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우는 없고, 옳고 그름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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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4월 09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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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30일 금요일 조금 늦은 오후 4시 대학로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로 찾아갔다. 언제나 연구소를 지키고 있는 채원희씨가 백기완 선생 관련한 신문 스크랩을 하고 있었다. 팔순 잔치를 준비하고 치르느라고 많이 밀렸던 일이라고 한다.

    채원희씨가 백기완 선생과 얘기를 하기 전에 단단히 일러준다. "‘인터뷰’라고 하면 선생님에게 많이 혼나니까 반드시 ‘댓거리’로 말씀드리라"는 것이다. <백기완의 민중미학특강>은 4월 3일부터 6월 12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경향신문 5층 강당에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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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완 선생.

    정치는 우리가 해야 할 기본 과제

    정종권 : 요즘 몇몇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과 고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누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도 민감하고 복잡한 정치 얘기 말고 곧 시작하시는 ‘민중미학특강’ 얘기를 듣고 사람들에게 알리려 찾아뵈었습니다.(첫 특강은 지난 3일 진행됐으며, 10을 두 번째 강의가 이어진다) 

    백기완 : 정치를 복잡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우리가 해야 할 기본과제의 하나니까. 정치적인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그게 곧 사는 거니까 정치를 떠났다고 생각하면 안 돼. 이런 얘기도 할 수 있고 저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지.

    : 얼마 전 팔순 잔치 자리에 각계각층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셔서 축하를 해주셨는데, 선생님의 소회는 어떠신지요?

    : 난 생일이라는 말도 안 써. ‘난날’이라고 하지. “내가 난날이 언제지”하면 돌잡이도 알고,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알 것을 “생일이 언제지” 하는 것은 말하기도 어렵고 듣는 사람도 잘 몰라. 나는 생일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싫어하고, 또 생일날 뭐 챙겨서 먹는 것도 소비문화가 요구하는 잘못된 생활습성이라고 봐. 그냥 난날이 떠오르면 늙으신 부모님 계시면 미역국 끓여먹고, 된장찌개 먹으면 되고, 쌀만 안 떨어지면 되는 거지.

    그런데 이제는 이상한 소비행태가 되어 버렸어. 나 같은 늙은 사람까지도 난날 챙겨먹는 것은 소비문화의 행태에 속는 것이라고 해서 안하려고 하는데, 젊은이들이 여든을 넘기시면 사람들 모여서 선생님 얼굴도 보고 할 기회가 없다고 하기에, “그래도 난 안 한다, 설악산으로 도망간다”고 했다. 그래도 이수호, 유초하, 박석운, 양규헌, 양기환, 신재걸, 임진택, 김세균이 일을 꾸며놔서 안갈 수도 없고, 어쨌든 그날 난 울기만 했어. 자네도 알다시피 난 원래 인품이 좀 모자라거든.

    원래 좌우파는 없다

    : 선생님이 김세균 선생이랑 주변 사람들 요청에 따라가 주기만 한 것도 고마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아예 팔순 잔치도 못하게 했을 텐데요.

    : 그런데 오늘 나하고 하는 얘기를 어디에 올리려고 하는 것이니? 레디앙은 인터넷 잡지 같은 건가?

    : 예 인터넷 잡지인데, 말하자면 진보 매체이고 좌파 비슷한 방향을 지향하는 인터넷 신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자네, 원래 좌파 우파라는 말이 없다는 것 알고 있나. 200년 전에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그것이 자꾸 부패구조 착취구조로 나가면서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하니까 “왜 안 돼, 돈벌이가 되는데” 그러자 그럼 너희들은 나쁜 놈이구나, 그러면서 우파라고 하고, “사람들 피눈물 뺏어서 돈만 벌려고 하는 것은 안 되지 않느냐” 하니까 그것을 좋은 생각이라고 하질 않고 좌파라고 했지.

    그러나 우리는 옛부터 좌파 우파 그런 말 안 썼다. 옳으냐 그르냐, 사람다우냐 사람답지 못하냐, 범죄냐 정의냐, 이렇게 갈랐지 좌파 우파로 가르지 않았다. 왼쪽 바른쪽이라는 것은 모든 물체가 중심을 잡는 그런 형태인데 그건 의미가 전혀 없어.

