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정부 국민전선은 필연적 귀결이다
        2008년 10월 01일 1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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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역사는 말한다. 세계경제공황이 종종 파쇼와 전쟁, 제3세계 식민지 종속국의 혁명을 야기하는 환경을 조성했음을. 지금 이명박 정권이 위기에 놓인 내외 독점자본의 충견 노릇을 자임함으로써 서서히 파시즘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약속 파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진보개혁세력이 현명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실제 이 땅에 파쇼와 전쟁 위기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오늘의 ‘반이명박 범국민연대’ 준비는 이 같은 엄혹한 정세와 맞닿아 있다.

    촛불정국 이후의 진로를 모색해오던 진보개혁진영이 마침내 새로운 범국민연대 기구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10월 초 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10월 25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08 촛불민주주의 페스티발’에 맞춰 준비위원회로 전환될 계획이다.

    또 11월~12월 전국노동자대회, 99%의 서민대회, 농민대회, 빈민대회 등 다양한 대중투쟁과 온오프라인의 소통구조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더욱 확대해 반이명박 범국민연대 본 조직을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연대조직은 광우병국민대책위원회와 같은 사안별 연대 기구의 한계를 넘어 친미 친재벌 정권의 1% 특권 정책과 공안탄압에 맞서는 총괄적 범국민연대체의 성격을 갖는다.

    반정부 국민전선은 필연적 귀결

    지난 촛불항쟁에서 유감없이 보여줬던 대중의 자주성과 창발성, 역동성과 의식성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 공세를 저지하고 민주주의와 민생, 사회공공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민중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정치조직들과 각계 인사들이 함께 하는 반정부 국민전선인 셈이다.

    행정, 입법, 지방 권력에 이제 언론까지 독차지하고 신자유주의 파산 선고 이후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이에 저항하는 노동, 진보, 시민, 통일 단체의 인사들과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까지 구속, 수배하는 이명박 정권하에서는 어쩌면 필연적 귀결이며 운동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이에 08년 촛불항쟁의 조직적 성과인 ‘(가칭)민주주의와 민생, 공공성 실현을 위한 새로운 연대 기구’의 성격과 임무, 그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87년 이후 이 땅에서 민중항쟁 수준의 대규모 대중정치투쟁을 이끌었던 주요 범국민운동체들과의 비교를 통해 ‘반이명박정권 범국민연대체’ 건설의 올바른 원칙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그리고 이명박 정권 하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한층 더 생활상의 고통과 좌절을 겪게 될 서민대중의 희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진보정치의 혁신과 연대연합, 범국민연대체와의 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87년 이후 범국민운동체 사례

    여기에서는 87년 이후 전국적 전민중적 차원의 대규모 대중정치투쟁을 이끌었던 주요 범국민운동만을 다룬다.

    ‘미완의 혁명’이라 불리는 87년 6월 항쟁 당시의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 90~91년 노태우정권 시절의 ‘민자당 일당 독재 분쇄와 민중생존권 쟁취 국민연합’, ‘고 강경대군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 96년 말~97년 초 김영삼 정권의 무릎을 꿇린 전국총파업투쟁시의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그것이다.

    87년 6월 항쟁과 ‘국본’

    87년 6월 항쟁 당시의 경제상황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이라는 이른바 3저 호황 국면이었다. 86~88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무려 12~13%에 달하고 무역수지도 86년 46억 달러, 87년 99억 달러, 88년 142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전의 외채 위기도 일정하게 해소돼 자본 측은 유래 없이 이윤율을 높여 자본축적의 호기로 삼았다.

    그럼에도 권위주의 정권의 무단통치와 이에 편승한 전근대적 노사관계로 인해 노동자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경제상황은 6월 항쟁에 광범한 중간층의 지지를 가능케 하는 한편, 6월 항쟁으로 확대된 정치적 공간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및 근조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요구가 높아져 7~9월 노동자대투쟁이 폭발적으로 전개되며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양적으로 성장하게 된 객관적 조건이 된다.

    위대한 ‘미완의 혁명들’ 

    87년 6월 항쟁은, 80년대 초중반 정통성을 상실한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운동을 바탕으로 그 해 1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인한 “고문철폐! 독재타도!”의 함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4.13호헌조치를 계기로 “호헌철폐! 독재타도!”로 전환되고, 6월에 “민주쟁취! 독재타도!”로 발전했다. 6월 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은 5월 27일 민통련, 통일민주당, 기독교, 가톨릭이 주축으로 정치권, 재야, 학생, 노동자, 여성, 종교계, 학계 등 광범한 민주화세력이 참여해 출범했다.

