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힌 광장, 소리 없는 아우성
    By
        2012년 03월 26일 02:34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시청광장 동편 차로에는 경찰기동대의 버스가 광장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게 완벽히 울타리를 쳤다. 게다가 서울점령촌으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수백의 경찰병력이 점령촌을 포위하고 있다. 광장이 사방으로 막힌 섬이 되었다. 2012년 3월 25일, 서울의 현실이다. 내일(26일)부터는 서울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 묘한 대조가 폭발할 것 같아 우습고, 마음이 지저분하다.

       
      ▲경찰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오프닝파티부터 철거 우려

    지난 3월 1일, 시청광장 동편에 텐트 10동을 설치할 계획을 세울 때부터 우리가 가장 걱정했던 건 경찰의 점령촌 철거였다. 점령 오프닝 파티 "쉘 위 아큐파이"가 웹으로 공지됐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도 배포된 후 시작한 점령이라 사전에 텐트설치가 저지될 수도 있었고, 파티가 끝나고 점령자들만 남은 한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텐트가 철거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6시로 예정된 텐트설치와 "쉘 위 아큐파이" 파티 직전까지 언론의 반응은 싸늘했고(지금도 싸늘하다. 소셜펀치 후원함도 마찬가지), 텐트 철거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었다.

    예상한 대로 준비단계부터 경찰들이 분주히 무전을 교환하며 오갔지만, 여러 시민들(150여 명)이 모인 덕분에 별 일 없이 파티가 시작될 수 있었다. 서대문 영천시장에서 장을 본 재료로 만든 샐러드는 쉴 새 없이 나갔고, 준비한 드레싱과 맥주 60병이 금세 동이 났다. 샐러드팀이 긴급하게 편의점에서 싸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 재료(케찹과 마요네즈)를 공수했고, 간혹 알콜이 더 필요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인근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해야 했다.

    이 날 섭외된 뮤지션은 블루스뮤지션 김대중과 회기동 단편선 두 팀이었지만, 나캉, 쏭, 이윤혁 등 방문한 뮤지션들이 즉석해서 무대에 올라주어 풍성한 잔치가 되었다. 크고 견고해 멍청해 보이는 플라자 호텔의 THE PLAZA 간판과 그 앞 광장 한켠에 펼쳐진 60촉 전구 조명의 아큐파이 무대가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공연 중이 점령자들. 

    첫번째 철거위협

    점령촌을 꾸민지 1주일 만인 3월 8일, 첫번째 철거위협이 있었다. 위협은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양공작전으로 진행됐다. 남대문경찰서 경비과가 병력투입을 예고하고, 서울시청이 광장사용신청허가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오는 식이다.

    오후 1시, 악명높은 남대문서 경비과장이 병력을 이끌고 시청광장 동편에 등장했다. 소식을 들은 대학생본부와 기본소득본부는 차례로 성명논평을 내고 웹으로 이 사실을 알렸다. 점령자들은 경찰의 계고에 강력히 항의하고, 경찰은 이내 물러갔다.

    이 날, 시청과 경찰의 자진철거계고 및 강제철거위협의 뚜렷한 근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황상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이 의심은 며칠 후 서울점령촌을 다룬 최초의 종이신문인 중앙일보의 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주변을 순찰하던 경찰은 “천막 안에서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니거나 고성을 지른다”며 “담배를 피우는 시위대도 목격됐다”고 전했다.

    <텐트서 노숙, 밤엔 술판…서울광장 무슨 일>이란 타이틀의 3월 12일자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서울점령촌이 취객들의 무법공간으로 보인다. 순찰하던 경찰의 코멘트로 구성된 위 문장과 함께 게재된 사진은 3월 1일 "쉘 위 오큐파이"로 마치 서울점령촌이 대규모로 술판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지만 우스운 날조다.

    이날 150여 명이 나눠마신 맥주는 330ml 60병에 불과했다. 게다가 3월 5일에 열린 1차 총회에서 서울점령자들이 정한 음주원칙은 특별행사가 아닌 경우, 음주는 각 텐트로 한정하되 취하지 않을 양(1병 이내)로 제한하기도 했다. 물론, 경찰과 시청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점령촌의 화목을 위해서 스스로 내린 조치다.

    그렇다면, 위의 중앙일보 기사가 다루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은, 점령 첫 주부터 중앙일보 기자라고 신분을 밝힌 젊은 기자 한 명이 점령자들의 코멘트를 따려고 분주히 점령촌을 돌아다녔다. 조중동의 코멘트 활용 수법(?)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인터뷰에 응해주는 점령자도 없었지만, 우선 기자가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닌 질문 자체가 기사에 언급된 풍기문란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기자는 계속해서 ‘박원순 시장이 사용허가를 내 준 사실’과 ‘4.11 총선과의 관련성’을 캐물었다. 광장사용 허가는 일반적인 절차로 이뤄졌고, 정당 지지나 선거참여에 대해서 서울점령자들은 모든 것을 개인점령자의 소신에 맡기고 공식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미리 공개한 바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별다른 할 말은 없었다. 소득이 없어진 기자는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3월 12일이 되어서야 갑자기 이런 기사가 등장한 것이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내려보면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래 부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광장 앞 플라자호텔과 롯데호텔에만 각국 정상 5명 이상이 머물 예정”이라며 “청와대에서 서울광장, 남산 3호터널로 이어지는 의전 루트를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텐트 노점(노숙·점거) 시위가 2004년 서울광장이 조성된 뒤 처음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서울시청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서울광장에서의 텐트 노점 시위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10월 당선된 뒤 “서울광장은 앞으로 시민의 것이다. 누구의 허가에 의해서가 아닌 누구나 나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마음껏 주장하는 곳”이라고 밝히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대학생 시위대가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 있던 텐트를 서울광장으로 옮기겠다고 하자 서울시가 별말 없이 허가했다.

