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도전, 사다코 그리고 정치
    By
        2012년 04월 18일 10:48 오전

    Print Friendly

    고백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나는 ‘무도빠’다. 무도빠로서의 충성도를 매기면 뭐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닐 수 있겠으나 어찌되었든 나는 충성스러운 무도빠이다. 그래서 언젠가 TV 프로그램과 관련된 글을 쓴다면 단연 그 제1번은 ‘무한도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도 없이 명멸해간 디씨 갤러리 리뷰북 프로젝트 중 역대 최대의 프로젝트였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무한도전 100회(200회) 기념 리뷰북 프로젝트’(포털사이트에 ‘무한도전 리뷰북’을 검색해보시라)를 만든 이들에 비하면 나는 ‘닥본사’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연말이면 다이어리와 달력을 사고, 일년 내내 토요일 저녁 약속은 가급적 피하는 빠는 빠다. 그런 내가 요즘 주말이면 거실을 뒹굴며 몸부림을 치는 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넌씨눈("넌 씨X 눈치도 없냐"의 인터넷 용어) 김재철’ 때문이다.

    이 글을 쓸 때 쯤이면 무한도전 ‘하하 vs 홍철’의 마지막회를 보며 감동적 눈물과 캔맥주를 동시에 마시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무한도전은 사골곰국 우려내듯 스페셜 방송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충성스러운 우리의 무도빠들은 곰국을 감사하게 들이키고 있지만.

    파업과 무한도전

    무한도전 곰국을 보며 우리의 충성스러운 무도빠들은 파업 중인 피디를 탓하지 않는다. 방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길 바라지만 진정 무도빠들이 원하는 것은 ‘환갑기념 무한도전’이지 가카 치하에서 곧 사라질 것 처럼 위태위태한 방송이 아니다.

    멤버들과 제작진이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은 것이지 이리저리 잘리고 재단당한 방송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는 괜찮아"라며 피디가 아닌 ‘넌씨눈’ 김재철 사장을 욕하며 매주 곰탕을 원샷하는 중이다.

       
      ▲무한도전 파업특별편 

    가뭄의 단비 같은 ‘파업 특별편’이 방송되었을 때의 기분은 유학간 절친이 6개월 만에 화상전화를 걸어온 기분이랄까. 그들의 팀워크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고 여전히 살아 있고, 간접적으로나마 파업을 응원했다. 260만 건 이상의 폭발적 조회수와 함께 나 역시 자칫 흔들릴 뻔한 충성심을 다잡았다.

    비록 지금은 뒹굴면서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거나 미드를 보고 있지만 다시 돌아오면 정자세하고, 자막 하나 놓칠세라 닥본사 후 열심히 갤러리에 가서 함께 즐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눈물섞인 식어빠진 곰탕도 맛있다고 소금치고 파송송 썰어넣고 후추 뿌려가며 먹는 중인 것이다.

    깨알 같은 태오피디와 사다코

    내가 만약 지금 신방과 대학원생이었다면 나의 논문 주제는 단연 ‘무한도전’일 게다.(실제로 무한도전과 관련된 신문방송학 관련 논문 수는 상당히 많다) 기존의 ‘수용자’-‘생산자’ 모델 어쩌고 할 것도 없이 무한도전은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진보’가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보여주고 있으며, 보여줄 것이다.

    예능 최초로 개인 카메라를 붙여 깨알 같은 리액션을 잡아 낼 수 있었고, ‘잔재미’로 가득찬 편집을 가능케 했다. 스튜디오에서 별 거 아닌 끝말잇기를 해도 재미 있었고, 말도 안되는 기차와 달리기 시합을 한다거나 소와 줄다리기를 해도 웃겼다.

    초기 무한도전은 촌스러운 츄리닝이었다. 그리고 블랙수트로 변모하더니 이제는 오뜨꾸뛰르가 되었다. 또 하나 무한도전의 매력은 제작진이 출연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어느 순간 프로그램의 피디가 화면 밖에서 시청자와 소통하기 시작했다.

