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좌파와 전쟁 각오, 동지들에 미안
    '대한민국 좌파'하자, 야권재편 필연
        2008년 09월 15일 07: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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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대환의 글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와 좌파의 진로’를 놓고 논쟁 중이다. 그 글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경로와 글의 내용에 대한 공방이 진행 중인 가운데 <레디앙>은 대구의 장태수 현장기자(대구서구문화센터 대표)의 주대환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인터뷰는 몇 차례의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편집자 주>

    죽은 김철순과 산 주대환

    장태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웃음), 우선 개인적인 인연을 상기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당신은 여전히 ‘김철순'(80년대 노동운동 당시 주대환의 필명-편집자)이란 이름으로 나 같은 후배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잊지 말아 달라. 그리고 과거에 함께 했던 선배들이 서로 잘 지내고 의논도 자주 했으면 좋겠다.

       
     ▲주대환.
     

    주대환 이 정도면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 그래도 후배들의 마음이 불편하다면 미안하다.

    그러나 다 큰 어른들더러 아내(또는 남편)나 직장 동료나 동업자보다 먼저 어릴 적에 함께 자란 형제와 의논하지 않는다고 야단치는 것 같은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죽은 김철순이 아니다. 살아 있는 주대환이다.

    장태수 그건 그렇다.(웃음) 그러면 김철순과 주대환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대환 그건 진리의 근원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믿었던 30대 이상주의자와 진리의 근거가 경험이라고 믿는 50대 실용주의자의 차이다. 맑스-레닌주의자와 페이비안 사회주의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의 차이다.

    내 책임이 너무 크다

    장태수 좋다. 이제 본격 질문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왜 뉴-라이트 계간지 <시대정신>에 기고를 하였는가?

    주대환 뉴-레프트 계간지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첫 준비호가 이번에 나온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다. 나는 그 책과 동시 게재를 염두에 두고 <시대정신>의 청탁에 응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 너무 늦게 나와서 동시성이 떨어진다는 편집진의 의견에 따라 그 글(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을 보완하는 다른 글(한국 사회민주주의의 오래된 미래, 여운형과 조봉암)을 새롭게 써서 싣게 되었다.

    장태수 지난 번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는 왜 했는가? “자유의 몸이 되었음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말했는데 무슨 뜻인가? 오랫동안 몸 담아온 진보정당을 떠나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혹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으로 팔려가려는 것 아닌가?

    주대환 총선 직전 참으로 답답했다. 지하 감옥이나 정신병동 같은 곳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래서 탈출하고 싶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1992년에 ‘노동당’ 노선을, 그리고 1987년에 ‘독자 후보(정당) 노선’을 주장했던 책임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운동권 이데올로기는 난치병"

    장태수 그 짐을 벗으려고 독자 정당 노선을 포기한 것인가? 이제 와서 독자 정당 노선을 포기하자는 말이 진심인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주대환 그렇다. 그 동안 고생시킨, 아니 함께 고생하신 분들에게 미안하다. 장 의원(장태수는 대수 서구의회 의원을 지냈다-편집자)처럼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또 다시 고생을 더 해보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는 나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그 고생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장태수 뉴-레프트 운동을 주창하고 있는데, 내용에는 일부 공감하지만 뉴-라이트를 연상하는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다. 좀 바꿀 수 없나? 그리고 뉴-라이트와 너무 친한 것 아닌가?

    주대환 뉴-레프트는 ‘올드-레프트’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올드-레프트와의 단절과 전쟁을 각오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자들끼리 이야기를 해보면 일반 대중보다 운동권 출신들과의 대화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오래 전에 머리 속에 박힌 ‘운동권 이데올로기’는 본인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극복이 안 되는 난치병이다. 사회민주주의연대 회원들끼리 조직 활동의 방향을 의논하다 ‘운동권 물을 한 잔이라도 덜 먹은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하였다. 뉴-라이트가 나의 주장에 호감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독자노선 포기는 양심 문제, 뉴라이트 호감 표시는 자유”

    장태수 <조선일보>의 칼럼리스트 류근일은 ‘커밍아웃’이라고 하고 <레디앙>의 이광호 편집국장은 ‘전향’이라고 했다. 동의하는가?

    주대환 언론인은 좀 ‘선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이해한다. ‘전향’이라면 나는 1992년에 이미 했다. 16년 전이다. 이번에 내가 한 것은 민주화 과도기 20년 동안 대립해온 두 입장, 비판적 지지파와 독자후보(정당)파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며, 노동조합을 근거로 ‘노동당’을 만들어서 ‘자유당’을 넘어서겠다는 전략의 폐기다.

    장태수 나도 그렇게 읽었다. 독자적인 좌파정당을 만들어서 정치구도를 재편하자는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자유주의 좌파까지도 정치 연합의 대상으로 상정하자는 새로운 제안이 그 글의 요지라고 읽었다.

    그런데 소선거구제를 영원불변하는 조건으로, ‘두베르제의 법칙’을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도 최근에 선거제도가 바뀌었다. 좀더 길게 인내심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한미 FTA, 의료 민영화 등을 추진하던 구여권의 자유주의자들(김근태, 이해찬, 유시민 등)과 과연 연대할 수 있겠나?

