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 정파적이고, 아주 대중적인"
        2012년 03월 25일 1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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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23일 19대 총선 후보 등록을 몇 시간 앞두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선거연대의 상징 지역이고 또 분란의 최일선 지역이었던 관악을에서 이정희 대표가 후보를 사퇴하고 이상규 후보로 교체되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를 관악을 지역의 양 당 단일후보로 인정하였다.

    이정희 대표의 고민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의 분란이 이정희 대표의 사퇴, 이상규 후보로의 교체와 양 당 단일후보 인정, 김희철 민주통합당 의원의 사퇴와 무소속 출마로 종결되었다. 또 다른 분란 지역이었던 안산 단원갑에서 민주통합당이 공천을 강행했던 백혜련 후보는 결국 후보를 사퇴하고 등록하지 않았다. 간단하다. 이것이 사건의 개요이다. 그러나 그 사건의 후과와 의미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먼저,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 전체 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호남과 경북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통합당과 진보통합당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 상황이다.

    애초에 전략적으로 통합진보당에게 배정된 지역, 민주통합당과 경선에서 승리한 지역, 단일화 없이 출마하기로 한 지역 등을 합치면 50여 곳에서 통합진보당은 지역 후보를 낸다. 지역 후보의 숫자는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폭 줄었지만 그 지역 후보들의 경쟁력과 득표력은 후보 단일화를 통해 상당히 올라간 것이다.

    소선거구 단순 대표제의 다수가 출마하는 구도라면 통합진보당 후보 중 당선권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데 단일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력을 가진 지역 후보의 숫자는 대폭 늘어난 것이다. 후보의 ‘양’은 줄었지만 득표력이라는 ‘질’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이 ‘질’은 자체 경쟁력과 득표력이라기보다는 양당의 단일후보라는 브랜드를 통해 형성된 측면이 강한데, 이 양 당의 단일후보라는 틀이 무너지거나 훼손될 경우 많은 지역후보들의 경쟁력에도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이정희 대표의 사퇴는 관악을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합진보당 전체 지역후보들의 문제와도 연동된다는 점에 이정희 대표의 고민이 있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정당 지지율 3%P 이상 올라간다?

    둘째, 통합진보당의 정당 지지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선거연대를 통해 협력 체제를 구축했지만 결국 선거에서 경쟁 상대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민주통합당을 넘어서기 위해서 정당 지지율의 확장이 주요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통합진보당은 야권연대라는 프레임을 통해 그동안 취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정당 인지도를 상당히 끌어올렸다. 2월까지만 하더라도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4~5%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것은 통합 전 민주노동당이나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지지율을 단순 합산한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어서 통합진보당의 고민이 깊었다.

    그 핵심 요인의 하나가 통합진보당의 취약한 인지도였다. 이것이 야권연대의 지루하고 지난한 협상과정, 단일화 경선과정, 논란이 격화되고 해소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모든 과정들이 언론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그 결과 통합진보당은 정당 인지도의 취약함을 거의 해소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민주통합당 내부 공천 과정의 파열음과 계파 갈등 등이 부각되고, 비교적 통합진보당이 별 잡음없이 양 당 연대에 임하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춰지면서 대중적 호감도도 일정하게 형성한 것이다.

    그 정점에 관악을 지역의 분란이 발생한 것이다. 이정희 개인의 생존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정희의 전략적 후퇴와 동정 여론을 통해 정당 지지율을 최대한 끌어올릴 것인가? 라는 선택지에서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통합진보당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정당 지지율은 3%포인트 정도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례후보 10번대까지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당권파들 손해볼 것 없다

    더불어 이정희 대표가 사퇴하고 그 결실을 ‘괘씸한(?)’ 김희철 의원에게 줄 수 없었기에 이상규 후보로 교체하여 출마시킨 것이다. 이정희 대표는 희생양과 고뇌어린 결단을 한 정치인이라는 ‘고결한(?)’ 이미지를 획득하고, 이상규 후보가 교체 출마하여 당선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이상규 후보가 당선되지는 못하더라도 김희철 의원을 낙선시킬 수 있다면, 이 또한 통합진보당의 ‘물리력’을 대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들로서는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통해 잃은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현실의 제도정치에서 이정희 대표 정도의 인지도와 명망성을 가진 국회의원을 당분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울 것이다. 이 점은 그동안 통합진보당의 당권파가 세력으로는 당 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세력이지만 이들을 대표할 수 있는 대중 정치인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대중 정치인에게 밀리거나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자체 평가를 했다는 점을 볼 때, 지난 4년 동안 조직적으로 투자하여 대중적으로 성장시킨 이정희 대표의 존재는 컸고, 그래서 아쉬운 것이다.

