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득권층 교육개혁, 아이들 살해한다
        2008년 09월 29일 09:21 오전

    Print Friendly

    국가가 주도하는 일제고사 실시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10월 8일 수요일엔 초등학교 3학년 대상의 ‘국가수준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실시된다. 10월 14일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대상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진행된다.

    애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이와 관련한 EBS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어느 강북지역 초등학교의 아이들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무심코 보다 깜짝 놀랐다.

    “강남쪽 아이들이 (점수가) 잘 나오겠죠, 그래도. 저희는 강북이잖아요. 학원에 다녀야 되는데요, 학원에 다닐 돈이 별로 없잖아요.”

    이게 초등학생 입에서 나온 말이다. 아이가 벌써부터 돈과 성적이 비례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강북과 강남의 차이를 알고 있다. 학교는 다 같은 학교고, 학생은 다 같은 학생인 ‘아름다운 공동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사회서열의 냉혹함을 체득하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안 좋죠. 다른 지역 애들이 여기 안 올려고 할 거 아녜요. 좋은 학교에만 몰려가지 않아요?”

    일제고사와 그에 연동된 학교선택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안 오려고 하는 지역은 장차 어떻게 될까? 슬럼이 된다. 학교도 슬럼학교가 된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우리나라에도 미국식의 극단적인 지역양극화, 초중등 학교양극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식 슬럼학교가 온다

    어린 아이들조차 그것을 예감하는데 어른들은 꿈나라에 살고 있다. 일제고사에 찬성하는 시민단체나 학자들은 아이들 학업성취도를 평가해야 교육적 지도를 잘 할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시험 봐서 교육적 지도를 잘 할 수 있다면 시험지옥인 이 나라의 교육은 왜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시험과 아이들 자살과 아이들 건강과 사교육비가 정확히 연동된다는 걸 도대체 언제까지 그들에게 설명해줘야 하나? 대한민국은 시험이 교육을 갉아먹는 나라라는 걸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시험을 많이 강제해 경쟁을 조장할수록 이익을 보는 집단, 즉 사교육 실탄이 충분한 집단은 현실을 이해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오로지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해 1등부터 꼴찌까지 서열을 가려, 사교육비 없는 가난한 집 자식들을 배제하려는 욕망에만 눈이 먼 것으로 보인다. ‘이성’을 ‘탐욕’이 압도한 자리에서 백날 토론한들 결론이 날 리 만무하다.

    대한민국에 중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실시한 이가 토론 좋아하는 민주화 세력이 아닌 철혈통치의 박정희였다는 걸 상기하면, 교육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은 결국 ‘실력행사’가 아닌가 하는 자조마저 든다.

    범국민교육연대, 학벌없는사회, 평등교육 학부모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등은 일제고사 거부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일제고사 때까지 일인시위 등을 진행하고 당일날은 시험을 거부, 생태체험학습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일제고사, 기득권세력의 개혁프로그램

    물론 이렇게 소소한 행동으로 일제고사를 막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일제고사는 우연히 돌출된 것이 아니라 한국 기득권세력의 초중등 개혁 프로그램 중 일부이기 때문이다. 초중등 교육에서 ‘평준화와 공공성’을 지우고 시장화 자율경쟁체제로 개편한다는 기획이다. 일제고사로 서열을 매기는 것은 자유경쟁의 조건을 생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부만의 ‘이벤트’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움직여야 한다. 이명박 교육개혁은 일부 단체들이 아닌 국민 전체가 광장으로 나와 소리 높여 거부해야 막을 수 있다. 현재로선 그럴 전망이 안 보인다. 국민은 광장에서의 행동이 아닌 각자 사교육비 확보, 아이 학원 보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폭증한 사교육비가 그것을 방증한다. 아이를 시험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위에 인터뷰를 소개한 아이가 지적했듯이 일제고사는 사교육비를 매개로 한 학교 간 양극화, 지역 간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저 아이처럼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빈부격차를 알게 된다. 학교는 이래선 안 된다.

    학교는 섬과 같아야 한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섬. 부모가 누구든, 어느 집에 살든, 학교에 가면 다 똑같은 학생이어야 한다. 경쟁과 빈부에 의해 서열이 갈려나가는 건 사회에서 평생 겪을 일이다. 적어도 어린 시절만큼은 학교에서 냉혹한 사회와 다른 공동체, 우애, 우정 등을 경험하며 자라야 한다.

    교과서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 그렇게 따뜻한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 그 자체가 인성교육의 요체다. 시험 나온다고 성현의 말씀 아무리 달달 외워도 인성은 길러지지 않는다. 일제고사, 시험강화는 학교를 냉혹한 경주의 장으로 재편해 사이코패스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아이들 살해하는 교육

    돈 많은 집은 학교가 시험문제풀이만 시켜도 자기 자식에게 별도의 문화적 체험을 시켜줄 수 있다. 없는 집 자식들만 저열한 문제풀이 기계로 자라나게 된다. 일제고사로 초중등 서열이 갈리면 입시에서의 학교등급제가 반드시 제기될 것이다.

    그때 없는 집 자식들이 많은 학교는 열등 등급으로 낙인찍혀, 그 학생들은 결국 이른바 ‘지식기반사회’의 뒤안길인 저임금 단순노동 서비스직으로 자라날 것이다. 교육이 국민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