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후 직장생활, 투쟁보다 더 괴로워"
    2008년 09월 24일 10: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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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게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2007년 12월 26일이라고 날짜까지 또렷하게 기억한다.

=12월 22일 김현우 당시 민주노동당 강남지역위원회 위원장이 전화로 한번 만나보라고 해서 26일 성수동에 가서 만났죠. 엉엉 울다가 왔어요. 내일 모레 잘리는데 누가 아는 척해주니까 그렇게 서러운 거예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어요. 만날 때는 휴가내고 갔어요. 31일자로 해고였으니까.

그때까지 현실로 못 받아들인 거죠. 짤리는 거를. 마지막 날도 인사 다 하고, 인수인계 다 하고, 캐비넷에 1번은 뭐고, 2번은 뭐고, 이건 처리 아직 못한 거고, 이건 공문 보내야 된다는 등등 다 정리하고 3신가 4시가 되어 나가라고 해서 나왔어요.

노동자들이 이렇다. 해고되어 나오는 순간까지 일한다. 발전노조 38일 파업 때도 그랬었다. 혹시 사고가 날까 봐 매뉴얼을 다 써 놓고, 파업기간 중에 회사 쪽에서 연락이 오면 아주 자세히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뒷얘기를 열성 조합원에게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만난 노동자들은 항상 그랬다. 지나치게 착하다.

   
  ▲왼쪽부터 김은혜(가명), 성향아, 이근원 현장기자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전 공공운수연맹의 정치위원장 시절에 그녀들을 처음 만났다. 2007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게 있었다. 2년 이상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해 온 경우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그 규모를 기관마다 보고하라는 거였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란 이유로

이에 따라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노조는 임단협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합의했다. 14명이 대상자였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당시 행정자치부의 직제승인을 받아, 14명의 별정직이 증원되었다. 그런데 2명을 제외하고 12명만 별정직으로 전환되었다.

6년 8개월을 다닌 김은혜(가명)은 면접에 의한 평가를 이유로, 4년 3개월을 다닌 성향아씨는 단지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이유로, 별정직 발령은 고사하고 해고당했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면접은 형식적인 거라고 주변 동료 분들에게 면접 보기 전부터 축하를 받아왔었는데…..저 혼자만 떨어졌다고 하니까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생활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황당해서 밤에 잠도 못 잤습니다. (김은혜)

=이 소식을 듣던 날 저는 홀로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일자리조차 불확실해졌기 때문에 먹고 살길도 막막해지더군요. ‘정신적 공황상태’라는 게 이런 걸까 싶은 심리적 충격 속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향아)

가지고 온 글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단은 특히 성향아에 대해 인사규정 47조를 위반했으므로 계약을 해지한다고 했다. 47조는 정치운동의 금지조항으로 “정당 혹은 기타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운동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었다. 한 8개월 정도 싸웠던가?

=2007년 12월부터 따지면 딱 6개월만이예요. 대법원까지 가다보면 2년 넘게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어요. 김은혜씨에게는 원래 하던 일이 주어져서 다행이었는데, 저에게는 한 달 보름 동안 일을 주지 않았어요. 소속 팀과 떨어져 등 돌린 위치에 배치받았고요. (성향아)

=제 자리가 원래 안에 있는 자리구요. 거기는 지노위 판정대로 제자리에 두어야 하잖아요. 향아 언니는 약간 괘씸죄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김은혜)

하루 두 마디만 하면서 생활

김은혜는 교환 업무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20분 늦게 끝나는 업무로 점심시간도 없이 교대로 근무해야 한다. 그는 2001년 4월부터 무단결근, 지각 한번 없이 성실히 일해 왔었다. 그런 그를 회사는 2007년 12월 13일 평가 결과가 안 좋아서 계약을 만료한다고 통보한 것이다.

성향아는 일도 없이 45일 동안이나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등을 돌린 채 한 달 보름 동안 면벽수도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달 보름 동안 아침에 “안녕하세요” 하고 들어가서 저녁에 “안녕히 계세요”라고 두 마디 말만 하고 다녔어요. 하루 종일 말없이 앉아 있다 보면, 저녁 때 입은 얼어붙어 있고, 몸과 마음은 완전 파김치가 돼요.

