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님, 수녀님 깡패 말고 '대화가 필요해'
        2008년 09월 24일 11: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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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에 찾아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뭔가 사들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며 가게를 찾아보았지만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건물들만 눈에 뜨일 뿐, 물 한 병 살 만한 곳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한참 걸어 다니며 가게를 찾다가 나는 이마를 쳤다.

    ‘아차, 여긴 부자 동네 강남 한복판이지!’ 대형 할인점인 줄 알고 찾아간 곳은 서울 팰리스 호텔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십 층짜리 건물들 사이를 요리조리 파고 들어가다가 간신히 편의점을 찾았다. 가진 돈으로는 컵라면 대여섯 개밖에 살 수 없었다.

    “요새는 상황이 좀 어떤가요? 제가 지난주 목요일에 오고 못 와서요.”
    “저쪽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늘 새벽에 용역 깡패들이 또 쳐들어와서 천막 다 때려 부수고 갔어요.”

       
      ▲지난 9월 17일 1차 천막 철거 모습 ⓒ 보건의료노조 서울지역본부
     

    조합원이 가리킨 방향에는 무참히 허물어진 채 더 이상 천막이 아니라 쓰레기라 해야 할 것들이 너저분하게 뒹굴고 있었다. 철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되어 있는 버팀목들은 그악스럽게 발길질을 당한 듯 깍둑깍둑 동강이 나 있었다.

    수요일 : 오후 5시쯤 천막 설치. 밤 11시쯤 용역 깡패 침탈. 천막 철거. 조합원들과 몸싸움. (몸싸움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여성 조합원들과 우락부락한 용역 깡패들 사이에 몸싸움이란 말은 당치도 않다. 실제로 용역 깡패들이 천막을 뜯어 들고 가자 천막에 매달려 같이 질질 끌려간 조합원도 있었다고 했다.)

    목요일 : 천막 없이 깔개만 깔고 농성장에서 노숙. (이날이 내가 방문한 날이었다. 싸늘한 초가을 밤을 조합원들은 천막도 이불도 침낭도 난로도 없이 버텼다.)

    금요일 : 새벽에 용역 깡패가 천막 없는 농성장에 다시 침탈. 현수막과 피켓들을 몽땅 강제로 빼앗아 감. (이날에 쳐들어 온 용역 깡패들은 여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걸까? 촛불집회에 일부러 여경들을 내보내는 수작과 비슷했다.) 오전에 천막을 다시 설치함. 밤에 연대 단위 사람들이 많이 와 주어서 다행히 그 날 밤은 무사히 넘겼다고 함.

    토요일, 일요일 : 별 탈 없이 지냄.

    월요일 : 새벽에 용역 깡패들 세 번째로 침탈, 천막 허물어뜨림. 카메라를 가장 먼저 빼앗아 갔다고 함. 

    9월 22일 월요일은 천막 농성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엿새 만에 용역 깡패와 세 번이나 맞닥뜨려야 했던 조합원들은 어처구니가 없어 다들 웃기만 했다.

    신부, 수녀들이 권력자

       
      ▲지난 22일 천막에 들이닥친 용역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진=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지부)
     

    “무슨 놈의 기독교 신자들이 이래?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깡패들만 보내고 있어요.”

    지난 2002년에도 성모병원 정규직 노조는 217일 동안 파업을 했다. 강남 성모병원은 가톨릭 중앙의료원(CMC)이 운영하고 있는 병원이다.

    병원장과 간부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몇 명이 알짜배기 권력을 쥐고 있다고 했다. 지난주 목요일에 방문했을 때도 그랬지만 오늘 와서 있는데도 신부님들 수녀님들이 병원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병원 내부 사정은 지난 주에 왔을 때 얼추 들을 수 있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700여 명 중 400여 명이 직접 고용 노동자들이고 나머지 300여 명이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라 한다. 그 중 간호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65명인데 9월 말에 계약 만료가 되는 파견직 노동자들이 그 65명 가운데 28명이나 된다.

    2년 이상 고용하면 무조건 정규직으로 바꾸어 주어야 하니 병원 측에서는 계약 만료가 되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해고 통보를 했다. 비정규직법이라는 막돼먹은 악법 때문에 어디서든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막돼먹은 비정규직 관련법

    기륭전자, 이랜드, KTX, 코스콤 같은 유명한 장기투쟁사업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과 네티즌들의 관심 바깥에 있는 다른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 사업장들에도 비정규직법 때문에 한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바글바글했다.

    8월 18일에 보건의료노조에 가입한 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8월말까지 계속 투쟁을 준비해 가다가 9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병원 안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9월 17일에 처음으로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그 날 밤에 곧바로 용역 깡패들에게 침탈당했다. 매일 저녁 여섯 시 반에 농성장 앞에서 촛불 문화제도 연다고 했다. 농성은 하고 있지만 파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서 돌아가면서 근무도 나간다고 했다.

    “여기 성모병원이 처음에 오면 적응하기 힘들어요. 일이 너무 많아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요. 그게 적응이 되고 숙달이 돼야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이제 일이 손에 익을 만하니까 그만두라는 거야.”