    그런데도 우파 좌파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이나 사태를 올바르고 과학적으로 깨우쳐서 대응하는 말따구가 아니야. 그런 말은 쓰지 말고, 옳으냐 그르냐, 아름다우냐 더러우냐, 이렇게 진짜 구체적이면서 가장 과학적으로 판단하자 그거야.

    좌우를 통합하는 것은 올바른 생각과 아울러 거룩한 사람 중심이고 나아가 자연 중심적인 것이거든.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우리 옛 무지랭이의 문화가 그랬어. 있는 놈들의 문화는 그러지 않았다. 있는 놈들은 자기네만 다 옳다고 그러면서 옳고 그름의 경계를 파괴했지. 그러니까 정의를 추상적으로 말하면 안 돼. 나쁜 놈들의 정의는 다 거짓말이었거든. 진짜 정의는 사람다운 것, 자연스러운 것 그리고 옳은 것이고, 옳은 것은 앞으로 가는 것이니까 진보라는 것이야.

    무지랭이들의 ‘말림’

    : 이번에 <민중미학 특강>을 하시는데 설명을 좀 해주시죠

    : 미학이라고 하면 서양에만 있고, 미학이라는 낱말은 우리가 서양에서 꿔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 옛부터 우리 무지랭이들은 한문을 모르니까 한문 표기를 안했어. 할아버지들,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은 한문을 모르니까 몸짓이나 소리 또는 그림으로 표현을 했어. 이런 것을 우리 말로 ‘말림’이라고 해.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림’이라고 하는 거지. 우리 ‘말림’을 보면 진짜 미학이 있었어.

    보기를 한 가지만 들어 볼게.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이 누구냐? 도둑놈이잖아. 그런데 어떤 놈들이 도둑질을 했냐 하면, 남의 피땀 어린 것을 훔쳐가는 놈이 도둑놈인데, 그 놈들의 도둑질은 도둑질이 아니고, 방안의 바늘을 가져가면 도둑질이라고 했어.

    필요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가져간 것이 무슨 도둑질이야. 필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방안의 굴러다니는 바늘을 가져갔다고 도둑질이라고 몰고, 남의 피눈물을 뺏어가는 것은 자기 것이라고 다 정당화하고. 이때 착취 계층, 있는 놈들의 노동은 미학적으로 볼 때 반역이야. 이를테면 거룩한 것을 뒤집는 문예 예술 말살 범죄, 다시 말해 전혀 아름다운 노동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미학이라면 진짜 무지랭이에게만 미학이 있는 것이지, 착취계층이나 있는 놈들에게는 미학이 없다는 거야. 그게 나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고, 우리네 할아버지들의 생각이야. 미학에는 민중미학밖에 없다. 그런 말 하는 사람도 내가 처음일걸. 자네도 좀 배웠다고 취재만 하고 돌아가질 말고, 진짜 무지랭이들의 미학이 뭔지를 공부 좀 해.

       
      ▲첫 번째 특강 모습.

    무지랭이 미학 모르면 진보도 몰라

    : 강의를 10번에 나누어서 하는데, 솔직히 ‘골굿떼 이야기, 달거지 이야기’ 등 제목만 봐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 전기불도 없는 방구석에서 오순도순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어주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돼. 아까 우리에게는 ‘말림’ 밖에 없었다고 했잖아. 글을 모르니까 표현할 방법을 모르니까. 몸으로 표현하고 소리로 그리고 그림으로 표현했거든. 내가 하는 얘기는 이런 ‘말림’ 미학, ‘말림’ 예술로 봐야 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미학 공부하고 예술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이 없으면 이런 말들도 다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이런 현상은 진짜 민중을 무시하고 바보로 보는 것이고, 지배하고 착취해도 돈 몇 푼 던져주면 나가떨어지는 것이 무지랭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민중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유린하고 착취하는 것이다, 육체적 노동의 결과만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까지 착취하고 예술까지도 착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림’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것이야.

    다만 내가 너무 늙었어. 사실은 젊을 때부터 늘 울면서 이런 무지랭이들의 예술, 무지랭이들의 미학을 모르면 진보를 모른다고 그랬거든. 지난 60년 동안 이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았어. 그런데도 특강이라는 이름으로 나서는 것이 80이 넘어서 하니까 나도 부끄럽고, 듣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미덥지가 않을 거고.

