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정치 실종, 좌파의 몰락
        2012년 04월 12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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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152석(지역구 127석, 정당지지 42.80%), 민주통합당 127석(106석, 36.45%), 통합진보당 13석(7석,  10.30%), 자유선진당 5석(3석, 3.23%) 그리고 정당 등록 취소를 당하는 진보신당은 정당지지율 1.13%, 녹색당은 0.48%. 이것이 이번 19대 총선의 수치적 결과이다.

    각 정당별 수지타산

    새누리당은 대구 경북은 기본이고 울산과 강원을 100% 석권했다. 부산과 경남에서는 34곳 중 30곳에서 승리했고, 충청권에서도 25곳 중 12곳이 당선되면서 충청권 제1당이 되었다. 서울 경기 인천의 수도권에서는 민주통합당에 많이 밀렸지만 112곳에서 43석을 당선시켜 근거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비수도권의 완승에 비해 수도권의 완패, 특히 수도권 도시 지역에서의 패배는 대선에서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수도권에서 65석으로 제1당이 되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새누리당에게 완패했다. 부산 경남지역에서 후보들의 개별 득표력을 상당히 확장되었으나 당선권까지 간 곳은 34곳 중 3곳에 불과했다. 반면 호남권에서는 무소속이나 통합진보당의 득표력이 확장되면서 당선자는 압도적이었지만 민주통합당의 장악력은 상당히 느슨해졌다. 강원의 전패가 뼈 아프고, 충청권에서 새누리당과 양당 구도를 만들었지만 그 성과는 새누리당에게 더 많이 갔다. 자유선진당은 예전 자민련처럼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통합진보당은 지역구에서 호남 3, 경기 2, 서울 2곳에서 당선되었다. 반면 통합진보당의 전략지역이었던 경남 창원 거제와 울산에서 완패했다. 정당 지지율 또한 내부적으로는 17대 총선의 13%를 넘어 15%를 전후한 지지율과 8석을 넘는 비례 당선자를 기대했지만 기대에는 많이 미달한 10.3%에 그쳤다.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통해 양 당의 단일 후보로 출마한 지역의 경우는 대구 경북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0%를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

    진보신당은 김한주 거제 후보의 32.96%를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지역구 득표율을 기록하지 못했다. 새누리당이 출마하지 않았던 제주의 전우홍 후보만이 10%를 넘는 12.17%를 얻었고, 전북의 염경석 후보와 의정부의 목영대 후보가 각각 8.76%와 7.70%를 얻었고, 경남 창원성산의 김창근 후보는 7.12%였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3%를 전후한 득표율이었다. 정당 지지율에서는 서울 인천 울산 등 일부 지역에서 1%를 넘는 것에 그쳤다.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 선생. 흐느끼는 당원과 함께 만감이 교차한다. 말년에 선택한 과감한 정치 참여는 현실의 강력한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진보정치는 과연 어디에 거처하는가? 4월 11일 밤, 대한문 앞에서.(글, 사진 = 이상엽 사진작가) 

    선거 결과 나타난 특징들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과 평가에는 나름의 잣대가 있다. 누구나 다 동의하는 공통되는 잣대는 없다. 결과로 나타난 당락의 수치라는 결과를 제외하고는 선거의 승패를 바라보는 기준이나 그것을 분석하는 잣대, 선거의 변수와 상수를 인식하는 수준, 그 원인을 진단하는 것도 상대적이다. 평가 자체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객관적’인 분석이나 평가보다는 우리의 시각에서 몇가지 특징을 도출하는 것, 그 실천적 효과를 생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김용민 효과’니 ‘20대 투표율’이니 하는 것의 의미는 선거 결과를 공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들에게 수학적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이 선거를 특징짓는 요소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첫째, 새누리당은 ‘강한’ 정당이고 민주통합당은 ‘약한’ 정당이다. 이 말은 DJ 시절의 민주당과 비교하면 뚜렷해진다. 그 때 민주당은 소수당이었지만 강한 정당이었다. 당시에도 내부 계파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지만 리더십과 조직 일체감이 있었다. 그 시절의 민주당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한명숙 대표와 486 친노 세력, 시민사회 일부가 당권파가 되어 운영하였던 민주당은 정체성도 모호하고, 내부 갈등을 조정 통합할 역량도 안되었고, 공천 과정이나 핵심 정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도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로지 반MB연대와 MB정권의 ‘악마화’를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이 전략의 전부였다.