    이는 이미 통합진보당이 내부의 정파적 세력 관계로 운영되는 수준을 넘어선 대중 정당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당권파들은 이 또한 비례대표경선을 통해 일반명부 1위를 기록 전체 2번 순번을 받은 이석기 후보라는 존재를 통해 일정하게 극복하려고 할 것이다. 이석기 후보 또한 통합진보당의 범 당권파 그룹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통합진보당 내부의 비례대표 선정과정과 이정희 대표의 사퇴 과정, 더 나아가서는 세 개의 그룹이 통합하여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통합진보당에서 민주노총이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고, 노동정치의 관점과 사고는 이미 당 내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포인트이다.

    세계의 진보정당 역사를 보더라도 노동조합의 조직된 힘이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보통 그 힘과 비중은 당의 정강정책을 정하는 것이나, 당직이나 공직에서 노동조합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진정한 노동정치의 기준이 될 수 있냐는 비판이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기준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정치의 실종

    그런데 통합진보당의 모습을 보면 당의 강령이나 정책에서 노동정치, 특히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적인 것으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고, 이번 비례후보 경선과정에서도 노동계 출신 후보들이 당 내 경선에서 미약한 득표력을 드러냈다.

    노동정치 출신으로는 8번 순번을 받은 이영희 후보와 11번 순번을 받은 나순자 후보가 가장 앞 순번을 받은 셈이다. 그래서 지난 비례투표 개표과정에서 노항래 후보와 이영희 후보의 순번을 두고 갈등이 격화된 것이고, 민주노총 등의 압력이 일정하게 작용하여 이영희 후보가 노항래 후보보다 앞 순번을 양보받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으로서도 통합진보당을 전략적으로 지지하는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부치고 있었는데, 정작 당의 주요한 공직 후보에 민주노총 출신이 없어서 내심 불만이고 불안이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노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통합정신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던 구 국민참여당 일부 당원들의 정서도 존재하고, 이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이 내부 조합원들이나 전체 노동자에게 가지는 정치적 권위와 영향력도 많이 퇴색하였고, 노동조합에도 통합진보당 내부의 정파적 영향력이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합진보당 내 ‘노동정치’의 실종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되돌아보면 결국 ‘야권연대’라는 이름과 만나게 된다. 민주통합당과의 전략적 연대를 통해 총선을 돌파하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고 연립정권을 수립하겠다는 전략, 이 전략이 민주통합당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통합진보당도 일정한 지분과 현실적 힘을 갖고 이루어지는 연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분을 민주통합당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서는 민주통합당이 무시할 수 없는 물리력과 조직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과거 민주노동당 그룹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의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정치세력과 합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해체인가, 지혜로운 발전전략인가?

    이러한 전략적 경로를 추진하는데 ‘노동정치’의 관점과 사고방식, ‘탈자본주의’적 지향과 이상이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부차적인 의미일 뿐이다.

    그래서 야권연대라는 이름의 양당 선거연대 전략은 결선투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없는 소선거구 단순대표제라는 열악한 한국의 선거제도, 정치환경에서 정당의 힘을 키우기 위한 ‘현실주의’적 전략일 수는 있지만 진보정당으로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전략은 아닌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하나의 정당으로서 그 존재감을 키우고, 의석수를 확대할 수는 있다. 상대적으로 민주통합당이 과거 DJ 시절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면서 응집력이 높은 지지층을 갖고 있는 ‘강한’ 정당이 아닌 여러 계파들의 연합으로 존재하는 ‘약한’ 정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존재감과 영향력의 발전 경로가 과거 분당 이전의 민주노동당처럼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이름으로 성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개혁당, (꼬마)민주당, 열린우리당처럼 변형된 자유주의 정치의 이름으로 성장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즉 전략적 우회를 통해 발전경로를 밟는 지혜롭고 영리한 길인가? 아니면 야권연대에 집착할수록 지속적으로 우경화되고 민주통합당과의 정치적 정책적 차이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진보정치 소멸의 길인가? 라는 질문이기도 하다. 

    진보신당 선택과 경로에 대한 관심

    그래서 이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진보신당의 선택과 경로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진보신당은 진보적 정체성을 뚜렷히 하면서 다른 정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차별화에 근거하되, 진보신당을 어떻게 성장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경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야권연대에 배제당한 것에 분노하고 있지만 야권연대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을 비판하고 있지만 노동정치에 대한 새로운 접근 전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녹색당과의 연대와 동맹을 바라고 있지만 어떻게 그 동맹을 만들 것인가는 이후의 과제로 남겨졌다.

    진보좌파의 단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경로와 실천은 아직 모호하다. 아마도 임박한 총선에서 정치적 생존권을 획득하려고 고군분투하는 탓일 것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과 다른 진보신당의 길, 진보정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안은 총선 이후에 보다 구체화되고, 확인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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