저희들이 복직한 시점이 100만명의 촛불운동이 있었을 때여서, 그나마 기운을 유지할 수 있었어요. 촛불운동 덕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요. 그런데도 얼음장 같은 팀 분위기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우울해졌어요. (성향아)

=저는 갇혀 있어가지고 사람들 얼굴 보기 힘들어요. 화장실 갈 때나 사람들을 만나요. 팀에서는 예전처럼 똑같이 해줘요. 저를 자른 상사가 다른 부서로 갔거든요. (김은혜)

"넌 사진도 찍지 마 "

김은혜는 별도의 사무실에서 다른 2명과 함께 일하고 있기라고 하는데, 성향아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했을까?

=2개의 업무개선 과제를 써내라고 했어요. 7명이 서면심사를 한다고 하면서요. 심사를 할 동료들은 지난 5년 여 동안 함께 근무해왔지만, 팀 관리자 때문인지 저와는 말 한 마디 섞는 것도 어려운 상태였고요. 복직한 지 보름 정도 되던 6월 14일 공단 체육행사가 있는데 저에게는 오지 말라는 거예요.

   
  ▲성향아 씨
 

팀 관리자가 “네가 오면 화합이 안 된다”라고 하면서요. “너 하나 때문에 팀 분위기 엉망이고, 여러 사람 불편하다‘고요. 저는 해고되기 전부터 도와주던 정규직 동료들과 상의했어요.

’1인당 예산이 잡혀서 하는 공식 행사이고, 죽을 죄인도 아닌데 피하지 말고, 동료들과 섞이는 것이 좋겠다‘ 는 얘기를 듣고 따라갔어요.

하루 종일 따로국밥처럼, 개밥에 도토리처럼 맴맴 돌다가 왔어요.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팀 동료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부탁하는데, 팀 관리자는 "성향아가 찍어"라고도 했어요. 나는 정말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하기야 그 관리자는 제가 복직하던 날 오후에, “조직의 뒤통수에 칼을 쑤신 장본인” 이라면서 “공단의 이미지 깎아 먹은 거 손해배상 받을 수 있는 거냐, 공단 앞에서 팻말들고 시위한 것에 대해 반드시 징계할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라.” 하면서 폭언을 퍼부었어요. 면전에서 온갖 저주를 당하고 나오는데,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퍼붓는 저주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를 도와주던 정규직 동료들은 팀 관리자가 다음에 부르면 반드시 눈앞에서 메모를 하라고 조언해주어서 그렇게 했더니, “왜 적냐, 서로 약점 잡으려고 하는 꼴이 뭐냐.”라면서도 더 이상은 폭언은 하지 않았어요. 본심이야 변하지 않았겠지만, 독기어린 저주를 듣지 않게 된 것만도 좋은 일이었어요.

사실 첫날 일방적으로 들었던 팀 관리자의 폭언과 집단따돌림으로 맘고생이 심해서 한동안 잠도 못자고, 먹지를 못했어요. 어느 날, 노동부 조사관에게서 전화가 왔길래, 있는 대로 말했어요.

"기존에 하던 업무를 주지 않고, 팀 관리자는 폭언을 퍼붓고, 팀 동료들과는 밥 한끼는 고사하고 물 한잔도 못한 상태다. 하루에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두 마디 하는 상태라, 저녁이면 입이 붙어버리고, 우울증이 심해진다.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 짜른 것으로도 모자라서, 어렵게 복직한 것에 대해 이런 태도를 보일 줄은 정말 몰랐다."라고요.