    민주통합당은 과거 DJ 시절과는 달리 외부 인사의 수혈보다는 오히려 조직적 통합과 결합으로 조직을 리모델링했다.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창당에 참여하고, 시민사회는 혁신과 통합, 내가 꿈꾸는 나라와 같은 정치조직을 만들어서 민주당의 리모델링에 참여했다. 양적으로는 넓어지고 확장되었지만 그것을 이끌어갈 리더십은 약하고, 뚜렷한 자신의 정치노선과 핵심 정책들은 사라지고 여러 가지가 나열되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의 새누리당은 명실공히 박근혜의 리더십으로 움직이는 당으로 전환하였다. 도덕과 부도덕,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상돈과 김종인을 데려다가 장식품으로 활용하고 실제 공천과정이나 정책화하는 과정에서는 무력화시키는 교활함, 김무성과 같은 박근혜와 애증관계였던 중진 인사들도 과감하게 내치는 비정함, 공천 반발 등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여론의 동향 등에 대해서 기동적으로 대응하는 모습 등 명실공히 박근혜의 당으로 선거를 치른 것이다.

    반MB 가장 큰 수혜자는 통합진보당

    둘째, 반MB연대는 선거 공학으로는 위력이 있지만 정치 대안으로는 약한 전략이다. 득표력을 끌어올리는 힘은 있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것에는 힘이 있다. 하지만 반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반MB의 가장 큰 수혜자는 통합진보당이다.

    반MB를 누가 어떤 내용으로 하려는지보다는 반MB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득표력이 이전에 비해 두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 비해서 19대 총선에 출마한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득표율이 두배 세배가 되었던 이유이다.

    18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득표력은 자신의 내용과 정책, 비젼으로 얻은 것이었다면 이번 득표력은 그 내용이 거세되고, 반MB의 단일후보가 되었다는 이유로 획득된 것이다. 그러나 반MB의 핵심 문제점은 박근혜가 MB가 아니라는 점이다.

    반MB 전략의 핵심은 MB와 싸우고 MB와 전선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현실에서의 상대는 MB가 아니라 박근혜였다. 그리고 박근혜는 ‘반MB’는 아니더라도 일정하게 ‘비MB’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MB 전략을 구사하려면 선거 공간에서 MB를 불러내고 그와 지속적으로 쟁점을 그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MB는 숨고 박근혜가 부각되었고, 박근혜와의 전선은 반MB와는 일정하게 괴리되었다. 왜냐면 박근혜도 MB와 끊임없이 일정한 선을 그으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연대와 연합은 있을 수밖에 없다. 승리하려는 것이 선거의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승리하려고 하는지, 승리해서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지에 대한 메시지가 없거나 약하다면, 혹은 무엇을 하려는지에 대해 연대하는 세력들이 동상이몽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 통합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선거 쟁점의 지역별 괴리

    셋째,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선거 쟁점이 일정하게 괴리되었다. 야권연대와 반MB연대가 수도권에서는 위력적이었지만 비수도권에서 그렇지 못했다. 김용민 효과가 수도권에서는 크지 않았고 비수도권에서는 상당히 먹혔다고 한다.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에서 받아들이는 체감도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박근혜가 선거 이후 12일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에서 그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빠른 시간 내에 불법사찰방지법 제정을 비롯해 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히 바로잡고, 다시는 ‘국민의 삶과 관계 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수도권이나 도시지역에서는 ‘국민의 삶과 관련된 문제’와 ‘반MB와 관련한 이슈와 쟁점’을 동일시하였다면, 그 외 지역에서는 서로 상이한 문제로 인식한 측면이 큰 것이다.

    넷째, 이번 선거에서 노동정치와 의제가 실종되었다. 어느 때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직들이 선거에 깊숙하게 관여하였다. 그렇지만 노동계의 의제와 이슈들이 선거의 쟁점으로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부각시킬 계획과 의도를 가진 정치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에서 청소용역 비정규노동자를 비례후보 1번으로 배치하고, 비정규직 관련 투쟁과 발언과 정책으로 당의 선거 전략을 잡았지만 당의 존재감과 발언권이 미약한 상태에서 사회적 파장은 별로 없었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의 정책에서 비정규 노동정책이나 노동계의 현안에 대한 입장은 서술되어 있었지만, 말 그대로 공약자료집의 문구로만 존재했다.

