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연대에서 시민-노조 연대로
    2008년 09월 21일 10: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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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투쟁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리고 노동법으로부터의 보호보다는 사용자 쪽으로부터의 부당하고 다양한 억압이 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투쟁이 승리로 귀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이런 중에 최근 성신여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 좋은 성과를 내면서 막을 내렸다. <레디앙>은 이번 파업의 과정과 승리의 배경, 교훈 등에 대해 관계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는 지난 21일(일) 오후 2시 마포 민중의 집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주>참가자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 민중의 집 공동대표)
김구자(공공노조 성신여대 분회 부분회장)
김지은(성신여대 부총학생회장)
김지희(성신여대 정치사업국장)
윤춘호(사회. 공공운수연맹 선전국장 / 레디앙 현장기자)
강현주(공공노조 서울지역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차장)
권태훈(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차장)

총학생회와 함께 만든 노조

윤춘호(이하 윤) 성신여대 학생들과 공공노조 성신여대 분회가 함께 한 투쟁이 아름답게 잘 진행되어서 결국 좋은 성과를 얻었다. 이번 투쟁이 어떻게 성공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앞으로 비정규직 사업 투쟁에 어떤 참고가 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우선 옛날이야기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성신여대 분회 조합원들하고 학생들의 인연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 않나?

김지은(이하 지은) 내가 지금 4학년인데, (학생회와 분회가)계속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 같다. 실질적으로 같이 연대하게 된 것은 작년 9월, 노조 건설 당시 부터였다. 노조건설 논의에 학생회가 참여하고 지지하면서 힘을 실어드렸고, 이후 학우들에게 노조건설 이유를 설명하는 등 여론화 작업을 해왔다.

  ▲윤춘호 공공운수연맹 선전국장

 총학생회가 노조를 지지해왔다고 하더라도 일반 학생들은 ‘어머니들이 무슨 노동조합인가’란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을 것 같다. 학생들은 당시 노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었나? 노조 건설 과정에 많이 동참했었나?”

지은 많이 긍정적이었다. 작년 노조를 건설했을 당시,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정말 열악했고, 누가 봐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문제들이 발생해왔다. 때문에 학우들 사이에서 ‘이 분들이 어렵게 일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 건설은 정당하고, 이를 지지하겠다’는 여론이 높았다.

작년에는 부당한 노동환경에 반대하고 노조 건설을 지지한다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는데 이틀 만에 3,000여명의 학우들이 서명할 만큼 지지가 두터웠다.

강현주(이하 강) 성신여대 미화노동자 조직화 사업할 때 80%를 학생회에서 도와주었다. 학생들이 직접 미화노동자 대기실 등을 찾아다니며 못 받은 가입원서들을 직접 받아왔다. 학생회 동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노조 조직이 불가능했을 정도였다.

“처음엔 노조 결성 돕는 학생들 피해다녀”

 단순한 지지뿐만 아니라 조직화하는데도 학생들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공공노조 서울경기지부가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을 학생들이 해 준 것 아닌가?

권태훈(이하 권) 처음에는 대기실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대기실에 가면 긴장되기도 했었다. 또 조합원들도 두려움이나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자주 접하던 학생들이 찾아와 노조에 대해 말해주면서 친밀감이 생겼다. 학생회가 그런 역할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잘 해 주었다.

 노조 가입 당시가 용역 계약이 변경되는 시기였는데 이러한 사실을 처음 알려준 것도 총학생회 간부들이었다.

김구자(이하 김) 작년 월급이 63만원이었다. 우리도 처음엔 노조가 뭔지도 몰라 노조 결성을 돕던 학생들을 피해 다녔다. 그러다 나 같은 사람이 노조 가입하면 우리가 편해질 수 있다고 해서,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처음 노동조합을 결성했을 때 소장이 욱해서 ‘집에 가서 애나 보라’고 할 정도로 반발이 있었는데 우리 주권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했고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렇게 노조를 시작하고 학생들의 지지가 이어지자 그 다음 용역 계약이 변경되고 받은 월급이 79만원이었다.