노동부에서는 “기존에 하던 업무를 주지 않은 것은 원직복직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공단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저에게 말했어요. 그 다음 날로 (공단측에서) 일을 주더라구요. 참… 내…

이런 줄도 모르고, 한 달 보름을 그렇게 힘들게 보낸 것을 생각하면 속상했어요. 그랬더니 또 실장이 절 부르더니 “반성의 기미도 없이 매일 여기저기 전화해서 난리를 치냐. 정말 좋은 사람 얼굴 보고 살기도 인생이 짧은데… 싫은 사람을 내가 봐야 하나…”라고 하더라구요.

노동부가 나선 후 일감 줘

“제가 이런 행동을 해서 짤렸습니까? 짤린 이후에 살려고 한 것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인권위 결과가 나오면 공단 앞에서 기자회견한다고 하니까 팀에서 “이게 무슨 말이냐? 새 이사장님 오시는데 그것은 하지 말라. 그렇게도 공단에 해코지를 하고 싶은거냐?”라고 적반하장격인 말을 하더라고요.

저는 “김은혜 하고 제가 수년간 일한 덕분에 만들어진 별정직 자리를 비워놓고, 계속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계약직으로 일하다가 찍소리 한번 못하고 해고당했으니까요. 우리들의 별정직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해코지는 무슨 해코지입니까? .”라고 했어요. 저를 해고와 차별에 고통을 느끼는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거추장스런 장애물로 여기는 것 같았어요.

이게 현실이다. 2월 12일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위원이던 단병호 위원장과 함께 김완기 당시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을 만났었다.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대통령 비서실 인사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한 정무직 공무원 출신이었다.

면담 자리에서 정치활동을 금지한 공단의 인사규정이 97년 노동법 개정 이전의 것으로 이미 많은 재판에서 무효가 되었음을 알려 주었다. 공공운수연맹 산하 수많은 공단과 공기업, 출연기관의 자료를 주겠다고도 말했다. 심지어 공단의 정규직 중에 당원들이 있다는 말도 했다.

“이건 분명히 당신들이 지는 싸움이다. 쓸데없이 서로 상처를 주지 말자”고도 했다. 정규직은 정치활동의 자유가 있고, 비정규직은 그 조차도 없단 말인가? 싸움이 시작되면 갈등이 생기고, 공단의 이미지도 나빠질 것이라는 진심어린 충고도 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비정규직의 투쟁은 수많은 장기투쟁 사업장에 비하면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공단은 같은 처지에 있던 12명은 이미 별정직으로 채용했지만 투쟁을 해 온 2명은 제외하고 있다. 이미 예산도 확보되어 있고 행정적인 절차도 끝났지만… 이전에도 싸움을 해 보았을까?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

=지난 반년 동안 해고와 복직, 면전의 저주와 폭언, 집단따돌림 중에서 가장 힘든 순간은 2007년 12월 5일 오후에 인사과로 불려져서 ‘민주노동당원이냐, 별정직 전환에서 제외되었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와, ‘일자리가 우선이니, 일단은 탈당하라’ 동료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거스르고 ‘탈당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밝힌 12월 10일이었습니다.

특히 12월 10일이 저에게는 아주 어려운 고비였어요. 사실 40평생 살면서,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다수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거슬러보기는 처음이었어요. 마음에 안들어도 맞춰주고, 따라가고, 남 뒤에 서는 것이 편했어요.

병원에서 근무할 때 간호사 선배 중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혼자라도 뜻을 굽히지 않는’ 분이 있었는데, 저는 그 언니를 무지하게 존경하고 따랐어요. 노조지부장이던 언니의 권유로 잠시 노조 일도 했어요.

공사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도전이 올 때마다 그 언니처럼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자꾸 구부러지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술깨나 마셨죠. 지금 생각해보니, 이번 일을 통해 남만 거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오래 묵은 비굴한 태도와도 싸운 것 같아요. (성향아)

울보에서 투사로

처음 봤을 때 성향아가 겁이 많은 40대인 줄 몰랐다. 당돌한 30대로 보았다. 또릿또릿하고, 투쟁에 익숙한 ‘선수’ 같았다. 12년 동안 병원에서 일했었다. 그러고 보니 단병호 위원장이 99년 서울역 앞에서 27일 동안 단식투쟁하고 원진녹색병원에서 몸조리를 할 때 거기 있었단다. 물론 잘 울기는 했다. 투쟁을 통해 사람은 변한다.

