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시민 비정규노동자, 함께 손잡다
    By mywank
        2008년 09월 23일 10: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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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2차 행동의 날’인 23일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는 ‘일만선언, 일만행동’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광장에 모인 1,000여명의 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함께 손을 잡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일만선언, 일만행동’ 촛불문화제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촛불을 함께 밝히고 있는 한 시민과 노동자 (사진=손기영 기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 가게 문을 일찍 걸어 잠그고 나온 중년 남성, 학원강의를 마치고 바로 온 대학생…. 이날은 여느 집회 때와는 달리 깃발과 노동자들 사이에 앉아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편, 현장에서는 주최 측인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행동의 날 추진위원회’가 제작한 배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각종 홍보물에서 혼자 촛불을 들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 캐릭터가 이날은 촛불소녀와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다. 배지에 그려진 비정규직 노동자도 이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너무 힘들지만, 싸움 멈추지 않겠다

    행사의 첫 순서로 비정규직 문제를 담은 영상이 청계광장에서 상영되었다. 영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 장면이 나올 때마다,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짧은 탄성’을 새나왔다. 이어서 주요 비정규 장기투쟁장 조합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GM 대우 이대우 지부장은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머리를 자리고, 얼마나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얼마나 더 단식을 해야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해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랜드 일반노조의 한 조합원은 “지난 여름 촛불이 모아졌을 때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곳에 왔는데, 시민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이 났다”며 “하지만 이제 촛불을 든 많은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주셔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일만선언, 일만행동’ 현수막 아래서 촛불을 밝히고 있는 시민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집회에서는 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데 어울리는 행사도 진행되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기륭전자 분회 윤종희 조합원은 “단식을 하고 오랫동안 투쟁을 벌여왔지만, 안타깝게 아직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다”며 “하지만 뜨거웠던 ‘6월의 촛불’이 비정규직 문제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선언 동참자들의 수와 모금액을 기륭공대위 송경동 집행위원장이 발표했다. 송 집행위원장은 “성경에 다섯 개의 떡과 두 마리 생선으로 수많은 사람의 배를 채웠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온다”며 “부족하지만 오늘 우리는 십시일반의 정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이날 저녁까지 10,550명의 시민들과 각계인사들이 ‘일만행동, 일만선언’에 동참했으며, 3,1270,000 만원이 모금되었다. 주최 측은 23일 <한겨레>, <경향신문>에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전면광고를 하고 남은 1천 만원을 이날 비정규 사업장에 전달했다.

    밤 8시 45분경. 아직 집회가 끝나지 않았지만, 광장 앞을 차벽으로 둘러싸고 있던 경찰은 해산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서를 진행했다. 이들은 ‘사과 함께 나눠먹기’, ‘비정규 문제 알리는 인간 조각상 만들기’ 등을 하며 즐겁게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다졌다.

    한편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백은희 (56)씨는 “예전에 촛불문화제를 할 때, 노조원들이 많이 참여해서 큰 힘이 되었다”며 “그냥 그런 고마운 마음으로 오늘 집회에 나왔고, 시민들과 노조원들이 함께 이명박 정부와 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대학생인 최영은 씨(22)는 “비정규 투쟁은 ‘나의 권리 찾기’ 운동”이라며 “요즘 정규직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졸업을 하고 제 의사와 관계 없이 비정규직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 씨는 “오늘 한번 ‘일회성 선언’을 하러 모인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이 철폐되는 날까지 이런 자리가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비정규직 투쟁은 나의 권리 운동"

    회사원인 김태경 씨(36)는 “정규직이었다가 1년 전에 계약직이 되었다”며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말이면 마음이 편치 않고, 아내와 아이들을 보기 미안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의 고용구조는 정말 야만적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자영업을 하는 남귀영 씨(52)는 “그동안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보수진영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건들지 못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 같다”며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호응해야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날 ‘일만선언, 일만행동’ 촛불문화제는 시민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낭독한 ‘만인 선언문’ 발표를 끝으로 밤 9시경에 마무리 되었으며, 경찰과의 충돌은 발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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