로 이어져 확장 되어야 한다.

    동네축제의 모습

    그러려면 끊임없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교육도 필요하고 끊임없이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나 혼자 담당하기에는 힘들다. 집단과 개개인별 특성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내 안에 아이디어도 있어야 한다. 집단적으로 싸움이 있을 때 어느 편을 들어야 하나도 고민이 되더라.

    하도 고민이 많이 들어 풀뿌리운동을 오래 하신 분에게 상담도 받았다. 그런데 상담해주신 분 말씀이 그게 보통의 과정이라고 하더라. 누구를 선택할거냐. 돈, 사람을 더 끌어올 수 있는 집단인가 아니면 함께 꾸준히 갈 수 있는 사람들인가.

    전자를 포기했다. 전자가 네트워크도 강하고 돈도 많이 끌어올 수 있는 집단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해야겠구나 했다. 그렇게 남아있는 사람들이 씨앗이 되어 또 이만큼 만들어왔다. 가늘고 길게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좋다.”

    -라디오 운영 하나가 웬만한 거점공간 하나 운영하는 수준이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우리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좋아하게 되는 게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라디오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나

    (이영희)“라디오로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주민을 만날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도구다. 참여를 하게 되면 사람이 무조건 변한다.

    대본을 써야 하는데 남편, 애들 얘기는 한 3번 하고 나면 할 게 없다. 그 때부터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뉴스를 보게 되더라. 그렇게 1년을 하면 사람이 확 달라진다. 한 사람은 7개월을 대본을 제가 써줬는데 그걸 7개월을 읽기만 했는데도 사람이 바뀌더라. 우리가 얼마나 강경하게 쓰나. 그걸 그냥 읽는 게 아니라 소화해서 읽어야 하니깐 몇 번을 읽어서 외울 정도까지 돼서 방송을 한다. 이러니 변할 수밖에 없다.

    토요일은 애들이 하는데, 애들도 대본 쓰고 한다. 종합교육이다. 동네에서 편성표를 가지고 정기적으로 방송을 하는 건 우리 밖에 없을 거다. 나중엔 성서처럼 소출력 라디오를 하고 싶은 게 꿈이다.”

    -근데 많이 듣나.

    (이영희)“처음에는 안 듣는다. 그래서 자원활동가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럼 이 자원활동가들이 자기 지인, 친인척에게 듣게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하루에 1시간 방송하는데 24시간하는 게 꿈이다. 자원활동가가 게스트를 많이 부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거리 인터뷰를 받아서 했는데 잘 못했다.

    김성년 의원하고 제가 직접 나가서 인터뷰하고 리포팅하려고 했는데 아마추어가 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생각해 낸 게 게스트다. ‘1080 디제이’라는 코너를 두고 누구든지 친구를 불러서 노래소개하게 했다. 1080 디제이로 왔던 게 작년에만 108명이었다. 때론 가서 신청곡을 받아오라고도 했는데, 멘트를 따고 신청곡을 받아오는 식이다. 그러면 혼자 안 듣고 주변 지인을 듣게 한다.

    공중파 등에 참여하는 것도 청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성서공동체 라디오에 한번 나가면 피드백이 되더라. 방송은 반응이 즉각적이다. 그 반응 때문에 디제이들이 열심히 한다. 평화방송 한번 나가고 TV에도 나가니까 더 열심히 한다.

    MBC 미디어센터에서 시민참여 프로그램 만들어서 시민 MC를 뽑는데 훈련된 사람 아니면 안 된다. 성서랑 우리 밖에 없다. 그런데 성서는 나름 공중파라 결국은 우리 밖에 없다.

    그래서 2명이 발탁되어 6개월 정도 시민엠씨를 한다. 좀 더 잘하면 나도 나갈 수 있다 그런 맘이 생기니깐 다들 열심히 한다. MBC 노동조합의 도움이 있었다.”

    -MBC노조 얘기가 나와서 묻는 건데, 지역시민사회단체나 노조 등과는 어떤 관계인가.

    (김성년) “공공노조에서 행사 후원을 받았다. 처음 어린이날 행사 때는 사회보험노조, 공무원노조, 전교조를 다 뚫어서 공동주최 했었다. 지금은 재정 후원만 한다.”

