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신당 둘러싼 착각과 5가지 오해
    [기고] 나의 당, 도도한 고양이인가? 배고픈 승냥이인가?
        2012년 08월 30일 10: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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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의 설왕설래가 많다. 하긴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에서 대선 진보후보가 등장한 이래 이만큼 진보진영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던 적이 있었을까. 언제나 필요한 건 돈 아니면 사람이었을 뿐, 목표가 있다면 그를 위해 달려가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달라도 엄청 다르다. 통합진보당의 파산, 진보신당의 주변화, 민주노총의 우경화, 현장의 피로 등, 현재의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 무엇이냐 따질 필요는 없다.

    국민참여계를 진보진영에 우겨넣고 통합진보당 사태로 스스로 무덤을 판 자,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거기에 대해선 더 언급하지 않겠다.

    오판에 기여하는 진보신당에 대한 몇 가지 착각과 오해

    지난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대선운동 제안 이후 회견문부터 민주노총에 대한 입장까지 논쟁이 많지만 본질은 난해한 회견문에 있지도, 관료화된 조직운동에도 있지 않다.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대선운동 제안 기자회견(사진=진보신당)

    문제는 진보신당이 이 시국을 끌어나갈 마땅한 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며, 누군가와의 합작을 통해야만 가능한 프로젝트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그럼 점에서 나는 지난 기고 “진보신당의 사회연대 대선운동 제안, 도대체 누구와 함께 추진할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 진보신당이 세 가지 원칙 △’노동’ 중심의 독자후보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연립정부론 배제라는 기조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대선운동을 밀고나가기를 당부했다.

    혼란한 시기인 만큼 판단도 참으로 여러 가지다. 외부적 정세에 따라 갈대처럼 바뀌는 이들도, 언제나 외부 정세와는 무관하게 밀어붙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그중에도 명확한 오판에 기여하는 진보신당에 대한 몇 가지 착각과 오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착각과 오해1. 1만 6천 당원이면 우리가 못할 건 없다?

    1만 6천, 5천만 대한민국 인구 중 우리는 어디서 이런 소중한 존재들을 만날 수 있을까. 특히 작년 명망가들이 떠나고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진보신당에 남아준 고마운 당원들이다.

    최근 모 언론사에서 조사한 정당별 정치적 입장 조사에 따르면 그 동일성이 가장 높은 집단으로 진보신당이 꼽혔다.

    물론 그 입장이 ‘북한에 대한 입장’이라는 다소 쑥스러운 영역이지만 정치적 결속력이 타 정당에 비해 높은 편은 사실이다.

    “1만 6천 당원이 있는데 우리가 뭘 못하겠습니까?” 너무도 패기 넘치고 희망찬 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태풍이 몰아쳐도 꿋꿋이 우리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1만 6천명 당원 이들은 모두 활동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사는 더더욱 아니다. ‘당원’이란 이름으로 가슴 떨려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자랑스럽게 “진보신당”을 써넣는 사람들은 이제 소수다.

    당직자로서 일정 급여를 받지 않고도 당 활동가로서 생활을 바치는 이들도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동당 초기 당에 대한 헌신이 노후를 위한 투자라는 희망찬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들 중 일부는 탈당 절차가 귀찮아서이기도, 주변 관계 때문에 남아 있는 이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들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1만6천 당원의 힘으로 대선을 돌파하자는 주장은 ‘100미터 단거리도 뛰지 못하는 선수에게 마라톤을 뛰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착각과 오해2. 홍세화 대표는 ‘이름만 대표’다?

    홍세화 대표가 진보신당을 책임지겠다고 나섰을 때, 지식인 홍세화가 어떻게 당 대표직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기도 기대하기도 걱정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다수를 차지했던 전망 중 하나는 홍 대표가 소위 ‘바지사장’, ‘이름만 대표’로 머물 것이라는 일종의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심각한 오해다. 최고위원제가 아니라 대표-부대표 체제를 택하고 있는 진보신당의 규약상 부대표는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다.

    당대표는 ‘당무를 총괄하는 당의 최고책임자’이지만 부대표는 대표를 ‘보좌’하여 당무를 처리하고 대표의 궐위 시 대표의 권한을 대행할 뿐이다.

    그러니 당대표가 싫으면 일이 안 되는 것이요, 의지를 가지면 일은 되는 구조다. 사회연대 대선운동이 제안된 지 1주일이 넘었건만 진보신당 대표단이 누구를 어떻게 만나 일을 도모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볼 수가 없다.

    아마도 기자회견문에 절절히 녹아 있던 홍세화 대표의 생각,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에 있어서 ‘배제된 자’를 선택한 그 분의 판단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착각과 오해3. 진보신당엔 정파나 세력 구분이 명확치 않다?

    다만 당규 상 모든 중요한 결정은 전국위원회에 권한이 있는 바, 70여명의 전국위원이 중요한 당의 계획을 결정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진보신당-사회당의 합당 이후 과연 이들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었을까. 내 답은 ‘글쎄’다. 지난 6월 전국위원회에서 ‘9월 중순까지’ 재창당 시한을 결정한 표결에서 표찰을 들었던 전국위원 분포를 보면 뻔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더욱이 현재 대부분 광역시도당이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는 마치 어색하게 가족사진 앞에서 웃고 있는 한지붕 두가족처럼 보인다.

