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 패러다임-전략지형 전환중루비콘 건넌 20대…영남보수 대결집
By
    2012년 04월 14일 02:18 오후

Print Friendly

4.11 총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박근혜가 이끄는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새누리당의 승리는 다분히 70년대 박정희와 개발경제의 후광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불과 반년 전에 20~30대와 SNS를 앞세운 초현대가 서울을 강타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라 할만한 현상이다.

극에서 극을 오가는 극적인 변화는 한국사회가 매우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패러다임 전환, 전략적인 정치지형의 변화 과정에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4.11 총선에 대한 평가도 미시적이고 전술적인 평가보다는 한국사회의 기본 패러다임, 전략적 정치지형의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패러다임, 전략의 영역은 다른 영역에 비해 세계관과 가치 판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필자는 필자의 주장을 명확히 하고 전략적인 함의를 명백히 하는데 주력하겠다.

   
  ▲4.11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박근혜 위원장(사진=새누리당) 

1. 한국 정치지형의 변화
– 지역에서 세대로

한국 정치를 좌우했던 것은 지역이었다. 박정희의 호남 고립 전략, DJ/YS라는 걸출한 정치 지도자와 이들을 매개로 한 반독재투쟁 등이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지형을 갈라 놓은 동인이었다. 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뒤엎고 지역감정을 결정적으로 고착시킨 사건은 90년 3당 합당이었다. 3당 합당으로 YS와 부산경남이 민주화 대열에서 이탈하면서 보수진영의 확고한 전략적 우위가 지속되었다.

92년 대선에서 YS는 998만표(42.0%), DJ는 804만표(33.8%), 정주영 338만표(16.3), 박찬종(6.4%)였고, 9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994만표(38.7%), 김대중 1033만표(40.3%), 이인제 493만표(19.2%)였다. 97년 DJ-이회창의 표 차이가 39만표인 반면 이인제 후보가 부산.울산.경남에서 얻은 득표는 128만표에 달했다. 대선에서 DJ가 승리하긴 했지만 DJP 연합과 영남권의 분열이 없었다면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선거부터였다. 2002년 대선은 노무현 1201만표, 이회창 1144만표였다. 97년 DJ와 달리 노무현 후보는 영남권의 분열이 없는 조건에서도 선거에서 승리했고, 여기에 권영길 후보가 얻은 96만표를 합치면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2002년의 선거 구도가 이전 시기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한국사회의 의미있는 변화와 관련이 있다. 90년대 중반 대학진학률이 50%를 넘기 시작했고 인터넷이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수도권 집중도가 심화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흐름은 수도권, 청년세대, 대졸자, 정보통신 문명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 가고 있었다.

07년 대선 또한 새로운 시대의 출현을 반영한다. 이명박 후보는 정통 영남보수, 저학력 중고령층에 더해 수도권의 부자되기 환상이 결합되어 당선되었다.

08년 이후 자산버블 파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40대의 탈MB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MB와 거리를 두고 있었던 20~30와 40대 사이의 연대가 이뤄지면서 08년 이후 반MB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반MB 연대는 90년대 중반 이후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주로 청년, SNS, 수도권, 고학력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목할 만한 변화는 자산버블 파열의 조짐이 50대 중고령자에 집중되면서 이들이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하지 않은 점이다. 따라서 08~10년의 반MB연대를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30대의 강렬한 반MB, 40대의 입장 선회, 20대의 점진적인 선거 참여 확대, 50대의 투표 불참으로 구성된 것이다.

08~10년의 점진적인 변화가 극적인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1년 8월 24일~10월 26일까지이다. 청년의 아이콘으로 안철수가 극적으로 부상했고 안철수의 지원을 받은 박원순은 제1야당의 나름 괜찮은 경쟁력을 가진 박영선에 승리했다. 그리고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유있게 승리했다. 08~10년 반MB연대가 민주당+진보당의 복권이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다면, 11년에는 안철수, 문재인, 청년, 박원순 등 새시대의 맹아들이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퇴기자 회견 중인 한명숙 대표(사진=민주통합당) 

2. 10.26~4.11
– 영남 보수세력의 대결집

10.26 이후 위기에 몰린 보수 세력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10.26 서울시장 선거로 친이와 서울 부유층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이제는 전통 영남 보수를 총동원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92년 정주영과 박찬종, 97년 이인제, 08년 이후 친이-친박계와 같이 갈등할 여유가 없었다. 영남 보수진영은 존망을 걸고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수도권 청년층의 도전을 간신히 봉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뚜렷했다. 외형적인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전략적 지형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는 뚜렷하다.

