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원단 vs 당 책임 논란 속 "모두 잘못"
        2008년 09월 26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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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4년의 돌풍과 감동. 정당득표율 13.1%와 국회의원 10명의 탄생.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고, 그들의 눈과 귀는 이 새로 출항한 ‘거대한 소수’ 정당으로 온통 쏠렸다. 불과 4년 후. 감동이야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가는 것이지만, 기대도 관심까지 이제 사라져간 듯하다.

    2007년 대선 참패, 분당, 총선 실패가 이어지면서 5석의 민주노동당과 원외 정당 진보신당은 ‘미래의 생존’을 위해 각각의 처지에서 분투 중이다. 지난 97년 국민승리 21의 대선으로부터 10여년, 그 동안 진보정치는 극적인 부침을 겪었다.

    진보신당이 ‘진보정당 10년 평가 연속토론회’ 자리를 마련한 것은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진보정치의 성찰과 반성이 얼마나 제대로 되어있느냐가 관건”(심상정 공동대표)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토론회 장면(사진=정상근 기자)
     

    25일 진보신당 중앙당사 회의실에서 5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첫 번째 토론회의 주제는 ‘제도정치 영역에서 진보정당의 의정활동’. 이날 토론회에는 심상정, 박김영희 공동대표를 비롯해 30여명의 발제자와 토론자, 그리고 참관한 일반 당원들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칼라TV>는 이번 토론회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의회전략과 의정활동 평가 부분에 대해 참석자들의 대부분은 매우 인색한 점수를 줬다. 어떤 경우는 거의 ‘성토의 장’이 되기도 했다.

    이날 토론자들은 민주노동당 17대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경험부족과 의석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우수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비판은 그 다음 단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당과 의원단 사이에 거리가 너무 멀었으며, 그 책임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어디를 강조하는가는 참석자들 사이에 시각이 엇갈렸다.  

    "의원 개개인은 열심히 잘 했지만"

    최초 발제자인 김용신 전 민주노동당 의정기획실장은 “‘거대한 소수전략’에 맞는 준비된 실행계획이 부재했고 전당적인 중장기 계획이 없어 ‘선택과 집중’이 어려웠다”고 평가했으며, 이런 결과에 대해 의원단과 당의 책임 문제가 부각됐다.  

    당 정책위에서 일한 바 있는 김정진 변호사는 17대 의원단을 ‘원로원’에 비유하며 강하게 비판했고, 조승수 전 의원과 신언직 전 보좌관(단병호 전 의원)은 “당내 상황이 의원들을 겉돌게 만든 것"이라며 당 쪽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의원단 책임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심재옥 전 서울시의원은 “당이 국회의원만 신경쓰고 지방 의원들은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당 활동 경력이 짧고 계급과 운동에 상징성이 있는 사람들로 의원단을 구성했던 것부터가 문제였으며 여기에 자주-국민파로 구성된 최고위원회가 좌파성향 인물의 본산이었던 정책위원회를 공격 하느라 이들의 ‘원로원화’에 관심이 없었다”며 의원단과 당 양쪽 모두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당의 유일한 자산이자 힘의 원천인 국회의원이 동원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현장에서는 얼굴도 보기 어렵게 돼버렸고 이들의 활동이 법안 발의와 국회기자실의 브리핑으로 한정되어 ‘거대한 소수전략’을 실행할 수 없었던 것”으로 평가했다.

       
      ▲1주제 ‘민주노동당의 입법 활동과 의정활동’ 좌측부터 조승수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김용신 전 민주노동당 의정기획실장, 신언직 전 단병호 의원실 보좌관
     

    조승수 전 의원과 신언직 전 보좌관은 “특정 정파가 당을 주무르는 상황에서 당내 책임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다”며 당내 패권주의에 원인을 제시했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의원단은 이를 적극 교정하는 책임 있는 역할을 못했고 오히려 방치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 심재옥 전 시의원은 “당의 국회 중심의 사고방식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사이를 가로 막았다”며 “국회의원은 지방의원에 무관심하고 지방의원은 국회의원에 소심했다”고 첨언했다.

    구식 사회주의 논리 vs 좌파의 기본 논리

    의정활동과 의원단 평가에 이어 지난 10년 동안의 진보정당 ‘선거 전략’ 평가 토론이 이어졌다. 이는 결국 보수양당 강세인 현실정치에서 진보정당이 어떤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다. 대표적으로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 개혁정당과의 관계와 민주노동당의 선거전략 등이 논의되었다. 

    의정활동 평가 부분에서 참석자 대부분이 성토하는 분위기였다면 선거 전략 평가 토론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이날 ‘유일하게’ 당 외곽 인사로 토론회에 참석한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의 한국 정치 현실에서 진보정당의 전략에 관련된 글이 논쟁 대상에 올랐다.