    노태우가 민정당의 차기 후계자로 선정되는 전당대회 날 개최된 6.10대회에서 구속자 석방, 직선제 수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이 나올 때까지 전국 각 지역에서 국민들의 시위로 들끓었다. 여기에는 투쟁의 주력이었던 청년학생들뿐만 아니라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 시장 상인들, 택시 기사들까지 동참했다. 약 20일의 항쟁기간 전국 각지에서 연인원 5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6월 항쟁은 우리 국민의 위대한 민주화운동이었으나, ‘미완의 혁명’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던 주체적 이념적 한계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민중이 항쟁의 중심주체가 되지 못했고, 둘째, 정치적 구심이 민중의 요구에 불철저한 통일민주당이었으며, 셋째, 이념과 노선이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만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적 민주화까지 요구하지 못했고 반독재투쟁을 반미반독재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91년 5월 투쟁과 ‘대책회의’

    90~91년 공안탄압과 분신정국 때는 89년 경제성장률이 6.8%로 둔화되고 경상수지도 90년 21억 달러, 91년 87억 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91년 서울의 전세 값이 한 달 사이 14.5%나 오르는 등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3%에 달했다. 국제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재벌들이 3저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을 연구개발 보다 증권, 부동산, 부실기업 인수에 낭비해 경제체질을 더욱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3저 호황 이후의 이런 경제침체 상황은 노태우 정권이 3당 야합에 의한 거대 정치의 힘을 바탕으로 노동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이에 맞서 싸우던 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하며, 5월 성대생 김귀정이 백골단에 밟혀 죽고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 91년 5월 투쟁의 배경을 이룬다.

    91년 5월 투쟁은, 90년부터 전개되어온 민자당 일당 독재 저지, 민중생존권 쟁취, 공안탄압 분쇄 투쟁이 폭력경찰에 의해 학생, 노동자가 맞아죽고 이에 항거해 10명의 학생 등이 연이어 분신하면서 전국적 전민중적 투쟁으로 발전한 것이다.

    전민련, 전노협, 전농, 전빈련, 전대협, 전교조 등 이른바 6전이 이미 90년 출범시킨 ‘민자당 일당 독재 분쇄와 민중생존권 쟁취 국민연합’을 주축으로 55개 단체와 평민당까지 합세한 ‘고 강경대군 폭력살인 규탄과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가 4월 27일 결성되어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하였다.

    5월 4일 전국 23개 지역에서 16만 명, 9일 87개 지역에서 30만 명, 14일 15개 지역에서 30만 명, 18일 81개 지역에서 40만 명이 모이는 등 87년 6월 항쟁 기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91년 5월 투쟁과 이를 이끈 ‘대책회의’도 몇 가지 본질적 한계를 드러냈다. 6월 항쟁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들이 조직적으로 참여해 완강하게 투쟁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91년 5월 투쟁은 중간층이 급속히 이탈하고 상당수의 구속 수배자를 양산한 채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리게됐다.

    그 이유는 첫째, 노태우 퇴진, 공안탄압 분쇄 구호 이외에 구체적인 요구와 투쟁목표가 제시되지 않았고, 둘째, 동구사회주의권의 와해로 사상적 혼란이 야기되고 정치세력화 방침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이 심해 진보민중운동이 사상의지적 조직적 단결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셋째, 보수대연합 정국에서 정치적 공간이 협소한데다가 진보정치세력이 구축되지 않아 평민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고, 넷째, 정원식 밀가루 사건과 같은 좌경맹동주의를 사전에 제어하지 못하고 소위 유서대필 조작과 왜곡선전에 말려들었기 때문이다.

    96년 말~97년 초 노동법 총파업과 ‘범대위’

    96년 말~97년 초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전국총파업투쟁 당시의 경제상황은 어떠했는가. 물가는 연평균 5% 이상을 기록했고, 경상수지도 94년 45억 달러, 95년 89억 달러, 96년에는 사상 최대인 237억 달러 적자였다.

    92년 439억 달러이던 외채도 96년 1,045억 달러, 97년 1,208억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인당 GNP는 95년 10,037 달러에서 97년 9,511 달러로 감소했다. 30대 재벌의 부채 비율이 96년 말 386.5%에서 97년 말 518.9%로 치솟았다.

    그런데도 김영삼 정권은 허장성세(虛張聲勢)하며 96년 12월 OECD에 가입하면서 선진국 수준의 전면 시장개방의 부담을 떠안았다. 이러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의 경제구조 속에서 간접고용을 양산하고 있는 근로자파견법을 안기법과 함께 날치기 통과하려다 민주노총의 강력한 총파업과 각계각층의 규탄투쟁에 봉착한 것이다.

