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민주주의로 갈 수 있을까?
        2008년 09월 26일 12: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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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주일 전에 동아시아 안보 및 외교 관련 대학원 수업하다가 한 노르웨이 학생과 나도 모르게 논쟁을 하게 됐습니다. 티베트 민족 운동에의 지원을 열성적으로 하는 그 학생은 제게 "중국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수준에 도달하면 민주로의 이행이 가능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경제 수준과 민주화

       
      ▲ 필자
     

    저는 "싱가포르의 사례를 봐도 경제적 수준과 민주화의 관계가 무조건적이거나 몰매개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외국 자본의 대대적인 투자 등으로 경제 수준이 압축적으로 향상돼도 내부적으로 중산계층과 노동운동의 ‘민주화를 향한 연합’이 형성되지 못하면 민주화가 불가능한데,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에서 그러한 연합이 만들어지지 않고 민주화는 소수 지식인의 꿈으로만 남았습니다.

    지금 중국의 중산계층을 보시지요. 노동 운동가들과 손잡아 민주화 투쟁을 할 것 같습니까? 세계 공황으로 경제성장이 멈추면 모를까 일단 지금으로서는 중국 민주화를 예견하기 불가합니다"라고 성의껏 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너무나 절망적이다 싶은 어조로 "오호, 그러면 전 민주화 안될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라고 또 물었습니다. 제가 좀 어처구니가 없어 "글쎄, 안 받아들이고 어찌 할 작정이신가요"라고 반문했지요.

    그 학생이 뚜렷한 답이 없어 논쟁이 그걸로 그치고 말았는데, 그 뒤로는 그 학생이 양계초의 개명전제론과 1980년대의 신권위주의 논쟁으로 리포트를 내기로 했습니다. 중국 지식인들의 ‘독재 사랑’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대만이 해냈는데, 왜 중국이 민주화를 못하느냐? 제가 노르웨이 학생들에게 받는 질문 중에서는 가장 전형적인 질문입니다. 당신 생각이 어떠냐고 학생들에게 반문하면 보통 다들 ‘경제 수준의 차이’나 ‘영토, 인구의 대소에 따르는 통치 방식의 차이’ 등등을 거론합니다.

    한국, 대만은 해냈는데 왜 중국은?

    물론 그러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는데, 그걸로만 다 설명이 되지 않지요. 지금 중국의 명목 1인당 총국민 생산은 약 3천 달러 수준이고, 구매력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면 약 5천5백 달러 수준이 됩니다. 그게 한국 1980년대 중반의 수준인데, 그 때는 한국에서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는 이미 무수한 젊은이들의 화두였습니다. 지금 중국 중산계층 젊은이들의 화두가 ‘중화의 굴기(융흥)’인 것처럼 말씀입니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세계 체제론적, 그리고 상부 구조 차원의 차이부터 이야기해야 할 듯합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한반도 남반부의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로의 미국의 군사적 보호령으로서의 편입을 의미했습니다.

    미국의 물리력 행사, 이승만 경찰의 학살, 친일적 관료의 재등용과 이병철 등 식민지 시대 어용 상인의 재벌로서의 재등장, 그리고 6-25라는 동족상잔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건국인지라 ‘민족적 명분’을 어디까지나 찾을 수 없었어요.

    미국 원조와 기지촌 매매춘이 최대의 외화수입원인 나라에서 그 무슨 거창한 민족 명분이 있겠어요? 명분이 그나마 있었다면 그게 ‘민주주의’이었지요. 북한이 사실상 일당 독재인데 우리에게 ‘재야’가 있다는 게 우리의 유일하다 싶은 자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렇다 할 만한 명분이 없었을 인공(人工)의 분단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정권 측으로서도 지식인 사회로서도 가장 중요한 정통성의 기준이 됐습니다.

    한국의 재야와 미국

    정권은 유신시대 파시즘으로 가도 재야를 아예 수용소를 다 보내지 못하여 일단 (대부분) 살려주어야 했던 것이고, 재야는 -그 무수한 파벌 사이의 온갖 내홍에도 불구하고- "독재 타도" 구호로 똘똘 뭉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미제를 미워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박정희의 파시즘적 드라이브를 억제시킨 세력, 그리고 김대중 등 재야 지도자를 살린 세력이 바로 미국이란 것도 사실이죠.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재야라는 균형추가 없다면 핵폭탄이나 만들려는 히틀러 숭배자를 말릴 하등의 견제 세력이 없을 것이라는 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재야가 살아남아 결국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친미적인 외교적 방향과 박정희주의적 권력 기구(군, 경찰 등)와의 ‘화해’ 등 각종 제약을 안고서 말씀입니다.

    중국이나 북한은 완전히 반대로의 길을 걸었죠. 그들이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와의 거리를 두면서 민족적 명분을 상당부분 내실있게 살릴 수 있었습니다.

    대만, 남한으로 안 가고 중공, 북한에 가기를 택한 많은 지식인들은 바로 그걸 보고 ‘대양형’이 아닌 ‘대륙형’의 국가를 택한 것이었지요. 민주 아닌 민족/인민으로 애당초 중심 개념을 잡은 만큼 반체제적 운동의 모습도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죠.

    1989년 천안문 사태 같으면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상당수 노동자, 학생들은 비교적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공산당 간부들의 화려한 생활, 즉 ‘인민적 평등의 원칙에 거스르는 지도자들의 특권’에 항의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모택동의 초상화를 들고 문화혁명을 이야기하면서 말씀입니다.

    중국 중산층 민주화 투쟁 안 나설 것 

    공산당 간부의 특권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최근 20년의 압축 성장으로 웬만큼 성공한 중산층은 자녀를 유학 보내거나 집, 자동차를 사는 등 그 특권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의 국제적 비중의 향상과 중산층 생활 수준의 향상 등 민족적/개인적 열망들이 공산당 독재 하에서 거의 다 충족돼 가는 상황에서는 중국 중산층이 민주화 투쟁을 이끌 확률이 매우 낮아요.

    단, 세계 공황으로 중국의 고성장이 멈추어버리고 여태까지 봉합돼온 모순들이 다 첨예화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민초들과 중산층이 공산당을 공동의 적으로 해서 연합을 조직해보려는 움직임을 보일지도 모르고, 그러한 연합이 조직되면 공산당도 초대 학살극을 연출하든지 협상하든지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 성장이 멈추면 여태까지 중국 시장에 편승하여 동반성장해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부터 박살날 것입니다.

    동반성장에서 동반혁명으로 갈 것인가요? 그건 아직도 동화처럼 들리는데 일단 모든 게 세계 공황의 심도에 달려 있습니다. 현금의 세계 공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전개되면 동아시아 국가들도 혁명과 파쇼화의 기로에 서게 되죠.

    물론 대한민국이 혁명보다 파쇼화될 확률이 더 높은 것도 볼보듯 뻔한 일이긴 하죠. 지금도 벌써 조금씩 – 초보적 단계에서 – 파쇼화돼 가는데, 그 과정이 가속화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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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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