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아줌마들 더럽게 여기서 밥먹고 그래?
        2008년 09월 18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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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 년 전 서울대학교 청소용역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원했던 벗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40대부터 주로 50대 이상의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의 파업이었는데, 공공기관을 구조조정 한 이후 휴일도 없어지고 연월차도 없어지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해마다 연말이면 계약해지 될까봐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분들이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못 가는 이유

    그런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이상하게도 점심시간에 식당을 안 가셨다. 11시 이전이나 오후 2시 이후에야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날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왜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안가시고 꼭 두시가 넘어서 가세요. 배고프지 않으세요? 점심이 너무 늦잖아요.”
    “아유, 우리는 점심시간에 안 가. 예전에 당한일이 있어놔서.”

    당한 일이란, 어느 날 아주머니들이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교수가 호통을 치더라는 거다.

    “아니, 이 아줌마들이. 더럽게 왜 여기 와서 밥을 먹고 그래.”
    “말도 마.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 순간 내 몸이 사라졌으면 좋겠더라고.”

    서울대학교 교수면 얼마나 까마득히 높으신 양반들인가. 그런 사람이 더럽다고 옆에 오지 말라고 했으니, 도둑질하고 사기치는 것도 아니고 청소해서 아이들 먹여 살리고 학교 보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어디에 내놔 부끄러울 것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얘기를 하는 그 순간에도 새삼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말하더란다.

    점심을 안 먹으면 안 먹었지 다시 그런 일을 당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높으신 분들 밥 먹으러 오는 시간에는 식당에 안갈 수밖에. 왜 이렇게 우리의 노동이 부끄러워야 하는가?

    2.

    얼마 전 오래간만에 현장에 들어갔다. 예전처럼 라인을 전부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조합원들과 점심이나 같이 먹으려고 시간 맞춰 들어갔다. 밥을 먹고 라인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오래간만에 보는 조합원들과 담배도 피우고 커피고 마시고 있는데 한수 아저씨가 못 보던 젊은 친구를 데리고 와 인사를 시킨다.

    “얌마, 내 얘기했지. 우리 지회장님이다. 얼른 인사해라.”
    도대체 내가 부지회장이나 지회장이 아닌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예. 안녕하세요. 지금은 지회장 아니에요. 그냥 해고된 조합원이에요. 그런데… 누구?”

    한 공장에서 일하는 부자(父子) 비정규직

    젊다기보다 아직 어리게 보이는 친구다. 보통 이렇게 어린 친구들은 비정규직으로 라인 타는 것을 평생 해야 할 일로 생각하지 않고 잠깐 하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도 않는다. 언제든 더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나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조합 같은 것은 귀찮은 일로 생각한다.

    “어. 내 아들놈이야. 얼마 전에 제대하고 집에서 노는 걸 내 여기에 데리고 왔지. 처음 한 2주는 힘들다고 파스 붙여쌓고 야근 때는 졸려서 딱 죽겠다고, 아빠 나 여기 그만둘래. 그러더니, 내가 막 뭐라 했다. 니 아빠가 여태 이렇게 너 먹여 살리고 학교 보냈는데, 겨우 2주하고 그만둬?

    그만두더라도 어디 갈 때나 있나. 그랬더니 이제는 잘 다닌다. 생전 나하고 인사도 안하는 소장이 나한테 와서 그러데. 철이가 일을 잘한다고. 아들놈 잘 키웠다고. 그런 거 보면 이제 일을 잘하기는 잘하는 모양이라.”

    쑥스러워하며 인사만 꾸뻑하고 저쪽 옆 라인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할 소린지 못할 소린지 알 수 없는 말이 생각할 틈도 없이 입에서 나와 버렸다.

    “내가 못 살아. 아직 어린 앤데. 아저씨는 애를 여기에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평생 이러고 살면 어쩌라구. 좋은 데 들여 보내야지.”
    말하면서 나는 스스로 기가 찬데, 아저씨는 웃는다.

    “그러게. 내 아들한테는 이 짓 안 시킨다고. 지회장도 알지. 내가 우리 지회 지침은 안 따른 적이 한 번도 없어. 내가 앞장서서 하지는 못해도. 지침은 다 따르지. 앞장서서 하는 우리 지회장 보면 미안하고 그랬는데 우리가 힘이 없어서 아직도 이러고 있으니. 답답하지.

    그래도 내가 왜 가끔 식당 앞에서 피켓 들고 시위하고 그러면 저 놈이 밥 먹고 나오다 음료수 사가지고 와서 주고 가고, 집에 가면 나보고 우리 아빠 멋있다고 하고 그런다. 자기는 이런 줄 몰랐는데. 우리 아빠가 그렇게 하는 게 멋있대.”

    내가 정말 못살아.
    왜 우리의 가난과 차별받는 비정규직은 심지어 대물림되어야 하는가?

    3.

    비정규직 노동자가 투쟁을 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나의 힘, 나의 노동으로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뿐이다. 일하는 사람이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고 그 노동의 대가로 정직하게 살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상식 아닌가?

    잘난 서울대 교수 입 찢을 분노가 내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쌍하고 심지어 더러운가? 그 잘난 서울대 교수가 앞에 있다면 입을 찢어버리고야 말겠다고 덤빌 만한 분노가 나에겐 있다. 나의 분노가 부끄럽지 않아 숨기고 싶지도 않다.

    비정규직을 철폐하자는 말,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이다. 미친년 널뛰기 하듯이 정신없이 사기치는 주식 놀음과 있는 놈들 더 잘살게 만드는 부동산 투기가 존중되는 사회의 한 구석에서 비루해지고 초라해진 노동의 가치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든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사람 사는 일이 말이다.

    불쌍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동전 하나 던져주듯이 생색내는 행위는 연대도 아니고 투쟁도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차별이 필요 없는 것처럼 동정도 필요 없다. 사람답게 살려다보니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싸움을 어떤 수준으로든 함께 하는 것. 싸움을 함께 하는 것.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을 위해, 대물림되는 가난과 차별을 중단하기 위해. 우리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말하고 싸운다. 

    우리 시대의 야만과 차별의 근원
    890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만인선언, 만인행동’에 함께 해주세요.

    1. 일만 선언
    – 선언비 5,000원을 납부해 주시면 됩니다.
    – 선언비는 신문광고비와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 기금으로 쓰입니다.
    – 입금계좌 / (신한은행) 140-008-234498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2. 일만 행동
    – 9월 23일 행동에 함께 해주십시오.
    – 개인별, 단체별 입장 표명과 다양한 참여 행동을 조직해 주십시오.
    (지역 비정규투쟁사업장 방문, 당일 퍼포먼스, 선전 등)
    –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사회운동 네트워크에 함께 해주십시오.

    3. 일정(장소는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 9월 23일 오전 10시, 조계사 /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만인선언 만인행동 기자회견
    – 9월 23일 오후 4시 / 민주노총 총력 결의대회
    – 9월 23일 오후 7시 /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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