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연장을 위한 자민당의 ‘생쑈’
        2008년 09월 16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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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국내에서 “쇼를 하라 쇼”를 외치는 TV 광고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지난 9월1일 후쿠다 수상이 ‘돌연’ 사임을 표명한 이후, 일본 자민당의 지상명령이 바로 “쇼를 하라, 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쿠다 수상의 전격적인 사임 표명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충격과 비판이 공존한다. 아베 전 수상에 이어, 두 번째로 수상이 “정권을 내던져 버렸다”는 비난이 여론의 주를 이루고 있다.

       
      ▲ 지난 1일 후크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발표를 했다.
     

    "쇼를 하라, 쇼"

    전임 수상들의 이미지(!), 즉 고이즈미의 추진력과 ‘쇼맨십’, 아베의 ‘전후 세대’와 ‘젊음’과는 달리 밋밋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후쿠다 수상에 대한 이미지와 국민감정이 맞물려 최악의 민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생 쑈’를 하지 않는 한 정권연장의 꿈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아소 다로 현 간사장, 요사노 가오루 현 경제재정상, 이시하라 노부테루 전 정조회장,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상 등 5인과 이에 더해 소장파 중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아무튼 화려하다 못해 요란하기까지 한 선거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후쿠다 수상의 사임 혹은 중의원 해산과 조기선거가 운위되었던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아베 전 수상이 ‘내던진’ 정권을 이어받은 후쿠다 내각은 ‘과도 내각, 선거관리 내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한때는 올해 봄의 중의원 해산, 조기선거 실시 얘기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다 수상은 자신의 손으로는 해산을 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반복해서 표명했었다. 또한, 지난 7월 홋카이도에서 열린 G8정상회담에도 의욕을 보이고 8월 초에는 내각 개편까지 단행했다. 이에 따라 정치평론가들의 ‘중의원 해산, 조기선거’ 예측은 연말연시로 밀렸다. 내각 개편을 한 이상, 빨라도 임시국회에서 일정의 성과를 올린 다음 중의원 해산을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임시국회 소집일이 결정된 직후, 그리고 9월 말의 임시국회가 시작도 되기 전에 수상이 사임을 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늦어도 11월에는 중의원 해산과 선거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민+공명 연립정권’ 연장을 위한 발버둥

    그렇다면, 후쿠다 수상의 사임 결정의 배경은 무엇인가? 사임표명 기자회견에서 후쿠다 수상의 발언 중에 주목해 볼 말들이 있다. ‘내각지지율, 새로운 포진, 공명당과의 관계’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 배경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우선, 바닥을 치고 있는 내각 지지율이다. 후쿠다 수상은 지난 8월 초 개각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이며, 정책적 입장도 크게 다른 아소 다로 전 외상을 간사장으로 임명했다. 일본에서 집권여당의 경우, 당수(총재)가 수상이기 때문에 간사장은 당수를 대신해 당의 관리와 얼굴 역할을 한다. ‘총재 대행’인 셈이다.

    그런 자리에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을 앉히는 것은 무척 예외적인 경우다. 아소 다로의 대중적 인기를 활용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지지율은 소폭의 상승 기미를 보인 것을 빼고는 여전히 20%대에서 헤매고 있었다.

    두 번째는 중국산 만두 문제와 오오타 신임 농림수산상의 실언과 위장사무실 운영 의혹, 연금제도 및 후기고령자 의료보험 문제, 사회보험청의 연금기록 누락과 기업과 결탁한 연금 산정액 위조 등의 의혹이 연이어 불거진 것도 사임 표명을 앞당긴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 중에서 중국산 만두 문제와 오오타 신임 농림수산상의 문제를 빼고는 대부분 고이즈미 정권이 시행한 정책의 결과이고, 산적한 국정과제를 앞에 두고 정권을 내팽개친 아베 전 수상이 남겨 놓은 과제들이다.

    돌연 사임 혹은 시나리오(?)

    가장 큰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연립정권을 형성하고 있는 공명당과의 갈등이다. 공명당은 그동안 ‘조기 해산과 중의원 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또한, 아소 다로 전 외상의 중용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왔다.