=해고 전후로 몇 달 동안은 누가 말만 시켜도 울었어요. 오죽 했으면 지노위 심문회의 때 노동자 위원이 연맹 노무사인 강민주 부장님한테 “그 노동자 울지 좀 말게 해라”고 얘기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나이 마흔에 울음보가 터진 것처럼 지내면서도 동시에 달라진 것도 있었어요.

본래 조금만 냉담한 분위기속에 놓이면, 굉장히 위축되면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으로 소외감을 자초하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상황을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생겼어요.

해고되고 나서 공단 앞에서 부당해고 철회 피켓시위를 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어요. 처음에는 너무나 뻘쭘해서 정신이 아득했는데, 몇 개월 간 꿋꿋하게 하는 동안 자신감이 자라난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찬물로는 이빨도 못 닦았는데, 이제는 냉수목욕을 견디게 되었고, 싫어하는 상황에 놓이면 이성을 잃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차가운 것도 저렇게 뜨거운 것도, 싫은 것도 담담하게 여겨지게 되었어요.

   
  ▲집회의 사회를 보고 있는 성향아 씨(오른쪽)
 

스스로도 신기합니다. 또 사람을 깊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 16년만에 해고의 고통을 겪을 때 복직기금에 보태 쓰라며 31명의 정규직 동료들이 후원해주었어요. 전화해주고, 문자 보내주고, 메일 보내준 동료들 덕분에 미치지 않고 견뎌낸 것 같아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진정한 친구를 알아본다고 한 말, 진짜 옳은 소리예요. (성향아)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김은혜는 5월 13일 지노위의 원직복직 판결과 8월 19일 중노위의 부당해고 인정 판결을 받았다. 중노위 판정 과정에서 공익위원은 “비정규직이든 별정직 신분이든 김은혜가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 데 7년을 일한 것을 고려하더라도 공단이 별정직 전환을 해줘야 한다”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다. 상식적인 얘기다.

상식도 인권위 권고도 안 통하는 곳

이미 다른 12명이 공단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만든 별도 직제인 별정직으로 일하고 있다. 현재 그 자리는 2명이 비어져 있는 결원 상태다. 그럼에도 공단은 6월 23일 김은혜를 복직시킨 뒤 1년짜리 근로계약 체결을 종용하고, 그마저도 안되자 7월 30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더 이상 근로계약체결을 요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 하고 일방적으로 종전과 동일한 조건의 근로계약이 체결되었음을 공문으로 통보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 25일 인사규정을 개정하고, 별정직 전환심사를 재개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공단은 김은혜에 대해서는 이미 별정직 전환심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으므로” 현재와 같은 계약직을 유지하고, 성향아에 대해서는 인사규정을 추진한 후에 별정직 전환심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답답한 싸움의 연장전인 셈이다.

=사실 7년을 일한 김은혜씨나 4년을 일한 저 때문에 승인을 받은 별정직 자리를 비워놓고, 우리는 계약직신분으로 계속 일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 아닌가요? 별정직으로든 계약직으로든 우리는 결국 같은 일을 하는데 말이예요.

얼마 전에도 노동부에서는 ‘공공기관 노사관계 선진화 10대 과제’에서 상시 지속적 업무에 종사하여 2년 이상인 자를 전환시키라고 하는데, 9월 2일자 공단 측 공문에는 계약직 신분을 유지하겠다는 말을 태연하게 썼더라고요.

정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가슴에 대못 박는 말이에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끝내 유지하겠다는 말에, 계속 차별을 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성향아)

공기업이란 게 이렇다. 이쯤 되면 인간이 싫어진다. 심지어 경찰청 비정규직 투쟁이 한창일 때 만난 경찰청 고위 간부도 이렇지는 않았다. 이쯤 되면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다. 공단 간부야 자존심의 문제지만 이들에게는 인간의 문제, 생존의 문제다. 인간의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자.