    (이연재) “노조도 요새는 지역사회 밀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니까 앞으로는 일이 잘 되지 싶다.”

    -서울의 경우에는 노조랑 같이 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 된다. 근데 전반적인 문제의식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모범사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인터넷 방송에도 노조 관련 분이 오셔서 맡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이영희) “경제코너를 만들고 싶은데 좀 유연해야 한다. 근데 겁먹더라. 적임자가 없다.”

    (김성년) “전교조에게 <사차원>할 때 같이 하고 싶었는데 역량이 안 되더라. 후원만 하는 정도다.”

    (이연재) “행사할 때 후원을 하지만 아주 정기적이고 길게 가는 프로그램은 없다. 경산병원노조 파업 때 노래봉사단이 가서 가곡을 불러서 연대했다.”

    (이영희) “아줌마들이, 갔다 오고 난 다음엔 파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더라. 경영주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라고 어떻게 노동자들한테 그럴 수 있냐고. 근데 그 다음에 또 가자고 하니까 겁난다고, 맘이 편치않다고 안 갈라고 하더라. 암튼, 노조 분들도 가곡을 들으니깐 새로워 하는 것 같았다.”

    (이연재) “그거 하면서 주민운동과 계급운동의 결합이라고 말했었다. 그런 게 지속적이면 좋을 것 같다. 자꾸 생겨야 한다.”

    -노래봉사단은 몇 명이나 되나.

    (이영희) “13명이다. 연습은 여기서 한다.”

    (이연재) “7-8년 있으면서 건물주와 관계가 좋다. 여기서 노래연습도 가능할 정도로.”

    -동네 시민사회단체하고 관계는 어떤가.

    (이영희) “<곰네들>이라고 환경생태교육을 하는 생태교육공동체가 있다. <물레책방 (헌책방)>, <생협> 그리고 <참여연대 수성구 주민회> 같은 데가 있다. 우리가 생기고 난 다음에 이런 시민단체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3-4년 전부터 어린이날 행사를 같이 주최했다. 관계는 좋긴 한데, 지역 내에서 정기적 네트워크를 만들고자 할 때는 행사가 매개되지 않으면 어렵더라.

    사실 생협 빼고는 형편이 다들 안 된다. 우리랑 생협 빼고는 상근자가 없다. 청소년 북까페 <사차원> 만들 때도 지역단체랑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 단체 형편 때문에 결국 우리 단체만 하게 됐다.”

    (이연재) “대구의 다른 지역에 비해 수성구가 동네 단체가 거의 없는 편이다.”

    주민과 함께 한 경주달빛기행

    -당과는 어떤 관계인가. 선거에도 도움이 되나.

    (김성년) “이연재 위원장 선거엔 도움이 안 됐다. 제 선거엔 도움이 된다. 동네 작은 선거엔 도움이 확실히 된다. 그리고 이연재 대표는 그냥 대표로만 있었고 나는 방송국 동네 한 바퀴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같이 했다.

    그래서 선거 앞두고 시지주민상담소 열어서 개소식 하는데 방송 같이 했던 아줌마들이 많이 오셨었다. 그때 오신 분들이 3부류였는데 당/동네주민/주민광장 방송 같이 하며 어울렸던 분들이었다.”

    (이영희) “상담소 개소식 할 때 방송국 했던 분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선거사무소 개소식 할 때도 많이 오셨다.

    지방선거는 도움이 된다. 총선에는 전국적 바람에 휩싸이니깐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유세차가 지나가면 ‘우야노’ 하면서 애틋하게 생각하더라. 회원들이 걱정해 주는 마음은 있다.”

    -당원들이 광장에 자주 오나. 당과 주민광장이 서로 잘 스며들어야 할 텐데 어떤가.

    (김성년) “초기에 준비위 때는 남성당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근데 주민광장이 동네주부 중심으로 운영되니까 참여가 많이 떨어지더라.”

    (이영희) “당원들이 생활정치나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 당원들한테 뭐든 시작하면 동네 아저씨들, 남자들을 모을 수 있다고 제안했더니 내가 그까지 해야 되나? 그런 반응이더라.