    주대환 지난 10년 동안 정권에 참여했던 분들 중에서 한미 FTA,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의, 국정 운영에 참여한 경험은 소중하다. 그리고 구여권이 이제는 야당이 되었으며, 야당 중에서도 아웃사이더가 된 분들이 많다.

    그들이 과연 여당과 차별화도 하지 않고, 지난 10년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자기 혁신도 없이,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도 없이 앞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갈 수 있겠는가? 야권 전체의 재편은 필연이다.

    야권 전체 재편은 필연

    장태수 분당 사태 당시에 <조선일보>에 두 번이나 인터뷰를 한 것은 모두를 무척 당황하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NL 비판을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시원하기도 했지만 하필 <조선일보>냐 하는 당혹감이 있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 이어 <시대정신> 기고를 하면서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런 행동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과 비판이 거세다.

       
      ▲장태수.
     

    주대환 나는 지식인들이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조선일보>에 기고와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을 존경한다. 그런데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언론 매체를 가릴 수 없다.

    정치하는 사람이 <조선일보>에 인터뷰한다고 큰 죄나 지은 듯이 말하면 웃기지 않는가? 그럼 선거운동 할 때 재향군인회나 자유총연맹 사람과 악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인가? 

    장태수 왜 진보신당에는 참여하지 않았는가?

    주대환 나는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반대했다. 분당은 아주 잘못된 일이다. 분당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연대 회원들이 진보신당에 참여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사회민주주의연대 회원들끼리도 정치 전략에서는 생각의 차이가 있다.

    “민노 10년 안에 사라지고, 진보신당 녹색당으로 가야"

    장태수 진보신당을 PD의 당으로, 그리고 PD파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벗어나지 못한 ‘박헌영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자기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지나친 단순화가 아닌가?

    주대환 그렇다. 그러나 장 의원 같은 분들이 생각해야 할 다른 면도 있다. 태양계 바깥에 있는 사람이 태양계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지구당 폐지 반대, 투명 회계, 당직공직 겸직금지, 일심회 사건, 분당 사태 등 중요한 순간마다 운동권 PD의 사고방식, 목소리만 들리고 보이는데, 그대들의 ‘운동권을 졸업했다’는 생각은 자기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장태수 진보신당의 앞날에 대해서 녹색당이 되리라고 했는데?

    주대환 내일 일을 누가 알겠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미래를 예측한 말들은 분명 ‘오버’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민주노동당은 곧, 10년 안에 (통합 야당에 합류하여)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진보신당은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존재로 존속이 가능하다고 본다.

    단, 촛불 시위의 흐름을 타고 녹색당으로 진화해나간다는 것이 전제다. 갈수록 심각해질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으로 볼 때 녹색당의 존립 근거는 충분하다. 이 이야기는 진보신당을 ‘진정한’ 노동자 정당으로 만들려는 분들과는 다른 전망이다.

    그리고 남재희 선생의 “민주당과 문국현당과 진보신당이 연합하고,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길을 갈 것”(<레디앙> 2008. 4. 18)이라는 장기 예측과도 다르다. 2000년의 ‘노동당’ 꿈은 이미 깨어졌다. 단병호 위원장께서는 버스 지나가고 나서 손들고 있다.

    “케어 하디는 노회찬처럼 하지 않았다”

    장태수 민주노동당의 대표 선거에서 강기갑 의원이 이수호 위원장을 눌렀다. 어떻게 보는가?

    주대환 이수호 위원장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커밍아웃’을 하였기 때문에 NL파가 민주노총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미는 이수호 후보를 떨어뜨리는 무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수호 당대표, 강기갑 원내대표’가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정서를 고려한 무난한 구성일텐데 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은 한층 더 식을 것이다.

    장태수 지금 만들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연대는 무엇을 하자는 단체인가?

    주대환 당적을 불문하고, 정당이나 단체 소속을 초월하여 순수하게 ‘사회민주주의’라는 깃발로 모여보자는 것이다. 정당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순간에 경쟁 관계가 될 것이다. 시간의 힘이 가장 세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을, 곧 사라질 그 무엇이 아니라 영국의 페이비안협회처럼 100년을 갈 그 무엇인가를 만드는 데 바치고 싶다. ‘사회민주주의연대’는 정당들의 흥망과 이합집산을 초월하여 100년을 갈 것이다.

    장태수 이 자리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이다. 지난 대선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서 왜 오랜 동지 노회찬을 지지하지 않고 권영길을 지지했나?

    주대환 노회찬은 정말 훌륭한 동지이고, 유능한 대중 정치인이고 스타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선수에게도 코치가 필요하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보는 풍경은 좀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영국노동당을 만든 케어 하디는 노회찬처럼 하지 않았다. 더 많이 인내하고 양보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노동조합 간부들의 부족함과 근시안과 보수성을 인내하고, 그들의 별로 맞지 않는 의견과 권력욕에 양보했다. 민주노총의 간부들은 100년 전 영국의 노동조합의 간부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그런데 그들의 뜻이 권영길 후보에게 있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정치세력화에 소극적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돈과 표를 모으자고 호소하는 명분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우리가 책임지자”는 데서 찾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나의 권영길 지지는 1992년부터 내가 걸어온 ‘노동당’ 노선에 따른 것이었다.

