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목되는 탈자본주의 조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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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02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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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최근 아르헨티나를 다녀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난히 카페가 많고 스페인과 이태리의 이민들이 많아 뚜렷하게 유럽적 분위기를 보이는 도시이다.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쌀을 먹는데 비해 빵을 주식으로 한다.

    나라를 천개의 조각으로 찢어놓은 대통령

    그런데 우리와 시차가 정확하게 12시간이 나는 나라답게 엄청나게 더웠다. 약 35도에서 40도를 넘는 강한 태양열과 함께 바다가 가까워서인지 무덥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날씨보다도 그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성격의 조합운동을 접하게 되어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우선 2001년~2002년의 경제위기의 폭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에서 1983년까지 군부독재가 지속되면서 인권탄압이 극심하여 약 3만 명의 희생자가 난 것으로 알려진다.

    1983년의 민주화이후 진행된 인플레 위기의 극복을 내세워 1990년부터 집권한 메넴에 의해 극심한 신자유주의 추종정책이 집행된다. 그리하여 전기, 가스, 석유, 항공 등 중요산업의 민영화와 함께 달러화와 페소화가 일대일로 교환되는 극단적인 평가절상 정책을 통해 국내 산업이 붕괴되어 약 3만 5천개의 공장이 문을 닫았다.

    어느 시민의 표현에 의하면 메넴은 아르헨티나를 마치 “천개의 조각으로 찢어버린” 대통령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라플라타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르헨티나 조합운동 전문가는 양 옆으로 흔하게 보이는 커다란 건물들을 가리키며 전에는 중요한 공장이었는데 2001년에 파산하여 현재까지도 문을 닫고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한마디로 메넴은 대중의 비웃음을 살 정도로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친 주범이 되었다. 농담으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메넴이란 이름을 들먹이면 악운이 온다며, 그를 거론할 때는 “멘데스”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국내의 모 신문은 2003년부터 집권한 페론주의 좌파의 고 네스토르 키치네르와 현재의 크리스티나 키치네르 정권의 빈민층에 대한 사회정책의 지원을 “퍼주기”의 전형인 포퓰리즘으로 혹평하며 경제침체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분명히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침체와 일반시민의 삶의 질의 저하는 메넴의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음은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이다.

    자살하지 않고 저항한 국민들

    필자는 2001년의 경제위기 당시 산업이 붕괴하고 실업자들이 엄청나게 생겼을 때 이들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고, 어떻게 저항과 시위를 조직했는지 매우 궁금했었다.

    시위방식은 지방에서는 고속도로를 막고 타이어를 태우는 등의 방식이었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는 북을 치면서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당시 저항과 시위를 좌파 정당의 엘리트 지식인 또는 조직 노조의 지도부 등이 지휘한 것이 아니었고 기층 대중이 스스로 조직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당시 실업자들이 단지 직장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녀의 교육 및 건강권 등 다양한 생존권적 요구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고 네스토르 키치네르 정부는 메넴 정부 하에서 민영화된 뒤 크게 인상된 가스, 전기, 교통요금 등에 대해 2003년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요금을 절반으로 깎아주는 보조금 정책을 펼쳐왔다.

    필자는 2001년의 경제위기 당시 힘든 상황을 견뎌내지 못해 자살한 사람들은 없냐고 물어보았다. 자살한 사람들은 없다고 했다. 닥치는 대로 행상도 하고 부잣집에 가서 잔디 깎기도 하고 전문직 종사자들 약 3천명이 택시운전도 하고 등등 그야말로 가난을 견뎌내고 그것에 저항했다고 한다. 당시 실업자들은 매우 고독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메넴의 가혹한 신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서로 강하게 연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서로 “물물교환”을 했다. 이발 기술이 있으면 이발을 해주는 등 서로 이웃 간에 연대한 것이다. 주로 여성들이 중심이 되었다.