니가 인간이냐?

=저는 복직을 했는데, 아직 은혜씨가 복직하지 못했을 때라, 점심 시간에 은혜씨와 함께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어요.(김은혜씨는 6월 23일 복직됐다) 그때 마침 제가 속한 팀 관리자가 지나가다가 “이거 뭐하는 짓이야. 사진 찍어”하고 소리를 치고, 옆에 있던 직원이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팀 관리자는 “복직시켜 준 공단에 대해 이러고도 니가 인간이냐?” 라면서 크게 화를 내었어요. 일부 정규직 동료들도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고, 등을 돌리고요. 하지만 제가 해고되었을 때 후원해주고 격려해 준 동료들처럼, 저도 은혜씨 곁에 꿋꿋하게 함께 하고 싶었어요.

김은혜씨가 복직하는 날까지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 피켓시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별정직 전환’되는 날까지 중단하지 않고 계속 하려고 했었는데… (성향아)

=정말 심한 거예요. 왕따 시키는 거. (김은혜)

순해 빠지게 생겨서 마치 조선시대 여자 같은 첫 인상을 준 김은혜는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것을 알았을까?

=왜 몰라요. 알았죠. 정직원들도 여자라는 자체만으로 무시해요. 얼마나 차별이 심한데요. 저 자르고 지금은 다른 데 갔다는 그 책임자는 회의할 때 정규직 여자 직원도 안 불러요. 비정규직은 일단 가계지원비, 직책수당, 장기근속, 가족수당, 성과급 등 5대 수당을 못 받아요.

옛날의 부장님은 “비정규직은 우리 직원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어요. 언젠가는 그만둘 사람들이지 오래갈 직원이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우리 공단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노조 얘기는 정말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전혀 관심이 없던 분야라서.

낯을 가려서 1인 시위 같은 것도 안하려고 했는데 언니 혼자 하는데 어떻게 안해요? 이만큼 떨어져 있다가 조금조금 다가가서 이젠 붙었어요. (김은혜)

그 놈의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공단직원은 550여 명으로 그 중 비정규직은 50여 명이다.

=작년부터 비정규직법 통과된 다음에 머리 굴려서 하루 7시간만 시키는 알바도 있어요. 그래서 1년 반 된 언니가 이번 달에 그만두거든요.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거예요. 각서까지 썼대요. 직원들도 너무 힘들고, 나가는 사람도 너무 슬프고 그래요. 다니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 놈의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다 자른다.”고 그래요. 우리보다 더 심한 거죠. (김은혜)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의 비정규직 규모는 1,700만인데 요새는 심지어 핸드폰에 문자를 찍어 단기로 고용하는 ‘스팟 파견’도 있다고 한다. 최근 파견노동을 반복하던 젊은이가 일본 중심가 중의 하나인 아끼하바라에서 트럭으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충격을 줬다.

절망의 끝에선 비정규직 노동자 가토 도모히로(25)라는 청년이었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우리야 KTX나 기륭전자 노동자들하고 같은 처지니까 절박하게 투쟁하는 심정을 이해해요. 그런데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 거 알고 들어갔지 않았냐?” 라는 사람들이요. 사실 다 정규직 노조잖아요. 우리도 그 혜택을 본 거구요. 사실 이길 줄 몰랐어요.

언니는 네가 이길 거라고 했지만 노무사도 그렇고 이근원 실장님도 어렵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언니가 계속 희망을 주었어요. 원래 지노위까지 해보려고 했었거든요. 지노위에서 지면 사실 질 확률이 높으니까. 졌으면 끝까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이겨서 뿌듯하죠. (김은혜)

지금 다니는 건 덤이다

막 산별노조로 출발한 셈인 공공노조의 경우 규모가 큰 사업장은 내는 조합비에 비해 노조가 해주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면 비정규직 조합원은 같은 조합원인데 왜 이렇게 밖에 지원을 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차이가 크다. 소통이 그만큼 중요한 시기다.