    96년 말~97년 초 전국총파업을 중심으로 한 범국민적 투쟁은, 총파업투쟁 주체인 조합원 대중에 대한 교육토론과 선전의 강화, 95년 민주노총 창립 이후 지속적인 사회개혁투쟁을 통한 국민적 지지의 확대,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통한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의 사회적 쟁점화, 강력한 민간대기업노조를 앞세우고 지하철, 병원 등 공공부문 노조를 탄력적으로 배치하는 총파업 전술운용 등이 종합된 결과다.

    노동법 개정 총파업의 성과와 한계

    여기에 신한국당이 정부안보다 더 개악된 안을 새벽 기습 처리함으로써 노동자와 일반국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투쟁의 파고를 높여 놓았다. 고문수사로 악명 높은 안기부에 수사권을 돌려준다는 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는 보다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연 인원 약 200만 명이 참여한 23일간의 4단계 전면 총파업과 전국 동시다발집회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전국연합,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까지 망라된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철회와 즉각 재개정을 위한 범국민대책위’(범대위)가 함께 했다.

    한국노총도 총파업에 돌입했으며 1월 26일에는 양대 노총이 여의도 둔치에서 약 15만 명이 참가하는 공동 집회를 개최했다. 그리하여 결국 김영삼 정권은 1월 말 종교지도자와의 만남과 영수회담을 거쳐 국민에게 사과하고, 2월에 임시국회를 열어 3월 10일 노동법, 안기부법을 다시 개정했다.

    극히 부분적인 재개정이었지만 명실 공히 6·25전쟁 이후 첫 정치총파업을 통해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이 투쟁은, 첫째, 노동법, 안기부법과 관련한 법제도 개선투쟁이라는 제한적 성격을 가지고, 둘째,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담아낼 진보정당이 미비했으며, 셋째, 각계각층이 노동자총파업을 지지, 지원했으나 전민중적 공동투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한계가 지적된다.

    87년 이후 주요 범국민운동 사례 비교

     
    87년 6월 항쟁
    91년 5월 투쟁
    96년말 총파업투쟁
    08년 촛불항쟁
    정권성격
    전두환군사독재정권
    노태우군사독재정권
    김영삼 문민정권
    이명박 민간재벌정권
    정치구도
    민정당/통민당
    민자당/평민당
    신한국당/민주당
    한나라당/민주당
    경제상황
    3저호황
    경제불황
    경제침체
    경제침체
    요구/구호

    민주쟁취!

    독재타도!

    노태우퇴진!

    공안탄압 분쇄!

    날치기 철회!

    즉각 재개정!

    MB심판!

    쇠고기재협상!
    조직명칭
    ‘국본’
    ‘대책회의’
    ‘범대위’
    ‘국민대책회의’
    주요단체
    민통련
    국민연합/전민련
    전국연합/민주노총
    진보연대/참여연대
    노동자
    선진노동자들
    전노협 참여
    민주노총 주도
    민주노총 참여
    참여정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정당 불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투쟁형태
    가두 집회시위
    가두 집회시위
    총파업, 집회행진
    촛불문화제, 평화행진

    반 이명박 범국민연대체 건설의 원칙

    우선 촛불항쟁 이후의 정세를 간략히 살펴보자. 미국은 7,000억 달러(약 770조원)의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시장의 숨통을 틔웠으나, 손실 계산과 가격 산정도 불가능한 파생상품의 부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재정적자, 물가, 달러가치는 어떻게 될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 의회가 부결시켰으나, 관측통들은 일부 내용이 수정돼 재통과 가능성이 높은 상황으로 예상하고 있다-편집자)

    이러한 대외경제 여건의 악화 속에서 주가, 환율, 외환수급 등 한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으며 유가, 식량 등 원자재가 인상, 부동산 버블의 붕괴 조짐 등 위기상황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가상승과 내수 위축, 자산 가격 조정, 공공요금 인상, 집값 전세값 불안, 실질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으로 서민층만이 아니라 중간층의 생활고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소득세 등 재벌과 고소득자를 위한 감세를 추진하고 자본시장통합법을 예정대로 시행하며 금융 공기업, 교통 물류부문을 사유화하고 주택 건설경기를 부양시키며 사교육시장, 민간의료보험시장을 확대하는 등의 이미 약효가 떨어진 신자유주의정책에 목을 매고 있다.

