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드보이들 귀환과 앵무새 보도 부활
        2008년 10월 02일 11: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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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대내외적으로 비판받아 온 프로그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은 존폐를 진지하게 검토 하겠습니다”

    “KBS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어디보다 강한 조직으로 바꾸어 가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뼈를 깎는 고통 분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8월 27일 KBS 이병순 사장이 취임식에서 남긴 말이다. 첫 출근 때부터 이 사장은 프로그램 및 조직 개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혀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동안 KBS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국회 문광위에 출석한 이병순 KBS 사장 (사진=미디어오늘 이치열)
     

    우선 그동안의 기록을 정리해보면,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지 1주일이 지난 9월 3일, ‘사원행동 전국총회’에서 사측과 정부가 KBS의 보도, 시사 프로그램에 개입하려는 조짐들이 KBS 구성원들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했다.

    비판 프로그램 초토화

    당시 사원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청와대가 ‘대통령과의 대화’ 장미란 선수를 출연시키고, 질문패널로 촛불진압 전경을 나오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KBS 젊은 기자 170명이 벌인 ‘관제사장 거부’ 집회 취재테이프가 데스크의 승인이 계속 나지 않아 방송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 날인 9월 4일에도 사원행동 특보를 통해, “’뉴스 9′ 리포트가 중요하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시사투나잇을 정리해야 된다’고 한 권혁부 KBS 이사의 발언이 폭로되기도 했다.

    또 지난달 25일 최종을 KBS 편성본부장과 만난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의 방침은 ‘시사투나잇’ 폐지 쪽이다. 편성본부의 안이 폐지로 모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회장은 “‘미디어포커스’도 명칭을 ‘언론비평’(가제)으로 바꾸고 방송시간을 금요일밤 11시 반으로 변경하자는 ‘1차 개편안’을 PD협회 측에 통보했다”며 “‘시사기획 쌈’을 보다 연성화 시키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며 권력비판 프로에 대한 사측의 개편의지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병순 사장의 첫 출근을 저지하고 있는 KBS 사원행동 직원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와 함께 사측은 지난달 17일 밤 ‘조직 개편’을 명목으로 그동안 ‘관제사장 거부투쟁’을 벌여온 KBS 사원행동 소속 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복 인사’도 단행했다. 

    대대적인 보복인사

    대표적으로 사원행동 양승동 공동대표는 TV제작본부 스페셜팀에서 심의실로, 이강택 PD는 같은 부서에서 인적자원센터 연수팀으로, KBS 노조위원장 출신 현상윤 PD도 TV제작본부 환경정보팀에서 시청자센터로 발령이 났다.

    특히 ‘보도본부 탐사보도팀’의 경우 팀장부터 기자까지 팀원의 절반이상을 다른 부서로 이동시키는 등 사실상의 해체 수준의 인사가 단행되었다. 당시 부산방송총국으로 자리를 이동했던 김용진 전 탐사보도 팀장은 지난 달 26일 다시 울산방송총국으로 전보조치 되기도 했다.

    이것도 모자라 KBS 감사팀은 지난달 24일~26일, 사원행동에 참여한 기자․아나운서․PD․행정직 사원 20여명에게 감사실로 와서 감사받을 것을 통보한 상태다.

       
      ▲이병순 사장 출근을 저지하지 못한 사원행동 소속 직원이 소리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김현석 KBS 사원행동 대변인은 이같은 일련의 상황에 대해 “보도, 시사프로그램에서 심층성 있고 ‘이슈파이팅’이 강한 아이템들이 줄고 있다”며 “이 사장 취임 이후 기자들과 제작 PD들이 상처를 받고 의기소침해진 것 같고, 이런 영향 때문인지 ‘보도의 힘’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로 단행된 부사장 및 팀장 인사는 진취적이고 전문성을 우선하기보다는 ‘올드 보이’들의 귀환이었다”며 “이런 권위적인 인사가 향후 제작의 자율성을 해칠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올드 보이’들의 귀환

    김 협회장은 이어 “또 보복성 평직원 인사가 있은 뒤, 회사 내에서 ‘찍히면 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원들이 많아졌다”며 “한편으로 이에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축되고 내심 걱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필기 KBS 기자협회장 “얼마 전까지 ‘시사시획 쌈’ 제작을 맡았는데, ‘쌈’의 경우 예전에는 시의성보다 몇 달 가까이 취재를 하고 품질을 담보하는 아이템을 중시했는데, 이 사장 취임 이후부터는 시의성을 맞춰달라는 요구들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민 협회장은 이어 “‘미디어포커스’도 이제는 진보매체들에 대한 비판도 같이 해달라는 요구가 들어온다”며 “이와 함께 KBS란 조직의 분위기가 예전에는 ‘자유방임형’이었다면, 이제는 전반적으로 딱딱해 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원행동 전국총회’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이 사장 취임 이후인 지난 9월 초부터 방영된 ‘KBS 뉴스’를 모니터링 해온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송지혜 모니터부장은 “이병순 사장 취임이후부터 KBS 뉴스에 심층 분석보다는 단순전달 기사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정부의 정책을 보도하는 기사는 대부분이 단순전달 기사였다”고 말했다.

    KBS뉴스, 정부 주장 그대로 옮겨

    이어 이 부장은 “그동안 KBS가 외부 시민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오던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의 고민으로 만들어진 게 ‘탐사보도팀’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인사과정에서 탐사보도팀이 사실상 해체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보도프로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지난 2006년부터 올해 8월까지 KBS 시청자위원으로 활동한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최저임금 문제나 중소기업 문제 등 ‘민생 문제’를 다룬 뉴스를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며 “정부가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무비판적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 대변인은 “예전에 정연주 사장 때도 KBS 뉴스가 노동계의 기대를 충족하는 보도를 해온 것은 아니지만, 이병순 사장이 취임한 이후부터는 분석보다는 정부 측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뉴스가 많아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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