    대구시당 공동체활동가 모임을 하는 데 참여하는 활동가들이 자기 단체에 있는 당원들도 그렇다며 안타까워한다. 남성당원들은 생활밀착형이 안 된다. 인식이 많이 떨어지고, 다들 당 일도 바쁘고 다른 일로도 힘들어서 그런 것까지 감당하기 힘든 것도 있고.

    그런데, 정치활동을 폭넓게 봤으면 좋겠다. 선수로 나가거나 선수를 당선시키는 것만 생각하지, 토대가 되는 시민의 정치인식을 높여야 하는 것은 생각 않는다. 정치를 협소하게 생각한단 생각이 든다. 남자들의 속성상 큰 그림만 보면서 거기서 자기 존재를 인지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사고의 전환이 진짜 필요하다.”

    -당협은 이 공간을 어떻게 이용하나.

    (김성년) “당원모임할 때 이용한다. 만남의 장소다.”

    (이영희) “참여하는 성별이 너무 다르고 올 수 있는 시간대도 너무 다르다. 그걸 접목하려니 뭘로 해야 할지…… 다 일회성이고 연계가 잘 안 된다. 여성 당원 일부는 주민광장 활동을 하지만 우리 당원들은 일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 쉽지 않다.”

    -여기서 하는 활동들이 당협 운영위에 보고되나.

    (김성년) “예전에는 보고됐는데, 지금은 운영위가 잘 안 열린다.”

    -당원이 몇 명인가.

    (김성년) “100명이다.”

    -동네에 있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묶어내는 프로그램이 있었나. 노동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접근한 거라든가.

    (김성년) “그런 건 없었다.”

    그런 걸하면 당원들 눈이 좀 빛나지 않을까 싶다. 기타 다른 지역개입전략 같은 게 혹시 있으면 얘기해달라.

    (이연재) “앞서도 좀 얘기했었지만 그 동안 주민광장 행사 등을 시지지역에 전략적으로 집중했다. 김성년 당선 전략과도 연관되어 있어서, 그 동네서 주로 놀았다. 이제 시지는 자립적으로 알아서 잘 할 단계가 됐으니 다음 지방선거는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거다. 만촌동 지역으로 집중할 생각이다.”

    (김성년) “처음 주민광장 만들 때 이름과 사무실 위치로 격론을 벌였다. 시지가 신도시여서 전략지역이었다. 당지지율이 높았고. 이름은 수성으로 하고 3년 동안 시지에서 다 했다. 시지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가져오자 했다. 그걸 각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생각이다.”

    (이영희) “현수막을 시지 쪽으로 많이 부착했다. 3-4년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 우리 회원 중 시지 주민들이 1/3다. 어디서 어떻게 활동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더라.”

    마을 재활용장터의 모습

    -의정활동과의 연계는 어떤가.

    (이영희) “라디오에서 김성년의 의정일기를 좀 하다가 중단했다. 재미없어서. 취재도 나가고 다른 의원들도 데리고 와서 하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근데 너무 바쁘더라.”

    (이연재) “지역 정계에서 수성주민광장 때문에 우리가 과대평가된 게 있다. <사차원> 공간마련하기 위해 시지 예식장에서 후원호프를 하는데, 젊은 주민들이 많이 왔다. 다른 의원들이나 공무원들이 와보더니 동원력이 대단하다더라.”

    (김성년) “회원들이 자원봉사 했는데,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 다 여기 와 있네.” 그러더라.”

    (이영희) “회기 때 방청가자고 해서 문자 보냈더니 2명이 왔다. 그 두 명은 갔다 오고 난 다음에 반응 좋았다. “우리 동네가 이렇게 굴러가는지 몰랐다.” 저소득층 한끼 2천원 지원에 흥분하더라. 그런 식으로 배우고 김성년 의원도 힘주고 그렇게 방청 활동을 조직하고 하면 좋은데 혼자라 여력이 안 된다.”

    -성서공동체라디오에서 장애인 부모들이 방송했던 걸 책도 내고 CD 구워 나눠주고, 그런 활동 통해 의회에 압력도 행사하고 그랬다고 들었다. 이런 류의 활동은 어떤가.