    또 민주노총, 광우병국민대책위, 한국진보연대의 지도부를 구속, 수배하고 환경운동연합까지 압수수색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활동가 4명을 구속하고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것으로 볼 때, 향후 진보운동에 조직사건 조작이 빈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회 허용 기준을 강화하고 집시법 위반 시민단체의 정부보조금까지 환수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YTN 사장 낙하산, MBC PD수첩 보복수사, KBS이사회 장악과 사장 강제해임에 이어 언론기본법, 방송통신법을 개악할 예정이다. 인터넷 포털을 언론에 포함시켜 규제를 강화하고 신문과 방송의 겸영 제한 규정을 완화해 조중동 중심의 거대 미디어재벌을 탄생시킬 작정이다.

    인터넷 공간의 언로를 봉쇄하기 위해 사이트 폐쇄 권한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부여하는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도 제출했다.

    범국민연대체 구성, 원칙과 경험

    이러한 정치경제적 상황은, 위기의식을 조장해 대중을 움츠려들게 하는 반면, 진보개혁진영의 대응 여하에 따라 기층민중은 물론 중간층까지 견인해 ‘반이명박 범국민연대’의 지평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91년 보수대연합에 의한 민자당 일당 독재와 민중생존권 파탄, 공안탄압과 유사한 상황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으로 ‘반이명박 범국민연대체’를 건설할 것인가? 여기에서 새삼 노동계급의 주도성이나 기층민중의 중심성, 독자성과 연대성의 조화, 하층연대를 기본으로 상층연대의 결합 등 연대연합의 원리를 들먹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87년 ‘국본’과 91년 ‘대책회의’와 96년 말 ‘범대위’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배우고 08년 촛불항쟁의 교훈을 십분 살리는 방향에서 몇 가지 ‘반이명박 범국민연대체’ 건설의 원칙에 대해 논의해보자.

    첫째, 서민희망 찾기의 원칙이다. 역사적 사례가 증언하는 바, 위기 전야의 경제상황과 보수대연합의 정치구도에서는 승리에 대한 희망 없이 대중이 쉽게 투쟁에 동참하지 않는다.

    진보민중진영이 앞장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공세와 친미 친재벌 정책이 촉진시킬 제2, 제3의 촛불항쟁을 통해 반드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민생과 사회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으며, 그 투쟁의 성과를 토대로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투쟁하는 민중이 승리할 수 있다는 뚜렷한 전망을 공유하기 위해 신념 있게 활동해야 한다.

    둘째, 기층민중 중심의 원칙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민중이 반이명박 범국민운동의 중심주체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혁신과 단결의 관점으로 노조, 농민회, 노점상연합회 등의 현장 조직력과 투쟁력을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하지만, 87년에 7~9월 노동자대투쟁이 먼저 전개되었더라면 6월 항쟁의 양상이 어떠했을까. 이제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중심으로 범국민적 투쟁을 전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자주적 민주노조라면 날치기 노동법 총파업 때처럼 조합원 교육, 토론, 선전을 강화해 투쟁주체를 튼튼히 하고, 비정규직문제를 포함한 전민중적 의제를 앞장서 대변함으로써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축적하고 확대해야 한다.

    정당, 참관 자격 결합도 가능

    셋째, 전선 최대 확장의 원칙이다.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단체와 인사들이 범국민연대체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동존이(求同存異), 과거불문(過去不問)의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진보민중단체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종교단체와 각계 원로들을 최대한 망라해 보수대연합 구도에 따른 협소한 정치공간을 타개하고 이를 확장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엄호 지지 전선이 없이는 민중의 변혁적 진출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범국민연대체의 폭을 넓히는데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된다면, 정당들은 참관 자격으로 결합해도 정치적 구심 역할을 수행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넷째, 대안정치 실현의 원칙이다. 87년 6월 항쟁, 91년 5월 투쟁, 96년 말 총파업 시기 범국민운동의 치명적인 약점은, 대안 정치세력으로서의 진보정당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회주의적인 보수야당에게 투쟁의 성과를 내맡긴 것이다.

    지금은 진보정당이 있으나 분열, 분당과 각개약진, 인물과 정책과 조직의 취약으로 대중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정치의 혁신과 연대연합을 목적의식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진보 개혁적 국민층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대안의 정치세력을 가시화해야 한다. 이는 고통 받는 서민대중에게 희망을 주고 정치적 구심을 확고히 세워 반이명박 범국민운동을 활성화하는 지름길이다.