    사회당이 그토록 주장해왔던 ‘기본소득제’, 기본소득제에 대한 별다른 정치적 입장이 없는 나 같은 구 진보신당 당원이라 할지라도 ‘기본소득위원회’ 앞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녹색위원회, 문화예술위원회, 탈핵운동본부 등 당내 시기별, 영역별 각종 위원회 및 운동본부가 있었지만 기본소득위원회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부자증세위원회’, ‘정치관계법개정위원회’를 상상해 보자. 좀 이상하지 않은가? 당내 사업으로 추진하면 될 일을 위원회 방식을 띄우고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것, 전형적인 구 사회당식의 활동방식이다.

    착각과 오해4. 진보신당은 그래도 다른 좌파들보단 살림이 좀 낫다?

    1만 6천명에 달하는 당원, 그 중 당비를 꼬박꼬박 내는 당원들은 9천 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 또한 등록취소라는 상황 앞에서 탈당의사 여부를 묻는 다소 ‘묶어두기’ 같은 방법으로 유지된 숫자다.

    당직자 숫자를 반으로 줄이고 급여도 절반으로 줄었다는 소식 앞에서, 홍세화 대표의 한 달 활동비로 지급된 금액이 고작 18만 여 원이라는 트위터 맨션 앞에서 진보신당의 재정이 얼마나 빠듯하고 누추하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더욱이 그 상황에서 총선을 치렀으니 그로 인한 빚도 만만치 않으리라. 선관위에서 모아 보내준 진보신당의 한 장짜리 공보물을 받아들고 김순자 후보와 홍세화 대표의 손맞잡은 사진에 감동하면서도 한참을 눈시울을 붉혔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비례대표 후보들의 사진을 보며 이 후보등록을 위해 아마 한 명당 1천5백만 원인가 기탁금을 내야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치며 더욱 안타까웠다.

    총선의 사례만 보더라도 진보신당은 그 허울 좋은 ‘당’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스스로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탈 여의도’라는 당사 이전의 명분 앞에 그저 ‘돈이 없어서가 이유겠지’라는 당원의 짐작은 당연하지 않은가.

    착각과 오해5. 진보신당 당원들은 신당권파라면 학을 뗀다?

    진보신당 내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등 당을 떠난 명망가에 대한 감정적 거부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지고 소위 ‘신당권파’가 행보를 시작했을 때 “진보신당과 신당권파가 만나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은 당 외부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총선을 경유하며 실물로 느낀 당의 왜소함, 그 왜소함으로 인한 좌절, 1.13%라는 수치 앞에서 차츰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활동가들이 늘어났다는 점은 명확한 것 같다.

    그것만은 피할 줄 알았던 당의 등록취소 앞에서 소수자로서의 처절한 슬픔은 그나마 당이 기본체력을 갖춰야 한다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이들을 늘어나게 했다.

    물론 여전히 감정적으로 그들을 못 받아들이는 당원들도, 선거연대 등 정치적 입장으로 인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원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할 점은 이들이 마치 과거 독자-통합 논쟁처럼 파국적으로 논쟁을 이끌 경우 그 후과가 얼마나 클 것인가의 문제다.

    사회연대 대선운동, 만만치 않은 거대한 절차

    이미 2008년 진보신당이 창당되던 시절부터 복수 진보정당의 시대는 열려 있었다. 아니 2000년 청년진보당이 창당되고 뒤이어 민주노동당이 창당했으니 이미 진보정당운동은 복수의 진보정당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의 움직임, 노동계의 움직임, 그리고 진보신당까지 더 많은 복수의 세력들이 움틀움틀 대선을 앞두고 재편을 준비 중인 상황이다. 애초 진보신당은 복수진보정당 시대의 그나마 가장 오래된 작은 정당일 뿐이다.

    그러나 진보신당은 그 힘이 미약하여 전체 상황을 리드할 조건이 못된다. 진보신당은 더 이상 이번 대선에서 변수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사회연대 대선운동을 위해 자당의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진보신당에게 갈 길이 멀다. 이미 당내 경선으로 후보를 뽑는 새누리당이나 민주당도 대선후보 선출을 마무리했거나 마무리 중이다.

    당이 아닌 여러 집단이 모여 경선인단을 모으고 후보를 선출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이견과 논쟁, 그리고 절차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진보신당, 도도한 고양이인가 배고픈 승냥이인가

    통합진보당의 파산이라는 잿더미 위에서 민주노총은 논쟁 중이며, 신당권파는 초기의 패기와 다르게 갈수록 내부 온도가 제각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키는 진보신당에게 있지 않다. 열쇠가 없는 난쟁이가 키를 가진 덩치 큰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다. 덩치 큰 이의 어깨에 올라타거나 깨끗이 무리한 꿈을 포기하거나.

    하지만 열쇠도 없고 재산도 없는 진보신당은 여전히 도도하다. 사료를 챙겨주는 이가 있으면 모를까, 도도하게 앉아만 있는 고양이는 쥐를 잡을 수 없다.

    배부른 사자는 배고픈 승냥이를 이길 수 없단 말도 있지 않은가. 진보신당은 진정 자신이 배고픈 승냥이인지 도도한 고양이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배고픈 승냥이의 자세로 이 난국을 돌파해야 나중에 쥐 잡는 고양이라도 될 수 있다는 점, 진심으로 지도부께 당부 드린다.

     

    필자소개
    진보신당 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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