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들 하루라도 안 보면 걱정돼요”
        2008년 09월 22일 09: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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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저녁 가산동 기륭전자에는 어김없이 촛불이 밝혀졌다. 김소연 분회장이 없는 농성장은 허전해 보였지만, 그 빈 자리는 네티즌들과 다른 조합원들이 메우고 있었다. 이날 집회장 주변에는 기륭분회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책과 옷가지들도 판매되고 있었다.

    “흥희 언니 안녕하세요?”, “‘곰탱이, 프락치 책 많이 팔았어?”.

       
      ▲19일 저녁 기륭전자 앞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박희경씨(사진=손기영 기자)
     

    고된 투쟁의 현장에 흥겨운 통기타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어디선가 잠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40대 촛불소녀’ 박희경 씨(41)가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이곳을 찾았다. 왼 팔에 두른 ‘비정규직 철폐’ 문구 손수건과 가방에 달린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는 배지들은 그의 관심사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했다.

    눈빛과 관심 그리고 연대

    “일주일에 4~5번 정도 기륭 농성장을 찾아요. 지난 8월 초부터 여길 왔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정말 속상했죠.”

    진보신당 당원이기도 한 그는 현재 ‘기륭 네티즌연대’에서 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이랜드 등 다른 비정규 장기투쟁장을 찾으며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직장생활 하랴, 투쟁 사업장 다니랴 힘이 들텐데. “한 사람이라도 더 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알면서 누구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그가 이렇게 덧붙인다. "또 조합원 언니들을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걱정이 돼요.”

    그는 또 “조합원 언니들의 ‘반가운 눈빛’이 나를 원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이곳에 오고 있죠. 눈빛과 관심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매일같이 기륭 농성장을 찾아, ‘비정규직 촛불’을 드는 그에게 ‘촛불 소녀’라는 호칭을 꺼내자, 그는 이 호칭이 마음에 들었는지 박장대소했다. 그는 아직 ‘비혼’이다. 함께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던 한 네티즌이 그에게 바나나 한 개를 건넸다.

       
      ▲공연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박희경 씨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박 씨는 옆에 있던 기자에게 바나나를 다시 건넸다. “제가 오늘 단식을 하는 날이어서”라며 사정을 털어놓는다. 그는 기륭 농성장을 처음 찾은 지난 8월 초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동조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끼를 굶어도 먹고 싶은 것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90일이 넘게 단식을 벌인 김소연 분회장은 어떻겠어요. 단식을 해보니 마른 풀잎에 남은 기름까지 모조리 빠지는 느낌이었죠”라며 단식의 소회를 밝혔다.

    박희경씨는 조그만 인테리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직원이다. “비정규직 투쟁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지 않냐”는 기자의 ‘뻔한 질문’에, 그는 “요즘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정규직 문제가 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규직이 점점 적어지고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박 씨는 조촐한 촛불문화제가 열리던 농성장 주변을 잠시 바라봤다. “김 분회장의 단식이 중단되면서 여길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고 있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봐야겠어요. 당위성만으로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의 입술 사이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새나온다.

    기자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그는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인터뷰 내내 “정치는 잘 모른다”고 강조했던 그였지만,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꽤나 ‘정치적’이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문제에 참여할 공간을 찾다가 한 민중노래패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쪽 사람들이 ‘조국통일’, ‘주체사상’ 등의 용어를 쓰는 걸 보고 거부 반응이 나더라고요. 저는 아무래도 ‘PD 체질’ 인 것 같네요” (웃음)

    “그러다가 노동자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고자, 2006년 민주노동당 후원회에 가입했고 이후 당원이 되었어요. 그런데 분당 사태의 시금석이 된 올해 초 민주노동당 ‘대의원대회’에서 특정세력이 일방적인 논리로 당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고 탈당을 결심하게 됐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향점은 비슷하다고 보는데요. 이를 토대로 서로 경쟁도 하고 사안별로 협력해야지, 껍데기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연합당’으로 가는 것은 ‘민노당 사태’를 다시 발생시킬 뿐이에요”.

    밤 10시가 훌쩍 넘었고, 이날 촛불문화제는 막을 내렸다. 다른 참가자들의 촛불은 이미 꺼졌지만, 박 씨의 촛불은 계속 타고 있었다. "현장에 오면 비정규직 문제가 더 가깝게 느껴지실 거에요.조합원들의 눈빛을 한번 보세요". 그의 촛불도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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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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