    그래도 조금 더 늙으면 그것도 못할 것 같아서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될 것 같다.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니까 말이 안 나오고 몸짓도 잘 안 나오잖아. 발악적 몸짓밖에 없으니까, 얼핏 보면 아름답지도 못하고. 그래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았으니까 해 보려고 해.

    무지랭이 미학의 본체는 저항

    :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보다 연세가 더 있으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또 민중, 진보를 얘기하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전문적 지식이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실 텐데요. 학자도 아닌 선생님보다 우리의 아름다운 낱말이나 그 의미를 많이 알고 있거나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까닭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세상을 향해 ‘말림’ 얘기를 하는 사람이 선생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우리 무지랭이들의 아름다움, 미적인 구조와 예술이 있는데, 그 본체를 보면 저항이야. 아름답지 않은 놈들이 아름다움을 쥐고 있다는 말이지.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지르고 있는 무지랭이들이 저항을 하니까 있는 놈들이 무섭거든. 왜냐면 자신들이 권력을 누리는 현상을 타파하려고 하니까. 그래서 봉우리를 밟아버리는 것이야.

    그렇게 우리의 민중예술 미학이 지금까지도 오늘도 밟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수천 년 이어지다 보니까 짓밟히던 사람들도 괴롭고, 아울러 봉우리가 맺혀봐야 꽃을 못 피울 것 같으니까 그 봉우리를 저버린 거야. 한편으로 짓밟히고 한편으로 저버리고, 그리고 그 봉우리의 가치에 대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잘못 평가하면서 기존 체제, 돈과 권력의 체제에 대립하는 정서, 예술적 지향이 될 것 같으니까 기피하게 되는 거야.

    하나는 짓밟히고, 하나는 포기하고 또 외면하고 저버리는 과정에서 없어진 것이야. 민중적 저항의 꽃봉오리, 저항의 미의식, 저항의 예술이 없어졌어. 그러니까 남은 것은 거짓을 즐기는 것뿐이다. 돈 있는 놈들이 애들을 속이려고 만드는 것에 다 빠져들고 있다. 걔들은 눈 홀림을 잘해. 대표적으로 허리우드의 만화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눈을 홀리면서 현란하게 잘 만들었거든.

    그런데 가만히 미학적으로 보면 그 속에는 있는 놈들의 범죄적 의도가 깔려 있어.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기분 좋고 빛깔도 아름답고 그러니 속는 것이야. 순진한 불나비들이 불을 쳐다보고 따라가다가 다 타 죽는 것과 같은 것이야.

    진보는 나의 생명

    그래서 민중미학 특강은 상당한 뜻이 있는 것이다. 왜 내가 하냐고 하면, 난 자네들처럼 정규교육을 못 받았다. 난 독학으로 영어공부를 해서 영어사전을 다 외워버렸어. 지금은 늙어서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런데 지금은 한마디도 안 써.

    영어를 공부해보니까 필요한 영어는 써야겠지만 일상적으로 필요 없이 사용하는 영어는 그 자체가 침략의 칼이더라고. 식민지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식민지적 의식을 내재적으로 파괴하는 병균이라는 말이야. 그래서 난 자꾸 우리말을 캐기 시작했던 거야. 지식인들은 많은 이들이 영어가 편하고 우리말은 불편하다고 했지. 그래서 너희 같은 젊은 사람들까지 그렇게 이 체제에 편입되어 간 것이야.

    그러니까 나에게 진보는 내 생명이니까 내 생명을 위협하는 놈들하고 싸우기 위해서 난 뭐든지 다 했다. 내가 흔들린다고 하는 사람 봤냐? 없지? 하지만 나도 노다지 흔들리면서 바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무지랭이들의 삶과 예술에 바탕을 두려고 끊임없이 몸부림 치는 것뿐이야.

    : 우리말과 민중의 예술을 기피하고 저버리는 사람은 선생님이 혼을 내지 그랬습니까?

    : 혼을 냈지. 오늘도 김세균 선생이랑 밥을 먹는데, ‘체크’라고 했다고 내가 “체크가 뭐야”라고 했어. ‘체크’란 말을 한마디 해도 난 꼬집어요. 난 몸에 배어 금방 알아듣는데, 다른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거지.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체크란 말을 자주 쓰니까.