    뚝사마가 "옷은 우리 태호가 잘 입지"’라고 말하면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훗’이라는 자막을 내보내는 식이다. 일명 ‘태오체’라고 불리우는 검은 궁서체 자막은 그 자체로 캐릭터가 되었고, ‘제8의 멤버’가 되었다. 그가 종편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무도빠들이 멘붕 상태가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도 안다는 그 유명한 ‘링’의 한 장면. 우물 속에서 암벽등반 신공을 보여준 귀신이 TV 밖으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장면은, 여고괴담의 복도 점프 클로즈업 씬 등과 더불어 공포영화의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설마 그 귀신이 우물을 넘어 방안으로 기어들어올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귀신의 손이 브라운관을 넘는 순간의 전율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게 무섭다.

    무한도전은 링의 사다코가 되었다. 그들은 티비 안에 갇혀 자막으로만 대화하지 않았다. 한국 최고의 MC 자리를 유지하는 우리의 뚝사마 유느님이 익숙한 길거리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더워서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돈 몇 천 원에 서로 아웅다웅 하고, 택시를 타고, 서로 놀려먹는 어찌보면 유치한 이야기를 스튜디오가 아닌 익숙한 거리에서 하기 시작했다.

    거리에 나가면 대중들이 몰려들어 촬영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제작진의 고정관념을 그들은 역이용 했다. 사람들이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몰려드는 모습에서 멤버의 위치를 짐작하는 모습은 추격전에서 긴장감까지 불러왔다.

    TV 밖으로 기어나와 거리의 사람들과 조우했다. 시청자들은 한강 고수부지를, 여의도 공원을, 남산을, 지하철을, 명동을, 가로수길을 뛰어다니는 그들과 만났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SNS를 통해 퍼진 ‘직찍’은 시민들이 만든 ‘예고편’이 되었다. 하하와 홍철 중에 누가 이겼는지 알아도, 우리는 ‘귀신 같은 (태오신의) 편집’을 보면서 울컥할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편. 

    ‘대한민국 평균 이하 찌질남들의 무모하고 무리한 도전’은 패션쇼, 댄스 스포츠, 에어로빅, 레슬링, 그리고 조정 특집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싸이의 ‘연예인’과 교차 편집된 ‘항도니’의 모습, ‘내가 봤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낸 조정 특집. 무언가 우리의 주말 밤 삶을 저릿하게 했다.

    그들은 사실 ‘평균 이하’가 아니다. 눈이 휘둥그레질만큼의 출연료를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인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그들의 도전을 우리와 동일시하는 것은 배 나온 노총각, 존재감 없는 뚱보, 운동부족의 저질체력, 내세울 것 없는 외모, 4차원 정신세계가 우리의 현실과 닿아 있거나 내 친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미션은 찌질한 평균 이하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들이 많았다. 호흡과 팀워크, 신뢰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함께해야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신뢰와 연대의 감동을 선사했다. (특정 프로그램을 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복불복을 반복하며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는 건 조금 불편하다)

    무한도전은 기존 예능 프로그램이 하지 못한 (혹은 어설프게 다루어서 숨막힐 듯한 어색함만을 뿜어냈던) 시사문제도 적극적으로 다뤘다. 독도 특집과 TV 특집 등을 통해 시대에 대한 풍자도 잊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무도빠들은 숨은 힌트를 찾아내고 재해석하며, 자막으로 대화하면서, 식스센스 같은 반전에 열광한다. 태오신의 연출이 무엇을 의도했든 시청자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다빈치 코드라도 해석한 듯한 그들의 재해석은 이 프로그램이 TV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다.

