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많은 자본가, 힘센 연고집단
        2008년 09월 19일 08: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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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라이덴(네덜란드)에서 오슬로로 돌아왔습니다. 라이덴에서 ‘한국 군사주의’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는데, 그 쪽 대학에서 한국학을 하는 동료들을 오래간만에 만나서 여간 반갑지 않았습니다.(http://www.mearc.eu/tikhonov_poster.pdf

       
     
     

    유럽이라는 데에서 한국학을 하는 이들이 하도 드물어서 그런지 서로서로에 대해 거의 한국적인(?) ‘정’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지적인 게토란 일장일단이 있는 것입니다.

    만나서 나온 이야기 중의 하나는 한국에서의 진보 정당들의 앞으로의 전망의 문제인데, 이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약간 도식적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1. 국내에서 계급 정당을 하기가 어려운 이유들

    자본가가 너무 많다

    a) 이제 다 끝나가지만, 적어도 1997년 이전까지의 한국은 세계 자본주의의 총아였습니다.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한 미국 등 핵심부로부터의 엄청난 차관과 비교적으로 효율이 높은 ‘강성 국가’의 개발주의적 전략의 결합은 거의 40년 가까이 매년 8~1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는? 물론 전두환이나 이명박 내지 노무현처럼, 성장한 이후 지배자의 반열에 오른 ‘가난뱅이’들이 극소수이었지만, 살림을 어느 정도 개선시키거나 아이를 도시 중산계층으로 출세시켜준 부모들은 상당수고, 또 이명박이나 노무현 식의 ‘자수성가’를 현실적인 ‘꿈’으로 삼아 그걸 맹신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실,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 성경과 상반되는 – 내용을 설교하는 교회들의 수로 봐서는 자본주의야말로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종교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는 세계적 위기 속에서 그 단 꿈은 많이 날라가겠지만, 지금까지는 계급 의식을 공유하기에 상층계급으로의 이동을 꿈꾸는 피지배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국 경제 인구의 60% 이상은 피고용자지만, 그 들 중에서는 ‘정신상 자본가’는 다수에 가까울 것입니다. 계급 정당하기에는 좀 척박한 토양이지요.

    복지가 조금 됐다

    b) 물론 일본과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지만, 복지라는 부문을 한국 자본과 국가가 선점한 부분도 어느 정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컨대 일부 대기업들이 근로자들에게 자녀 학자금을 대주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입니다.

    일본과 달리 사택을 주는 데가 많지 않지만 자녀 학자금과 의료 혜택 정도는 – 정규직에 한해서 – 주는 대기업은 지금 다수일 것입니다. 또 부실하고 모자라지만, 1980년대말 이후의 한국 국가는 – 1987년의 대투쟁 이후에 민심을 달래는 차원이기도 하지만 –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기초생활보호제도 등을 운용해 적어도 영세민들이 굶어죽고 아파서 그저 죽는 일 정도는 어느 정도 막아줍니다 (인도나 차베스 집권 이전의 베네수엘라와 달리).

    한국의 복지 지출이란 유럽의 남쪽 내지 동쪽 변두리만도 못하지만, 기업 복지와 합하면 남미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이 되지요. 그러한 면에서, 계급의식보다 ‘강력한 국가 권력’의 출현을 바라는 ‘민생주의적’ 의식이 더 쉽게 형성됩니다.

    연고집단 힘이 세다

    c) 필자에게 송두율 교수가 프라하의 한 학회에서 1995년에 이야기한 대로, 대한민국이란 ‘시민사회’라기보다는 각종 유사 가족적 연고집단의 결합체입니다. 그 중에서는 제일 큰 것은 단군의 후손들이라는 ‘민족적 대가족’이지만, 또 그 안에서는 동문 집단마다, 지역마다, 하다 못해 대기업의 중년 남성 정규직 노동자의 집단마다 다 그 강력한 집단적 정체성과 이해관계 의식이 형성돼 있지요.

    그리고 그 연고적 소집단의 단결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시자면 이명박 ‘동문’을 찍어주는 ‘진보적’ 고대 출신들의 행태 정도를 관찰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을 공동체는 이 땅에서 수천 년 존재해왔지만 계급이라는 일본식 번역어가 수입된 지 100년 정도 된 것입니다. 그것도 학교 교과서에서 아직까지도 – 민족과 달리 – 많이 안나오는 단어인지라 뭇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뿌리 내리기 힘들죠.

    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진보 정당의 집권 계획’ 이야기를 우리가 당분간 안 하는 게 현실적일 듯합니다. 집권은 언젠가 될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은 수십 년 걸릴 수도 있죠.

    2. 그럼에도 국내에서 진보 정당이 꼭 지금 이상으로 커져야 할 이유

    민족주의 광기 식혀줄 정치세력 필요

    a) 성장 시대는 이제 끝났습니다. ‘구조적 빈곤’ 시대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늘날 많은 비정규직의 자녀들은 아무리 (무명 지방) 대학을 나왔다 해도 앞으로는 정규직은 물론 비정규직도 못 구할 확률이 큽니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엄청난 수준일 수도 있는데 (‘쇠고기 민란’은 서막일 뿐이었습니다!) 이는 계급적 의식의 성장으로 유도할 수 있는 소지가 있을 듯합니다.

    b) 전세계가 지금 새로운 대공황과 (언제 일어날지 모를) 주요 열강 사이의 – 무력 충돌로 이어질 확률이 큰 –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 것입니다. 동아시아도 국익주의와 국가주의, 민족주의들의 충돌의 무대가 될 확률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한 면에서는 민족주의적 광기를 어느 정도 식혀줄 줄 아는 비민족주의적 사회 세력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여간 한국에서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 할 가시밭길입니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습니다. 그 소수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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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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