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뱅이 젊은이들의 거대한 깽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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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16일 05: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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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적으려 날을 헤아려보다 깜짝 놀랐다. 서울광장 한켠에 텐트를 치고 점령을 선언한 지도 2주, 그때그때 닥치는 일들이 많아 정신 챙길 겨를도 없이 죽죽 처리하는 데만 매달리다보니 주말을 벌써 두 번이나 지나친 줄도 몰랐던 까닭에서다.

    그래도 처음엔 무미건조하게 텐트만 달랑 있던 점령촌에 사람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점차 마을 같은 구색을 갖춰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아직은 초봄이라 밤바람이 찬데다 비가 오기라도 한다면 완전히 속수무책이지만 왠지 시간이 더 흐르면 스스로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한다.

       
      ▲서울광장 텐트촌(사진=대학생 사람연대) 

    한편으론 ‘남들이 집에 사는 것만큼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욕심이 자연스레 사라지기도 한다. 꼴이야 어쨌건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 사는 입장에선 계면쩍은 말이긴 하나,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자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해서다.

    보도블록 위에 텐트를 제외하곤 아무 것 없는지라 역설적으로 이곳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과 비슷하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잔다. 추우면 춥고, 따듯하면 따듯하다. 햇살이 맑으면 마음이 좋아지고, 흐리면 마음 역시 흐려진다. 스물일곱 해 평생을 도시에서만 살며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것을 나는 지금 이 회색의 보도블록 위 점령촌에서야 겨우 배워나가고 있다.

    왜 점령을 하고 있냐고요?

    사람들은 대부분 “왜 점령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물음 앞에만 서면 나는 늘 우물쭈물해한다. 차라리 “왜 점령을 하지 않을 수 없는가?”를 물어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할 말이 있는데, “아무도 함께 진지하게 이야길 나누고 싶어 하질 않아서”라 답할 것이다.

    물론 앞선 세대를 두고서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청년세대의 선거혁명’ 따위를 이야기하며 각 정당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뽑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구석이 여간 답답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환심을 사 몇 표 끌어오기 위한 수작질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세대의 실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하겠다는 ‘청년고용할당제’ 같은 제도도 속빈 강정이긴 마찬가지다. 삶과 노동이 전반적으로 불안한 현재의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은 채 지금의 불만을 잠시 가라앉히는 것 이상으로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지만 청소년세대에 비하면 청년세대는 그나마 낫다. 특히 집권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아무도 청소년세대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과연 표가 안 된다는 이유뿐에서일까? 그러니까, 실은 아무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와 같은 젊은이를 포함한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에 대해 실은 아무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정말로 이대로 대충 살면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점령촌을 ‘좋은 마을’로 만들 것

    그래서 나와 내 친구들은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싶어서 쳤다기보다는 치지 않을 방법이 없어서 쳤다는 쪽이 맞다. 바보 같고 이상하기만 한 사회에 대해서, 작은 깽판이라도 치지 않고선 살 도리가 없다는 생각에 쳤다. 한국은 이렇게라도 깽판을 치지 않으면 아무도 작은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 사회다.

    물론 그냥 깽판을 치는 건 너무나 쉽고, 그래서 별 재미도 없는 일이다. 따라서 나는 보다 즐겁고 생산적인 깽판을 위해, 일단은 점령촌을 ‘좋은 마을’로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실은 도시의 가장 중심부인 서울광장에 가난뱅이 젊은이들이 멋대로 텐트를 치고 먹고 자고 산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깽판이다.

    하지만 “시위(demonstration)란 혁명 이후에 가능한 삶을 보여주는(demonstrate) 것”이라 누군가 말한 것처럼, 일단 판을 벌렸으면 즐겁고 평등하며 서로가 살아가고 싶은 방식을 구현할 수 있도록 서로가 도움을 주는 그런 판이 되고 그런 마을이 되어야할 것 아닌가?

    그래서 2012년 3월 1일, 우리가 광장을 점령한 첫 날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친구들과 함께 나눠먹을 유기농 새싹 샐러드와 함께 나눠마실 맥주, 그리고 함께 즐길 공연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정기적으로 금요일마다 연주회(SUPER FURY SEOUL)를, 일요일마다 상영회(점령의 밤 NIGHT OF OCCUPATION)를 준비하고 있다.

    첫 연주회에선 나와 베거스, 쾅프로그램과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연주했다. 그리고 첫 상영회에선 데릭 저먼의 <희년>과 데이비드 린치의 <광란의 사랑>을 틀었다(다만 이 상영회에선 <희년>의 중반부까지밖에 볼 수 없었는데,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 영화를 보던 중 스크린이 계속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기획하고 있다.무엇 때문에? 말했듯, 점령촌을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는 진심으로 이곳이 집이 되고, 학교가 되고, 밥상이 되고, 공연장이 되고, 영화관이 되고, 미술관이 되고, 도서관이 되고, 그 외의 많은 것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었을 때, 또한 우리는 ‘다음’에 대한 더욱 많은 아이디어들을 모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정작 이를 들어야할 사람들은 귀를 막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덧붙여 한 말씀

    어떤 어르신들은 이런 젊은이들의 행동이 상당히 우려스러우신가 보다. 이미 어르신들 중 몇 분은 자기들 계모임에서 소일거리로 제작하는 홍보용 전단지에 “(…) 텐트 노점(노숙·점거) 시위가 밤이면 술판으로 변질되고 금연 규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써서 동네 사람들한테 한 부 씩 나눠주셨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어쩌지? 술 먹고 깽판 치는 시시한 일은 우리 취향이 영 아니라서 술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텐트 내부에서만 마시고 담배도 광장 안에선 피지말자는 내규를 정해 살고 있는데? 혹시 노인정에선 아직도 그런 식으로 노는 건가? (옛날 분들이니까 젊은이들이 이해해야한다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르신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랍니다. 아직 제대로 깽판 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나중에 화병 나 돌아가시면 서로가 좀 그렇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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