    (이영희) “그건 계속 고민하고 있다. 운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잘 연결하고 싶은데 아직은 모르겠다.”

    -사실 의원이 되고 나면 되게 바쁘더라. 의원의 활동을 대중들을 만나고 조직화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고민이다. 모범사례는 많지 않더라.

    (이영희) “중앙당에서 의원들과 워크샵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지방자치위원회가 꼭 있었으면 싶다.”

    -근데 참여예산제 참여는 하지 않나. 그게 좋은 통로가 될 수도 있는데.

    (이영희) “조례만 있다. 참여예산위원은 없고, 동별 위원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주민자치위원들 의견 간단하게 동별로 취합하는 정도다. 형식적이다.”

    -청소년 북까페 <사차원> 얘기를 좀 하자. 언제 만들었나.

    (이영희) “올해 2월에 만들었는데 논의는 2년 했다. 청소년인문학강좌 했던 엄마들이 청소년쉼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시작했다.

    작년에 대구시 주민자치사업 900만원 지원 받고, 7-8군데 견학 다녀오고 동네 욕구조사도 했다. 근데 학부모랑 아이들 반응이 다르더라. 학부모는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고 아이들은 춤추고 노는 곳을 원했다.

    <사차원>을 같이 만든 준비위원이 지금 6명인데 이 분들도 생각이 다 다르다. 정치문제에 대한 입장이 같은데도 교육은 입장이 다르더라. 생각이 너무 달라서 논쟁도 많이 하고 공부도 같이 많이 했다. 저와 우리 당원들은 급진적인데 거기서 생각을 다 밝히기는 힘들다.”

    -상근자가 있나.

    (이영희) “6명이 로테이션해서 일주일에 하루씩 담당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하루에 5명이 온다. 전부 30명이다. 오전은 아줌마가 오고, 오후에는 대학생이 온다. 수성구자원봉사센터를 통해 공지를 내서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확인증을 발급해준다. 이걸로 봉사통장을 만드는데 봉사자를 모집하기 위한 좋은 꺼리가 되기도 한다.”

    -청소년들이 많이 오나.

    (이영희) “평일엔 한명도 안 온다. 현실적으로 애들이 올 수 없다. 토요일, 일요일은 자리도 몇 개 되지 않고, 회전율이 낮다. 기다리다가 그냥 간다.

    그래서 평일에 저소득층 청소년 멘토링을 시작했다. 대학생들이 학습지도도 하고 멘토도 하고, 청곡복지관, 동사무소와 연계해서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다. 동아리 모임을 많이 만들 예정이다.

    청소년 장기자랑이 올해 3회째인데 여기서 모이는 아이들을 기획팀에 넣어서 준비시킬 예정이다. 공개모집도 하고 <사차원>을 후원하는 후원인단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도 연결시켜줘 기획팀을 꾸릴 생각이다.

    낮 시간은 학부모 강좌를 계속 할 예정이다. 얼마 전 시지에 학교폭력이 났을 때 점집에 대박이 났다. 그 일 이후로 엄마들 대상으로 일진회만 담당했던 전교조 해직교사가 특강을 했었다. 한 3-40명 참여했다.

    그렇게 그 시기 적당한 강좌를 매월 특강 형식으로 한다. 지난달은 이계삼 선생님이 하셨다. 근데 아직은 좌충우돌이다. 애들이 우리를 너무 싫어한다. 영상미디어 교실 하는데 엄마들이 있는 걸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강사들이 엄마들 오지마라해서 못 가고 있다.”

    – 당에 바라는 게 있나.

    (이영희) “활동가가 중요한 거다. 활동가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활동가들이 충전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당에서 기운을 충전할 수 있어야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동네아줌마, 아저씨들 만나는 게 거의 도 닦는 거랑 비슷하다. 당에서 활동가들에게 힘을 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줘야 한다. 활동가를 키우고 배양하는 것만이 당이 살 것이다. 이런 순회 활동이 반가웠다. 처음 어린이날 행사에서 빚을 책임져주는 당원들이 너무 든든해서 시작했다. 그런 든든함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