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우파 장기집권 전략 폭로하다
    2008년 09월 22일 05: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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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방부의 과잉충성이 이명박 정부의 통치전략을 드러내고 말았다. 충성으로 치자면야 포상감이지만, 전략누출이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웃지 못 할 일이다. 통치전략이 새로울 건 없었다. ‘민주주의’라는 불편한 가치를 뒤로한 채 ‘좌우’ 대립이라는 깔끔한 구도 속에서 강력한 ‘반공주의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다.

국방부의 고교 근현대사 교과서 개정 요구안은 여기저기서 ‘독재로의 회귀’ 혹은 ‘새로운 파시즘’이라는 비판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조심스레 진행하는 ‘반공국가 재건’이라는 본색을 너무 빨리 드러내 버린 과잉충성의 결과였다.

   
  ▲ 국방부 제출 고교 교과서 개정안 중에서
 

이명박 정권이 경외하는 박정희 독재정권에서 ‘반공주의’는 ‘빨갱이’의 적화야욕에 맞서는 강력한 ‘안보논리’였으며, ‘경제자립’을 위한 국민동원의 이유였다. ‘안보’와 ‘경제자립’은 미완의 4월 혁명이 꿈꾸던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토대로 설파되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반공주의’는 ‘민주질서확립’을 위한 전가의 보도가 되었으며, 쓸데없이 ‘평화통일’이나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는 자들은 부지기수 민주질서 전복기도의 ‘빨갱이’가 되어 감옥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만큼 박정희에게 통치는 간편했고, 이역만리 또 다른 독재자들은 박정희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강력한 반공주의적 통치가 어디 한 방울의 피땀도 없이 만들어졌으랴.

‘영어몰입교육’의 기원과 ‘반공주의’

1945년 해방 직후 소위 ‘우익’의 모습은 초라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도 ‘I can speak English’였다. 일제 강점기 있는 집 자제로서 ‘영어’ 정도는 기본이었던 일부 우익들은 해방 되던 해 9월 초 서울을 점령한 미군정의 통역역할을 자임하면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의 영어몰입교육의 필요성은 아마도 선친들의 그러한 경험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 등의 조직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얻고 있었던 좌익에 맞서 우익들은 ‘English’를 무기로 미군정 하에서 일제 강점기 경찰조직을 부활시켰고, 여러 ‘청년단’들을 조직하면서 역전의 시기를 넘보고 있었다.

미군정의 한반도 점령 제1목적은 극동지역으로 팽창하는 소련의 제지였고, ‘반공주의’는 그 핵심 노선이었다. 1945년 겨울 반탁운동을 틈타 이승만은 적극적으로 반공주의를 남한에 설파하기 시작했고, 좌익에 기죽어있던 우익들은 ‘반공주의’로 미군정과 하나가 되면서 그들의 날을 꿈꾸고 있었다.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 항쟁을 거치면서 좌우익의 힘은 역전되었다. 좌익의 나이브함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자. 그 해 가을의 패배는 좌익을 ‘지하’로 들여보냈고, 행복했던 인민위원회들은 강제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 뿐이랴, 한국전쟁이 대한민국 국군을 최대의 국가조직으로 키운 것처럼, 9월의 봉기는 역설적으로 악랄했던 일제 하 경찰조직을 성공적으로 재기시켰다.

1946년의 가을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미군정은 경찰을 앞세워 좌익 활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색출과 체포에 들어갔다. 소위 ‘좌익숙청(Red Purge)’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군정은 방송국, 통신부, 교통부, 교도소, 소방서 등 공공기관에서 1947년 여름부터 약 10개월 동안 1,300여명을 좌익 활동이라는 죄명으로 체포하였고 2년 만에 남한을 강력한 반공주의적 질서로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제주에서는 국군과 청년단의 좌익 토벌작전에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시작되었고, 8월에는 반공주의를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이 수립되었고, 12월에는 ‘국가보안법’이 제정되었다.

세련된 반공주의로의 회귀

60년이 흘러 이명박 정권은 우익이 초라했던 1945년의 해방의 기억을 지우고, 우익이 승리의 깃발을 올린 1948년을 기념하는 ‘건국 6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가을항쟁 이후의 좌파숙청처럼, 촛불집회 진압에 성공한 이명박 정권은 KBS, YTN 등 언론사 통제는 물론 ‘학술진흥재단’과 ‘과학재단’을 통합하면서 지식인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촛불집회로 정권의 총애를 받기 시작한 경찰은 현재 ‘신종 도박’과 ‘성매매’ 단속으로 몸을 풀면서 시민들 위에서 군림하기 시작했다. ‘노래방 도우미 간첩사건’, ‘오세철 교수 이적단체 사건’ 등은 ‘똘이장군’식의 ‘반공주의 통치’가 21세기에도 통하는지를 점검하는 소박한 실험에 불과했다.

10년 이상의 장기집권을 위한 교두보인 4년 후의 대선과 총선에서의 제2의 승리를 위해 이명박 정권은 ‘과거로의 세련된 회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4년 후의 새로운 유권자들을 ‘친이명박 세력’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프로그램은 바로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다. ‘영어몰입교육’은 과거 우익과 미군정이 그러했듯이 미래 ‘한미동맹’의 초석이 될 것이고, 소위 ‘좌편향 역사교과서’ 개정은 전쟁경험이 없는 미래의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야 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이명박 정부에게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여전히 불편한 입안의 가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의 과잉 충성은 이명박 정권의 ‘과거로의 세련된 회귀’를 ‘촌스럽게’ 만들어버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알아서 전교조를 뭉개버리고, 우익 시민세력들이 알아서 역사교과서를 개정하고, 상류층 유권자들이 알아서 영어몰입교육 바람을 일으키면 4년 후 재집권은 손 안 대고 코풀 수 있는 것인데, 국방부의 이명박 정권 통치전략 누출사건은 결국 이명박과 우익세력들이 꿈꾸는 이상형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희대의 독재자들이었다는 것을 고백해버린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지만, 이 경우 역사는 반만 되풀이 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세련된 반공주의’로 흩어진 우익들을 총결집시키고 있는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터넷으로 들어가 버렸고, 민주당은 ‘민주주의와 개혁’보다는 ‘나이와 연륜’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고, 민주노동당은 여전히 자신들의 ‘신비한’ 세계에 갇혀있고, ‘진보신당’은 계급의식 없는 계급에 둘러싸여있다.

대학교수들은 대기업 노조만도 못한 채 복지부동하고 있고, 알만한 지식인들은 밑천이 떨어져 걸식에 바쁘다. 패배자들은 어쩌면 작금의 미국 발 금융위기를 바라보면서 진화론적 종말론에 신비주의자들처럼 메시아적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경제위기는 임계점에 달했고, 서민들은 빚으로 혈세를 내야하고, 비정규직은 카스트제도처럼 굳어져가고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옛 경구가 그립다. 이명박 정권은 대단히 훌륭하게 자신의 통치전략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은 지금 ‘저들’은 물론, ‘자신’조차 모르고 있다.

‘반공주의’에 맞서 싸워온 ‘민주주의’라는 또 다른 전가의 보도는 ‘선거’와 ‘투표’라는 길들여진 게임의 규칙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연대’를 통해 삶의 열정을 폭발시키는 새로운 거대담론으로 마름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과 ‘연대’는 이 땅의 우익들만의 작업이 되면서 역사는 그저 반만 되풀이 되고 있다. 그나마 ‘저들’의 속내를 알려준 ‘국방부’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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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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