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합원 언니들 하루라도 안보면 걱정돼요”
    By mywank
        2008년 09월 20일 03: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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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밤 가산동 기륭전자에는 어김없이 촛불이 밝혀졌다. 김소연 분회장이 없는 농성장은 허전해 보였지만, 그 빈 자리는 네티즌들과 대학생들 30여명이 메우고 있었다. 이날 집회장 주변에는 기륭분회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책과 옷가지들도 판매되고 있었다.

    “흥희 언니 안녕하세요?”, “‘곰탱이, 프락치 책 많이 팔았어?”.

    흥겨운 통기타 공연이 진행 중이던 집회장에 잠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40대 촛불소녀’ 박희경 씨(41)가 퇴근 후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왼 팔에 두른 ‘비정규직 철폐’ 문구 손수건과 가방에 달린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배지들은 그의 관심사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했다.

    “일주일에 4~5번 정도 기륭 농성장을 찾아요. 지난 8월 초부터 여길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정말 놀랐죠”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한 박 씨는 현재 ‘기륭 네티즌연대’에서 스텝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이랜드 등 다른 비정규 장기투쟁장을 찾으며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대활동에 열심인 이유를 묻자, 박 씨는 “한 사람이라도 더 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조합원 언니들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걱정이 돼요”라고 답했다.

    이어 “조합원 언니들의 ‘반가운 눈빛’이 나를 원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이곳에 오고 있죠. 눈빛과 관심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매일같이 기륭 농성장을 찾아, ‘비정규직 촛불’을 드는 박 씨에게 ‘촛불 소녀’라는 호칭을 꺼내자, 그는 이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웃으며 박수부터 쳤다. 박 씨는 아직 미혼이다. 잠시 웃음 꽃이 핀 박 씨에게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던 한 네티즌이 바나나 한 개를 건넸다.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박 씨는 옆에 있던 기자에게 바나나를 다시 건넸다. 이어 “제가 오늘 단식을 하는 날이어서”라고 말하며 사정을 밝혔다. 박 씨는 기륭 농성장을 처음 찾은 지난 8월 초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동조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끼를 굶어도 먹고 싶은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90일 넘게 단식을 벌인 김소연 분회장은 어떻겠어요. 단식을 해보니깐 마른 풀잎에 남은 기름까지 모조리 빠지는 느낌이었죠”라며 박 씨는 소회를 밝혔다.

    박 씨는 조그만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직원이다. “비정규직 투쟁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지 않냐”는 기자의 ‘우문’에, 박 씨는 “요즘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가 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규직이 점점 적어지고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박 씨는 조촐한 촛불문화제가 열리던 농성장 주변을 잠시 바라봤다. “김 분회장의 단식이 중단되면서 여길 찾는 사람이 급격히 줄고 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봐야겠어요. 당위성만으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박 씨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세어 나왔다.

    한편, 이야기가 무르익자 박 씨는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인터뷰 내내 “정치는 잘 모른다”고 강조했던 그였지만,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꽤나 ‘정치적’이었다.

    “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문제에 참여할 공간을 찾다가 한 민중노래패에 들어갔죠. 그런데 거기 사람들이 ‘조국통일’, ‘주체사상’ 등의 용어를 쓰는 걸 보는 순간 알레르기 반응이 나더라고요. 저는 아무래도 ‘PD(평등)체질’ 인 것 같네요”. (웃음)

    “그러다가 노동자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자, 2006년 민주노동당 후원회에 가입했고 이후 당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분당사태의 시금석이 된 올해 초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특정세력들이 일방적인 논리를 앞세우면서 당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고 탈당을 결심하게 됐죠”.

    박 씨는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이를 토대로 서로 경쟁도 하고 사안별로 협력해야지, 껍데기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연합당’으로 가는 것은 ‘민노당 사태’를 다시 발생시킬 뿐이에요”.

    시계를 보자 밤 10시가 훌쩍 넘었고, 기륭전자 촛불문화제는 어느 것 막을 내렸다. 다른 참석자들의 촛불은 모두 꺼졌지만, 박 씨의 촛불은 아직 타오르고 있었다. “현장에 오시면 비정규직 문제가 더 가깝게 느껴지질 거예요. 조합원들의 눈빛과 대화해 보세요”. 박 씨는 기자에게 ‘짧은 말’을 전하며, 농성장에 남은 마지막 촛불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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