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괴 포항 집중, 이제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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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4월 02일 01: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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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금속노조 경주지부에서 일하는 한 노조 간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KBS 새노조가 입수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문건을 구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포항노동청 관할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벌어진 민주노조 탈퇴 공작에 대한 물증을 찾고 싶었습니다.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 확인한 결과 2600여건의 문건 중에서 노동조합과 관련된 파일은 4개뿐이었고, 그 중에서 두 개는 노무현 정권 시절인 2007년 1월에 작성된 “현대자동차 전주공장노조, 2교대 근무전환 관련 동향”과 화물연대 운송거부 투쟁 계획 보고였습니다.

나머지 두 개의 문건은 2009년 여름 쌍용차 공장점거파업에 관한 내용으로 “쌍용차 작전 소방관계자 협조 관련 문제점 보고<’09.8.5 1팀>”와 “8.4 쌍용차 작전 소방관계자 비협조 관련 조사보고<’09.8.10 1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소유 논란이 일었던 다스 노동조합 조합원들. 

쌍용차 진압 당시 경찰청-소방방재청 문제 BH 보고

단순한 동향보고였던 현대차와 화물연대의 문서와는 달리 쌍용차의 문건에는 ‘상황→문제점→조치 의견→조사 결과→조치 사항’으로 실제 실행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특공대를 투입한 쌍용차 살인진압의 절정이었던 2009년 8월 4일 경기경찰청은 조립공장 옥상에 진입하려고 했으나 소방 고가사다리차가 지원을 거부해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총리실은 △경기경찰청이 제기하는 문제점에 대해 소방방재청에서 사실 여부 확인 후 유책 관련자 문책 △현장근무자의 우발적 대응인지, 사전 의사결정을 거친 행동이었는지 반드시 확인 △향후 소방방재청의 경찰 작전 협조시 예상되는 법적․현실적 애로사항 청취 후 필요조치 시행 등을 조치 의견으로 보고했습니다.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은 조사 결과 “작전도중 노조원의 공격으로 장비가 고장난 것으로 급박한 작전상황에서 상황 전파 및 보고 과정에 왜곡 발생”이 원인이라며, 8월 7일 “경기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이 전화상으로 서로 오해했던 부분을 해소하고 향후 긴밀하게 업무 협조토록 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문의 맨 마지막에는 “BH에 조치사항 및 결과 구두보고 후 상황 종결”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청과 소방청의 오해 사건까지 청와대에 보고된 것을 볼 때 쌍용차 정리해고의 시작부터 교섭, 점거파업, 살인진압의 전 과정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해 주도되었고, 청와대와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세하게 보고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MB 정권의 ‘안기부’

민간인 사찰, 미행을 넘어 노동 사건에 대한 총체적 개입까지 독재정권 시절 안기부와 같은 역할을 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7월 만들어졌습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공직기강 업무를 담당해 온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했다가 5개월 만에 7개 부서 42명으로 부활시켰습니다.

5월 2일부터 시작돼 3개월 동안 정권의 ‘안전’을 흔들던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은폐된 ‘MB 안기부’를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촛불시위 당시 화물연대 파업, 금속노조 촛불파업 등 노동운동의 저항과 함께 2008년 7월 15일 일어난 ‘이명박 집구석 민주노조 습격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고 : 다스 사태가 보여준 이명박 정부의 결말)

2008년 7월 15일에 무슨 일이?

2008년 7월 15일 새벽, 금속노조 경주지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 논란을 일으켰고, 맏형 이상은이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시트 제조업체 다스에 18년 동안 독재했던 어용노조 위원장을 탄핵하고, 민주노조를 세웠습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매제였던 김진은 독일 출장을 가려다 약속을 취소하고 공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민주노조를 인정하라며 파업을 벌여 원청회사인 현대차의 자동차 라인이 멈출 위기에 처하자, 그는 노조의 요구를 100% 수용했습니다.

당시 교섭에 참가했던 경주지부의 간부는 “파업이 12시간을 넘어가고, 야간에도 현대차 라인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이명박의 매제인 김진 부사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부동자세로 전화를 받으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며 “아무래도 대통령이 아닐까 싶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김진 부사장이 이명박의 전화를 받았는지, 이상득의 전화를 받았는지, 청와대 비서실장의 전화를 받았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일주일 이상 완성차 라인이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에서 ‘높으신 분’께 보고를 드렸을 것입니다.

‘기업 프렌들리’를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 노동조합을 뼛속까지 싫어하는 대통령과 연관된 회사에, 그것도 ‘불법’으로 노조를 만들어 대통령의 가족들을 무릎 꿇게 만든 금속노조 경주지부에 대한 적개심은 어떠했을까요?

관할 사업장인데도 민주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눈치조차 못했던 고용부 포항지청과 경찰, ‘영포라인’ 출신들은 대통령의 고향이자,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의 동네에서 벌어진 ‘대통령 친인척 회사 민주노조 습격사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다스에 민주노조가 세워진 직후에 만들어진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영포라인’으로 구성되고, 이영호(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최종석(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이인규(전 노동부 감사관), 이동걸(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 등 노동부 출신들이 대거 투입돼 불법 민간인 사찰을 벌인 건 우연의 일치일까요?

전임자 임금금지 악법과 금속노조에 대한 총공격

2010년 1월 1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라는 악법이 통과된 이후 이명박 정부와 고용노동부는 금속노조 사업장에 대해 집중적인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정부는 금속노조 사업장에 노동부 관리들을 상주시키며 회사와 노조를 협박했습니다.

특히 포항노동청은 2010년 7월 금속노조 경주지부, 포항지부 소속 19개 노조에 대해 부산, 충남 등 다른 노동청과 달리 전임자 임금문제만이 아니라 조합원 자격, 시설 편의제공, 유일교섭단체 등 10개 항목에 이르는 단체협약을 시정하라는 공문을 보내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했습니다.

노동부와 경찰, 회사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경주에서만 발레오만도, 광진상공, 일진베어링, 이너지, 전진산업, 영진기업 등 6개 사업장 1천여 명이 금속노조를 탈퇴했고, 포항에서도 제철세라믹, 국제강제가 금속노조를 떠났습니다.

단체교섭 거부→직장폐쇄→단체협약 해지→탈퇴조합원 선별복귀→취업 규칙 변경→어용노조 설립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 기획탄압 시나리오는 금속노조 경주, 포항지부 사업장을 시작으로 대구지부 상신브레이크, 구미 KEC, 충남 유성기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포항노동청과 경찰들은 “다스만 금속노조 탈퇴하면 더 이상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습니다. VIP 사업장을 건드렸으니, 보복은 계속될 것이라는 협박이었습니다.

제2의 윤석양, 제3의 정진수들의 양심선언을

1990년 10월 보안사 윤석양 이병은 사찰카드를 만들어 민간인을 불법 사찰했다고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저항의 중심이었던 전노협을 깨기 위해 1991년 안기부는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을 사찰, 미행해 구속시켰고, 그는 병원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습니다. 노태우 씨는 임기는 채웠지만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2012년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과 노조 파괴라는 진실의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감옥으로 가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역사를 20년 전으로 되돌린 이명박 씨의 심판과 퇴진이 아니라 구속을 요구하며 싸우자는 목소리가 높아져가고 있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 중 노동사건은 단 네 건밖에 없어 이명박 정권의 추악한 만행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진실이 담긴 컴퓨터는 파괴되었지만, 인간의 양심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제2의 윤석양, 제3의 정진수들의 양심 선언이 이어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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