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의 변화, 옛것 vs 새것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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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4월 10일 0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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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질학에서는 단층선이라는 것이 있다. 지각의 융기, 침전 등 거대한 지질학적 변화들이 나타나면 거기에 시대와 시대를 구분하는 뚜렷한 단층선이 드러난다. 지질학의 단층선과 같은 현상들이 2010년을 전후하여 한국의 농촌에 나타나고 있다.

    농촌 인구가 늘고 있다

    1970년 1850만 명에서 급격히 줄기만 하던 농촌 인구가 2010년을 전후하여 늘어나고 있다. 농촌 인구 증가의 원인은 세가지이다.

    첫째, 대도시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도농복합시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대도시로 출퇴근하는 인구의 증가, 특히 30대 인구의 증가.(2010년 향촌 인구 중 21.4%가 30대임) 둘째, 농촌 총각과 결혼하기 위해 입국한 외국인 여성.(2000~10년간 농촌으로 유입된 여성 결혼 이민자는 6만명 정도) 셋째, 50대 중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귀농(2011년 1만 503가구 2만 3415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2010년 기준으로 합계 출산율 상위 10위권 이내에 전북 진안군을 포함해 농촌 지역이 9개인 반면 하위 10위권 내에는 부산 서구를 포함해 9개 도시지역 자치단체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향후에도 농촌의 인구 증가가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이상 통계수치는 ‘농촌 인구구성의 새로운 변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90년대 개방 농정이 본격화되면서 농촌 인구의 감소와 전통 농민의 극한 저항이 지속되었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대도시의 자산버블에 따른 거품과 대비되어 농촌의 공동화.고령화.빈곤화가 두드러졌다. 이로 인해 2002년 11월, 13만 농민의 서울 상경 투쟁을 비롯하여 농민들의 투쟁이 사회운동을 주도했다.(03년 WTO 각료회의 투쟁 과정에서 이경해열사의 자결, 05년 홍콩 원정 및 쌀 개방 반대 투쟁 등)

    그러나 2006년을 전후하여 농민운동의 격렬한 저항은 막을 내렸다. 농민들의 역량만으로 정치지형을 바꾸기에는 농촌 인구, 농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시위를 전후해서는 식량 문제의 주도권이 생산자로서의 농민이 아니라 소비자로서의 대도시 중산층으로 완전히 이전되었다.

    사회경제적 갈등의 이동

    그후 사회적 갈등의 중심은 대도시 특히 서울이었다. 2000년대 중반의 자산버블은 대도시에 보육.교육.주거 등과 관련된 사회경제적 모순을 집중시켰고 이 갈등이 08년 촛불, 09년 노무현-김대중 대통령의 사망, 10년 지방선거, 11년 정치혁명 등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농촌에서 서울로 사회경제적 갈등이 이동하고 있는 조건에서 농촌은 의미있게 변화하고 있었다. 대도시의 고단함에 지친 50대 중고령자들의 귀농, 해외에서 한국으로의 유입, 출산율의 증가 등 02년~06년 격렬한 투쟁과 좌절을 딛고 의미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향후에는 세 가지 환경 변화가 농업을 추동할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를 요구하는 인간의 요구, 식량 가격 상승기에 상응하는 농산물의 안전한 수급, 한 차원 높은 공장식 농업이 그것이다. 농업을 둘러 싼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은 필연적이다.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자멸의 길이다. 중요한 것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이다. 그 방향에 따라 향후 농업의 성격이 규정될 것이다.

    정부나 재벌 연구 기관의 대응은 농업에 대한 기업의 참여, 식물농장과 같은 레벨업된 공장식 농업, 해외자원 개척 등(가령 ‘애그플레이션 시대, 다시보는 농업’, LG경제연구소)이다. 이에 따르면 농산물 상승에 따라 수익성이 확보된 농업에 대규모 자본을 앞세운 기업이 초고층 빌딩에 식물공장을 짓고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농산물을 생산한다.

    한편 연해주, 저개발 국가와 석유 등을 공동 개발하듯 아프리카와 남미의 농토를 대량으로 매입하여 농산물을 경작하고 이를 수입해 온다는 발상 등이다. 역시나 이러한 발상에는 농업을 통한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자연 사이의 건강한 관계에 대한 고민이 누락되어 있다.

    사회운동 방향 달라져야

    반면 우리는 친환경 유기농과 공공급식의 결합, 50대 고령자들의 대량 귀농과 고용 창출, 보건.교육 등 사회서비스의 확충과 농촌의 전면적 재건, 도시농업과 도시문명의 친자연화, 농업의 공공자원화와 국제질서의 조정 등을 추구할 수 있다. 양자는 누가 주도권을 잡고 농업의 새로운 변화를 추동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농촌의 새로운 변화에 조응하는 사회운동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이른바 아스팔트 농사로 대표되던 영웅적인 농민운동의 한 시대는 끝났다. 농민운동의 영웅적인 투쟁의 궤적을 우리는 08년 강기갑, 12년 윤금순(통합진보당 비례 1번)의 출현을 통해 보고 있다. 그러나 향후 농민운동의 방향은 달라야 한다.

    향후 한국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에 직면할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자산버블과 사교육 열풍이 꺼지며 서울을 중심으로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접어 들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08~11년 일련의 선거에서 청년층의 선거 참여와 정치지형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향후 대도시의 과제는 사람들의 이해와 요구를 건설적인 미래 대안과 연관지어 대담하게 분출시키되 이를 정확히 수렴하는 것이다.

    반면 농촌과 지방은 06년 이전과 이후를 정확히 갈라 보고, 06년 이후 농업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2010년 농촌이 보여준 것은 시대와 시대, 지층과 지층을 갈라 놓는 과거와 미래, 낡은 것과 새것의 충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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