    물론, 서울점령자들의 트윗 계정(@SeoulOccupiers) 정도만 잘 체크하는 분들이라면 그럴 일 없겠지만, 시청광장을 나들이할 일 없이 신문기사만 믿는 독자라면 깜빡 속을 말이다. 같은 날 올라온 국민일보의 사설과 14일에 나온 조선일보의 기사(김상민, ‘이름만 바꿔가며 41일간 서울광장 독점하는 시위대’)도 3월 26일, 27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리는 서울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의 시위대를 쓸어버리라는 주문과 박원순 시장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철거위협과 옆 동네 희망광장 철거

    이런 시도는 서울점령자들과 함께 서울광장을 점령중인 옆 동네 점령촌 희망광장 철거로 이어졌다. 3월 21일 서울시와 남대문서는 서울점령자들 측에도 8일과 같은 양동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갑호 경비령’과 ‘경호안전구역 선포’라는 무기를 추가 장착하고 나왔다. 서울시청은 위의 언론보도를 의식했는지 "언론보도 등 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언급에 밑줄을 친 공문을 보내 서울광장 사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협박을 해 왔다.

       
      ▲공문 내용.

    서울시의 ‘준수사항 이행’의 주요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지정장소와 시간 내에서 사용해야 한다.
    2. 허가된 시설물의 변동사항은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
    3. 질서와 청결을 유지해야 한다. (음주, 흡연, 취사행위 금지)
    7. 시민의 자유로운 통행을 방해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 중앙, 국민, 조선의 의도와 맞아떨어진 공문이었다. 기본소득운동본부는 즉각 성명을 쓰고 경찰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환멸이 몰려오는 시간이었다. 작은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즉 불필요한 위해를 끼치지 않고, 소박하고 흥겨운 방식으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굳이 이를 수백의 경찰병력으로 포위하고, 망측한 언어와 톤의 경고방송으로 위협해야 하는 것일까? 경찰과 시청이 주장하는 시민불편을 야기하고 도시미관을 해치는 것은 정작 광장을 가로막고 분주히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하는 경찰기동대의 반짝이 조끼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채 가시지도 않은 21일 오후 9시, 경찰은 작은 앰프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어쿠스틱 기타를 이용한 노래를 간간이 부르면서 진행중이던 희망광장 문화제를 수백의 병력을 투입해 순식간에 진압해버렸다.

    유니폼을 입은 덩치들이 "들어가, 채증해, 연행해"로 악명높은 남대문서 경비과장의 명령에 따라 희망광장을 진압하는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작년 여름 어느 늦은 밤, 명동 마리 농성장에 침범했던 용역회사의 덩치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희망광장 농성장에 들어온 경찰은 순식간에 앰프를 해체하고, 모인 사람들을 좁은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강력한 국가의 힘은 단 몇 초만에 ‘집회해산’을 실행시켰다. 희망광장의 점령자들은 아수라장이 된 점령촌에서 앰프와 기타, 귀중품과 물품을 찾고 있었지만, 경비과장은 계속해서 집회를 즉시 해산하라고 쪼아댔다. 해산된 집회를 해산하라니, 황당한 논리였다.

       
      ▲’점령지’에서의 공연. 

    하기야, 이날 낮에도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희망광장을 지원하고 있는 진보신당의 정당연설차를 견인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경찰은 처음에 희망광장이 집회는 불법이므로 집회차량을 이동하지 않으면 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그 차는 정당법이 자유로운 정차와 연설을 허용하는 정당연설차량이었다.

    정진우 후보가 연설을 준비하자 이 연설회가 희망광장 진압을 방해할 것으로 여긴 경찰은 무력으로 연설차량의 셔터를 내리고, 앰프 사용을 제지해버렸다. 황당해진 정진우 후보가 마이크 없이 육성으로 사람들에게 정당법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이제 연설을 하지 않으므로 이 차량은 불법주차라며 견인하겠다고 선언해버렸다.(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ㅋㅋㅋ)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남대문서 경비과장은 계속해서 희망광장 점령자들에게 자진해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신고된 집회도 불법입니다." 경찰방송차량에서 흘러나온 이 날의 명언이었다.

       
      ▲진압하는 경찰. 

    자, 대체 누가 누구의 공간을 함부로 침범해 질서를 위협하고 혐오감을 주고 있는가? 십수명의 점령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99%의 미래를 논의하는 점령촌에 완전무장한 차량과 병력을 동원해 무력시위를 조장하는 것이 대체 누구인가? 또 이를 방기하는 시청당국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또한, 핵 테러 야바위나 퍼뜨리며, 외국 정상들과 밀담이나 나누려는 이 나라의 논리와 정신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 나라의 99%를 쓸어내고 외국에 꺼내주려는 간과 쓸개는 대체 무엇인가?

    21일 기본소득운동본부의 성명 말미의 문구다. 다행이 희망광장의 천막과 서울점령자들의 점령촌은 아직 철거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경찰버스와 병력에 의해 사방이 막혀 있다.

    2012 서울 핵안보 정상회의 홈페이지에는 "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 글로벌 코라아가 앞장섭니다!"라고 쓰여 있다. 글쎄, 나는 이 문구가 정녕 현실을 반영한다면, 다음과 같이 정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폭력적이고 불안한 세계, 글로벌 사냥개 코리아."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