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경제통합이 극우세력 부른다?
        2008년 10월 06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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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8일 오스트리아에서 치러진 총선 결과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모두 ‘극우정당의 약진’을 제목으로 뽑고 있다. 현상적으로 볼 때는 물론 그렇다. 그러나 한국 언론들이 보도하는 태도는 수박 겉핥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스트리아 총선결과와 한국언론 보도

       
      ▲ 지난 28일 오스트리아 총선 결과가 발표된 후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자유당 당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기뻐하고 있다
     

    경향신문의 기사를 인용해보자. “… 잠정 개표결과 좌파인 집권 사민당은 전체 유효투표의 29.7%로 1당을 유지했다. 지난 7월까지 사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던 보수 우파 인민당이 25.6%로 뒤를 이었다.

    이들 양당의 득표율은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로 지난 2006년 총선에서는 양당이 각각 35.3%와 34.3%를 얻었다. 녹색당도 9.8%로 득표율이 급감했다.

    반면 극우 정당인 자유당은 18.01%로 지난 총선 때 11%보다 득표율이 크게 올랐다. ‘오스트리아 미래를 위한 동맹’도 지난 총선 4.1%의 2배가 넘는 10.98%를 차지했다. 부재자 투표를 포함한 최종 개표결과는 다음달 6일 공식 발표될 예정이지만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1999년 총선에서 극우파 하이더가 이끄는 자유당이 26%의 지지를 얻어 연정파트너로 집권당이 되는 바람에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아름다운 음악의 도시 빈으로 유명한 이 나라에서 극우파가 집권당이 되었다는 사실, 20세기 최대의 광인 히틀러를 낳은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21세기 유럽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광인이 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유럽을 엄습했다. 그런 탓에 유명한 음악가들이 오스트리아를 떠나겠다고 공언했었다.

    다행히도 하이더는 제 2의 히틀러가 되지 못했고, 자유당은 99년에 얻었던 26%의 득표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유럽은 나치 부활의 악몽이 끝난 줄 알았는데, 하이더는 이제 ‘오스트리아 미래를 위한 동맹’이라는 새로운 극우파 정당을 창당해서 다시 정치판에 들어왔다. 하이더는 재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 언론들이 공포(?)를 느끼는 건 아닐까?

    하이더의 두번째 극우정당 창당

    그러나 언론에서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렇다면 왜 유럽은 외국인들에 대한 반감이 있나? 더 정확히 말해서 인종적으로 볼 때 백인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유럽사회에서 외국인에 대한 반감은 왜 나타나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답하지 못한다면 외국인에 대한 공포는 그저 나치의 망령이 부활한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현재 유럽 정치에서는 외국인, 이슬람, 범죄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좌파들은 그 이유로 유럽 경제의 통합과 테러와의 전쟁, 불경기 등을 든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나라들이 줄줄이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유럽은 냉전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동유럽에서 값싼 노동력이 대거 들어 왔고, 이들은 청소부, 식당잡부, 건설 노동자 같이 보통 말하는 3D업종에서 기존의 백인 노동자들을 대체했다.

    특히 대도시에 외국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면서 대도시는 더 이상 백인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한 세대 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언어와 관습을 가진 사람들이 비교적 싸고 허름한 도시의 빈곤지역에 모여 살면서 과거엔 없었던 갈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토박이들은 이제 자신들이 동네에서 소수로 전락한 것을 발견하고,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11 테러사건은 아랍인에 대한 불신과 테러에 대한 공포를 낳게 되었고, 60~70년대 유입된 터키, 모로코, 알제리 등의 이민자들과 그 2세들은 사회의 공적으로 취급되는 처지가 되었다.

    본토박이 백인들이 외국인들에게 느끼는 반감이나 공포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60년대 유럽의 호황기에 외국인이 유입되었다가, 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 이후의 경제불황이 엄습하면서 네덜란드에서도 80년대 초부터 외국인에 대한 반감과 폭력행위가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벽두에 외국인에 대한 반감이 반외국인 정당에 대한 투표로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본토박이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60~70년대의 호황과 낮은 실업, 잘 짜여진 복지제도를 그리워하고 있다.