    정치적 구심 확고하게 세워야

    다섯째, 과학적인 전략전술지도와 대중의 자발성, 창의성의 결합의 원칙이다. 올 5~6월 촛불항쟁은 네티즌을 포함한 대중의 자발성과 창의성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대중의 자생적 움직임만으로는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공세 앞에서 범국민운동을 완강하고 끈질기게 벌여나갈 수가 없다. 범국민연대체 지도부의 과학적인 전략전술지도가 결합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 반이명박 범국민운동의 전략적 지향은 반미 반이명박 투쟁으로의 발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당위적인 주장이 아니라 광우병 쇠고기, 한미FTA, 미국 발 금융위기의 한국 서민경제 침탈, 공기업 민영화, 사교육시장, 민간의료보험시장 등 거의 모든 쟁점현안에서 미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또 전술 운용에서는 대중의 자발성과 창의성, 역동성과 의식성에 기초하되, 91년 5월 투쟁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한 ‘정원식 사건’ 같은 자충수가 재연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며 – 진보정치 연대연합의 필요성

    민주노동당은 지난 총선에서 기사회생하고 촛불정국에서 지지율을 약간 끌어올렸으나 이후 4~8%대 하향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분열, 분당을 거치면서 지식인사회의 비판과 냉소가 해소되지 않아 개혁성향의 언론조차 민주노동당을 무대접, 푸대접하는 상황이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언론 노출빈도가 현저히 줄어 민주노동당이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정책역량 강화나 전문가 영입의 어려움도 마찬가지 이유다. 당면 쟁점현안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진보 개혁적 국민 층은 물론이고 지역과 직장의 평당원과 지지자들조차 “민주노동당만으로 대안이 되겠나”라는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원 증가율, 당권자 비율, 당 활동 참여율이 떨어지는 건 이런 현상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희망이다. 고통 받는 서민대중을 가장 열렬히 사랑하는 당원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불철주야 원내외를 뛰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5명의 국회의원과 수십 명의 지방의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만이 희망이라는 자만은 버려야 한다. 힘과 실력으로 여타 진보정치세력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위험하다.

    민노당이 나서서 갈등 분열 완화시켜야

    각기 독자정치세력화를 표방하고 있는 진보정치세력 내부의 이러저러한 흐름들이 현장을 파고들어 뚜렷한 차별성도 없이 혼란을 가중시키자 노동자들은 아예 “다 꼴 보기 싫다”며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진보정치세력들이 이렇게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민주노동당이 나서서 진보정치세력의 갈등과 분열을 완화하고 현장의 노동자, 농민, 빈민을 정치의 자주적 주체로 힘 있게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명박 정권 하의 경제위기상황과 보수대연합 구도는 진보정치세력들에게 각개약진을 통한 경쟁구도의 고착화는 자멸행위로서 민중에게 절망을 주게 됨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촛불 민심에 부응해 기득권을 버린다는 각오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6.15선언을 찬성하는 정치조직, 민중ㆍ시민사회단체, 네티즌, 학계 등을 광범위하게 포괄하는 진보정치 연대연합에 나서야 한다.

    그 성과가 당장 가시화되지 않더라도 대안의 정치세력 구축을 위한 진정성 있는 진보정치 연대연합 노력 자체가 중요하다. 외세와 1% 특권층을 위한 이명박 정권의 공안탄압과 민생파탄에 좌절하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진보정치 연대연합을 추진하다가 성과도 없이 민주노동당의 구심력과 정체성만 훼손한다는 소아병적 우려를 떨쳐버려야 한다. 사람의 팔과 다리, 눈과 귀, 콧구멍이 왜 두 개씩인가. 민주노동당 혁신발전과 진보정치 연대연합의 두 가지 임무는 병행 추진할 수 있다. 또 그래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진보정치대연합을 통해 대안의 정치세력을 구축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일 때, 지역과 현장의 소극적 당원을 적극화할 수 있고 지지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줘 당원을 확대할 수도 있으며, 현장노동자들의 통일단결을 선도할 수 있고, 부족한 정책역량, 언론 문제도 풀릴 수 있다.

    또 그래야 별도의 독자정치세력화를 고집하는 집단에게 노동자, 민중들이 현혹되지 않고 “민주노동당과 통일 단결하라”고 촉구할 게 아닌가.

    당적과 소속을 불문하고 진보정치대연합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지역과 부문과 중앙에 대안의 정치세력 구축을 위한 진보정치 연대연합 추진모임을 구성하자! 진보진영의 각계 원로와 지도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진보정치대연합 관련 전국순회 강연회를 조직하자! 진보정치대연합 관련 공동토론, 공동실천을 전개해 상호 신뢰를 높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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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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