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학생운동권. 히피들과 함께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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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19일 05: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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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Occupy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그룹을 처음 만났을 때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들은 통제되지 않았고, 자유로우며, 심지어 발언을 할 때는 멍청해 보였다.”

   
  ▲서울시청 앞 광장을 ‘점령’한 사람들.

"통제되지 않고, 멍청해 보이는"

16일에서 18일까지 진행된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독일좌파당 가비 스미스의 이야기가 배고픔과 지루함에 멍 때리고 있던 나를 깨웠다. 독일의 기본소득 그룹은 내가 여의도에서 광장으로 Occupy운동을 옮기면서 만난 한국 기본소득 지지그룹과 같은 라인인 것 같다. 이 글의 앞선 필자인 단편선이 대표주자다.

독일좌파당의 이야기에 "그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라며 속 시원해하면서도, 뭔가 안심이 됐다. 나는 이후의 발표에서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써먹으면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한국의 조직 학생운동권만의 꼰대 같은 생각이 아니라 독일 좌파당당원도 느끼는 국제적인 것이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진실은 잔인하다. 서울광장으로 Occupy운동을 확대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니 사실은 여의도에서 Occupy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대학생이 아닌 새로운 주체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직장인과 같다. 심지어 방학 때도 계절학기와 어학연수, 자격증 따기에 바쁘다. 점령운동과 같이 삶을 가지고 저항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자전거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만들고’ 있다. 

지금의 사회시스템에서 1%대 99%의 대결이 아닌 20%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한국 대학생들의 당연한 욕망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Occupy운동의 무당파성과, 무정형성, 개방성과 직접민주주의적 성격은 기존의 조직운동이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운동조직들이, 심지어 학생운동조직들도 왜 우리가 텐트를 치고 한국거래소를 점령했는지에 대해, 왜 이 시기에 광장을 점령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의문을 표시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은 희망텐트를 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1500일 넘게 투쟁을 이어온 재능 비정규직 노조 정도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의 희망광장을 3월의 서울광장에서 이웃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요구 없는 투쟁

그러나 Occupy운동을 함께 이끌어갈 주체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좀 어렵게 말하면 프레카리아트,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젊은 프레카리아트였다. 아르바이트 노동자, 생계의 위협에 시달리는 예술가들, 저임금 노동을 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이었다.

이들은 기존 조직운동과 정당운동에 부정적이었고, 아나키스트부터 맑스주의자까지 사상적으로도 다양했으며 급진적이었다.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들이 우리의 여의도 점령에 주목했고, 서울광장으로 점령지를 옮겨서 한국판 Occupy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제안에, 호응했다. 사실 호응이란 말에 그들은 매우 기분나빠할 것이다.

   
  ▲오만가지 요구 중 하나. 

“여의도에서 고생한건 알겠는데, 개소리 하지 마라, 우리가 점령마을의 주인공이다!”

Occupy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막상 만난 이들은 모든 것이 나와 맞지 않았다. 일단 요구를 내걸지 말자고 했다. 아니 어떻게 요구사항이 없이 텐트를 치냔 말이다. 급진적인 요구를 내걸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지만, 그들은 완강히 반대했다.

요구를 내걸고 운동을 벌이는 순간 요구사항이 관철됐을 때, 점령은 끝나야 했다. 그건 우리가 그냥 집회도 아니고, 광장을 열고 그곳을 점령하자고 제안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순간, 투표함의 개봉과 함께 저항은 끝난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지는 정치소비자로 전락해버린다. 한 가지 목적을 분명히 내세우는 운동에 대한 그들의 거부감은 선거에만 매몰되는 지금의 운동진영에 대한 거부감과 같았다.

점령운동 성과 가져가는 보수정당

안 맞는 건 또 있었다. 도대체 내가 알 수 없는 노래들만 틀어댄다. 인디음악이란다. 나는 가요 내지 민중가요가 제일 편안하다. 시끄러운 음악은 딱 질색이다. 점령 첫 행사는 맥주파티였다. 세상에 점령하는 날인데, 기자회견이 아닌 술이라니! 그들은 프랑스 철학자들을 좋아한다. 다양하게 공부해야 하는 건 동의하지만 어차피 맑스에 주석을 단 것 뿐 아닌가.

그들은 희망광장 노동자들과의 확실한 구분도 원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들인데 공손하게 이야기하고 우리가 맞추어야 하는 건 아닌가. 전통적 학생운동권인 나로서는 내적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민은 길게 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은 이런 건 예상하고 있었다. 나에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점령운동이 벌어졌다. 촛불집회가 있었고, 희망버스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성과가 기존보수정당으로 갔다. 이 운동에 참여한, 자신이 기획자이고 주체적인 참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묶어내는 조직이 새롭게 구성되거나 이후의 지속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미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미국 Occupy운동에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기 위한 시도를 했다. 그것이 실패하자, 그들은 태도를 바꾸어 Occupy운동이 테러리즘이라고 공격했다.”

미국의 점령자인 유리 칸토르씨의 증언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존 진보세력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등록금 폭등 등을 가져온 국민참여당과 합당을 했다. 그리고 청년비례대표처럼 경쟁방식의 시스템을 도입했다. 경쟁시스템보다 더욱 더 중요한 문제는 청년들의 대표를 뽑는 주체가 청년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청년들은 고작해야 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 

연대가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실천적 움직임은 묘연했다. 좌파학생운동은 그저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것을 주요한 실천의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은 노동자의 투쟁에 따라 저항이 종속되는 운동이었다. 연대가 아니라 우리의 투쟁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주체들이 필요했고, 그들이 현재 Occupy운동에 함께하고 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나는 그들과 점령운동을 진행하면서 새롭게 운동을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가능한 세상은 다르다! 가능한 세상은 우리가 정한다!"(독일 해적당 하네스 포나더 )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확실히 그들에게 배운 것은, 지금까지 가능한 것만을 기획하고, 가능성만을 기준으로 운동을 판단해왔던 나를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선배들은 개새끼야. 선배들 말은 다 개소리야.”

물론, 이런 소리를 하는 점령자를 보면, 확 깬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후배들한테 꼰대질 못하게 된 것, 그리고 이런 투쟁에 나꼼수나 우리가 여의도에서 불쌍하게 점령하고 있었을 때처럼 후원을 하지 않는 시민사회와 한국의 정서도 아쉽다. 사실은 후원금이 더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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