그리고 점차 운동의 중심을 비정규직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공공노조가 2년도 채 안되어 조합원수가 5,000여명이 늘었고, 그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데서 산별노조의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물론 정규직 노조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정규직에게 바라는 게 뭘까?

=정규직 노조가 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판결이 났으니까 조금 더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는 전달되는 게 없으니까. 거기서 마지막 수습을 해 주면 좋을 텐데. 우리는 솔직히 지금 다니는 건 덤이에요. 덤. (김은혜)

=정규직 동료 중에 한 분이 정말 우리 친동기간보다도 더 잘해줘요. 잘렸을 때도 한 달에 두 번씩 불러서 밥 사주고, 얘기 들어주고 그랬어요. 일터로 돌아와서도 다들 저한테 말 걸지 않을 때도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서 “밥 먹었냐? 먹으러 가자” 그래요.

또 저랑은 잘 모르는 정규직 노동자 중에 공단노조에 찾아가서 “노조에서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 분들도 여럿이라고 들었어요. 복직기금에 보태쓰라며 31명의 공단 정규직 노동자들이 후원금을 보냈고요. 복직했을 때, 나도 모르게 굳어져서 다니면, “위축되지 마라, 고개숙이고 다니지 마라, 운동(sports)을 하나 해라, 이럴 때 건강해치기 쉽다”며 격려해 준 선배, 동료들도 있고요.

너무나 고맙고 정말 힘이 되었어요. 정규직노조에서도 노조사무실에 우리 시위물품들을 맡아주었어요. 우리가 공단에서 일하는 한, 믿을 데는 본질적으로는 같은 처지인 정규직 동료들과 노조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향아)

뼛속 깊이 느낀 것

이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별정직으로 발령을 내지 않는 한 그렇다. 잠시 복직은 했지만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공공기관 선진화다 뭐다 해서 다시 짤리면, 또 지노위 가야죠. 지노위가 복직 명령을 내려서 복직했는데 다시 짜르면 괘씸죄에 걸린대요. “이거 상습범이네” 이러면서. 공단이 힘없는 비정규직 두 명을 기어이 짜르겠다고 하지 않길 바라지만요.

그런데도 짤린다면 고용보험 받을 때까지는 싸워야죠. 6개월 결과보고 또 싸우든 말든 결정을 해야겠죠. 이번 싸움을 하면서 오기 비슷한 그런 게 생긴 것 같아요. 웬만한 사람들은 포기하잖아요. 딴 직장 알아보고 그런 게 있는데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가보자 그런 오기가 생겨요. (김은혜)

=이번 일로 뼛속 깊이 느낀 것이 있는데요, 노동자로 사는 동안은 반드시 노동조합이란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사측 앞에 개인은 무기력하지만, 노조가 있었다면 짤리는 마당에 “꽥”하고 소리라도 내봤을 것 같아요. 그러면 마음의 병이 깊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리 부당한 일이라도 우리에게 힘이 없으면 무기력하게 당하고, 그 억울함 때문에 속병이 깊이 들어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같은 처지의 동료들을 조직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요. 또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총알받이가 아니란 점도 확실하게 배웠어요.

센 놈부터 칠 수 없으니까 약한 놈부터 치는 거잖아요. 우리가 무너지고 나면 정규직을 치겠지요.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할 때,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정규직노조가 방어를 해주지 않으면, 결국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노동자들 힘만 약해지겠지요.

사실 우리 팀 관리자가 저에게 본보기 삼아 구박하는 사이에 전체적인 군기를 엄청 잡는 효과가 있어요. 저에게 뭐라고 하는데도, 팀동료들 모두 숨소리를 죽이고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것을 보면요. "까불지 말라. 한번 밉보이면 큰 고통이 따를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먹히고 있는 셈이죠.

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향아)

1차 싸움은 6개월만에 끝났다. 제발 다음 투쟁이 없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애당초 누군가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정치활동을 금지한 공단 규정이 구닥다리였음을 지적했었더라면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별정직 전환을 앞두고 공무원연금공단에 그런 사람이 있기를 기대한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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