    다시 말하면 캐릭터의 부여와 깨알 같은 편집, 그들이 공짜로 얻어진 것은 하나도 없음을 보여주는 과정에의 소통. 날것 그대로의 매력은 기본이고 여기에 시대에 대한 통찰력과 TV 밖을 걸어나온 당당함. 그리고 세상의 모든 고민들에 있어 트렌드 세터가 되기를 두려워 하지 않았던 실험 등 이 모든 것들이 무도빠들을 낳았다. 그리고 최고의 프로그램으로 장수하는 비결이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무한도전은 매회가 ‘특집’의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도전과 정치

    사실 정치는 재미없다. 나조차도 어린 시절 TV 뉴스를 보며, 술을 마시며 정치 이야기를 하는 ‘어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별 상관도 없는 정치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지루하기만 했다. 시간이 흐른 뒤 나이를 먹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정치와 닿아 있음을 깨닫고 나서 제일 먼저 분노했던 것은 학교 교육이었다.

    정치가 무슨 ‘성교육’인가.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이상한 교육법이다. 매우 개인적으로 은밀한 것처럼 선생님들은 이야기를 꺼려 하고, 잘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아이가 생긴다’ 수준의 ‘야당과 여당이 있으며, 이들은 서로 견제하는.. ’ 이야기 따위는 그만해도 될 텐데 말이다.

    정치가 재미있어지길 바란다. 말초적인 재미가 아니라 무한도전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정치 자체에게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여하고, TV 밖으로, 국회 밖으로 나오라. 시대가 앓고 있고, 시대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 그것을 대중에게 가르치려 드는 것을 뛰어넘어 냉철한 시각과 깊이 있는 분석, 그 안에서 적절한 재미와 감동, 내용(메세지)은 기본아닐까. ‘정치’ 안에 갇혀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존 프로그램의 형식을 깨고,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루고 선입견을 장점으로 바꾼 것 처럼 기존의 정치가 아닌 다른 정치를 고민하면 어떨까.

    이제까지 한국의 보수정당은 막장 드라마에 가까웠다. 독재자는 여자와 술마시다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임신한 내연녀를 죽이고 그 오빠가 살인범이라고 몰기도 했다.(정인숙 사건) 막장드라마의 전형적 악역처럼 "너 잘못했지"라고 하면 "나만 죽일 년이냐"며 난동을 부렸다.

    문제는 막장이라고 욕하면서도 본다는 점이겠지만. 진보정당(정치)은 조금은 재미 없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었다.(사실 TV 프로그램이었는지도 궁금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드라마, 끝난 늦은 시간에 ‘어른’들이 보는 그런 프로그램. 나는 진보정치가 즐거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되길 바라고, 무한도전처럼 되었으면 좋겠다. 그저 재미만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굳이 무한도전을 예로 들지도 않았다.

    여의도를 벗어나 TV 밖으로 기어나오라. 그리고 적극적인 정치 트렌드 세터가 되어 함께 길거리를 뛰어라. 대중의 감각에 예민해 하고,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놓지지 않으면서, 발랄하게 소통하라. 매주 ‘특집’을 방송하는 무한도전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면 어떨까. 무도빠들을 흡수할 수 있는 그런 진보정치가 되면 어떨까.

    그리고 뱀발. 날 때부터 1인자 유느님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유느님이 유느님인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는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스스로 혼자 존재함이 아니라 함께 하는 이들과 같이 걷고 뛰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당선된 분들께는 축하의 말을, 낙선된 분들께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리고 후보는 혼자가 아니었음을, 수십 명의 작가와 피디와 카메라맨이 화면 밖에서 깨알같은 잔재미를 위해 수고하는 것처럼 박카스로 연명하며 잠을 쫒고, 사무실에서 먹고 자면서 몇 달을 고생한 캠프의 구성원들을 하나하나 바라봐 주길 바란다. 그들에게 어떤 캐릭터를 부여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무모한’ 미션을 함께 수행할 것인지 고민하라.

    진짜 뱀발 :  다음 번 ‘마녀의 TV 디벼보기’는 ‘신기한 TV 서프라이즈’편입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