    공명당이 아소 다로를 밀고 있는 것은 그의 대중적 지명도와 인기라는 부분 뿐만아니라 ‘선거 대비용’ 추경예산 편성을 요구하는 공명당과 입장이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적극적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을 주장하고 있는 아소 다로는 조기 선거를 주장해 온 공명당의 입장에서 입맛에 맞는 인물인 것이다. 후쿠다 수상이 아소 전 외상을 발탁한 배경에는 이와같은 공명당으로부터의 압력과 갈등관계도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공명당은 중의원 의석이 31석 밖에 되지 않는다. 한 자리 수 의석에 불과한 공산당, 사민당에 비하면 훨씬 많은 의석이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숫자다. 그러나 작년 7월의 참의원 선거 참패 이후 (관련기사 참조 궁지에 몰린 아베, 위기에 처한 자민당 ) 자민당은 공명당의 협력이 없으면 정권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참의원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자민당의 의안을 부결시키면 중의원에서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 재의결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공명당의 의석을 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내각이후 자민당 내 파벌 정치와 지역기반들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황에서 공명당의 탄탄한 조직력과 자금은 선거에서 큰 힘이 된다.

    공명당은, 지난 4월 총선에 참가한 한국의 평화통일가정당처럼 ‘창가학회’라는 종교단체가 만든 정당이다. 창가학회는 통일교처럼 대학을 비롯한 각급 학교, 각종 재단, 회사, 탄탄한 지역조직과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자금과 조직은 자민당의 입장에서도 큰 덕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민주당과 야당에서는 후쿠다 수상이 지난 8월초 아소 다로 전 외상을 간사장으로 임명했을 때, 이미 아소 다로 간사장에게 정권을 넘기고 그를 얼굴로 삼아 선거를 치르는 시나리오가 만들어 졌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시기가 문제였지 자민당 내의 거물 정치인들과 후쿠다 수상, 아소 다로 간사장, 특히 공명당과의 사이에는 아소 다로를 중심으로 중의원 해산 선거를 치룬다는 밀약이 있었다는 얘기다.

    고이즈미 신자유주의 정책의 후과

    후쿠다 수상과 공명당의 관계는 ‘중의원 해산 조기선거’, 인도양에서 시행 중인 자위대의 미군 급유활동 재연장, ‘아소 카드 활용’ 등에서 틀어져서 추경예산 편성 과정에서 극적으로 표면화되었다.

    이번 9월말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한 추경예산안은 ‘재정지출 경기부양‘ vs ’정부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두 주장의 타협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지만, 공명당의 입장에서는 정부 재정건전화 쪽에 치우쳐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명당의 협력을 끌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후쿠다 수상과 공명당의 갈등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해프닝’이 사임 기자회견 직전에 벌어진 ‘개혁클럽’ 결성 실패다.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이 탈당해서 ‘개혁클럽’이라는 원내교섭단체를 결성하려고 했다. 이러한 움직임 뒤에 자민당이 있지 않는가라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사실 후쿠다 수상도 그러한 움직임에 상당한 기대를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탈당자는 4인에 그쳤다. 말 그대로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명당의 협력 없이 당의 상승기운을 확보해 보고자 했던 후쿠다 수상의 기대가 완전히 좌절된 셈이다.

    종합해 보면, 이번 후쿠다 수상 사임은 ‘자민당+공명당’ 연립내각의 정권연장을 위한 발버둥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베 전 수상의 돌연사임, 그리고 후쿠다 내각의 저조한 지지율, 민주당의 정권교체 기세의 상승 등으로 인해 정권을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낳은 ‘추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는 자민당의 의원들과 파벌의 거물정치인들, 그리고 연립정권의 캐스팅보트로서 짭짤한 재미를 보아 온 공명당의 합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본다면, 현재 일본은 이른바 ‘고이즈미 개혁’의 후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후쿠다 내각이 지지율 회복을 못한 이유는 수상 개인의 능력이나 퍼스낼리티에만 원인을 돌릴 수 없다.

    ‘격차사회’의 심화와 고용 및 생활의 불안정, 급속한 노령화 사회의 진행과 그에 뒤따르지 못하는 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 등 각종 사회안전망의 동요 등은 2000년대 들어 고이즈미 전 수상이 강행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남겨 놓은 난제 중의 난제들이다.

