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퇴하고 잔다르크로 부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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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22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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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공동대표께 고언을 드립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이 대표가 출마한 지역구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이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라 야권연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이 대표의 진단과 해법은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진단과 해법의 문제점

    이 대표의 말씀은 "보좌관의 과잉 의욕으로 빚어진 사고이며 , 부정 답변을 유도한 것이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려우나 원하면 재경선을 하겠다"는 정도인데, 과연 그 정도로 이 문제가 덮어질까요? 아닌게 아니라 지금 언론과 SNS에서는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과열 경선이 빚어낸 사고가 맞습니다. 이 대표 쪽만이 아니라 상대 후보 쪽에서도 유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으니 서로 장군멍군을 주고 받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기존의 보수정당들은 이 보다 훨씬 중대한 부정선거를 저질러 왔음에도 진보정당에게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공평하지 않다는 인식도 어찌보면 타당합니다.

    경선이 과열되면 리더가 통제하기 힘든 이러저러한 사고들이 터지는 건 익히 보아 온 것이고, 이번 건도 고소고발이 오가는 중대 부정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실 큰 문제도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몇 일 더 두고 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야권연대 협상을 책임졌던 당 대표가 직접 관계된 사건이라는 것이 이 문제를 간단히 덮고 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야권연대의 공정한 관리자로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위치에 있는 당의 대표가 경선의 기본 룰을 훼손했다는 것이 야권연대의 도덕적 정당성 자체를 의심받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대표는 그냥 19대 국회의원이 되면 좋은 후보감이 아니라 진보정당을 대표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사건의 성격 자체를 분석해 보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드러납니다. 아래 SNS에 올라온 글(정00의 글)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부정한 의도, 부정한 방법을 통해 표본추출에 개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 여론조사 방법을 채택한 것은 국민여론을 제대로 파악해서 이를 후보선정 기준으로 삼자는 것일텐데 그러자면 전체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골고루 추출되어야 하는데(대표성의 확보), 특정 운동원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려고 했던 것. 이는 응답자 표본의 대표성 대신 특정여론을 과대 대표하게 하려는 인위적 시도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는 시도.

    특히 응답자 자격의 조작(가령 응답자 세대의 거짓 응답)까지 시도했다는 점. 여론조사 방법의 기본 가정(무작위적 확률표본 추출, 진실 응답)을 부정하려고 했다는 점. 실제 얼마나 여론이 왜곡되었는가의 문제를 떠나 자신들이 합의한 제도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고, 더구나 거짓 응답을 통해 의도적으로 조사결과를 왜곡하려했다는 점에서 이번 조사의 정당성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온 것"

    앞에서는 여론조사를 하자고 합의해 놓고, 뒤에서는 여론조작을 하려했다는 것이지요. 유권자들의 민의조차 왜곡하려고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아닌가요? 지금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문제의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보면 뭐하냐는 거죠? 민주주의조차 부정하는데, 이게 어찌 사소하다 할 수 있습니까? 민주주의조차 간단히 무시하는 당 대표를 두둔하는 정당? 그것이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두 명의 상근자 과잉충성으로 보기엔 부족한…

    이후의 대응은 또 어떻습니까? 일부 상근자들의 과잉 의욕이 빚어낸 실수라고요? 그 결과 ARS(자동응답 여론조사)에서 RDD(면접원의 직접 전화 여론조사) 보다 15% 이상의 격차를 만들어냈더군요. 이렇게 두 여론조사가 심각한 격차를 보이는 것이 무슨 조화인지요? 여론조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부정응답을 유도한 두 명의 상근자가 보인 과잉 충성으로 축소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괴롭더라도 SNS의 글을 계속해서 보시겠습니까?

    "정보취득 경로에 대한 의원실 해명은 ’50대 응답자 조사에 참여한 지지자들이 50대라고 하자 전화가 끊긴 것을 보고’ 쿼터가 채워졌다는 것을 자발적으로 제보하고, 이를 비서관이 배포했다는 논리. 그러나 이는 자가당착이다. 의원실에서는 앞서 정당 지지자 수백명에게 배포되더라도 이들이 조사표본으로 뽑힐 확률이 낮아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이 미미하다고 주장해놓고, 역으로 정보취득 과정에서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조사표본에 뽑혀 쿼터 할당에 대한 정확한 세대별 정보를 그렇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취합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화 끊김에 대한 사전교육과 행동지침 없이 가능한가(전화 끊기면 쿼터 마감이라는 걸 어찌 알까). 만약 그렇다면 두 명의 과욕 이상의 조직적 시도로 봐야 한다."