    “정말 꾀 안 부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출근해서 일했어요. 안 그러면 잘리잖아. 비정규직이고 파견직이니까 밉보이면 그냥 잘리는 거야. 그래서 우리는 정규직들보다 몇 배는 더 죽어라 열심히 일했어요. 근데 그걸 병원 측은 모르지.”

    “비정규직이라서 정규직들보다 인격적으로 못한 것도 아니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 사람들(정규직)은 예전에는 다 정규직으로 뽑았으니 그때 들어와 정규직인 거고, 우리는 시대를 잘못 만나서 비정규직이 된 거죠. 지금은 몽땅 비정규직으로 뽑는 시대잖아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촛불문화제에 참가 중인 조합원들(사진=보건의료노조)
     

    “아까 촛불 문화제 때 발언도 했지만, 정말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야.”

    “이판사판이야. 우리끼리 뭉치는 수밖에 없어.”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두셋씩 짝을 지어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간호사들도 보였다. 그리고 늘 마음씨 착하게만 보이는 수녀님들도 보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 말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하느님의 종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왜 노동자들이 벌이고 있는 고단한 싸움을 모른 체하는 것일까? 왜 본체만체 싹 입 닦고 그냥 휙 지나가 버리는 것일까?

    ‘노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을 ‘사탄의 무리’라 낙인찍었던 이랜드 박성수 회장, 독실한 종교인이라는 그 허울 좋은 노인네가 문득 떠올랐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화단 주변으로 놓인 ‘부당 전직 철회!’라고 씌인 피켓이 눈에 띄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노조는 ‘사탄의 무리’

    “농성자들 중 5명이 본사로 파견 발령이 나 버렸어요. 우리가 본사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거든요. 대기발령인 셈이죠. 명백한 부당 전직이어서 노동부에 고소 고발을 할 예정이에요. 노동위원회에는 부당 노동해고 구제신청도 할 거구요. 오늘 노무사랑 얘기도 했어요.”

    결국 피켓에 쓰여 있는 ‘부당 전직 철회!’는 파견업체에서 들이댄 협박이 현실이 되고 나서 등장한 구호였다. 도대체 종교라는 탈을 쓰고 있는 이 병원의 정체는 뭘까? 나는 다시금 가슴이 답답해졌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정말 뜨겁죠! 저희가 농성 들어갈 때부터 정규직 분들이 많이 걱정해 줬어요. 어려울 거다, 많이 다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전에 217일 동안 투쟁한 경험도 이야기해 주시고….. 농성장에 지지 방문도 많이 오셔서 격려해 주시고 먹을거리들도 사다 주시고 그래요.

    오늘은 병원 로비에서 연좌 농성하고 여기로 와서 노숙하고 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서 격려해 주고 가셨어요. 지원금을 모아서 주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정규직 노조와도 투쟁 내용은 공유하고 있어요. 오늘 새벽에 천막 침탈당한 것 때문에 정규직 노조에서 원장실 쪽에 항의 방문 갔다고 하더라구요.”

    이 자리에 지금 정규직 노조에서 나오신 분이 있냐고 물으니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규직 노조나 보건의료노조가 이 싸움에 현재 어느 정도나 힘을 보태고 있는지 물어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필요한 물품이 없는냐는 질문에 한 조합원이 "침낭같은 건 있고….아, 생각났다. CCTV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CCTV가 필요해요

    “맞아요. CCTV나 경보기 같은 거. 깡패들이 순식간에 모든 걸 걷어가서 자료 하나를 못 남겼어요. 그놈들이 다 때려 부수는 걸 찍어 뒀어야 하는데…… 오늘 새벽에도 카메라를 제일 먼저 뺏어갔어요.”

       
      ▲사진=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지부
     

    오죽하면 조합원들이 감시 카메라를 갖고 싶어 할까. 엿새 동안에 세 번 침탈. 무서운 일이었다. 병원을 운영하는 종교인들이 보기에 용역 깡패들은 성전을 수행하는 십자군이나 다름이 없을까? 병원 측 종교인들은 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사탄의 무리라 생각하고 있을까?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어린 양들이라 생각하고 있을까?

    자본 추악한 얼굴 가려주는 종교라는 가면

    모를 일이었다. 종교라는 것이 자본의 추악한 맨 얼굴을 가려 주는 훌륭한 가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이랜드라는 경우가 똑똑히 보여주지 않았나! 과연 성모병원은 어떨까?

    곧 있으면 열두 시였다. 하루가 지난 것이다. 지난 주 수요일부터 시작한 농성이 어느덧 7일째를 맞이한 것이었다. 이제는 날짜를 헤아리기도 싫은 기륭전자, 날짜를 어림해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KTX와 이랜드……

    성모병원 조합원들이 울며 웃으며 투쟁 100일 200일 문화제를 진행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장기투쟁사업장이라는 눈물겨운 이름을 붙여 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종교의 이름으로 의술을 행한다는 이곳 성모 병원에만큼은.

    나는 집에 가서 글을 써야 한다는 핑계로 그곳을 나왔다.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조합원들의 밝은 목소리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당장 오늘밤에도 깡패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천막은 또다시 허물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 시대는 거리로 내몰린 조합원들에게 비를 피하고 잠을 청할 조그마한 공간조차 허락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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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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