  ▲김지은 성신여대 부총학생회장

윤 일부 대학에서는 오히려 학생들이 더 나서서 학내노조를 만드는 것을 부정하고 심할 때는 탄압까지 한다. 성신여대의 이번 투쟁을 이런 흐름의 전환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연대에 성공한 이유들

홍세화(이하 홍) 보편적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테지만 특수한 변화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때문에 더 관심이 간다. 무엇보다 총학생회 내에서 어떻게 (미화노동자에 대한)관심과 배려의 움직임을 갖게 되는지, 또 학생들이 어떻게 연대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재작년 한국외대에서 대학노조가 대학 당국과 문제가 생겨 파업을 했다. 여기서 학생회가 오히려 대학당국의 편을 들고 대학노조를 결성하려 한 직원들의 파업에 반대했다.

심지어 대학노조 직원들이 파업한 것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대학노조에 대해 학생들의 지지가 낮고, 대학에서 집회하면 ‘우리 학교에서 하지 말라’고 말하는 지금의 현실에 비춰보면 이번 성신여대의 투쟁이 일반 대학노조와 달리 미화일을 하는 분들의 열악한 문제였기 때문에 달리 보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성신여대 학생들이나 총학생회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는 어떤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궁금하다.

여성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점에 주목

지은 학내 어떤 노조가 어떤 투쟁을 할 때, 학생회에서 이를 ‘함께 할 싸움인가’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데서 차이를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한다. 외대 학생들은 그 사람들의 투쟁이 정당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함께 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우리의 경우는 학교에서 학우들과 연대해 집회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미화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측면에 주목했다. 이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로서의 문제도 있지만 특히 이 분들이 학교 교직원들로부터 받는 여성노동자로서 박탈감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때문에 연대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는 투쟁의 목적에 대한 고민들을 분명하게 했고, 이 과정에서 연대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 교내 대규모 집회를 2번 했는데 그때마다 학생회 간부들이 강의실에 들어가 “다소 시끄럽고 불편하겠지만,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싸움이다. 학생들도 함께 지지하는 만큼 집회는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이라 생각한다”고 얘기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전부 이에 대해 동의를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동의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집회에 참여하느냐 마느냐는 개개인의 생각에 따르겠지만, 그것을 학생회가 어떻게 이야기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외대 학생회가 그런 결정을 내렸더라도 그것이 전체 학생의 의견은 아니었을 것이다.

집회 때 강의실 돌면서 양해 구해

 일례로 총원 9,000명 중 6,500명이나 서명에 동참한다는 것은 취업과 학점관리에 1차적 관심이 있는 현대 한국 대학생들의 분위기에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독특한 성신여대의 학풍이 있는지 궁금하다. 미화 노동자들의 비슷한 문제가 강원대에서도 벌어진 적이 있는데 강원대에서 학생회가 열심히 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 없다

 6,500명 서명했다는 것은 학교에 안 나온 학생들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학생이 서명 했다는 것이다. 이 서명운동이 합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인데, 하나는 어머니들께 실질적 도움을 주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노동자로서 이번 서명운동이 어떻게 보고 있나?

  ▲김구자 공공노조 성신여대 분회 부분회장)

 서명할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머니 이기시라,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게 해줘 고맙다’며 서명을 잘 해주었다. 그런데 딱 한 학생이 총무처장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웃음). 그래서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민주노총을 미워하고 있더라, 피 빨아먹는다고(웃음).

그의 말을 들은 주변의 학생들이 그 학생을 나쁘다고 비판했다. 나도 다시 그 학생에게 (민주노총이)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서명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해줄 수 있다고 하더니만 결국 서명은 안 해 주었다. 그런 학생이 딱 1명 있었고 다른 학생들은 너무 잘해주었다.

민주노총 미워 서명 안하겠다는 학생도

어쨌건 이번 서명운동은 14일 동안 싸우는데 그야말로 큰 힘이 되었다. 게다가 성신여대 졸업생 150명이 <경향신문>에 자비를 들여 광고를 냈던 것도 큰 힘이 되어서 잘 기억하고 있다. 광고내용이 ‘성신여대 나온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였다.

 8월 27일 해고 상황을 알게 되고 28일부터 투쟁을 시작했다. 우린 개강만 기다렸다. 개강만 되면 이런 갑갑한 상황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강 첫날인 9월 1일부터 서명 받기 시작했는데 딱 3일 만에 6,500명이 나왔다.

그때부터 학교 측이 얼마나 빨리 반응하느냐가 문제였는데 학교는 해외 나갔던 총장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 때부터 이 싸움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구체적 합의 과정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였다.