    자, 이 글은 저도 면식이 있는 분의 글이며 이 대표에게 무슨 적대감을 가진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정을 갖고 있는 분이지요. 그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난 이정희 의원 진보정당의 보기드문 매력있는 젊은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해왔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당장 죽는 길로 보일 것이다. 자칫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의 싹도 같이 죽을 길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장기적으로 보면 이상도 살고 본인도 사는 길이 있다고 본다.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면 답이 있을 것이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일반 시민의 눈으로 보면 답이 있다"

    저 또한 진보신당 통합 논의의 초기부터 폭넓은 진보대통합을 주장해 온 사람으로 진보통합에 관한 한 이대표와 유사한 입장을 견지해 온 사람입니다. 비록 이지러지긴 했지만 어렵사리 만들어낸 통합진보당이 자신의 잠재력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주저앉고 말 것 같아 곁에서 지켜보는 게 참으로 괴롭습니다.

    한미FTA가 발효되고, 구럼비가 찢겨나가고, 핵발전소의 위험천만한 사고가 은폐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힘찬 목소리를 내야겠는데 이런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여론조사 부정 조작만이 아니더군요. 성추행 전력자에 대한 검증도 없이 지역구 후보로 결정한 것이나 청년비례대표 선거 조작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총선을 코 앞에 두고 총체적 난국에 봉착해 있습니다.

    이번 이 대표 캠프의 그 사건 덕택에 이 모든 구태정치의 오명을 이 대표가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래가지고 무슨 명분으로 통합진보당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지, 나아가 저 새누리당의 디도스 테러나 성추문에 대한 질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어쩌다 이런 비합리와 몰상식이 하나도 걸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흘러들었는지 통탄할 노릇이지요.

    안정적인 원내교섭단체를 희망했던 통합진보당이 백척간두에 놓였다고 본다면 과도한가요? 민심을 잡지 못하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이 당에 애정을 보이던 분들이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하루 종일 쓰다 지우고, 쓰다 지웠습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이 머릿 속을 천둥처럼 울립니다.

    이정희 대표님, ‘백척간두 진일보’합시다

    분하고 억울하더라도 깨끗하게 사퇴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는 게 어떨까요? 그것이 야권연대의 잔다르크로 부활하는 길이 아닐까요? 문제가 된 지역구 후보는 물러났지만, 청년비례대표도 투명한 관리 하에 새롭게 선출해야 하지 않을까요? 나아가 현직 광역의원직을 사퇴하고 출마한 이들도 불출마를 선언하고 새로운 후보를 내세우거나 야권 후보에게 과감히 양보하는 대승적 결단을 하는 건 어떨까요?

    모두가 입을 모아 죽어야 산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빚어진 온갖 파행을 일거에 숙정하고, 말 그대로 민심과 함께하는 새롭고 참신한 진보정치를 선보이라고 합니다. 18대 국회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 보인 이 대표를 왜 이런 사지로 내모는지 울화가 치밉니다.

    그러나 그것이 통합진보당을 살리고 야권연대를 살리는 길 같습니다. 각자의 억울한 사정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의 결단 여하에 따라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가 살아난다면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멸사해 왔던 여러분들의 보람이 아닙니까? 그것이 죽어서 사는 길 아니겠습니까? 불명예를 인정하는 것이 적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우려하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던져 야권연대를 구하고, 당을 구하려는 여러분들의 충정을 당원과 국민들이 오히려 높이 살 것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길입니다. 오히려 버티면 버틸수록 통합진보당은 구차해질 수밖에 없고 빛 바랜 진보의 수렁에 빠져들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낡은 허물들은 다 내려 놓읍시다. 비우고 새로 채우도록 말입니다.

    말석에서 이창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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