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 반동의 시대, 우경화된 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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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17일 12: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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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이 글을, 북태서양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습니다. 벌써 3주째 앓고 있는 아주 독한 감기로 목이 아파서 비행기 안에 있기가 몹시 불편한데, 글을 쓰다 보면 목이 아프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으니까 약효라고 봐야 합니다. 기내에서 인터넷 연결은 안되는데, 학회 발표차 가는 캐나다의 토론토에 도착해서 바로 올리려는 것입니다.

    격리된 공간에 있다 보니 절로 “기억” 속으로 시간여행 가기가 쉬워집니다. 1980년대 초반, 가면 갈수록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던 소련의 지식인 사회를 부모의 친척과 친지 등을 통해서 알게 됐던 시절. 그 때 같으면 제 할머니와 같은 노인들은 강력한 공산주의적 신념을 계속 보유했지만, 제 부모 세대, 즉 1960년대에 청년기를 맞이했던 장년층의 “믿음”은 많은 균열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실질적인 원인들이야 매우 복합적이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 “신념 위기”의 중심에 섰던 것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구소련(과 몇 개 다른 동구권 국가들)의 무장간섭, 그리고 아프간 침공,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소련 파견군이 카르말과 나지브 등 아프간 혁명 정부의 편에 아프간 내전에 무장 간섭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의 해외 파병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

    일종의 개방형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현실 사회주의와 서구식 사민주의의 장점들을 같이 접목시켜보려는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내 개혁세력들의 과감한 시도를 소련이 무장간섭으로 좌절시킨 것은, 어쩌면 역사적 범죄에 해당된다고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류의 시도야말로 현실 사회주의의 1970년대 이후의 위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역사에 대한 죄임에 분명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군이 저항하지 않은 관계로 그 간섭의 직접적 희생자는 약 200명 안팎이었습니다. 아프간에 대한 무장 간섭은 훨씬 더 많은 희생을 낳았지만, 소련 군의 파병이야 잘못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최근 반세기 동안의 역대 아프간 정부들 중에서는 카르말과 나지브의 혁명 정권은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었을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희생의 규모나 소련의 “무장 지원”의 대상이 된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국외 침략을 방불케 하는 국가의 모든 행동들에 대해서 좋게 보는 지식인이라고는 1980년대의 소련에서 참으로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국외 파병들에 대한 비판은, 브레즈네브 정권에 대한 혐오를 넘어 “사회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강화시키고, 어떻게 보면 1980년대 말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 그 후의 망국을 “이념적으로 준비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브레즈네브의 정권은 “사회주의”라기보다는 경직된 관료들의 보수화된, 지정학적인 기반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치관을 대변했으며, 같은 기간 동안의 미국의 대외 침략들은 수십 배 더 많은 희생과 비교될 수도 없을 정도의 파괴를 낳았지만, “아, 사회주의 조국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싶어 실망한 이들에게 이걸 설명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독재자 푸틴의 영웅화

    소련뿐만 아니었습니다. 1960~70년대의 세계에서는 어딜 가나 대외 침략들은 체제를 위협하거나 적어도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줄 만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물론 월남 파병에 대한 반대가 거의 없었던 우리 대한민국을 빼고 말씀입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신좌파는 자국을 월남 침략의 병참기지로 만든 지배층에 대해 명실상부한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습니까? 베트남 투사들을 돕겠다고 독일에서 적군파의 – 비록 방법은 한참 잘못됐고 성공가능성이 없었지만 그 의도만큼 참 고귀했던 – 무장행동이 개시됐으며, 미국과 불란서에서는 호지명과 모택동의 사진을 들고 행진했던 데모들이 거의 체제를 위협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월남 투사들의 이데올로기(유교화되고 민족주의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서방 민주주의와는 물론이고 신좌파가 꿈꾸었던 민주적인, 참여 위주의 사회주의와도 꼭 일치 하지 않았으며, 저항자들의 일부 행동 (현지 사회에서의 친미 부역자 처단 등등)은 불가피했다 해도 잔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동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대외 침략은 절대 죄악, 저항은 무죄”라는 것은 1960~70년대 “의식 있는” 사람들의 통념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방이든 동구권이든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의 반동적 정책과 영미권 사회의 보수화, 그리고 1980년대 동구권에서의 사회주의 이념 포기와 보수화, 반동화 이전에는 대외 침략은 “당연히” 죄악으로 인식됐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무의미한 살육과 히틀러의 만행이 인류에 가르친 교훈이라면 군사주의와 침략 이상의 죄가 없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아주 값비싼 레슨이었죠.