서명운동도 그렇지만 언론에서도 이 문제가 많이 나왔고 무엇보다 학교 전역에 붙은 선전물의 영향도 컸다. 모든 건물, 모든 층, 엘리베이터 속까지 대자보가 붙었고 학교 입구부터 모든 길에 플래카드가 붙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분위기를 만들자 학교에도 긴장하고 초조해했으며, 결국 3일째 되는 날부터 저녁에 실무교섭 요청이 있었다. 추석 즈음해서 승리할 것 같았다.

 9월 4일, 총장이 들어왔는데도 학교에서는 총장한테 미루면서 ‘총장 올 때만 기다리라’고 말하더라, 그래놓고 총무처장은 우릴 만나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이번 투쟁이 결정적인 변화의 시점을 맞이한 것은 학교가 먼저 교섭을 계속 요청하다 결국 총장까지 만나게 해 준 것이었다.

학생들도 뿌듯해 하는 모습

 4일 쯤에 공대위 발족 기자회견 하고나서 원래는 총무차장 면담을 계획했었다. 총장한테는 요구도 안했다. 근데 학교에서 대뜸 총장을 만나라고 했던 것은 학교 내에서 이번 투쟁에 대한 지지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총장이 사정을 잘 몰라서 만난 것이라 하더라도 총장을 만났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나 역시 그 이후로 좋게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까 <경향신문> 광고 얘기가 나왔는데 이 광고처럼 처음엔 ‘성신여대가 창피하고 부끄럽다’는 내용이 나오다가 투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는 ‘성신여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더라 <다음> 블로그뉴스에 올라갔던 글에도 성신여대 졸업생들이 ‘학교가, 후배가 자랑스럽다’는 댓글을 달았다. 학생들의 연대로 투쟁이 승리했는데 학생들이 이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

지은 사실 승리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인터넷 뉴스 기사와 리플을 보면서 ‘큰일을 했나보다’란 생각이 들더라. 이번 승리 이후 강의실을 찾아다니며 ‘학우들의 지지 여론이 가장 컸다’는 얘기를 하며 ‘이후 ‘성신 미션’으로 어머니들께도 반갑게 인사하고 다른 사회적 비정규직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자’라고 말했다. 학우들도 스스로 뿌듯해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성신여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밤을 많이 지켰고 다른 학교에서도 많이 찾아왔다. 우리 지구, 분회 내 학교 뿐 아니라 수원, 인천에서도 많이 와서 힘을 주었다.

 추석 전에 합의 보고 추석 이후에 다시 출근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 일 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나?

학생 연대처럼 일반 시민들도 노조 연대 필요

 물론이다. 학교가 깨끗해졌다. 임시 채용된 사람들은 쓰레기통의 쓰레기만 쏟아버렸지 특별히 한 것이 없더라,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이 고마웠다. 학생들이 밤잠 안자고 플래카드 쓰고 그거 들고 서서 외치고, 학생들이 고생 많았다.

  ▲ 권태훈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차장

 복직 이후 (하청)회사 측 대표가 와서 사과했다고 들었다.

 ‘불미스럽게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다, 다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 원칙대로 했던 것일 뿐’이라고 말하더라

 홍세화 선생님께서 보기엔 어떤가? 이번 성신여대 승리가 사회적으로 좀 더 확대될 수 있을까?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이번 승리가 중요한 사례인 것은 사실이다. 승리가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원인은 노사, 즉 학교와 노동자의 관계에 있어 학생이라는, 노사에 직접 연관이 안되는 제3자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이 상황을 일반화시켜 보통 기업체로 연관해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일반 기업체에서 제3자를 차지하는 역할을 국민이 해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학생들이 성신여대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과 같이 일반 국민들과 시민들이 비정규직 문제 얼마나 더 열심히 참여하고 연대하느냐라는 것이 되겠다.