    반면에, 이른바 ‘구조개혁’에도 불구하고 연금기록이 누락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고, 사회보험청이 기업과 결탁해 기업의 부담금을 줄여주기 위해 연금산정액을 축소시켜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일본 ‘관료조직의 부조리’가 온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구조개혁’으로 인해 서민들은 냉혹한 약육강식의 경쟁으로 내몰렸지만, 일본 사회 기득권구조를 지탱해온 ‘정계-관료-재계 유착’의 트라이앵글은 지속되고 다른 형태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뿐만이 아니라, ‘구조개혁’이라는 레테르를 붙인 모든 신자유주의 정책의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정치의 부재’가 ‘정책의 표류’를 낳고, 다시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의 부재를 낳은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 일본의 실상이다. 정치 부재와 정책 표류가 결과한 모든 피해가 보통의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가지다.

    정치 부재, 정책 표류

    또한, 현재 일본의 모습은 대표체계(representative system)의 실패가 낳은 ‘희극적 사례’의 하나로 남을 지도 모른다. 의원내각제와 불안정하고 신뢰를 상실한 정당시스템의 조합이 결과하는 최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가 없어도 나라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될 정도이다.

    정권을 중간에 내던져서라도 ‘권력의 좌’를 연장해보겠다는 자민당의 선택은, 역설적으로 ‘자민+공명’ 연립정권 리더십의 한계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대안이 있는가라는 문제이다.

    현재까지는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기세를 올리고 있다. 투표선호도에서는 민주당이 지속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각지지율과 달리 정당지지율은 여론조사에 따라 자민당과 민주당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수상으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는가’에서는 아소 다로가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정권교체의 길이 그리 순탄한 것만도 아니다

    정치권력이 권위에 대한 정당성을 상실하고 대표체계가 신뢰를 상실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때, ‘정치적 쇼’를 연출해 이슈전환을 노리고자 하는 유혹은 점점 강해질 수밖에 없다.

    영미의 정치이론을 중심으로 한 주류 정치학자들 중에는 ‘원래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따분한 것이다’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식 민주주의’ 정치의 현실일 뿐이다. 대중이 정치를 따분한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정치형태가 바로 미국식 ‘엘리트 정치’이며, ‘미디어 정치’이다.

    그러한 정치적 현실 속에서는 ‘쇼를 잘하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이나 미디어를 장악할 만한 ‘자본-그것이 경제자본이든, 문화자본이든, 사회자본이든, 상징자본이든-을 확보한’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권력에 접근하게 된다.

    일본의 정치인 중에서 그러한 시대상황에 가장 잘 적응한 인물이 바로 고이즈미 전 수상이다. 2005년 9월 중의원 선거에서 젊은 여성후보를 발탁한다든지, 자신의 우정민영화에 반대해 탈당한 의원들의 저격수로 젊은 신인 후보들을 활용하는 전략으로 ‘고이즈미 극장’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고이즈미식 ‘극장 정치’, 다시 통할까

    차기 총재선거에 임하고 있는 자민당은 ‘고이즈미 극장’을 재연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후쿠다 수상의 기자회견부터 그렇다. 9월1일 저녁 9시30분에 개최된 기자회견은 같은 날 낮에 행해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의 당대표 선거 출마 기자회견에 맞춘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한, 후쿠다 수상이 아소 간사장에게 차기 총재선거를 “화려하게 해 달라”라는 말을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민당이 발표한 향후 정치일정도 매번 민주당의 정치일정 다음 날이나 2-3일 직후로 맞춰져 있다. 여성후보 추대가 ‘장사가 된다’는 이유로,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이 출마를 표명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또다시 ‘극장 정치’가 통할 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특히 2005년 9월11일 중의원 선거는 매스미디어가 고이즈미 전 수상에게 ‘압승을 선물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극심한 비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각 방송들은 균형감을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무엇보다도 두 번씩이나 정권을 내던지고 각종 부정부패와 의혹으로 점철된 자민당 정권에 일본 국민들이 또다시 표를 줄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일국의 국내정치적 변화가 단순히 일국의 국경 안에 머무르지 않음을 절실히 체험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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