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권명희 분회원 49제 추도식
    By mywank
        2008년 11월 12일 07:48 오후

    Print Friendly

    가난이 노랗게 현기증처럼 소용돌이치던 공장이었지만,
    뜰에 환하게 핀 라일락과 목련이 있어
    봄이면 그 꽃 누구나 볼 수 있게 담장도 대문도 환하게 열려있어
    조금은 위로였던 공장이었죠.

    일만 시켜준다면 감지덕지 했던 회사와 사장님은
    가난한 이들의 두 눈을 흐리게 흔들리는 빛나는 꽃이었고
    밥줄, 희망 줄 거머쥐고 높고 높은 하늘이었지요. (중략)

       
      ▲추도식에서 민중가수 박준 씨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기륭전자 조합원의 노래’를 낭송하는 오석순 기륭전자 분회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지난 9월 29일 암으로 운명한 고 권명희 기륭전자 분회원의 ‘49제 추도식’이 12일 오후 4시 가산동 기륭전자 공장 앞 농성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고인의 남편인 최동철씨와 아들 기석군, 딸 수경양도 참석했다. 

    이날 기륭전자 분회는 고인이 운명한 지난 9월 25일 이후 기륭전자 분회 농성장을 찾은 시민들이 성금으로 낸 ‘유가족 자녀 장학금’ 200만원을 남편에게 전달했다. 그가 잠시 마이크를 잡고 심경을 밝혔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 꼭 승리하기를 기원해요. 기석와 수경이 최선을 다해서 보살피겠습니다. 기석이 엄마도 제가 살아있을 때까지 잘 보살필게요”

       
      ▲사진=손기영 기자
     

    ‘권명희 동지의 염원이다. 현장으로 돌아가자’ 권명희 분회원의 영정사진 위에는 살아 생전 그의 바람이 담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하지만 사진 뒤로 자리한 기륭전자 공장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김소연 분회장이 분향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49일 전 언니를 보내면서 ‘투병 중에서도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언니의 염원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스팔트에 앉아 있어요. 여기 가족 분들도 오셨는데, 우리들의 목표는 사람이 사람답게, 가족들과 소박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그는 또 참석자들에게 “오늘 권명희 분회원의 49제를 맞아,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내 사업장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비정규직이 철폐되는 날까지 서로 돕고 더불어 살자고요. 오늘 ‘이랜드 사태’가 해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언니가 이 소식을 들었으면 누구보다 좋아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영정에 분향하고 있는 최은희 진보신당 대외협력실장 (사진=손기영 기자)
     
       
      ▲진혼굿을 하고 있는 이삼헌 씨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추도식장에는 이경옥 이랜드 일반노조 부위원장과 조합원들도 참석했다. 또 민중가수 박준, 강성만 씨의 추모공연과 이삼헌 씨의 진혼굿도 진행되었다. 성경책을 들고 추도식장을 찾은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대표인 정진우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솔직히 권 동지를 잘 알지 못해요.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죠.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아니고, 권 동지처럼 제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저는 권 동지를 추모할 자격이 없고,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찾은 것은 제 한마디가 분회원들과 유족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다시는 억울함이 없는 세상이 올 것에요. 권 동지와 여러분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는 날이 반드시 올 거예요.”

       
      ▲김소연 분회장 뒤로 고 권명희 분회원의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어느 덧 고 권명희 분회원의 영정사진 앞에는 하얀 국화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가장 성실한 노동자”, “가장 자애로운 엄마”, “가장 아름다운 아내”, “가장 신심이 곧았던 조합원”….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기륭전자 분회원들은 그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