 이랜드 불매운동을 했는데 불매운동의 주체가 민주노총이어서 안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조중동에게 하는 것처럼 먼저 나서서 불매운동을 진행했으면, 학생의 역할을 소비자가 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노총 시시하게 봤는데 그게 아니네

 그럴만한 시민의식이 한국사회에 형성되어있지 않다. 때문에 민주노총에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랜드 문제의 경우도 만약 일반 시민들이 나설 수 있다면 민주노총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것들이 성숙된 시민의식이 부족한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엔 총장이 들어왔어도 안 만나줬다. 그런데 400~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연대해서 투쟁하는 것을 보고 놀란 것 같다. 첫 번째 투쟁은 그렇게 넘어가고 두 번째는 확실히 우리가 더 강하게 보여주어 학교 측이 ‘민주노총 시시하게 봤는데 그게 아니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당장 일반 기업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대학생들의 경우에만 적용하면 성신여대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일반 학생들의 지지는 확실히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도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데,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부모님들도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 이런 사회 분위기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성신여대 모델’이 일반화돼야 할 것이다.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성신여대가 이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선전활동과 신임 이사장에 대한 불신, 더불어 그동안 성신여대 총학생회가 가지고 있던 여성에 대한 관심과 미화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있었다.

여대라는 조건도 일정 정도 역할

특히 성신여대 총학생회는 미화노동자들이 조직화되기 이전에도 여성의 날 등에 미화 노동자들도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많이 마련 해왔다.

또 하나, 다른 대학들과 달랐던 것은 여대라는 특수성이었다. 여대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렇게 내치는데 대한 충격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여대생들의 감성을 자극했다고 본다. 댓글을 봐도 ‘저 아주머니 우리 건물 청소 하시는 분 같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왜 오랫동안 일해왔던 이런 사람들이 한 번에 잘려나가야 하는지’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덕성여대에서도 상관인 소장의 폭력과 폭언의 사례가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여대생들을 자극하는 ‘무엇’으로 다가 온 것 같다.

성신여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없다. 학생들이 들어가는 인트라넷이 있나? 거기에 글이 많이 올라왔나?

지은 그 곳에는 성신여대 학생만 글을 쓸 수 있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부분 이번 투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전체 학우 9천 명 안에서 모두가 이 투쟁을 지지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번 투쟁에 대해 반감 있는 학우는 반드시 있었겠지만, 다만 그 생각이 여론화되지 않고 소수의 생각으로 묻혔다.

거기보다 오히려 성신여대 학생들이 자주 가는 <다음> 까페가 있다. 그 곳에서 자발적인 지지 행동들을 하자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성신여대 건물 1층 기둥에 어머니들을 지지하는 포스트잇을 붙인 것도 자발적인 의견을 통해 나온 것이었고 실제로 개강 후 포스트잇이 바로 많이 붙었다.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학교 홈피와 다음 ‘까페’의 차이

 학생회 스스로도 큰 자신감이 생겼을 것 같다.

지은 여러 부분이 있다. 일단 지난 날 비정규직 문제를 학우들에게 여론화시키려고 했던 과정이 있었는데 이번 투쟁만큼 폭발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학우들이 청소 아줌마들을 통해 여성 비정규직의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본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학교 학생들이 점차 보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신여대 투쟁과 같은 이런 움직임들이 학생들의 보수성을 움직이는 작은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싶지만 실제로 기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승리의 경험을 주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지난날 사회운동, 노동운동 하면서 승리의 경험이 거의 없지 않았나? 법정투쟁까지 가고, 거기서도 지지부진하고, 그러다 지고, 이런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이번 승리는 아주 깔끔하고, 분명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대학생들의 주체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인지 불분명하다. 나는 학생들이 보수화되었다기보다 자기 주관이 없어지고 사물과 현상에 대한 생각을 갖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보수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동물적인 사적 욕망만 남아 이웃에 대한 상상력과 열정이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성신 모델 확산은 쉽지 않을 것

이런 점에서 볼 때 성신여대 학생회의 여성주의적 움직임과 같은, 독특한 것을 일반적으로 확산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학 학생회를 이른바 ‘비권’들이 장악하는 현실 속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학생들이 운동권은 아니더라도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런 학생들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동력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이미 거기서 멀어져 있다.

  ▲강현주 공공노조 서울지역본부 미조직비정규사업차장

 투쟁 중에 또 하나, 전단지 사건이 있었다. 민주노총에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무단해고시켰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내보냈더니, 학교 측은 ‘자신들은 121만원씩 준다’고 같이 전단지를 나눠 주더라,

그래서 ‘우리가 받는 돈은 79만원인데, 121만원이라 하면 학생들이 우리가 그 돈 다 받는 줄 알 것 아니냐?’고 따졌다. 그랬더니 ‘그건 용역회사에 가서 따지라’고 하더라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9월 1일, 우리뿐 아니라 학교도 전 교직원을 동원해서 선전전을 했다. 학교의 주장은 작년 113만원, 올해 121만원 주었으니 충분히 주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학교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낸 꼴이 되었다. 나머지 42만원은 어디 갔느냐는 문제가 터진 것이다. 이것이 다 용역 회사로 간 것 아니냐?