    그런데 한 번 오늘날 세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종신집권에 준하는 장기독재를 꿈꾸는 푸틴을 “구국의 영웅”으로 만든 1999년 이후의 체첸 침략과 체첸 독립운동의 말살, 괴뢰정권 수립 등에 대해, 러시아 좌파는 과연 투쟁을 차치하더라도 “비판”이라도 했던가요?

    서방도 예외 아냐

    국내에도 소개된 카갈리츠키와 타라소프 등 일부 좌파 논객들은 글로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말살에 저항했지만 러시아연방 공산당(KPRF)을 위시한 사민주의나 그 왼쪽에 있는 제도적 좌파세력들은 푸틴을 두둔해주거나 입장 표명을 기피했습니다.

    결국 체첸 말살로 민심을 얻은 푸틴이라는 세계적 규모의 도둑이자 깡패는 지금까지도 망한 소련의 유산과 그 영토 안의 지하자원을 훔쳐가면서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체첸에서 비명에 돌아가신 분들의 수는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200명보다 약 1천 배 더 많은 걸로 추산되지만, 체첸 침략에 대한 러시아 내부에서의 비판은 체코슬로바키아 무장간섭에 대한 실망에 비해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결국 이건 희생의 규모 문제도 아닌 셈이죠. “프라하의 봄”에 대한 무장탄압에 실망했던 소련 지식인들은 그때만 해도 “침략은 죄악”이라는 좌파적인 집단의식을 공유했다는 거죠. 그 의식은 지금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에요?

    서방이라고 해서 보다 나은 상황은 전혀 아닙니다. 이라크 침략에 대한 반대 운동은 꽤 규모가 컸지만, 결국 이라크에서의 미제의 침략을 패배시킨 것은 그 반전 운동이라기보다는 이라크에서의 영웅적인 항미 무장투쟁이었지요.

    지금 아프간에서는 고용살인자 수준으로 전락된 미국 군인들이 하는 짓거리들은 만천하에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로 민간인을 살해하고 그 참수된 머리를 든 채 기념촬영하기, “적”의 시체에다 오줌 싸기, 코란과 같이 현지에서 신성시되는 책 소각, 16명의 민간인 목숨을 빼앗은 총난사….

    반전운동은 왜 없을까?

    아프간 침략 그 자체도 범죄이고, 그 큰 범죄의 틀 안에서는 온갖 기괴한 범죄들이 다 저질러지고 있지만, 이 범죄투성이에 대한 “위력적인 반전 운동”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침략의 부진과 가열찬 저항의 성공적 전개에 따라 “자국 군대” 희생에 쇼크를 받게 된 구미인들의 대부분은 아프간 침략의 중지를 원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론조사상 그렇게 원하고들 있는데, 1960년대 말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비교될 만한 “행동”은 없어요. 주된 저항세력인 탈레반의 광신과 잔혹성이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것인가요? 그런데 베트남에서의 항미 저항 주도세력들은 탈레반에 비해 훨씬 근대적이었지만, 역시 서방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과는 사이가 멀긴 했습니다.

    그래도 미제와의 항쟁에서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이유는, 현지 정치 세력들의 성격이야 어떻든 간에 제국주의 침략이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한말의 의병들이 성리학적 보수주의자이었다고 해서, 유림계통의 그 일부 지도자들이 노비 해방을 반대하고 여자교육을 반대했다고 해서(의암 유인석선생은 대표적으로 그랬습니다), 그들에 대한 일군의 토벌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탈레반의 광신이나 보수성은 아니고, 서방 사회에서 지난 30여 년 동안 일어난 변화들입니다. 구 동구권과 마찬가지로, 구미권도 1980년대의 반동 시대 이후로는 우경화됐으며, “침략은 죄악”이라는 좌파적인 통념을 많이 벗어났습니다.

    그 결과는 아주 비극적입니다. 약 2만 명 이상의 현지인들을 죽인 것으로 추산되는 리비아에서의 영국, 불란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의 침략에서 봤듯이, 요즘 서방세력의 “외부”에서의 몇 개월간 폭격 정도면 구미인의 대부분은 아예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고 인식하지도 않습니다. 명분만 좋으면 말씀입니다.

    세계 좌파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나야

    세계의 좌파는 이제 피닉스처럼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종전의 대기업 고숙련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배타적 의존성을 벗어나서 이민자, 청년층, 미조직 서비스업 노동자 등 모든 소외된 주변 분자들을 조직적으로 규합해야 하고, 당 관료 독재의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참여로 운영되는 민주적인 계획경제와 비관료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부터 정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탈군사화, 침략 반대의 기치를 다시 한 번 높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오늘날 아프간 침략과 같은 악몽들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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