첫째, 20대의 선거 참여가 뚜렷해지고 있다. 20대의 투표율이 18대 총선 28.1%이었던 반면 19대 총선에는 45.0%에 달했다. 무려 17%포인트가 상승한 것이다. 특히 서울의 투표율은 64.1%(이는 너무 놀라운 수치라 약간 의심스럽긴 하지만, 어떤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점은 명확하다)가 보여주는 것은 2011년의 정치적 격변에서 20대가 집단적 정치 경험을 축적했음을 보여준다. 386이 그랬던 것처럼 집단적 정치체험은 쉬 사라지지 않는다. 20대, 특히 서울의 20대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둘째, 영남 청년세대의 이반 징후도 뚜렷하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김두관 후보가 경남 지사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경남의 20~40대에서의 승리 때문이다.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영남 지역을 휩쓸었지만 곳곳에 박빙의 선거가 치러진 이유는 영남에서도 예외없이 세대별 투표 양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야권에서는 주력부대인 30대의 참여가 미온적이었던, 반면 여권은 주력인 50대가 최대로 동원된 점이다. 이번 선거의 최대 패인은 30대의 미미한 투표율이다. 30대는 가장 래디컬한 반MB, 반새누리당 정서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 30대는 18대 총선 35.5% 투표한 반면 19대 총선에서는 41.8%만이 투표했다. 6.3%포인트 상승한 것인데 이는 20대에 비해 무려 10%포인트 이상 낮은 것이다. 20대가 2011년의 정치적 수혜를 입고 정치 참여의 열의가 높아진 반면 야권의 주력부대인 30대는 끓어 오르는 열정에도 불구하고 투표장을 찾을 유인이 적었던 것이다.

반면 50대의 투표율은 의미있게 상승했다. 50대의 투표율은 18대 총선 60.3%에서 19대 총선 64.6%로 상승했다. 중요한 것은 08년 이후 20~30대의 투표율은 높아지는 추세였던 반면 50대의 투표율은 낮아지는 추세였다는 점이다.

06년 지방선거에 비해 10년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2.9%포인트 상승했다. 이 같은 투표율 상승은 20대 7.5%포인트, 30대 전반 4.9%포인트, 30대 후반 4.4%포인트 상승 때문이었다. 반면 40대는 0.4%포인트, 50대는 4.1%포인트 낮아졌다. 결국 4.11 총선에서 50대 투표율이 높아진 것은 50대 중고령층이 상당한 수준에서 역결집했음을 의미한다.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통합진보당 주요 인사들(사진=진보정치 / 정택용 기자) 

3. 정치세력의 명암

전략적인 견지에서 정치세력의 명암은 시대정신과 조응한다. 시대정신의 관점에서 다기한 정치세력을 평가해보면 다음과 같다.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MB 정권은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기본 추세인 수도권 집중, 정보화, 현대화, 세계화의 추세를 체현한 정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고립된 것은 이들이 제창한 ‘수출 대기업 중심의 패러다임’이 70년대와 같은 트리클 다운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하면서 광범위한 반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특히 08년 이후 자산버블 파열 조짐이 나타나면서 MB노믹스는 결정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반면 박근혜는 70년대의 개발경제를 상징한다. 박근혜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70년대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은 중고령 저학력자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박근혜의 지지기반이 갖고 있는 정서는 시대의 기본 추세와 충돌한다. 박근혜가 한국형 복지 따위로 포장하고 있지만 시대정신은 언술적 포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4.11 총선에서 나타난 영남 보수층, 50대 중고령자들의 결집은 2011년 10.26의 민심을 거스르는 반동적이고 복고적인 성향을 갖는다. 문제는 인류 역사에서 이런 반동과 복고가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1848년 2월 혁명의 성과가 1851년 나폴레옹 조카의 제정 복귀로 나타났던 것처럼 말이다.

4.11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핵심 요인은 2011년 10.26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새시대의 흐름을 거슬렀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80년대부터 한국사회를 장악하기 시작한 현대화된 정보통신 문명과 따뜻하고 공정한 자본주의를 대변한다.

이것은 나름의 약점이 있든 없든 현대화된 경제, 청년세대의 이해와 요구, 차별과 격차의 시정과 같은 시대적 흐름을 대변한다. 2011년 10.26이 극적이었던 것은 MB에 대한 심판을 넘어 새시대의 맹아와 비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26 이후 안철수와 청년세대가 정치세력화에 주저하면서 전통 세력(민주당)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과도기적인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던 점은 있지만 전통 세력은 10.26의 승리를 과신했다.

전통 세력의 과신은 오만과 무능을 넘어 10.26의 정신을 훼손하는 위험한 상황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청년세대에게 응당한 자리를 배정하기보다는 자기들끼리 공천을 독점했고 밑으로부터 정치적 진출을 정당정치,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교묘히 방어했다. 그리고 복지와 반MB라는 애매한 담론에 기대어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에 대한 요구를 외면했다. 그들은 결국 05년 이후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은 친노세력으로 고스란히 복귀한 것이다.

4.11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복고적이든 반동적이든 하나의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았다면 민주통합당은 열외의 취급을 받았다. 만약 서울에서 20대의 경이적인 투표 참여가 없었다면 전국적 정치세력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여전히 10.26의 과분한 후광을 입고 있는 셈이다.

시대의 추이, 민심의 동향, 예견되는 경제정세 등을 고려하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정치세력의 출현은 매우 지난한 과정을 밟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명박은 시대의 추이에 일면 부합(현대화, 정보화 등)하되 사회적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체현하지 못했다.

반면 박근혜는 일면 합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지지기반 자체가 반동적이고 복고적이다. 민주통합당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체현하고 있지만 경제 패러다임이 대세추종적이고, 통합진보당은 컨텐츠 자체가 없다. 안철수의 경우에는 새시대를 맹아적으로 체현하고 있지만 아직은 형성 중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대의 엄중함에 비해 상황을 보는 우리의 視界(시계) 자체가 너무 단기적이다. 덕분에 처방도 상황 인식도 즉자적인 것이다. 2012년이 문제가 아니라 2012년 이후가 문제일 것이라는 진단은 현 시대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황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시대의 근본적인 추이를 찾아 근원적인 경쟁력과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