 또 하나, 학교 중문이 있는데 여기서 교직원이 문을 닫고 학생들과 우리들을 못 들어오게 해서 싸운 적이 있다. 지성인을 키우는 학교에서 이게 할 짓인가?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나? 스스로 망신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주목할 만한 합의 내용

또 우리가 일을 안 하다보니 화장실이 막힌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두고 우리들이 지우개나 오물을 투입해 막히게 만들었다고 총무처장이 전단지를 뿌리며 주장했다. 우린 그런 적 없는데, 우린 진짜 몰랐다. 싸우기도 바쁜데 언제 가서 그걸 넣고 있었겠나?

청소 잘하게 하려면 1주일을 함께 돌아다니며 문 닦는 것부터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 용역회사가 호텔 같은 데는 해봐도 학교는 처음이어서 학교 청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임시로 온 분들이 몰려다니면서 쓰레기 걷어 버리기도 바빴던 것이다. 결국 학교는 지저분해지고 화장실은 막히는 것 아닌가?

지은 학교에서 유인물 나눠주고 붙이면서 선동을 해도 그 동안 같이 해왔던 학우 여론화 작업으로 인해 형성된 두터운 지지층을 깨긴 어려웠던 것 같다. 학교 측에서 계속 반격을 했지만 큰 혼란은 없었다.

 합의문이 가려져 있는데 무엇보다 이번 합의문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원청과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특히 합의문 중에는 부당노동행위를 시킬 경우에는 용역업체의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에 따르면 다른 용역회사가 오더라도 실질적으로 노동조건을 함부로 훼손하면 계약을 해지하게 되어있다.

 원청과 합의는 경우는 처음은 아니지만 부당해고 요구, 고용승계 노력과 같은 부분까지 포함된 경우는 우리도 처음이다.

 이번 투쟁이 학생들과 어머니들 간의 아름다운 연대에 묻혀 합의문 중 키워야 할 부분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 합의문은 어디 가서든,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판례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투쟁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도와준 것이 아니라 함께 한 것

 통쾌하게 이겼다고 생각하는 건, 이번 합의문 3항에 ‘성신여대 노동자는 성신여대에 사과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뭘 잘못한 게 있느냐’고 항의해서 10분도 안 돼 싹 폐지되었다. 이것만 봐도 아주 통쾌하게 승리한 것 아닌가.

김지희(이하 지희) 나는 이번 투쟁이 어머니들을 도운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어떠한 부당한 사안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노조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시면서 학생회실 문을 두드리고 함께 해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그 첫 시작이었다.

그 전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나 환경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어떻게 말을 건네고,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특히 미화 노동자 분들은 다른 교직원들처럼 그 존재감이 와닿지 않았다. 우리가 오기 전이나 다 간 후에 청소해주시니 마치 자판기처럼 우리가 필요한 것을 즉각 내어주는 분들로만 인식이 되어 왔던 것 같다.

노조를 만들면서 그 분들의 목소리가 학내에 퍼졌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도 부당한 상황에서 일하시는 미화 노동자 분들의 노동환경을 공유하게 되었다. 작년부터, 이런 과정에서부터 이 승리의 투쟁이 시작된 것 같다. 저는 어머니들이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시면 도운 것이 아니라 함께 싸운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씩만 들어보겠다.

일상적 노학연대 활동 필요

 가장 분했던 건 학교 총무처장이 우리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기를 배신했다며 통보도 없이 65명을 해고했을 때였다. 그들이 민주노총 우습게 본 것이다. ‘너희들이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연대하고 일이 크게 벌어지니까 놀란 것 같다. 난 그게 제일 분하다.

 앞으로 과제는 연대투쟁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일상 사업 속에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야 할 것 같다. 이번 투쟁이 성신여대에서 폭발적 관심을 불러왔다고 하지만 학생 하나하나에겐 4~5년 동안 대학생활 하면서 2주 동안의 일에 불과했다.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잊혀진 일로 끝날 수도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일상 활동에 더 매진해야겠다.