    당시에 미래는 밝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딜 가나 인력 감축 얘기만 나오고, 복지 예산은 줄어들고, 치안은 불안하고, 범죄는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이민을 막고 오스트리아를 다시 본토박이 백인들끼리 어울려 사는 좋은 시절로 돌려 놓자는 우파 정당들의 주장은 당연히 잘 먹히게 되어 있다.

    누가 유럽을 후퇴시켰나

    상황이 악화된 것은 맞다. 그러나 거기에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정치인들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제인들이다. 그들은 유럽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었고,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해주었다. 노동시장을 개방하여 값싼 노동력을 유치했고, 비용이 낮은 동유럽으로 공장을 옮겨서 생산직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또 한편에선 기업을 유치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명목으로 기업에게 세금 우대를 해주고, 그로 인해 부족해진 세금은 교육, 의료 등 복지제도 예산 삭감으로 대처했다.

    유럽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중이다. 그러나 경제적 통합에 비해서 사회적 통합은 거의 되지 않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2005년에 유럽헌법에 대해서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국민투표로 반대했고, 올해는 헌법에서 협정으로 낮춰서 제출된 안도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에 의해서 부결되었다.

    냉전의 종식 이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꿈꾸며 유럽연합 품에 안긴 동유럽 나라들에게는 유럽연합이 매력적일지 모르지만, 유럽통합이 진전되면서 복지제도의 후퇴를 피부로 느껴온 서유럽 시민들에게 유럽연합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유럽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미국 연방과 같이 중앙정부를 갖는 유럽연합으로 가느냐 아니면 각 나라의 고유한 사회를 유지하면서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공조하는 느슨한 연합으로 가느냐를 놓고 좌우파를 막론하고 의견은 가지가지다.

    가장 힘이 센 중도우파들(기독민주계와 자유주의계)들은 기업의 이익에 민감하므로 유럽의 강력한 경제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극우파는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국가의 독립을 강조하면서 경제통합에도 반대하고 있다.

    반대로 중도좌파(사회민주주의계)들은 유럽의 경제통합을 지지하면서 문제점으로 드러난 사회적 통합을 보충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서 사회민주당들의 우경화에 비판적인 좌파들과 극좌파들은 유럽통합은 유럽 대자본의 구상이므로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 사회적 통합에는 찬성하는 입장이다.

    여기서 사회적 통합이란 각 나라의 시민권, 인권, 노동권, 사회권 같은 부분을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고, 환경, 지역안보, 국제 사안 등에서 협력을 강화하여 유럽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2002년 이태리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파리, 런던, 아테네, 올해 스웨덴 말모에서 개최하고 있는 유럽사회포럼은 풀뿌리 사회단체들이 유럽의 사회통합을 추진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유럽은 어떻게 갈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거칠 것 없었던 유럽통합은 경제적 통합의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그 동안 힘을 쓰지 못했던 좌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물론 동시에 대자본의 성장에 손해보고 있는 중간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본토박이 노동자들의 피해의식에 가장 쉬운 답을 주고 있는 민족주의 우파정당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오스트리아에는 민족주의 우파가 먼저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장차 사민당 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정당의 등장도 기대해 볼만하다. 특히 이웃나라 독일의 좌파당이 성장하고 있는 마당이므로 사민당의 우경화에 등을 돌린 좌파 성향의 대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좌파의 성장은 가능하다.

    최종 선거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 오스트리아는 다시 중도 성향의 사민당과 인민당이 연정을 하게 될 것이다. 강력한 민족주의 우파 야당이 정치의제를 이끌어가는 속에서 사민당이 제대로 색깔을 이어갈지 아니면 쇠퇴하고 새로운 좌파 정당이 나올 수도 있다. 

    좌파가 살아남으려면 변화된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회상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좌파가 유럽 대자본에게 휘둘리지 않고, 새로운 사회연대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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