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출마했냐, 묻는 당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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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30일 09: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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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게 요즘 가끔 지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계급정치를 할 수 있는, 급진적인 노동운동의 확산 같은 전제 조건들도 성숙되지 않고, 계급정당의 지지율도 부득불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데, 당신이 도대체 왜 가망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시간을 버리느냐, 왜 출마질하느냐".

    가망 없는 일에 왜 매달리냐고?

    이 질문은, 그렇게 묻는 사람의 의도야 어떻든간에, 어떤 사실관계를 옳게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등 주변화된 노동자층의 전투적 운동은 "희망버스"의 성공에 힘입어 지금 대중화되어가고 힘을 얻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노동운동 진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쪽 조합으로 분리되어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단위 조합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해 위주의 수세적인 싸움에 많이 치우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계급정당으로서는 부득이한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아쉽지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계급정치를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은 제 생각입니다. 지금 눈에 띄는 "성공"은 있든 없든 간에, 차후 약자들이 차별과 배제의 벽을 넘을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돼야 할 것입니다.

    70년대의 구소련 재야 인사 사이에서는 유명한 표현이 있었습니다. "가망이 없는 우리 일의 성공을 위해 건배하자!"고. 실제 그렇게 건배하면서 술을 먹곤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자유주의적 재야 운동이든 좌파적 재야 운동이든, 구소련의 그 어떤 반체제 운동도 소기의 목적을 아직도 달성하지 못한 것인 셈이죠.

    소련의 자원과 공장을 훔쳐가면서 지금 "정부"를 사칭하는 푸틴의 강도들은 (선거부정을 저지르고 고문과 정치 암살을 이용하면서 소수민족 독립운동을 극렬하게 탄압하는 의미에서는)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으며 ("자유무역"과 민유화, 복지의 점차적 축소 등을 지향하는 의미에서는) 전혀 좌파적이지도 않습니다.

    구소련 정권에도 많은 문제들은 있었지만 지금 크렘린궁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패당은 하도 하등의 정통성이 없는데다가 자기들의 주머니만 살찌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부"라고 부르기에도 어색합니다. 그런데 구소련의 "재야"가 현실 정치에서 실패했다 해도 그들의 저항은 역사의 "거름"이 되어서 일단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바꾸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저항은 역사의 거름이 되고

    예컨대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 등의 출국 자율화 운동이 있었기에, 지금 같은 경우에는 러시아 인구의 다수는 "자유로운 출국"을 일단 기본 인권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찬가지로 쏘련 정권 말기에 좌파적 입장에서 정권을 비판해 "진정한 레닌주의로의 복귀"를 꿈꾸었다가 탄압 받고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끌려가곤 했던 카갈리츠키타라소프 등은 지금도 러시아의 급진 좌파를 이념적으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쏘련을 "혁명화"시키는 데에 실패했지만, 그들의 저항은 절대 헛되지 않았습니다. 헛된 저항이라는 게 과연 있기나 하나요? 사람이 원래 인간다운 실존을 득하자면 부당한 외부적 압력에 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항은 생명이니까요.

    조선 근현대사도 결국 같은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1920~40년대의 공산주의자들, 박헌영이나 이현상, 이관술, 이재유, 김태준, 박치우 같은 분들은 아주 철저하게 패배 당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일제나 남조선의 권력자들의 손에 죽지 않은 이들은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벗어나 다소 퇴영적인, 半봉건적인 "농민 사회주의"로 회귀한 북조선 권력자들의 손에 죽은 것이고, 그 유산도 1980년대 후반이 돼야 남쪽에서 그나마 빛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정치적인 실패는 어떻게 보면 "예정된" 부분은 있었습니다. 미 제국의 군사보호령으로 전락된 남쪽에서는 그 어떤 조직적 계급투쟁도 불허하는 전체주의적 병영 국가 체제가 잡힌 것이고 민중적인 변혁을 거친 북쪽이라 해도,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노선으로 갈 만큼 대중들도 활동가층도 아쉽게도 제대로 성숙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죽일 수 없는 것

    일제 조선의 위대한 공산주의적 혁명가들은 제국주의의 불가항력의 "힘"과 대중의 "미성숙"이라는 이중의 "벽"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들이 싸우다 죽게 돼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은 과연 헛된 것이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향식 선생 등 남민전의 전사들도, 사노맹의 전사들도, 자신들의 이현상 빨치산들의 "후예"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급진적인 운동을 조선의 공산주의적 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파악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많이 온건화됐지만, 후대의 혁신 정치가, 재야 인사들에게 영감을 주고 이승만 패당의 손에 비극적으로 법살된 조봉암 선생 같은 분들도 결국 1920-30년대 공산 운동의 "후예"는 아니었습니까?

    전평의 강제 해산과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 대한노총이라는 반동적이며 반노동자적 단체의 성립으로 식민지 시대의 노동 운동 전통이 많이 끊겼지만, 그래도 후대의 노동자들에게 본보기가 된 1950년대의 방직공장들에서의 파업 등은 어디까지나 공산주의자들이 이끌었던 식민지 시기 노동운동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김일성이 박헌영을 죽이고 이승만이 이현상을 죽여도, 무계급 사회를 향한 그들의 정신을 그 어떤 권력자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짧지만 저항의 역사는 길게길게 흘러갑니다. 우리는 사적인 기업왕국인 재벌과 무권리의 비정규직 노동자, "예외 없는 징병제", 악덕기업처럼 학생들을 등쳐먹는 대학기업들과 그들과 똑같이 돼가는 의료기업인 사립병원들이 없는, 복지와 공공성 위주의 한국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 운동을 또 누군가가 이어가서 어차피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좌파정치라는 이름의 저항을, 꼭 "이기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답게 살다 죽기 위해서 하는 것이죠. 현실에서 아무려 져도, 결국 역사의 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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