또 하나 조직화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이번 투쟁 중 사립대학교 네트워크에서 우리의 연대 얘기가 많이 돈 것 같다. 이처럼 우리의 연대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고 또 이번 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다른 대학교 분회에도 많은 영향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더 큰 영향을 위해 조직화에 매진해야 할 것 같다. 지금 6개 대학교 정도에 조직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사실 전체 대학의 1%밖에 안된다. 북부나 서부에서도 조직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곳 학생들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과 함께 서로 주체로 만드는 일상 활동이 필요하다.

 

지은 올해 심화진 총장이 학교운영을 처음 시작하면서 학생 자치권에 대한 탄압이 엄청나게 들어왔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학과통폐합으로 수업권을침해하고 그 밖에도 대학구조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학교운영과 학생자치권 탄압 등에 대한 분노가 학우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상황에서 어머니들에 대한 부당한 전원해고가 대학에 대한 분노 폭발지점이 되었다.

비정규직 실태 관심 갖도록 학생회 노력

앞으로 우리도 이런 것들을 사그라들게 하지 말고 학우들 사이에서 성신 미화노동자 해고복직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에 관해 관심 갖도록 학생회 차원에서 논의하겠다.

또 이번 투쟁을 진행하면서 학생회가 주도적으로 연대를 이끌긴 했지만 총학생회라는 물질성이 너무 강했다. 물론 총학생회의 연대 주도도 이번 투쟁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학생들이 이번 투쟁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대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평가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이 대학 내에서 많이 없어졌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이번 투쟁은 학우들 사이에서 ‘학교의 이런 조치가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많이 돌면서 자동적으로 불거진 측면도 있다.

이처럼 학생회 간부뿐 아니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다양한 연대방안을 고민했던 것이 이번 투쟁의 중요한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많이 어렵겠지만 앞으로 학생회 사업보다 대학생 스스로의 움직임들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긍정적 징후들

대학 조직화 사업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을 하고 있다. 당연히 대학조직화 사업은 노조 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연대를 통해하려고 하고 있는데 우선 학생단위와 간담회를 시작하고 있다. 의외로 여기에 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노학연대가 어려워진 조건에서 학내 대중연대와 노학연대를 동시에 이뤄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연세대에서도 ‘살맛’이라는 학생운동 단위가 조직되면서 학내 임금체불 사례들이 많이 드러났다. 결국 학생회가 비권임에도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학생회의 지지까지 끌어낸 것이다. 준비를 잘 해 그런 상황을 만들어야겠다.

  ▲ 이번 대담은 21일 오후 2시 30분부터 마포 민중의 집에서 열렸다.(사진=정상근)

 이번 사안을 보더라도 ‘연대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학교에서의 승리를 만들었던 학생이 보여준 연대를 사회에서 시민들이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랜드나 코스콤 같은 다른 비정규직 사업장이 아직까지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조직된 노동자, 또 노조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끔 되었을까’라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직접 당하거나, 직접 해고의 위험이 오거나, 정작 당사자가 싸우기 전에는 민주노총이라든지 조직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연대 중요성 재확인

직접 당하고 싸울 때가 되어서야 노조를 만들고, 민주노총에 참여하면서야 민주노총에 호의적이 되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내가 겪지 않아도 노동자로서 이런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참고로 프랑스에 있을 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활동가들이 파리에 와서 프랑스 활동가와 함께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다. 이때 민주노총 간부가 한국의 어려운 노동조직 현실을 얘기하면서 그 예로 ‘삼성에선 무노조가 관철되고 있다’고 얘기했을 때 그 프랑스 사람이 대뜸, ‘그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삼성물건을 사느냐’라고 묻더라

민주노총 활동가가 몇 십만이 되고 그 가족까지 하면 상당수가 되고 또 민주노총의 활동가나 조합원이라도 노동자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노조를 용인하지 않는 삼성의 제품을 어떻게 살 수가 있냐고 얘기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그것 자체가 이뤄지지 못한다. 그게 층층, 켜켜이 우리에게 비어있는 부분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가’란 문제가 있다.

이런 노동자들의 연대의식, 자신의 일로 닥치지 않더라도 노조에 대해 호의를 가질 수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친화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로 가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긴 안목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하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고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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