    신학자와 운동권의 공통점

    장태수 왜 그렇게 사회민주주의에 집착하나? 굳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고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다수가 사회민주주의적인 실천을 하고 있지 않은가?

    주대환 같은 경전을 읽고,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비슷하게 착한 사람들 중에서도 개신교도가 있고 가톨릭 신자가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은 같은 성경을 진리의 원천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다른 종교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성경책을 읽는 친구를 향해서 “당신은 개신교도냐 아니면 가톨릭신자냐?”를 묻는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고서 우물쭈물 횡설수설 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질문한 사람은 혹시 화를 내면서 이렇게 소리칠 지도 모른다. “야, 너 교회 다녀, 성당 다녀?” 그런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한다면 어떨까? “야, 나 사실은 무지개 기독교도야!”

    장태수 사회민주주의적인 정책을 주장한다든지 행동을 하는 것과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그러나 사회주의자가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두 종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너무 단순하지 않나?

    주대환 아까 비유를 그대로 살려 보겠다. 질문한 사람, 그가 매우 드물게 유식한 사람이라면 마침내 “이 사람은 혹시 신학자가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신학자들 중에는 심오한 교리 연구를 하다보니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가를 이유가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이나 운동권이나 공통점은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도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교회와 성당은 구분할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 좌파’를 하자

    장태수 조봉암을 강조하면서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지고 보면 사회민주주의도 오래 된 것이 아닌가?

       
      ▲뉴레프트 기관지 첫 준비호.
     

    주대환 정체성이나 족보는 중요하다. 김씨인지 이씨인지를 밝히는 것이 왜 중요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는가에 따라 달리 듣는다. 나는 ‘대한민국 좌파’를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조봉암으로부터 유래한다.

    장태수 뉴-레프트 운동으로 좌파를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하는데, 말은 그럴 듯하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특히 그렇게 20년 동지들에게 등을 돌리고서 돈키호테처럼 혼자 치고 나가서 잘 되겠는가? 좋은 뜻이라면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주대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난 20년을 함께 해온 옛 동지들이 지구당 폐지를 규정한 신정당법(이른바 오세훈법)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일심회 사건 당시에 모두들 침묵하고, 내가 마산에서 시작한 ‘민주노동당은 김정일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한다’는 서명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심지어 어떤 분은 서명운동을 반대, 폄하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서 기대를 접었다.

    그 때부터 혼자 가기를 각오했다. 그리고 분당할 때도 그랬다. 똑똑한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하니 어쩔 도리가 있나?

    장태수 그래도 혼자 가는 길은 위험할 수 있다. 함께 갈 수 있도록 더 자주 대화를 하자.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주대환 제주도에서 국내 자본의 영리 의료법인 허용을 막아낸 일이다. 김태환 지사가 제주도의 경제를 살리자는 압도적 명분을 앞세우고, 전체 공무원들을 동원하여 10만 명의 제주도민을 일대일 접촉 설득하여 60% 이상 지지를 장담했다. 그런데 여론 조사 결과는 1.7% 반대가 많았다.

    이상이 교수를 비롯한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위대한 제주도민의 승리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우리나라 복지 체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건강보험의 훼손이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제주대첩’이라 할 만하다.

    ‘제주대첩’에서 희망을 본다

    장태수 국민건강보험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아직 보장성도 낮고 문제가 많지 않은가?

    주대환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도 현실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 속에, 대한민국에 사회주의는 존재한다. 이미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요술로 만들어 낼 것인가? 과거에 토지개혁이 있었고, 지금 4대 사회보험이 있고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공급하는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가 있다. 종부세와 상속세가 있다.

    힐러리는 경선 패배에 승복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조건으로 국민건강보험의 도입을 내걸었다. 폴 크루그먼이라는 경제학자는 국민건강보험의 도입을 위한 투쟁으로 미국 진보진영을 재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있는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

    장태수 개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겠다. 요즘 일상생활은 행복한가? 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지내는가?

    주대환 다른 주부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생활이다. 주부들이 보기보다는 바쁘다. 늦둥이 아들 녀석이 고3이라 그 놈 뒷바라지에 조금 바쁘다. 물론 틈틈이 취미 생활(책읽기와 글쓰기)도 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간간히 맨발 등산을 하는 점이다. 발바닥의 아픔으로 마음의 아픔을 달래고 있다. 그러나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리는 어느 곳에만, 누구에게만 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동지, 또는 도반(道伴)이 어느 곳에만 있지는 않다.

    장태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요즘 본 영화 중에서 권하고 싶은 영화는?

    주대환 <미션>이다. 배경 음악도 좋아서 CD를 구해 차에서 듣고 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요즘 본 영화 중에서는 <크로싱>이 좋았다. 많이 울었다.

    장태수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주대환 짧은 인생, 정직하게 살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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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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