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급보다 세대가 중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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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4월 02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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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그 사람이 태어난 환경, 사회경제적 처지 등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수학이나 자연과학처럼 명확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정치 성향이나 의식 구조를 갖고 있다.

    가장 강력한 분류 기준은 나이

    사람들을 이런 저런 갈래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기준들, 가령 지역.직업.연령.성별 등은 고유의 메커니즘에 따라 해당 부류의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결속하고 재생산한다. 광주항쟁과 DJ는 광주와 호남 사람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었던 강력한 끈이고, 87년 7~8월 노동자 투쟁 과정에서 전국의 노동자들은 동질의 경험을 공유했다.

    우리가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사람들을 동질의 집단으로 재생산하는 여러 지표 중 가장 중요한 지표를 찾아내기 위함이다.

    2000년대 이후 선거나 각종 정치 공간에서 사람들을 갈라내는 가장 강력한 지표는 나이다. 4.11 선거 결과도 이 기준에 의해 간단히 예측할 수 있다. 20~30대 청년들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민주통합당이 유리하다. 이들 개개인이 누구를 찍었는지 알 수 없어도 집단으로서의 20~30대는 민주통합당에게 표를 많이 준다. 반면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의 투표율이 높아지면 새누리당에게 유리하다. 이들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느 당에 투표했는지 알 수 없으나 50대 이상의 중고령층이 어느 당을 선호하는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직업이나 소득에 따른 차이는 크지 않다. 임금 근로자 중 사무직이 민주통합당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생산직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새누리당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가 높은 편이고, 중산층은 대체로 민주통합당에 대한 지지가 크다. 직업이나 소득도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나이나 세대에 비해서는 그 강도가 현저히 낮다.

    그렇다면 왜 직업이나 소득보다 나이나 세대가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사회발전의 속도 때문이다.

    사회발전 속도의 의미

    1만 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으로 사회발전의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1만 년 전 농업혁명, 수백 년 전 산업혁명은 엄청난 격변이었다. 그러나 한 인간 또는 어떤 인간 집단의 삶으로 보면 여전히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농업시대의 사람들을 갈랐던 주요한 기준은 혈통과 신분이었다. 농민의 자식이면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농민이 될 가능성이 컸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사회변화가 보다 역동적으로 변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자본가의 아들은 자본가, 노동자의 아들은 노동자로 인생을 마친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

    농업시대와 산업혁명 시대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은 주로 혈통과 신분, 계급과 빈부와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었다. 사회경제적인 요소보다 근본적인 요소인 과학기술의 발전, 기후나 인구구조의 변화는 인간의 삶, 구체적인 사회현실을 분석하는 지표로 사용하기에는 그 시간의 흐름이 너무 장구하고 유장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정보통신사회에 접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대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눈부시게 빨라졌다. 과거 60세를 사는 인간이 농업시대라는 동질의 시대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면 이제는 80세를 사는 한 인간의 삶 안에 ‘전근대-근대-현대-초현대’가 공존하게 되었다. 정보통신 문명은 ‘삐삐-핸드폰-스마트폰’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변화를 불과 10년만에 우리 앞에 펼쳐 보였다.

    농업시대라면 그가 노인이든 청소년이든 농업시대라는 한 시대를 살아 가는 동시대의 인간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인과 중고령자, 청년들의 가치관은 서로 다른 시대의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다.

    계급적 차이와 시대적 차이

    50대 이상의 중고령층은 50년대 냉전과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정서를 공유한다. 그가 자본가이든 노동자이든 그들은 모두 전쟁과 반공, 군사독재와 경제개발이라는 동질의 시대적 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나꼼수가 왜 청년세대에게 인기가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SNS에서 전파되는 광속의 의사소통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반면 30대 직장인은 그가 설사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민주화, 정보화 시대의 가치관을 체현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을 마치 봉건왕조의 군주처럼 생각하는 중고령자들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양자간에는 사회계급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회의식보다 산업화시대와 정보통신사회라는 시대적 차이에서 오는 의식 차이가 보다 크다. 따라서 실천적으로 중요한 것은 울산에 살든, 서울에 살든,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인가보다 그가 노동자이든 자영업자이든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이제 50대 중고령자라는 나이가 보다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라면 그가 지주이든 소작농이든 봉건왕조의 세계관을 체현하고 있고, 90년대에 청년시절을 보낸 30대라면 그가 돈 많은 부자의 아들이건, 가난한 자의 아들이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인류 역사의 전 과정에서 언제든 나이에 따른 차이는 존재했다. 오죽했으면 고대 이집트에서도 청년세대들의 세태를 개탄했겠는가? 그러나 과거 나이에 따른 차이는 주로 생물학적인 요소와 관련이 있었다. 가령 사춘기나 청년기의 남성은 성급하고 도전적인 반면 중년에 접어 들면 신중하고 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변화를 좌우하는 요인은 주로 남성 호르몬이나 연륜과 같은 생물학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2010년대의 한국은 세대별 차이가 그저 생물학적 측면을 기저로 하여 발생하는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아니라 ‘산업화시대-민주화시대-정보통신시대’라는 시대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시대적 차이는 하나의 시대 안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차이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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