    그 말 한마디를 가지고 김세균 선생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압도적인 자본주의 제국주의 문화가 우리를 수백 년 동안 세뇌를 시킨 것이니까. 김세균 선생도 젊은 축에 드니까 이 할아버지가 꼬집어주는 것이라, 오해하질 말어. 아니 오해하도록 글을 꾸리질 말어.

    "그런 얘기할 거면 다시 오지마, 인마"

    : 선생님이 잘못하신 게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야단만 치지 마시고 우리말과 민중 미학에 대해 자주 교육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너무 늦게 시작하는 것 아니신가요?

    : 자네 말이 맞다. 그래서 민중미학 특강 다하면 마음 놓고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민중미학, 이런 것이 진짜 사람의 미학이니까 고민해보라고 ‘말뜸’을 던지는 거야. 말뜸은 화두야. 너희들이 배운 말로 하면 문제 제기야.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지.

    내가 김세균 선생을 가장 좋아해. 맑스주의의 원칙을 가지고 자본주의 부패와 모순을 타파하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가지고, 또 그것을 실천적으로 올바로 발전시키려는 학자니까. 보물이라고. 젊은이들도 높게 생각해야겠지만 나 같은 할아버지도 높이 평가해줘야 돼. 다 회색주의인데, 김세균 선생은 원칙이 있어. 200년전 맑스주의 사상 체계를 그냥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점자본주의의 모숨이 가장 극악한 바로 이 바루(현장)에서 올바로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니까 더욱 진보적이지.

    : 선생님이 10회 분량의 민중미학 특강이라는 것은 처음 하시는 것인데, 민중미학과 예술, 우리 말의 실천적 의미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 그 중요성을 알고 실천하려고 하는 사람을 발굴하고 키우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사람을 발굴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돌아가시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 자네, 말 그렇게 쉽게 하지 마라. 나이 살이나 먹은 놈들을 누가 키운다고 그래. 다 나름대로 천재지, 누가 키우는 것은 아니야. 자본주의적 문화에서는 다들 각자가 천재라고 생각해. 보기를 하나 들어볼까. 진보운동,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 대여섯 명이 회의를 한다고 생각해봐. 똑같은 생각인데도 내가 얘기해야만 되는 거야, 다 각자가 천재라고 생각하니까, 골치 아파요. 그걸 개성이나 의견의 다양성이라고 하는데, 누가 그걸 모르는 거냐고.

    한강물도 가운데 흐르는 것이 흐름이다. 한강물이 옆으로 조금 새나간다고 해서 한강물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흐름이 하나면 그냥 같이 배 타고 가야 하는데, 배타고 가면서도 각자가 다들 잘났다고 해요. 그런데 이것은 개성의 뿌리까지 죽이는 자본주의가 분열조작의 방법으로 개성을 들고 나오는, 이렇게 분열주의자들을 만들어내는 상황조작에 오염된 면이 없질 않아.

    이 세상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누구를 키운다는 그 어림없는 얘기를 하지마라, 오해 받는다. 그냥 ‘말뜸’을 던지는 거야. 그래서 공감대가 생기면 얘기를 깊이 하는 것이고. 절대로 내가 키운다고 그런 얘기 하지마라. 나이 좀 먹었다고 내가 스승이야 뭐야, 내가 누굴 키울 능력도 안 된다. “너 인마 그런 얘기 할 거면 다신 오지 마!”

       
      ▲강의 중인 백기완 선생.

    껍질을 깨고 싶다

    : 조금 부담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말씀 드리겠습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백기완의 정신과 마음을 따르려고 하는 ‘백기완의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습니까. 노동운동이나 민중운동을 하거나 진보정치를 하든, 지금은 따로 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또 노동운동의 힘이나 영향력도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 ‘백기완의 자식’들에게 한마디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것이든, 따끔한 야단의 소리이든 듣고 싶습니다.

    : 우선 내가 민중미학 특강을 하는데, 자본주의 문명으로는 인류도 망치고 땅별 지구도 망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 젊은이들이 민중미학 특강을 한번 들어봐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생각을 조금씩 좁혀가고 공감대를 넓혀보자는 얘기다. 난 진짜 껍질을 깨고 싶은 거다.