    노동계의 몫은 노동정치, 노동정책, 노동이슈의 문제를 문제를 부각시키고 주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득표의 수단으로 어떻게 효율적으로 동원할 것인지에 맞추어져 있었다. 대표적으로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자살 문제가 불안정한 고용 현실과 악화, 생계 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거나 이슈가 되지 못하고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치부된 것이 선거판의 현실이었다.

    미국에서 노총(AFL-CIO)이 민주당의 주요한 득표조직으로 가동하고 있고 딱 그 정도의 발언권이 있는 것 처럼,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도 노동운동 조직보다는 선거판에서의 득표 조직, 수십만의 유권자가 속해있는 조직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에서 민주노총 등의 노동조직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협조를 요청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노동운동 내에서도 노동운동의 조직력, 투쟁력보다는 득표 조직, 선거에서의 압력 조직으로 강조점을 이동시키려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 밀집지역이라는 경남 창원, 거제, 울산에서의 진보정치 노동정치의 패배도 그런 맥락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전략적 성공과 실패

    다섯째, 통합진보당은 전략적 성공과 전략적 실패의 양면을 다 보였다. 통합진보당은 호남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성공하였고, 영남, 특히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하였다. 노회찬, 심상정의 당선은 여러 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그들 자신의 명망성과 이름 값이 1차적인 승리의 요인이었다.

    성남 중원과 관악을의 경우는 야권 강세지역이라는 토양이 1차적인 요소였고, 여기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성남)와 이정희 동정 여론(관악)이 가세하여 당선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오히려 전략적 의미는 호남과 영남의 경우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과의 대결 노선을 택하면서 일부(광주 서구을)를 실리로 취한 것이다. 호남에서는 새누리당이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서 민주당과의 경쟁이 이적행위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고, 또 지역 기득권세력으로서 민주당에 대한 대체세력을 열망하는 대중적 염원을 대변하면서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호남에 출마한 통합진보당 후보의 경우 민주당과 대결하면서도 대부분이 20%를 넘는 득표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잃을 것이 없는 전략이다.

    반면에 영남의 노동자 밀집지역, 특히 울산과 창원에서는 전략적으로 패배했다. 전통적으로 조직 노동자의 지지에 기반하여 미조직 노동자와 서민들로 지지층을 확장하면서 성장하였던 창원 울산에서는 노동정치의 색깔이 옅어지고 반MB 단일화라는 프레임이 강조된 것이다.

    노동자 정치가 아니라 야당 정치의 성격이 더욱 짙어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노동운동 내부의 다양한 정치세력들에 대해 통일과 단결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대결적 태도를 강화하면서, 노동자 지지 기반에서의 균열이 발생한 것도 완패의 주요한 요인이다. 노동정치, 계급정당과 야당정치, 국민정당의 딜레마와 갈래길에서 점차 후자로 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징표로 읽히는 대목이다.

    진보신당, 녹색당 존재감 더욱 희미해져

    여섯째, 진보신당 등 좌파세력과 급진적 진보정치의 제도적 존재감은 더욱 희미해졌다. 진보신당과 녹색당은 제도정치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운동정치, 급진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이다. 이들의 정당 지지율은 희미해지고 있는 좌파정치의 현실을 새삼 재확인해준 것이다.

    더욱이 진보신당의 경우 2010년 지방선거 이후 1년에 걸쳐서 진보정당의 통합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있었고 그 후과로 진보신당의 대표적인 정치인들과 주요 활동가들이 대거 탈당하여 통합진보당으로 합류한 상태였기에 그 생존 여부가 관심이었다.

    2011년 11월 홍세화 대표 체제가 들어서고 조직을 재정비하면서 진보좌파정당으로의 지향과 전망을 밝히며 총선에 임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것으로 끝났다. ‘선거연대에 대한 비판’과 ‘독자 완주에 대한 강조’ 이외에 의미 있는 선거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또 이미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던 후보들 중의 일부가 본 선거에 후보로 출마하지 못하면서 불안정한 조직 상태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번 총선의 결과가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의 주된 흐름이 더욱 더 통합진보당 쪽으로 경도되고 휩쓸려 갈 것인지, 아니면 진보신당이 등록 취소된 이후에 새롭게 노동정치와 좌파정당을 복원하면서 교두보를 만들어갈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진보신당은 4월 12일 대표단 간담회를 열어 전국위원회를 소집하고, 대표단 사퇴 없이 정당 재등록 일정을 밟는 것으로 의견을 모아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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