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자의 꿈? 그런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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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14일 11: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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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오래 전에 이공계 학부와 그 언저리에 걸친 대학원에 몸담았을 때 들었던,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 도시전설처럼 떠돌던 얘기들이 있다. "○○학과의 ××교수는 4.19 때도 도서관에서 밤늦게 공부했다더라", "△△학과의 □□교수는 87년 6월항쟁 때 수업에 빠졌다는 이유로 수강생 거의 대부분에게 F를 줬다더라" 하는 등속의 얘기들이다.

    이공계 교수들의 전설들

    꼭 이공계 교수들만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공계생들이 흔히 농담처럼 주고받던 이런 얘기들에는 어느 정도 자조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다. 나도 누구처럼 사회 일반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신경 끄고’ 열심히 ‘전공만 파야’ 훌륭한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 말이다. 이러한 생각이 이공계 내에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관련 활동을 열심히 하던 학생들에게 특히 큰 부담으로 다가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과거에서 날아온 이러한 장면은 오늘날 과학기술 전문가와 사회운동이 맺고 있는 관계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노동운동, 시민운동, 환경운동, 정보운동 등 비판적 사회운동 진영은 자신들의 운동을 위해 필요로 하는 전문성을 확보하는 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이른바 ‘체제측 전문가’와 대등하게 맞서는 논리를 개발하고 사회운동의 대의에 전문성을 빌려주는 ‘대항전문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매우 적으며 그런 전문가를 새로 ‘발굴’해 내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어쩌다 사석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 관련 사안들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를 만나더라도, 그런 견해를 공개석상에서 표명해 달라고 요청하면 극도로 난감해하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은 과학자와 엔지니어(혹은 다른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를 새롭게 배출하는 대학원 교육이 애초에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둔감한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만들어내게끔 설계되어 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전문가가 보수적이 되는 이유

    미국의 작가 제프 슈미트가 쓴 『이데올로기 청부업자들 Disciplined Minds』은 바로 이런 의문에 답하고 있다. 슈미트는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UC 어바인)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물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 『피직스 투데이 Physics Today』에서 19년간 편집인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먼저 전문직(profession)의 특징과 존재 의의를 새롭게 정의한다. 흔히 전문직 종사자(professional. 번역서에서는 ‘전문가’로 옮기고 있지만, 이 책에서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professional’은 단순히 특정한 지식이나 기술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키는 ‘expert’과는 구분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그리 정확한 역어 선택은 아니다)들은 통상적인 직업(occupation)을 가진 비전문직 종사자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무 수행 과정에서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누리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 일반에 대해 더 큰 책임의식을 갖는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슈미트의 생각은 정반대다. 전문직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훈련 과정에서 더욱 엄격한 이데올로기적 훈육을 거치며, 그 결과 훈련 과정에서 ‘살아남아’ 전문직으로 진입한 사람들은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더욱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다는 부분이다. 즉,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내리는 판단이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기술적 장단점에 따른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도록 사회화된다는 말이다.

    이데올로기 내면화 과정 적나라하게 폭로

    그는 이 책의 2부에서 평범한 물리학과 학생이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물리학자로 ‘만들어지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먼저 입학 과정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이나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을 거치면서 중간계급, 백인, 남성들이 노동자계급, 소수인종, 여성보다 더 많이 대학과 대학원에 진입하게 된다. 이는 다지선다형 선발시험에 암암리에 내재된 문화적 편견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대학 캠퍼스에 일정한 중간계급 편향을 부여한다.

    대학원에 진입하고 나면 처음 2년 동안 집중적으로 강의를 듣고 숙제를 하는 시간을 보낸 후에 논문제출자격시험(속칭 논자시)을 보는데, 슈미트는 이 단계가 이데올로기의 내면화에서 결정적이라고 본다. 며칠간에 걸쳐 빡빡하게 치러지는 자격시험의 형식 자체가 해당 분야의 공부를 정말 즐기는 학생보다는 기출문제를 달달 외우고 문제풀이의 요령을 꿰고 있는 학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평가되는 것은 학생이 지닌 재능이나 문제풀이 능력이 아니라 그가 내비치는 태도다. 즉, 강도 높은 소외된 노동(장기간의 시험 준비)을 기꺼이 수행하는 학생들을 뽑음으로써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도 특정한 주제에 대한 협소한 관심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박사학위를 받고 물리학자로 대접을 받게 되면 이제 후원기관(정부, 기업, 군대)이 원하는 연구 주제로 자신의 관심을 ‘조정’해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이 시작된다. 얼른 보면 과학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 후원기관과의 관계를 유심히 살펴보면 그 반대가 진실임을 알 수 있다고 슈미트는 지적한다.

    과학자의 꿈?

    이는 전문직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대단히 냉정한 평가일 뿐 아니라, 전문직을 지향하면서 학업에 몰두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매우 암울한 전망이기도 하다. 많은 대학원생들은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심들을 일단 접어놓고 나중에 제대로 된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면 그때 가서 자신의 꿈을 펼쳐 보겠다는 기대를 품곤 한다. 그러나 슈미트는 이것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라고 경고한다. 전문직 훈련 과정에 매몰돼 시키는 일만 하다 보면 그러한 꿈은 어느새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체제에 순응하는 전문가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 개혁에 의식적으로 기여하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겠다는 꿈을 아예 접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행스럽게도 슈미트는 책의 3부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지키며 전문직 훈련 과정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에 입각해 그가 권고하는 ‘저항’의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하고 연대하라’로 압축할 수 있다. 대학원생 한 명의 힘은 약하지만, 그들이 소모임을 꾸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대학원 외부의 개인이나 단체들로부터 도움을 얻어 그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확대해 나가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렇게 해서 급진적 전문직 종사자가 되고 난 후에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조언을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전문직 종사자가 전문가로서의 권위를 앞세워 사회운동을 도우려 하기보다는 전문성 그 자체의 민주화와 궁극적 철폐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서는 대학원생이던 1970년대에 급진과학운동 단체인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의 지부를 만들어 운영했던 그의 지난날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물론 자칫 ‘말썽꾼’으로 낙인찍힐 수 있는 이러한 저항의 방법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유일한 희망의 끈이 거기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을 수밖에.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쓰고 난 후 슈미트 자신이 겪은 경험은 조직과 연대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사장한테 훔친 시간에 쓴 책

    그는 2000년에 이 책을 출간한 후 『피직스 투데이』의 편집인 직위에서 해고되었다. “이 책은 훔친 것이며, 얼마간은 (고용주로부터) 훔친 시간에 썼다”는 책머리의 고백(?)이 고용주에게 괘씸죄로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500여명에 달하는 전세계 지식인들이 슈미트의 해고에 항의하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미국물리학회를 압박했고, 결국 2006년에 슈미트는 해고 무효 소송에서 성공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냄으로써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 속에서도 역시 혼자의 힘은 약할 수밖에 없지만, 그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을 때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다시한번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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