    있는 놈들과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썩어 문드러진 문명 문화 예술의 껍질 속에서 자꾸만 쪼그라드는 진보적인 의식들이 이번 특강을 들으면서, 그 썩은 껍질을 깨는 계기를 모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물론 민중미학특강 속에 모든 것이 다 있어 해결되는 원리가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그렇게 많고 “진보 진보..” 하는 놈들이 그렇게 많은데 책에서 몇 줄 보고나서 그게 진보의 전부인 줄 아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진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자신들을 찍어 누르고 뺏어가고 죽이는 그런 엄청난 폭력과 싸웠던 근본적인 의지와 사상과 정서가 뭐였는지 그걸 알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맥이 없다.

    현상과 현실에서 피부로 느끼는 것들만 있지, 그것이 수천 년 내려온 변혁의 맥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 그것이 젊어 한때 진보 그러다간 얼마 안가서 시들고 생각을 바꾸고 됫싸게는(심지어는) 반역을 놀아나고. 그래서 한번 문제를 던져보려는 것인데, 조금은 이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음도 언짢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진보하지 않고, 교리만 잡고 있는 사람들

    : 왜 불편하고 언짢은 것입니까?

    : 자네도 진보운동 한다면서 대학 나와서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분위기를 잘 알잖아. “사람을 예뻐하고 사랑하되, 사랑을 믿으면 골탕 먹어” 내 말 잘 들어. 사람은 사람에 대해 예뻐하고 사랑을 해야 돼. 그건 절대 포기하면 안 돼. 그러나 사람을 믿으면 골탕을 먹는다. 오래 산 사람의 삶의 깨우침이야. 삶의 철학이야. 새겨들어 인석아!

    사람들이 끊임없이 진보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진보라는 ‘교리’를 가지고 그것만 꽉 잡고 집착하고 있어. 그것에 조금이라고 배치되거나 삐끗하면 다 개새끼이고 반역이고 분열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거야. 돈 벌겠다고 하는 놈들끼리는 서로 아귀다툼을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또 결합을 해. 그래서 보수반동들이 선거를 하게 되면 선거를 잘 하는 거야. 돈 벌겠다고 서로 경쟁하고 죽일 놈, 살릴 놈 하면서도 돈 벌기 위한 틀거리는 서로 보호하는 거지.

    근데 진보한다는 놈들은 돈 버는 틀거리는 착취의 틀거리니까 깨야 된다고 하지. 그런데 ‘어떻게 깨느냐’의 방법론에서는 다 원수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갈라서 버린다. 소주를 마셔도 끼리끼리 마시고, 밥도 끼리끼리 먹고, 끼리끼리 하려고 한다. 자네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로는 ‘종파주의’야. 그것 때문에 진보하는 애들은 다 망해.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로 될 수 있고 종파주의를 극복할 수 있냐? 끼리끼리 해가지고는 안 되고 수천 년을 내려온 저항의 물살, 변혁의 물살에 뿌리를 내리고 오늘의 저항의 물살과 접목을 시켜서 새로운 변혁과 저항의 물살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깨우침을 가져야 된다는 거야. 나는 그 방법의 하나로 수천 년 내려온 민중의 정서를 마지막으로 제시해보려는 거야.

    그래서 이런 것 한다고 하면, 진보하는 젊은이들이 벌떼처럼 모여서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군. 요새가 선거철이라고 하는데, 선거를 백 번 해봐라, 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선거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노동운동이 영국에서 출발했는데 어떻게 되었냐? 페이비언 사회주의밖에 안 되었고 영국의 노동당은 미국의 앞잡이 밖에 더하고 있냐, 뭐야 그게! 선거를 통해서 노동당 정권을 만들고 의회도 장악해봤는데, 뭐가 어케 되었냐고!

    왜 그렇게 되었냐면, 산업혁명 이후의 변혁 과제만을 중심에 놓고 변혁적 철학을 엮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수천 년의 뿌리와 줄기를 잇는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오늘에 발전시켜야 된다는 것을 저버린 것이다. 한강물은 수천 년을 흐른 것이지, 며칠 전부터 흐른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진보 진보…”하는 새끼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서 들어야 되는데 안하는 것이다. 너희들 진보, 진보라고 해봐야, 나는 믿고 싶지 않아. 진보를 따르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해야 돼. 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 허무주의자가 되는 거야. 그때는 난폭한 이명박이나 오바마처럼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면 안 돼! 그러나 사람을 믿지 말고, 깨끗하게 사랑을 할 생각을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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