    탈자본주의적 새로운 조합운동

    그러나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줄 때 그런 연대의 사회적 바탕이 어디에 있는지 필자는 궁금하고,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계속할수록 조금씩 이해가 되어갔지만 아직도 궁금증은 완전히 풀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2001년 경제위기 당시 갑자기 연대의 문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80년대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외곽의 가난한 위성도시에서는 국유지의 불법점유자들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정부에 요구하는 동네 평의회적 운동이 탄탄하게 존재했다.

    경제위기 당시 정부는(키치네르 정부가 아닌 전임 정부들) 긴급식품 및 응급구조의 돈을 가구당 지급했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경험한 이후 대안적으로 중요하게 된 것은 2003년부터 파산한 기업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점유하여 경영을 하는 “자율경영” 또는 “노동자 복구기업”의 조합운동이다.

    우리도 흔히 아는 전통적 방식의 협동조합운동이 아니라 탈자본주의적인 새로운 조합운동을 말한다. 이를 담론적으로 “사회경제” 또는 “사회적 연대경제”로 부르기도 한다.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주도한 것이지만 적극적으로 중앙정부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임 고 네스토르와 현재의 크리스티나 키치네르 정부를 단순히 중도좌파 정부라고 호명하는 것은 현실적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1년 현재 금속산업, 의류 제조업, 인쇄업, 호텔, 식당 등 다양한 업종에 걸쳐 약 300곳에 이른다.

       
      ▲사진 = ⓒ안태환 2012

    차베스 정부 관계자 1백명이 투숙한 호텔

    예를 들어 1978년에 설립되었고 2001년에 파산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의 바우엔 호텔도 2003년부터 “자율경영”의 조합운동을 펼치고 있다. 18층의 건물을 가진 수준급 호텔이다. 이들의 임금은 총회에서 선출된 사장(소유주가 아닌)에서부터 하급직원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약 800불 수준).

    이곳에는 다른 조합운동과 연대하는 회의가 매일 열리다시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서로 연대하는 조합운동의 활동을 거의 매일 촬영하는 독립영화 감독의 사무실도 호텔 안에 있다. 구체적으로 이런 조합운동은 같은 “자율경영”을 하고 있는 다른 업종의 조합들과 서로 물물교환 방식으로 연대한다.

    예를 들어, 바우엔 호텔도 초기에 주요 고객이 다른 조합운동의 관계자들이었다고 한다. 직원의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그곳에서 한 것이다. 또한 2004년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의 각료가 약 100명의 석유공사 직원들을 이끌고 와 한 달간 투숙하여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 당시 번 돈으로 호텔의 낡은 전화선과 소파를 교체했다고 한다.

    바우엔 호텔에 대해서는 우파의 공격도 만만하지 않다. 2007년에 법원 판사가 불법점유 판결로 강제퇴거를 명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점유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는 중앙정부의 암묵적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현재 바우엔 호텔은 정부에 대해 국유화를 한 후에 법적 지위를 안정시킨 조합운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또한 필자는 바우엔 호텔의 관계자와 함께 시내로부터 약 2시간 떨어진 시골에서 열린 “토마토 축제"에 갔다.

       
      ▲사진 = ⓒ안태환 2012

    대안은 엘리트가 아니라 대중으로부터

    그곳에서는 소농이 재배한 토마토를 주민들에게 싼 값으로 판매하며 소농의 활동을 격려하는 다양한 종류의 조합운동 관계자들이 서로 모여 있었다. 물론 수공업으로 만든 흑맥주와 아르헨티나식 만두(엠빠나다) 등 먹거리도 있었고 카리브 댄스 음악과 내륙의 전통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음악축제와 지역방송국의 생방송도 있었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거부 등을 실천하는 농민조합 활동가들이 여는 세미나 등, 신자유주의 체제를 거부하는 구체적인 대안을 실행하는 다양한 조합운동의 활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여행 후 느낀 소감은 신자유주의 체제의 대안은 엘리트 지식인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제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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