    고원 교수는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와 같이 이분법에 의존한 안티전략에 매몰되어 노선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지 못했고 부유세, 무상교육-무상의료와 같이 ‘구식 사회주의’의 낡은 이미지를 왜 금과옥조처럼 꼭 끌어안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유주의개혁세력과 지지율이 동반상승-하락하는 상황에서 이들과의 차별화에 집중하는 전략은 제 살 깎기가 될 수 있으며 유연한 연대 및 연합의 문제를 고민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분당과정도 정직하지 않게 보였다”며 “종북주의는 NL을 극복해 내지 못하는 리더십의 한계를 은폐하기 위한 우회로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종북주의를 꺼내자 보수언론들이 반색하면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가 분당을 하고 나니까 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2주제 ‘지난 10년, 진보정당의 선거운동에 대한 약평’ 좌측부터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교수, 이재영 <레디앙>기획위원, 강병익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원
     

    반면 이재영 <레디앙>기획위원은 “‘부자에게 과세를 서민에게 복지를’과 ‘무상교육-의료’는 구좌파논리가 아니라 좌파의 기본적인 논리”라고 반박했으며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지지율 동반상승-하락은 사실 열린우리당보다 한나라당과 동반하는 경우가 더 많았음으로 적절하지 않은 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고 교수는 “동반상승-하락은 거시적 흐름으로 범 진보진영의 확장기와 쇠락기에 대해 말한 것이며 무상의료-교육은 대중들이 그런 담론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이는가, 즉 담론의 효과까지 고민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운동권 특유의 허장성세

    한편 이재영 기획위원은 자신의 발제를 통해 “10년간 선거과정에서의 문제는 우선 운동권 특유의 ‘허장성세’로 과장된 전술을 재생산하고 사정을 모르는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에게 낭패감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선거전략과 공약을 결정해도 후보가 준수치 않았고, 계급투표 경향이 아주 느리게 확대되고 있으며, 농민은 축소되고, 도시의 소부르주아의 지지는 철회되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탈하였고, 지역구 활동이 대부분 ‘착한 일’에 머물고 있으며 인물도 없고 홍보도 안되고, 정치개혁엔 관심이 없고, 사회운동의 반정치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며 쉴새없이 비판했다. 

    그는 “현실적 목표와 일사불란한 강한 기율, 제2계층과의 관계개선과 지역에서의 진보정당 고유의 활동 주제와 방식 개발과 인물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익 성공회대 민주자료관 연구원은 “한국 선거제도는 소수정당의 무덤”이라며 “점진적인 선거제도 개혁은 불가능하지만 중단기적으로 보수세력 혹은 양당체제의 균열과 이합집산에 의해 변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구도가 없고 핵심-지지층을 고려하지 못하면 선거에 실패했고 2004년 같이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같은 틈새전략을 구사한 선거는 성공했다”며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정당들이 자기변혁의 과정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3주제 ‘민주노동당 의원단; 무엇이 문제였는가’ 좌측부터 심재옥 전 서울시의원, 김정진 전 민주노동당 법제실장, 이날 토론회 사회자였던 윤난실 전 광주광역시의원 
     

    그 밖에 김종철 진보정치 10년 평가위원은 지역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노무현 세력 부상 이후, 이들과의 차별화 전략을 취해야 하며 노회찬 심상정 등 유력 정치인들이 지역에서부터 여론을 형성해 수도권을 역 포위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소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언직 전 보좌관은 “빠른 시일 안에 평가를 끝내고 지금은 2010년 지방선거를 대응을 준비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재영 기획위원은 “지난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 문화는 운동권 권위주의와의 투쟁이었는데 2004년 이후 권위주의가 크게 드러났다”며 “남원 연수원에 가서 국회의원들끼리 상임위를 결정하고 보좌관과 회의할 때에도 중요한 문제가 생기면 ‘보좌관 나가 있으라’고 말하곤 했다”며 “이게 진짜 문제로 이렇게 계속 가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고 미래의 과거”라며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진보정치의 성찰과 반성이 얼마나 제대로 되어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연속토론회는 성찰과 함께 우리 책임의 몫을 분명히 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대표는 “ 때문에 평가위에 토론자, 발제자 절반이상을 당 밖에서 구분된 견해를 가진 분을 초청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었는데 오늘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의 구성이 좀 약한 것 같다”며 “가감 없는 허심탄회한 이번 토론회는 내년 제2창당 과정에서 진보신당 내부 아이덴티티의 기초가 될 것이고 새 진보운동 방향을 모색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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