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주의 논쟁과 맑스 계급론 부인에 대해
        2008년 09월 24일 04: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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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의 정책연구소 <미래상상>(약칭 상상연구소)이 출범하였다. 민주노조운동에서 출발한 민주노동당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극복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자임한 진보신당의 새 연구소이다. 독자적 공간도 없이 당사 한 구석에서 빈약한 재원과 인력으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은 힘들지만 동시에 상징적이다.

    폼 나게 시작해서 진보정치연구소의 아픈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막나가는 이명박 정부와 대결해야 하는 우리 진보운동의 막막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촛불 이후 막가파식 역주행

    촛불이 잦아들자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막가파식으로 보수회귀 역주행을 하고 있다. 각종 수법을 동원하여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온 천지에 낙하산부대를 대거 투입하여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였다. 도무지 비상식적인 감세안으로 1% 강부자들에게 돈벼락을 내려주더니 공공기관 민영화, 통폐합으로 우리사회의 공공성을 전면적으로 후퇴시키고 있다.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 추진 방안’, ‘농촌 뉴타운’, 각종 신도시 등 경부대운하식 토건국가 건설에 다시 매진하는 것도 지극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기륭전자, KTX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깔아뭉개는 것은 물론 여러 모로 힘든 노동자들의 삶, 서민생활 일반을 완전히 팽개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 운동은 촛불 이전보다 더 지리멸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정은 노동조합운동이든 사회운동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지도부 수배라는 협박 앞에 우왕좌왕하는지 도무지 존재감을 확인하기 힘들다. 또 제반 사회단체 시민단체들도 뚜렷한 대응방향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매는 민주노동당과 새로운 창당에 골몰하는 진보신당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다 보니 운동의 한쪽에서는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의 길로 가야한다는 주장이 보다 공개적으로 제기되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촛불 ‘운동’이 아니라 ‘대의제 정치’가 답이라는 일갈이 다시 나오고 있다. 요컨대 현재 ‘운동’의 여러 방침과 주요한 전략이 대체로 오류라는 문제제기이다.

    이해하기 힘든 맑스 계급론 부인

    사실 운동의 ‘주요한 전략’과 ‘여러 방침’이 있는 지도 의문인 상태이다. 백가쟁명의 시기처럼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좋은 시기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사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의 판단에 의하면 ‘민주노조운동’에서 ‘노동계급정당’으로 이어지는 영국식 계급정당 모델은 실패했다.

    그러니 독자 진보정당 노선을 포기하고 부르주아정당과 연합야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지한 문제제기라는 점을 받아들이더라도 역사적으로 그 가능성이 소진한 20세기 중반의 유럽사회 모델에 기대하는 모양새가 그다지 보기 좋지 않다. 이것이 필자만의 심정일까?

    마찬가지로 ‘촛불’에 기대어 ‘운동정치’ 일반의 함의와 가능성을 날카롭게 비판한 또 다른 견해에도 우려스러운 지점이 있다. 필자는 촛불의 가능성보다 그 한계에 주목한 점, 우리사회에서 운동정치의 일반적 한계를 지적한 점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점이 있다.

    특히 형식 민주주의와 실질 민주주의를 기계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발상이 문제라는 지적과 국가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것이 대의제 정당기구, 선거정치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맑스주의 노동이론이나 계급론 인식 자체를 부인하는 논지로 발전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대의제 정당기구는 그것이 터하고 있는 사회적 기반이 제대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면 사상누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그리고 ‘정당’도 ‘선거’도 ‘운동’의 일부라는 고정관념을 아직 떨치기 힘든 것이다. 이것도 필자의 20년 된 낡은 생각 때문일까? 어쨌든 더 진전된 연구와 논의, 그리고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상상연구소’는 ‘미래’를 ‘상상’하고 싶은 우리 진보세력의 지향을 표현하고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복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하므로 과거로부터 상상력의 자원은 흡수하되 과거를 벗어나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사민주의 경험은 물론, 현재의 ‘운동정치’를 넘어서는 제대로 된 ‘정치’의 가능성과 가치를 부인하지 않는다. 한나라의 집권을 현실로 용인할 수 있으며 그것이 현재 운동 상황에 안성맞춤인 쓴 약일 수 있다는 여유로운 생각을 갖고 한 걸음씩 나아갈 생각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같이 토론하고 비판하고 함께 현재를 넘어서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주간 진보신당 11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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